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의 트레첸토
14세기에 들어와 프랑스에서 유행한 <아르스 노바(ars nova)>라는 ‘새로운 기법’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중요한 음악적 발전이 있었고, 이 시대의 이탈리아 다성음악을 트레첸토(trecento)라고 부른다. 트레첸토는 1300년대, 즉 14세기를 의미하는 ‘mille trecento’를 줄인 말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중앙집권화의 경향이 점점 증대되는 프랑스와는 달리 다수의 도시국가들과 공화국들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기 독립된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이었던 볼로냐, 파두아, 모데나, 밀라노 같은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동방 무역의 번성으로 탄탄한 경제력을 쌓게 되고, 이와 더불어 도시문화가 번성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중부에 자리한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아테네’라고 불릴 정도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였다. 이들 도시들에서 음악은 모든 계층의 시민 생활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트레첸토 시기에 보카치오(Giovanni Boccacio, 1313~75), 조반니 다 프라토(Giovanni Gherardi da Prato, 1367경~1444경), 단테,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74), 조토(Giotto di Bondone, 1266경~1337) 같은 대가들이 배출되었고, 회화·문학·음악·건축과 같은 모든 예술 분야에서 위대한 명작들이 탄생했다.
일반적으로 트레첸토 음악은 리듬에 보다 더 치중하던 동시대의 프랑스 음악보다 선율선의 아름다움과 표현의 풍부함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종교음악보다는 다성 세속노래에 더 관심을 두었으며, 마드리갈, 카치아와 발라타 세 종류의 세속적 형식들이 이탈리아 트레첸토를 지배했다. 이중 마드리갈은 최초의 이탈리아 다성음악 형식으로서, 14세기 중엽에 크게 유행했던 형식이다. 주로 두 성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사는 목가적·전원적·연가적·풍자적인 내용을 가진 2~3연으로 구성된 시이다. 카치아(이탈리아어 cacciare는 ‘추적하다’ 또는 ‘사냥하다’의 의미)는 1350년경부터 1370년까지 융성했으며, 두 성부 또는 그 이상의 성부로 구성된 일종의 카논이다. 가사는 사냥개 부르는 소리, 외침, 새소리 등을 포함하며, 전형적으로 사냥 또는 다른 야외 행동을 묘사한다. 발라타(이탈리아 어 ballare는 ‘춤추다’라는 의미)는 춤곡에서 유래되었고, 마드리갈이나 카치아보다 다소 늦게 발전되었다. 주로 2성부 또는 3성부로 구성된 노래이다.
트레첸토의 주요 작곡가는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 1325경~97)로, 동시대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에 필적할 만한 시인·음악가이다. 그는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장님이 되었지만, 오르간·류트·리코더를 포함한 여러 악기의 연주와, 노래하고 시를 쓰는 것을 배웠다. 란디니는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눈이 보이는 사람처럼 쉽게 어느 누구보다도 빠른 터치로, 능숙하고 감미롭게” 오르가네토(organetto, 이동형 소형 오르간)를 연주했으며, 오르간 제작자로도 명성을 높였고, 2성부 혹은 3성부를 위한 다성 발라타 141곡과 여러 다른 세속작품들을 남겼다.,
14세기부터 백 년 남짓 지속되었던 트레첸토의 음악적 개화는 다른 예술분야들이 절정을 이루던 15세기 초에는 쓰러져갔다. |
■ 〈데카메론(Decameron)〉
14세기의 이탈리아도 예외 없이 흑사병의 강타, 여러 해 계속된 흉년, 그리고 영토적 권리 다툼으로 인한 도시국가들 간의 끊이지 않는 충돌이 있어 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이 혼란과 재해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나서, 부분적으로는 페시미즘이 보급되었고, 죽음과 묵시(종말론)의 예찬이 널리 퍼졌다. 또한 삶이 짧고 예기할 수 없다면 최대한으로 즐겨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의 등장인물들은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부유한 가문 출신의 일곱 여자와 세 남자로 구성된 열 명의 젊은이들이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의 한 빌라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2주일 동안 머물면서 열 명의 젊은이들은 차례로 동료들을 이끌어갈 왕 또는 여왕이 되어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고, 산책·춤·노래 등을 주관하고,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기’를 하게 된다.
이 ‘이야기하기’가 10일 동안 계속되므로 ‘10일 동안의 이야기’, 즉 ‘데카메론’이 된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는 10명이 각기 열흘 동안 하므로 모두 100편에 달한다. 문학적 특성과는 별개로 〈데카메론〉은 14세기(트레첸토)의 음악적 실태에 관해 값진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 이유는 〈데카메론〉에서 피렌체 젊은이들이 매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것으로 하루를 마쳤으며, 그들의 이야기들 가운데 음악을 언급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데카메론〉에는 열흘 동안 매일 저녁 후에 모여 부르는 노래들과 마지막 날의 일곱번째 이야기에 나온 노래를 합쳐 모두 열한 개의 노래가 나온다. 보카치오는 이들을 칸초네, 칸초네타, 발라타 혹은 발라테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이들 노래들은 모두 발라타이다. 명칭상 달리 부른 이유는 14세기 문학가들의 관행에 따라서 칸초네는 가창용 서정시로, 그리고 발라타는 춤이 함께 하는 노래로 구별을 두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