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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장. 깨어진 약속과 민주주의의 위기:신자유주의, 포퓰리즘,세계시민주의 1.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무너진 이후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삼는 진영은 자신감에 넘쳤다. 예를 들어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1052~)는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1992)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체제에서 승리했으며, 이 승리는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기에 일관된 진화 과정으로서 역사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체제 싸움에서 승리한 자유 진영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런 자신감은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지구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1776)에서 "시장의 크기는 클수록 좋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지혜를 실천이라도 하듯 지구 위에 사는 존재로서 가장 큰 시장, 즉 지구적 시장(global market)을 상상하고 이를 구축하는 일에 나쳤다. 자본의 확장을 가로막던 냉전체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확장된 시장이 모든 국가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거침없는 확장에 사회민주주의자들마저 '제3의 길'을 선언하며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 21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시절이 이어졌다. 이 장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실천적 기원과 내용, 지구적 질서의 구축 과정을 살펴본다. 1)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지배 냉전체제의 종말 이후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냉전 이후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그 기원은 냉전 자유주의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1899~1992)이다. (p.391) |
| 1931년 30대 초반의 하이에크가 오스트리아에서 런던정경대학교로 건너왔다. 이 당시 런던정경대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가 중심이 된 케임브리치학파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었고,하이에크가 적임자로 선택되었다. 케임브리지학파가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개입을 옹호했던 반면, 하이에크는 이런 개입이 자유주의 경제질서에 해롭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하이에크는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유럽 대륙에 나치즘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하이에크에게 국가는 경계해야만 할 대상이었다. 만약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면, 그런 힘이 언제든 억압적으로 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측면에서 하이에크에게 시장질서를 국가로 부터 보호하는 일은 자유주의 그 자체를 지키는 일이었다. 이런 하이에크의 발상은 자유의 구성(The Constitution of Liberty)』(1960)에서 잘 드러난다. 참고로 이 저작이 우리말로 「자유의 헌정으로 번역되곤 하는데, 이 책은 자유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는바 Constitution 또 다른 중요한 뜻이 '구성'이다. 그 구성요소 중 '시장질서'가 핵심이다. 여기서 하이에크는 시장을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로서 옹호한다. 하이에크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형성한 질서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행위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질서를 구별하는데, 의도하지 않은 인간 행위의 산물이 바로 자생적 질서이다. 이 자생적 질서는 처음엔 단순한 개인의 행위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물건을 자발적으로 교환하고, 이런 교환이 확대되면 물물교환 시장이 생겨나고, 더 편리한 교환을 위해 화폐를 사용하고, 이런 화폐의 확대가 화폐교환 시장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분쟁 없는 교환을 위해 규칙을 만들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의도치 않게 시장질서가 형성된다.하이에크는 이런 자생적 질서를 옹호하는데, 자생적 질서 그 자체가 개인의 의도와 욕구에 따른 행위로 생겨난 산물이기에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구와 자유로운 선택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p.392) |
| 이런 자생적 질서는 그 자체로 자유주의적이다. 그러므로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로서 시장에 국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이 사유재산과 최소한의 소극적 자유 영역만을 보호하면 된다고 본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이런 발상이 단순한 자유방임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서로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달리 말해, 국가가 할 일은 시장교환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불명 등의 문제를 교정하는 데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국가의 역할은 재분배를 통한 사회복지 체계의 마련이 아니라, 누구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제도적으로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이런 발상을 가장 잘 물려받은 정치인이 바로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였다. 대처가 총리가 된 1979년, 영국은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압박, 잦은 파업 등으로 경제침체를 겪으며 고통받고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경제침체의 주된 원인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표방했던 복지에서 찾았다. 이들은 영국이 복지병 때문에 정부가 비대해졌을뿐더러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국가의 재정이 지나친 적자를 떠안았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런 복지병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개인들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처는 하이에크의 신봉자였다. 대처가 자유의 구성」을 동료들에게 보여 주며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야!"라고 말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이다. 국가가할 일은 사회복지 체계 마련이 아니라 누구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는 하이에크의 발상은 대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처는 이 발상을 '작지만 강력한 정부'로 이해했다. 국가는 복지를 멀리해야 할 정도로 작아야 하지만, 시장을 거부하는 이들을 시장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처는 이 발상에 따라 어떤 총리도 갖지 못했던 수준의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이게 정말 하이에크가 바란 것이었을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지만 대처는 하이에크를 활용해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힘을 증대하며,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이 길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지키는 보 수주의의 길이며 영국을 아끼는 애국이라고 주장했다. (p.393) |
| 놀랍게도 대처가 만든 이 모순적 서사는 영국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대처의 시장 중심적 발상을 물려받은 이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이었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처음으로 당선된 1981년, 미국은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레이건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율을 인하하고, 정부의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떨어진 미국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패권국가로서 국방비를 늘리고, 소련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었다. 세율을 인하하고 정부의 지출을 줄이면서 동시에 국방비를 늘리고 소련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순적인 발상은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레이건이 내세운 시장 중심적 발상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고 불리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세율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 지출을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최대한 지양한다는 간단한 원칙으로 이루어진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을 강타한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고 규제완화가 기업과 금융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엔 실업률의 하락과 경제성장률의 상승을 이끌었다. 더하여 레이거노믹스는 1980년대에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던 지구적 시장질서를 주도하며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처럼 레이거노믹스는 1980년대 미국의 무공을 끌어낸 듯 보였다. 하지만 밝혀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레이건은 정부의 지출 규모를 줄이지 못했다. 정부의 규모를 줄이는 일과 체제 경쟁을 통해 적을 무너뜨리는 밑은 애조에 양립할 수 없었다. 오늘날 미국이 떠안고 있는 심각한 부채 문제가 이때 시작되였다. 또한 규제 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금융 부실화를 초래했다. 특히 금응 부실화는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로 대표 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심화된 불평등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 1946)라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p.394) |
| 2) 신자유주의 내용과 사회민주주의들의 수용 대처 이래 '작지만 강한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신자유주의를 이룰까?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는 「제3의 길(The Third Way)」(1998)에서 그 내용을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큰 정부에 대한 적대감이다. 국가가 간섭하지 않다면 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정직, 의무, 명예, 봉사, 자기희생, 근면함, 애국심, 타인에 대한 배려에 이르기까지 갖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런 모든 것이 자라나는 터전이 바로 시장이다. 이처럼 시민들이 자생적인 연대를 이루는 시장은 국가보다 우월하다. 둘째, 이런 이유로 국가는 복지에서 멀어져야 한다. 국가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복지는 시민들이 자생적 질서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미덕을 방해한다. 복지는 지나친 의존을 조장하고 자립적인 도덕적 가치를 타락시켜 시민적 질서를 파괴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복지와 멀어질수록 좋다. 국가가 복지에 집착할 수록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져 국가 역시 비대해지고 경우에 따라 지나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복지국가는 모든 해악의 근원이다. 셋째, 같은 맥락에서 사회에서 생겨나는 불평등은 국가가 다루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시장이 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어도, 능력과 성공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지위에 오른다면 그런 불평등은 문제 삼을 수 없다. 넷째, 이런 이유로 국가가 할 일은 명확하다. 국가는 사람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시장을 거부하는 일은 개인으로서 독립적이며 시민으로서 연대를 외면하는 일이기에, 국가는 시장을 장려하고 시장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다시 시장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해야만 한다. 다섯째, 시장을 통해 자생적 연대를 이루는 이들의 기반은 국가가 아니라 가족과 민족이다. 가족은 사람들이 더 성실히 일해야 할 원동력이 되며, 민족에 대한 애착은 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질서유지를 위한 원동력이 된다. (p.395) |
| 이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1) 세 번째 및 두 번째 항목. 2) 다섯 번째 항목이다. 우선, 세 번째 항목은 신자유주의가 소위 능력주의와 결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더 뛰어나고 더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건 정당하기에 그 적차가 심해진다고 하더라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발상이다. 이런 발상은 두 번째 항목과 대조되는데. 신자유주의는 복지에 의존하고 있는 이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규정한다. 결국 성공은 시장에서 성실함을 비롯한 도덕적 미덕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실패는 그렇지 못한 도덕적 타락의 결과이다. 성공한 자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이며, 실패한 자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다. 경제적 성공의 차이가 도덕성의 수준의 차이를 만든다. 이런 구조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는 도덕적으로 불순한 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모멸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 수 있다. 제3절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런 신자유주적 논리 안에 21세기 들어 터져 나올 반발의 씨앗이 내재해 있었던 셈이다. 한편, 다섯 번째 항목은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와의 결합을 보여 준다. 가족은 개인이 시장에서 성실하게 살아갈 원동력을, 민족은 시장주의자들에게도 애국심을 불어넣는다. 대처가 만들어 낸 기적의 논리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확장되는 시장은 가족을 해체하는 성향을 보인다. 더 나은 기회를 찾아 가족들은 흩어지고 핵가족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더불어 확장된 시장은 국경을 허물고 애국심을 약화시킨다. 예를 들어 다국적 자본이나 초국적 자본이 애국심을 가질 리는 없다. 자본의 애국심은 자본이 영토 안에 갇혀 있을 때 가능하다. 당대의 초국적 기업은 자신이 속한 영토에 더 많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헤드쿼터를 더 작은 세금이란 혜택을 제공하는 곳으로 쉽사리 옮긴다. 심하게는 조세도피처에 소위 페이퍼컴퍼니를 만든다. 신자유주의가 옹호하는 시장은 현실에서 보수주의와 심각한 모순관계에 있다. 하지만 훗날 드러나게 되는 이러한 문제는 상관이 없었다. 대처 이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그 위력을 떨쳤다. 그 영향력은 대처의 뒤를 이어 권력을 차지한 토니 블레어(Tony Blair, 1953~ )를 통해 드러 났다. 1997년부터 10년 동안 총리로 집권했던 블레어는 노동당의 대표였음에(p.396) |
| 도 사실상 보수당의 대처가 만든 경제 기조를 '제3의 길'이란 기조 아래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블레어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려 했던 케인스식 처방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오히려 대처와 같이 '경쟁'과 '부'를 더 중요한 요소라고 여겼다. 블레어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복지 혜택을 받 고 싶다면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노동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불평등이 국가가 해결해 할 일이라고 보지 않았다. 이런 기조는 블레어를 위해 기든스가 이론적으로 구축한 「제3의 길」의 한 대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블레어는 이런 자신의 기조를 '신노동당'이라는 정치적 구호로 만들어 내밀었다. 그리고 영국을 능력주의 사회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이런 기조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의 중심이자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고 있던 독일에까지 넘어갔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8년간 독일의 연방총리를 지낸 슈뢰더(Gerhard Schröder, 1944~)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p.397) |
| 3) 지구화와 지구적 시장질서의 확립 슈뢰더의 연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의 열풍은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현상과 같이 시작되었다. '지구화'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인간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인간의 상호의존성이 기술혁신에 기반하여 기존 국민국가 영토의 경계를 넘어 빠른 속도로, 그리고 대규모로 행해지고 심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정치 영역에선 EU를 비롯한 새로운 정치공동체가 탄생하고, 이에 따라 세계시민이라는 이상이 생겨났다. 문화 영역에선 다양한 문화가 하나로 어울려 나타나는 하이브리디제이션(hybridization) 현상, 다양한 문화가 일정 영토에서 동화되어야 한다는 강요 없이 인정하는 다문화주의, 세계적인 문화가 지역 문화와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 영역에서는 지구적 시장의 구축으로 나타났다. 이 지구적 시장은 두가지 현상을 동반했다. 우선, 자본이 영토라는 족쇄에서 풀려났다. 지구화 이전시대의 자본은 노동력을 영토 내에서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구적 시장에서 자본은 영토를 넘어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갔다. 한편, 영토의 족쇄에서 풀려난 자본은 더 큰 시장을 원했다. 그리고 더 큰 시장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국가의 경계(보호무역)를 허물었다. (p.398) |
| 둘째, 이 경계를 허물기 위해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 체제의 중심에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국제통화기금(renational Monetary Fund, IMF), 세계은행(World Bank, WB)이 있었다. 1995년에 출범한 WTO는 회원국들 간의 상품 거래의 원칙을 단일화했다. 이 현지구적 시장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단일한 시장경제 원칙의 전파는 1944년 설립 이후부터 국제 금융질서 유지의 주축 기관 역할을 해 온 IMF와 세계은행에 맡겨졌다. 이 두 기구는 재정 위기에 빠진 국가나 경제개발에 돈이 필요한 국가에 자금을 대출해 주면서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처방을 받아들이라는 조건을 내밀었다. 그 조건에 긴축재정, 자유무역, 해외직접투자, 국영기업의 민영화 혹은 민간위탁, 재정과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유연한 서울, 경쟁적 환율, 공공지출 감축, 거시경제 구조조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모든 조건은 신자유주의를 규정하는 키워드이기도 했다. 이 조건을 전파한 두 기구의 본부가 워싱턴에 있다는 이유로 이 조건들은 '워싱턴 컨센서스 (Washington consensu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과정에서 관세를 낮추고 국내 상품과 국외 상품 간의 차별을 없애 버렸다. 한 지구적 시장의 구축에 날개를 달아 준 건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었다. 디지털 기술은 국경을 넘어 세계를 연결하며 금융자본주의가 구축되는 기반이 되었다. 이제 더는 실물화폐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화폐의 이동은 모니터 위에서 일어났고, 기업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반인들도 손쉽게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구축된 지구적 시장이 모든 국가 모든 이에게 궁극적으로 혜택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WTO에 반대하는 시애틀 항쟁(1999)과 같은 반지구화(anti-globalization)은 동이 있었지만, 이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신자유주의는 지구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고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찾아 들어갔다. 자본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개발도상국으로 떠났고, 노동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선진국으로 몰려들었다. 진정 지구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고, 인류는 지구 위의 존재로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다. (p.399) |
| 2. 신자유주의의 깨어진 약속 냉전의 붕괴 이후 온전히 구축된 지구적 시장의 위력과 함께 신자유주의는 그 위세를 펼쳐 나갔다. 신자유주의의 약속대로라면, 이제 이 지구적 시장은 '자기 삶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을 지구적 차원에서 길러 내야 했다. 물론 이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불평등은 개인이 감당할 몫이어야 했다. 근면함과 독립성을 갖춘 개인이라면 더욱 노력해서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하지만 특히 발전된 국가의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의 약속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저개발 국가의 개인들에게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로의 이주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였던 반면,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의 노동계급은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노동계급이 이렇게 느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구적 시장에서 자본계급은 더 많은 부와 소득을 얻었지만 노동계급에게 주어지는 부와 소득은 정체되거나 실질적으로는 감소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수용한 국가는 개인들의 삶을 병들게 하는 복지 체계를 약화하거나 해체시켰다. 그사이 자본은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영토 밖으로 나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의 미숙련 노동자들은 실업의 위기에 내몰렸고 영토 안에 갇혀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와 같이 자본과 노동이 처한 다른 처지를 가장 적절한 개념으로 설명한 사회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은 「액체근대(Liquid Modernity)』(200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p.400) |
| 이 문단의 전반부는 지구적 시장에서 자본이 국가 영토에 더는 종속되지 않는 초국적 존재가 되었음을. 그리고 그 초국적 자본의 본질이 '일시성'과 '속도에 있음을 드러낸다. 자본은 필요한 영토에 잠시 머무르며, 한편으로 국경을 빛의 속도로 넘나들면서 이윤을 만들어 낸다. 반면 이 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영토에 종속된 노동자들의 처지를 그려 낸다. 저숙련 노동자들일수록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길 바라며 억지를 부려야만 한다. 영토의 경계는 자본에 열려 있지만, 저숙련 노동자들에게는 닫혀 있다. 이처럼 처지에 따라 경계의 모습은 바뀐다. 이렇게 유동하는 경계를 바우만은 '액체근대'라는 은유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바우만은 영토 안에 갇힌 노동자의 처지를 새로운 빈곤(Work, Consumerism. and the New Poor)』(2004)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바우만은 말한다. "모든 창조는 오염을 수반하며, 가끔은 유독한 찌꺼기를 남긴다." 그 찌꺼기는 우리가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분해 후자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 구분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한 차례라도 쓸모없는 존재로 구분되면 다시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능력주의에 따르면,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시장에서길러야 할 미덕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이들의 도덕적 결함 때문이다. 이처럼 지구적 시장에서 발전된 국가의 초국적 자본과 저숙련 노동의 운명은 극단적으로 말했다. (p.401) |
| 하지만 노동은 자본을 향해 자신의 처지를 호소도 할 수 없없다. 자본은 영토를 떠남으로써 이런 노동자들의 호소를 간단히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어떤 명토에서 머물건 같은 방식으로 노동을 외면할 수 있 었다. 값싼 노동력의 항의를 받으면 다른 영토의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특히 거대한 규모의 초국적 자본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영토 국가이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에 대한 효과적 저항의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지구적 시장이 만들어 내는 고통에서 나오는 분노는 고스란히 발전한 국가의 영토로 이주한 이주민들에게 전가되었다. 이주자들과 함께 들어온 문화적 이질성'은 당연히 손쉬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문제를 만든 이는 따로 있고, 문제를 만든 이들이 이윤을 내기 위해 이용한 사람들에게 그 비난이 전가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3. 깨어진 약속에 대한 반발 21세기에 들어서자 신자유주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음이 드러났다. 지구적 시장이 들어선 이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적 차이는 더 벌어졌다. 맨프레드 스테거(Manfred B. Steger, 1961~)는 지구화(Globalization 3rd)』(2013)에서 1970년 개발도상국들이 지고 있던 대외채무(external debt)는 702억 달러였는데, 1980년에는 5,690억 달러로, 2013년에는 그 단위가 바뀌어 6.857조 달러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지구적 시장을 통해 국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가속화된 것이다. 한편, 자본의 이익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평범한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소위 '선진국'에서조차 빈곤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노동 유연화가 만드는 불안, 복지제도의 약화, 이주노동자들의 유입 등은 다시 국가 영토의 경계를 올리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p.402) |
| 이처럼 깨어진 약속은 서구의 발전된 국가에선 '백래시(backlash. 어떤 발상이나 행동에 대한 아주 강한 반동-필자)'로 이어쳤다. 이 백래시 현상의 중심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권력을 되돌리자'는 포퓰리즘 운동이 있었다. 이는 민족주의의 부활, 극우 세력과의 결합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 절에서는 신자유주의의 깨어진 약속에 대한 반발로서 포퓰리즘 이론과 실천적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미 친 영향을 살펴본다. 1) 포퓰리즘의 정당화: 라클라우와 무페 2010년대에 들어와 포퓰리즘 운동이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확산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샹탈 무페(Chantal Mouffe, 1943~ )와 같은 정치이론가들은 이를 '포퓰리즘의 국면(혹은 계기, populist moment)'이라고 부르며 좌파들이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페가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한 이 전략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희망을 담고 있었다. 첫째, 신자유주의 아래 무기력해진 민주주의의 활력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 적절한 탈출구를 제공하지 못하던 진보적 좌파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과거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병리적 현상처럼 여겨졌다. 그런 포퓰리즘이 마치 신자유주의 아래 신음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좌파를 동시에 되살릴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은 무엇이고, 무페가 새로운 전략으로 제시한 좌파 포퓰리즘은 또 무엇일까? 포퓰리즘은 흔히 우리말로 '대중영합주의'라고 옮기지만, 이는 포퓰리즘의 한 부분만을 부각한 번역어로 포퓰리즘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포 퓰리즘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포퓰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어 그 자체로만 보자면 '주의(ism)'라는 측면에서 포퓰리즘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이지만, 이데올로기로서 포퓰리즘은 매우 빈약하고 내용이 없다. 무엇보다 이데올로기로서 갖추어야 할 미래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 없다. (p.403) |
| 한편, 현실에서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는 포퓰리즘은 국가마다 등장하는 맥락과 전개되는 양상이 서로 다르다. 다만 거의 모든 포퓰리즘 운동에 내재해 있는 정치적으로 공통된 세 가지 수사가 있다. 마거릿 캐노번(Margaret Canovan, 1939~2018)은 「인민(The Peoplel」(2007)에서 그 수사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인민이 공동체의 기초이다. 둘째, 그런데 인민이 소수의 엘리트에게 이 정당한 최고 권력의 지위를 강탈 당했다. 셋째, 이제 인민이 자신의 적합한 자리를 되찾아야 하며 사회를 소생시켜야한다. 이 수사를 놓고 보면, 포퓰리즘은 최고 권력으로서 인민에게 호소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민에서 권력의 원천을 찾는 민주주의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만의 고유한 측면으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포퓰리즘이 단순한 '대중영합주의'가 아님을 보여 준다. 이론적 차원에서 포퓰리즘의 이런 측면에 주목한 이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 1935~2014)와 샹탈 무페이다. 이들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를 구분 짓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쓰는 계급 전략으로 파악하는 관점, 혹은 포퓰리즘을 인종차별적이며, 이민 배척적이며, 원형적인 파시즘에 가까운 극우들의 이데올로기라는 관점 모두를 부정한다. 라클라우에게 포퓰리즘은 하나의 정치적 논리(political logic)로서 좌파.우파, 중도 모두가 쓸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담론 형식이다. 포퓰리즘은 '권력 을 가진 자들(those in power)'에 맞서 '언더도그(underdogs)'를 동원하기 위한 담론 전략일 뿐, 계급이나 지향하는 사회 모델 같은 것은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페론(Juan Domingo Perón, 1895~1974)의 포퓰리즘에 빠져 있던 라클라우의 입장에서 보면, 포퓰리즘이 계급이나 이데올로기와 같은 요소에 매여 있을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라클라우에게 이상적 체제로서 '민주주의'라는 지향점은 사실상 중요하지 많다. (p.404) |
| 중요한 것은 정치세계에서 '언더도그의 동원'과 '권력을 쥔 자들 사이의 박점(confrontation)이다. 이런 맞춰 없이 전복이 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포퓰리즘을 민주주의로 받아들이게 될 때 좌우의 경계는 맞설 수 있도록 더 많이 동원하는 일이다. 무의미한데,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많은 쪽을 동원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계급과 이념을 넘어 더 많은 이들을 기득권과 라클라우의 지적 동반자였던 무페는 한발 더 나아가, 라클라우가 제시한 맛 성과 전복의 정치'를 갈등에 기반 둔 '민주주의 모델'로 전환하는 시도에 나선다. 소위 '논쟁적(경합적) 민주주의(agonistic democracy)' 모델이다. 나아가 이런 갈등' 모델이야말로 좌파들이 추구하는 '급진적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이 제일 먼저 공격하는 대상이 합의지향형 민주주의 이론이다. 합의는 현상을 유지하고 갈등을 억제하는 성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무페의 이론에서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와 위르 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가 공격의 대상이 된 이유이다. 이런 갈등지향형 민주주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무페가 소환하는 이가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이다.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적(enemy)과 동지(friend)의 구분'이란 명쾌한 정의로 설파했다. 무페는 슈미트의 주장을 인용하며 그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놓인 갈등을 지적하는 부분이 옳았으며, 민주주의 모델에 합의 대신 갈등이란 요소를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무페는 한 사회의 조건으로 강한 다원주의를 강조한다. 입장이 다를수록, 서로의 입장이 화해할 수 없는 조건일수록 맞섬과 전복의 환경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슈미트의 이론으로 갈등을 통한 전복을 설파하던 무페는 자신의 주장이 슈미트의 이론과는 한편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갈등의 모델은 '적과 동지의 구분이 아닌, '우리(us)와 그들(them)의 구분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무페는 슈미트식의 '적과 동지의 구분'을 '적대주의(antagonism)'라고 부르는 한편, 자신이 추구하는 '우리와 그들의 구분'은 '논쟁주의(agonism)'라고 부르며 양자를 구분한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과제가 '적대주의'를 '논쟁주의'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p.405) |
| 이런 구분은 포퓰리즘을 하나의 정치적 담론의 형식으로 바라보는 입장, 다시 말해 정치를 헤게모니 싸움으로 이해하는 라클라우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 헤게모니란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특정 이데올로기가 억지로 강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데올로기로서 헤게모니는 명확히 구분된다. 흔히 헤게모니 투쟁이라고 말할 때, 어떤 사안에 대하여 더 많은 자발적 지지를 얻어 내는 일을 의미한다. 이런 헤게모니 전략 차원에서 보면, 슈미트식의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 모델이 필요하지만 적과 동지의 싸움에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내전 혹은 극단적 파시즘으로의 전락이란 파괴적 가능성을 배제하려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억압을 유발할 수 있는 폭력과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헤게모니는 그 본질상 양립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무페는 이론적 안전장치를 설치하는데, 이런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는 무대가 자유주의적인 민주적 정치기구들(liberal democratic political institutions), 즉 일종의 제도화된 공간(institutionalized spaces)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득권에 대항하는 세력이라면 누구나 이 공간에 합류하여 언더도그로 연대하라고 설파한다. 기득권에 대항하고 싶다면 그가 평범한 노동자이든 혹은 이주 노동자이든, 내국인이든 혹은 외국인이든 여성이든 혹은 남성이든, 성소수자이든 혹은 이성애자이든 상관이 없다. 이 무대로 뛰어들어 함께 연대하여 기득권에 맞서고 전복하라고 주장한다. 이후 무페는 이런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좌파 포퓰리즘'으로 불렀다. 2) 백래시: 포퓰리즘 운동의 전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항 헤게모니 운동으로서 '포퓰리즘'을 활용하자는 라클라우와 무페의 입장은 놀라운 이론적 발상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이론적 제안이 현실이 되는 듯 보였다. 2010년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Occupy Wall Street)'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저항운동으로 확산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p.406) |
| 하지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난에 반응하지 않는 국가를 향한 '제도권 밖' 운동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에스파냐는 달랐다. 2011년 에스파냐의 중산층과 청년들은 주택 버불과 45퍼센트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 속에 이어진 긴축재정에 반대하며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분노한 자들)' 운동을 거리에서 펼쳤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에 반기를 든 이 운동은 2014년 정당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 정당이 '포데모스(Podemos, '우리는 할 수 있다)'이다. 포데모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의 풀뿌리 모임들과 결합하며 '아호라 마드리드(Ahora Madrid)'라는 시민-정당 연대체를 결성했다. 이 아호라 마드리드는 마드리드 시장을 배출하고, 시의회 57석 가운데 20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스의 시리자(Syriza)는 더 극적이었다. 구제금융의 위기에 놓여 있던 그리스에서는 2015년 1월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 1974~ )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정권을 잡았다. 13개의 다양한 정파와 무소속 의원의 연합체로 선거 이전 3퍼센트의 지지율에 불과하던 시리자가 정권을 잡은 것은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들이 구제금융의 위기 속에서도 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정책에 반대하고 오히려 공공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테살로니키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그리스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동 2015년, 에스파냐와 그리스에서 일어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제도권 정치의 성공이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영국과 미국에서도 일어나는 듯 보였다. 대서양 양쪽에서 그 열기가 터져 버린 코빈 및 샌더스 신드롬은 두 국가의 제도권 중심에서 일어난 '중산층 및 청년층의 저항'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던 이들은 "이제야 올 것이 왔다"며 흥분했다. 2015년 9월 영국에선 노동당에서 항상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던 비주류 출신의 강경좌파인 제레미코빈(Jeremy Corbyn, 1949~)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코빈 열풍에 놀란 토니 블레어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2015.08.13)의 기고문에서 "코빈이 당대표가 되는 것은 노동당의 '절멸'을 의미한다"면서 강력하게 코빈을 당대표로 뽑지 말라고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p.407) |
|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1941)가 열풍을 일으켰다. 샌더스는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최장수 무소속 상원의원이자 자칭 사회주의자였다. 샌더스는 미국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불평등한 상태에 이르렀다며. 극소수 슈퍼리치들에게 편중된 부를 중산층과 빈곤층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엄청난 지지를 이끌어 냈다. 비록 패배하긴 했어도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1947~)과의 경선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코빈과 샌더스 신드롬이 얼마나 열기에 가득했는지, 보수적 유대계를 대표하는 미국 언론 '코멘터리(Commentary)』(2015.09.21)는 이를 두고 대서양 연안국가의 좌파들 사이에 '전염병(an epidemic)'이 퍼지고 있다는 원색적인 묘사를 했다. 하지만 이들 중 살아남은 건 포데모스밖에 없었다. 시리자는 권력을 잃었고, 샌더스는 대선 이후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코빈의 노동당은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무페가 내밀었던 좌파 포퓰리즘이 지나간 자리를 대신 채운 세력은 인종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이민 배척적이고, 원형적인 파시즘에 가까운 극우들의 이데올로기를 장착한 '우파 포퓰리즘'이었다.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난민에게 혐오와 차별을 퍼부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17명 가운데 꼴찌로 출발해 대선 후보가 되고, 당선 확률 9퍼센트로 예측되었던 본선에서 힐러리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2016년 영국에서는 브렉시트(Brexit) 투표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었다. 이후 유럽을 장악한 것은 포퓰리즘을 표방한 세력이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EU 회원국 28개국 중 22개국에서 포퓰리즘을 표방한 세력들이 승리하거나 약진했다. 이탈리아·그리스·체코 · 헝가리 폴란드에서는 심지어 권력을 잡았고, 16개국에선 연정에 참여했다. 2020년 1월에는 유럽의회가 브렉시트를 비준하며 영국이 EU와 완전히 결별했다. 에스파냐의 포데모스를 제외한다면,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주도한 승리였다. 유럽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우파 포퓰리즘은 유럽 대륙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8년 유럽의 반대편에서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1955~)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p.408) |
| 남미 최대의 경제력을 지닌 국가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우소나루는 과거 우고 차베스(Hugo Chavez, 1953~)이 신봉자였다. 브라질에서마저 좌파 포퓰리즘이 실패한 자리에 우파 포퓰리즘 이 들어섰다. 만약 라클라우나 무페의 주장처럼 포퓰리즘이 좌파도, 우파도, 중도도 쓸 수 있는 정치 담론의 형식에 불과하다면, 좌파 포퓰리즘이 우파 포퓰리즘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패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분노한 평범한 사람들이 기득권에 맞서는 '언더도그'로서 '연대'와 '결속' 대신 '차별'과 '혐오'를 택한 것이나 다 름이 없었다. 차별과 혐오는 탈진실의 시대, 부족주의 시대, 반지성주의 시대를 함께 열었다.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지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 동안 매일 평균 21건, 총 3만 573건의 허위 정보를 전했다. 하지만 지지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뒤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난입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2022년 8월, 여론조사기관인 유고브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3퍼센트가 10년 내에 미국에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4. 세계시민주의, 새로운 대안? 지구화 및 지구적 시장의 구축과 함께 정치사상가들이 새로이 주목한 사상이 세계시민주의이다. 이들은 지구의 경제 시스템이 하나의 협력 체계로 통합되었는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도덕의 경계 역시 영토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하나의 협력 체계에서 누군가가 고통받고 누군가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그 고통을 덜어 줄 의무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는 '세계시민(주의 의미를 살펴보고, 21세기 세계시민주의가 마주한 과제에 대해 알아본다. (p.409) |
| 1) 세계시민과 지구적 시장질서 영어 표현으로는 'citizens of the world. 이 세계시민은 누구일까? 세계시민을 이르는 또 다른 용어로 'cosmopolitan'이 있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세계 혹은 우주를 뜻하는 'Kosmros'와 시민을 뜻하는 'Polites'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문자 그대로 세계의 시민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유행했던 말이기도 하다. 도시국가들은 그 자체로 다양성을 의미했고 'cosmopolitanism'은 이런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도시에서 온 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들, 그들이 세계시민이었다. 18세기 끝자락에서 다시 이 용어를 소환했던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영구 평화론(Zum ewigen Frieden)」(1795)에서 세계시민을 이방인을 확대하는 이들로 규정한다. 칸트는 "이방인이 타지 사람의 땅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타지 사람에게 적대적 취급을 받지 않아야 한다"며 이런 '환대'를 세제시민이 가져야 할 태도로 본다. 독특한 점은 이런 환대가 흔히 생각하듯 인류애에서 나온 태도가 아니라 이성이 요구하는 '권리'라고 선언한다. 이런 '환대'의 권리가 보장될 때에만 "우리가 영구 평화를 향해 지속해서 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적대 없이 머물다 갈 환대의 권리는 국가 간의 경계가 명확히 그어지기 시작한 근대국가의 세계에서 인류의 권리와 국가의 권리를 잘 절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구화 시대의 '세계시민'은 누구일까? 단순화하자면, 개인에 대한 보호의 경계가 민족국가 단위라는 것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다. 다른 말로 '왜 시민권이 개인의 인권을 보호의 기준이 되어야만 하는?', '왜 인류는 서로를 보호하는 일에 차별을 두는가?" 이들은 국가 간에는 경계가 있을 수 있어도 그것이 인간성의 보호라는 도덕성의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세계시민들은 왜 경계 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걸까? 특히 왜 지금 우리는 경계 밖의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 (p.410) |
|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 1947~) 같은 세계시민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지금 지구촌은 지구적 시장이라는 통합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가사 입는 티셔츠 하나도 이제는 저 멀리 국경 밖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 모든 사람이 이 통합경제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 덕분이었다. 하다. 지구적 차원에서 통합된 경제가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이 체계 안에 있는 그런데 그 협력 체계 속에서 누군가는 풍요를 누리고 있고 누군가는 궁핍하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세계주의자들은 우리가 한 사회 내에서 복지를 지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회를 하나의 협검체계로 본다면, 그 사회 내 지나친 불평등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협력 체계의 불공정함에서 비롯된다. 만약 우리가 이런 협력 체계의 불공정성을 국내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왜 국경을 넘어서 도울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들은 지구적 시장이라는 통합된 경제질서에서 피해를 입는 이들을 보호하는 일은 단순히 자애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우리가 되갚아야 할 의무라고 주장한다. 세계시민이란 이런 정의의 의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 세계시민주의, 인권과 시민권 사이 그렇다면 세계시민주의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세계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일까? 세계시민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들이 국가 간의 경계가 없어야 하며, 그것을 지우자고 주장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관련하여 정치사상가 세일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 1950~ )는 열려 있는 경계와 닫혀 있는 경계 사이에 서로 긴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세계시민이라고 말한다. 벤하비브는 기본적으로 자유적 민주국가들이 헌신하는 두 가지 측면에 내재한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헌신이다. 자유로운가일수록 보편적 인권을 지지한다. 둘째, 정체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갖는 '자 결정권'에 대한 헌신이다. (p.411) |
| 모든 민주적 정체는 내부 구성원인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내리는 결정을 우선해 받아들인다. 이는 시민권이 만드는 배타적 헌신이다. 내재적 모순은 이런 인권에 대한 보편적 헌신과 시민들의 결정에 헌신하는 배타적 헌신이 때로 갈등한다는 데 있다. 양자 중 하나에 더 헌신하게 될 때, 열린 경계와 닫힌 경계 사이. 인권과 시민권 사이에 긴장이 생겨난다. 벤하비브는 지구화 시대의 세계시민은 이런 긴장 관계가 있다는 것을 정확하 게 인식하고, 오히려 그 긴장 관계를 인정하면서 양자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를 화해시키려는 노력은 카메 앤서니 애피아(Kwame Anthony Appiah. 1954~ )의 '지역에 뿌리내린 세계시민주의(rooted cosmopolitanism)' 개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애피아에게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뿌리 없는 애국주의(rootless cosmopolitanism)'이다. 영토에 뿌리내린 애착없이 보편적 준칙만을 강조하는 입장은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에 포획되기 십상이다. 지역에 뿌리내린 사람들은 보편적 원칙을 앞세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역에 뿌리내린 사람들이야말로 다른 곳에서 자신의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애피아는 인간에게 내재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에 주목한다. 인간은 다른 곳, 다른 인간, 다른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웃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기회가 더 많은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낯선 이들, 이방인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계시민이라면 낯선 이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려고 한다. '낯설다'는 건 결국 '정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선입견도 마찬가지이다. 정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시민권과 인권의 긴장 관계를 해소하는 중요한 수단은 우리가 낯설다고 여기는 이들과의 더 많은 교류와 대화이다. 그 교류와 대화가 궁극적으로 낯선 이의 권리를 지지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및 지구적 시장의 백래시에서 탄생한 '우파 포퓰리즘'이 낯선 이와의 대화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대화 대신 '낯선 이를 더 낯설게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p.412) |
| 이민자, 이주노동자, 난민, 외국인, 다른 인종, 다른 성 적 지향, 심지어 여성에 대한 혐오가 그렇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로 신자유주희와 지구적 시장이 만든 능력주의 세계와 깊어 가는 경제적 격차를 해결할 수 있을까? 5. 신냉전의 도래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된 이후 신자유주의가 주도한 지구적 시장질서가 그 기세를 떨쳤다. 그동안 지구적 시장의 공장 역할을 맡아 수행한 중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소위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통해 독자적인 길을 개척함으로써 미중 패권 경쟁이 시작되었다. 신냉전이 도래한 것이다. 2010년 이후 세계 곳곳을 휩쓴 포퓰리즘의 백래시뿐만 아니라 미중 패권 전쟁은 그동안 구축되어 온 지구적 차원의 시장질서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어지며 더욱 의심은 깊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지금의 위기는 장이 초래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가 초래한 것일까? 지금의 시장을 고쳐 써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시장에 대한 간섭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 자유민주주의를 보수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쳐 써야만 할까? 한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명확한 해결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p.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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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서구지성사입문
제15장 『깨어진 약속과 민주주의의 위기』
교재 본문을 스캔한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