132. 애급(埃及)대통령 나기부의 퇴임과 복직
1954년 3월 1일
카이로 2월 25일 발 통신에 의하면 애굽(埃及) 대통령 모사택크 나기부 씨는 25일에 그의 공직으로부터 사퇴하였으며 그의 후임자는 임시로 전국을 통하여 비상경계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애굽의 부수상 아부델 나셀중령은 혁명위원회의 추천으로 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나기부 씨의 사임발표가 있은 수 시간 후 25일 새벽에 비상경계를 선포하였다.
타루크 왕(王)을 왕직으로부터 추방한 나기부는 혁명위원회가 그에게 전체 부여를 거부함으로 그는 공직으로부터 사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각 정부 관리는 나기부 씨가 각료 및 군인의 임명과 파면에 관한 혁명위원회의 권리와 결정권에 대하여 거부권을 제명하려고 꾀하였다고 말하였다. 애급 국가 임건상(臨建相) 사렘씨는 애급이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해방할 때까지 나셀 씨가 장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임건상(臨建相)은 어어 애급 대통령은 현 애급국회가 만족을 채울 때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스에즈 운하 문제를 단속하고 영국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는 애굽정부에 대한 지탁권(支托權)은 1952년 7월에 정변을 일으켜 타루트 전왕(前王)을 국외로 추방하는데 성공한 나기부 씨에 의하여 장악되었던 것이다. 1952년 6월 18일 애굽은 공화국정부를 선포하고 개시에 나기부 씨가 대통령에 피임되었다.
이때에 나기부 씨의 일이 잘 되었다. 수천 년 내려오던 부패한 왕정을 쿠테타로 개혁하여도 한사람도 반항하는 자 없었고 또 중망(衆望)으로 수상 겸 대통령의 의자에 앉게 되어도 한 사람도 반대하는 자 없는 것은 이것이 어떤 근인(根因)되었는가 하는 것을 나기부 씨는 생각지 않은 것 같다. 이때에 모든 권력의 중심은 혁명위원회가 가졌다. 이 위원회도 나씨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나씨는 그 기관에 한 대표자이다. 이 법에 의하여 그냥 나아가면 자기는 와슬로이나 아부람 잉커언이나 다름없이 그 자리가 견고하여 누가 엿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나씨는 생각지 못하였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욕심이 동하였다. 이것은 마(魔)의 유혹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나씨는 혁명위원회를 향하여 회의 가지고 있는 거부권을 자기에게 위임하라는 것을 요청하였다. 이것은 모든 정권을 자기 자신이 혼자 주장하겠다는 것이다. 추측컨대 이 요청이 있기 전 나씨는 관리진퇴와 군권을 이용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요청을 들은 위원회에서는 나씨는 나라 만드는데 마음이 있지 않고 정권욕에 급급하였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그런 후에 위원회에서 나씨의 출석을 청하여도 오지 않음으로 위원회에서는 더욱 나씨의 행동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군대의 대령인 나셀 씨는 2월 25일 밤에 나씨에게 구테타를 행하였다. 물론 위원회의 가결도 되었다. 그날 밤에 각처에 계엄령을 발포하고 취침중인 나씨에게 사퇴를 강요하여 나씨는 일마다 그릇된 줄 알고 응치 않을 수 없는 형세이다. 나셀씨는 그날 밤에 곧 전국에 반포하고 위원회에서는 나씨의 가졌던 대통령 자리는 공석으로 두고 나씨의 가졌던 수상의 직은 나셀씨가 대신하기로 되었다. 나기부에게 퇴위를 당한 파루크왕(王)은 퇴위 당시에 말하기를 나기부의 직은 2년을 넘지 못하리라고 예언한 것이 오늘 응하였다고 한다.
오늘 사람들의 가장 싫어하는 것은 독재와 전제이다. 예전에 황제를 거스리면 역이라 함과 같이 오늘은 민의를 거스리면 역이다. 나셀 씨가 야반에 도적같이 나기부의 침소에 들어가서 위협을 가하였으니 도적이라 하여도 가하다. 그러나 도적이 되지 않고 도리어 쾌재를 부르며 모든 사람들이 다 갈채함은 무슨 까닭인가. 민의를 좇은 까닭이다. 그리고 공석으로 되어있던 대통령자리도 나셀 씨에게로 위임되었으니 이것은 순전히 민의를 대표한 혁명위원회의 지도일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경우에 어느 인국(隣國)에도 아무 관계가 없이 순조로이 된 고로 미국은 방관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도 다 방관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영국에서는 조금 불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스에즈 운하에 오늘까지 영군(英軍)이 주둔하고 있으며 간섭하려는 고로 나셀 씨는 이것을 절대 반대하여 영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항의한 고로 영국에서는 나기부 때와 같이 방심하지 않고 특별한 주의(注意)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애급 대통령 나셀 씨여 나기부 씨의 실패를 보시고 경제민요(經濟民擾)를 배척하고 절대로 민의에 충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들으니 나기부 씨는 지금 연금 중이라 하니 그가 다시 회개하고 민의를 복종한다면 같이 손잡고 난국을 내합(內合)하면 합니다.
그러나 정치는 물결처럼 업치락 뒤치락 변덕이 요란한 것은 정치이다. 애급 정치 위원은 나기부 씨에 대하여 너무 경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그가 정치욕을 가지고 혁명회의 뜻에 위반되는 것이 있을 때에 십분 권고와 오해가 있어 일에 타당성을 찾지 않고 먼저 직접 행동을 취한 것은 그건 정대(正大)한 인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 위원회 일방적인 의사만 정할 것 아니요 애급은 아직 군권 행사로 혁명이 된 것만큼 군 전체의 의사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때라. 그러면 위원회는 이 뜻을 맡아 보기에 부족하였다는 것을 또 추측할 수 있다. 이때 나기부 씨가 야반(夜半)에 쿠테타를 당할 때 아무 불평과 거부가 없이 자기 손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그 수일 후에 일반이 나씨의 구테타 당함과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를 들음에 종용히 있어 혁명위원회의 일을 복위(復位)할 줄 알 것이 의외로 불평의 소리가 제시되어 도리어 위원회의 일을 비난하게 되었다. 비난할 뿐 아니라 구테타의 책임자 나셀 씨에게 위험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나셀 씨의 혁명이 도리어 반역이 될 것이다. 혁명위원회는 다시 나기부 씨에게 교섭하여 그 과개(過改)하였다는 것과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복직할 것을 요한바 나기부 씨도 자기의 과실도 있어 그런 변을 당하였다는 것을 사과하고 그 복직에 허락하여 2월 27일에 혁명위원회는 이 경과를 전국에 라디오로 발포하였다. 이에 대한 반대당도 있을 것은 짐작한다. 아-요란한 정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