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3일 기록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문을 들고 권순복 할아버지와 통장님을 만나 뵙기로 한 날입니다. 공문 작성은 김동찬 선생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공문을 들고 권순복 할아버지 댁으로 향합니다.
권순복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웃으며 반겨주십니다. 덥지 않냐며 시원한 보리차를 주십니다.
이번에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공문을 작성해왔는지 물으십니다. 가방에서 공문을 꺼내 권순복 할아버지에게 드립니다. 펜을 들고 공문을 꼼꼼히 살피십니다.

“음……. 이대로 하면 되겠네. 잘 했네. 가서 통장님 보여드려.”
권순복 할아버지께서 이대로 통장님에게 보여드려도 되겠다고 하십니다. 단,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씀하십니다. 물품 빌릴 기관에 다녀오는 건 제가 하라고 하십니다.
“공문 사인 받고 갔다 오겠습니다 하고 다녀와. 날 더운데 어른한테 갔다 오라고 하면 안 되지. 갔다 오는 건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해야지. 그러면 좋아하실 거야. 우리가 70살도 넘었는데 할아버지가 다녀오세요 하면 안 되지. 어른인데.”
“아……. 심부름하는 거처럼 하면 될까요?”
“그렇지! 심부름하는 거처럼 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머지는 통장님과 권순복 할아버지께서 하신다고 합니다. 가정극장을 어르신들의 일로 여기십니다. 저는 조금만 거들어드릴 뿐입니다.
“큰 선풍기가 필요한데 우리가 준비할게. 학생은 기계 빌리는 것만 도와주면 돼. 간식도 우리가 어제 회의를 했어."
“아, 그래요?”
“통장님이 이 일에 신경 많이 쓰고 있어. 어른들의 일이니까 학생은 크게 생각하지마~"(어른들의 일이니 저는 옆에서 조금 거들어주며 마음 편히 있으라는 뜻 같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어른들의 일이니 저는 편히 있으라고 하십니다.
‘어른들의 일이니까 학생은 크게 생각하지 말고’ 권순복 할아버지의 말씀이 참 귀하고 반갑습니다.
#지나친 예와 공경
권순복 할아버지에게 공문을 검토 받고 통장님 댁으로 향합니다. 날이 유독 무덥습니다. 발바닥 닳도록 지역사회를 다니며 인사드리고 걸언하겠다던 초심을 떠올립니다.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습니다.
통장님 댁에 다다를 무렵, 현관 앞에 앉아계시는 김정숙 할머니가 보입니다. 웃으시며 물병을 흔드십니다. 물병을 흔들며 ‘안녕’하고 인사하시는 줄 알았는데 물 먹고 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시원한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십니다.
“더운데 왜 이렇게 돌아다녀~”
“통장님 만나 뵈러 가는 길이에요. 더워도 부지런히 다녀야죠.”
김정숙 할머니 옆에 앉아 대화 나눕니다. 대화 나누던 도중 텃밭을 가꾸고 계시는 통장님이 보입니다. 할머니께 다음에 또 인사드리러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통장님 댁으로 향합니다. 통장님 댁에 도착하자 통장님이 말씀하십니다.
“날 더우니까 아침 선선할 때 오지.”
“통장님께 공문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서 지금 왔어요.”
마당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하시더니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테이블 위에 공문을 꺼내놓고 통장님을 기다립니다. 쟁반 위에 옥수수를 가득 담아 나오십니다.
통장님이 펜을 들고 공문을 찬찬히 살피십니다. 그러시더니 도장을 준비하십니다. 도장이 잘 찍히도록 인주를 여러 번 발라 꾹 눌러 찍으십니다.


드디어 공문이 완성됐습니다. 권순복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공문 전달은 제가 대신 해드려도 될지 여쭙니다.
“와~ 역사적인 순간이네요. 통장님, 그럼 이제 이 공문들을 도서관과 학교에 보내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도장을 찍었으니까.”
“그럼 혹시 날이 더우니 제가 통장님 심부름으로 다녀와도 될까요?”
통장님 눈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공문 전달은 학생이 해주면 좋지. 날도 덥고 바쁘니까.”
“네, 요즘 날이 꽤 덥네요. 그러면 제가 통장님 심부름으로 왔다고 말씀드리고 공문 전달할게요.”
공문 전달을 통장님 또는 통장님의 둘레 사람 중 누군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권순복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공문 전달을 제가 대신 해드려도 될지 바로 물었던 건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장님께서 능히 하실 수 있으신 일을 제가 대신 해드리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성을 생각하며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드리는 것이 버릇없는 행동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예와 공경이 어르신들의 자주성을 해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자주성에 대한 지나친 부담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제가 생각하는 지나친 예와 공경은 어르신들의 일을 대신해드리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물론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어르신을 도울 때는 그 일을 세분화하여 할 수 있으신 만큼 부탁드리거나 심부름하는 모양새이게 도와야겠지요.
그때 그 상황을 고려하고, 예를 갖추어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같은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일지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일겁니다.
#제 이름이 안 들어갈수록 좋아요.
통장님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시원한 식혜를 내오십니다. 집에서 만든 식혜라고 하십니다. 시원하게 들이킵니다.
가정극장에 대해 통장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가정극장을 이웃들에게 알리는 중이며, 간식은 무엇을 가져올지 이야기 나누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통장님께 말씀드립니다.
“홍보하실 때 제 이름하고 도서관에 관한 건 빼주셨으면 좋겠어요. 통장님이 주관하시는 일로 홍보하시면 좋겠어요.”
사회사업가는 보이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정극장에 초대받은 학생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통장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니, 그래도 학생 이름이 들어가야지.”
“아니에요. 저는 제 이름이 안 들어갈수록 좋아요.”
“그러지 뭐…….”
통장님이 의아해하십니다. 그러나 곧 수긍하십니다. 통장님이 주관하고 계심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통장님께 안내문과 초대장은 필요하시지 않으신지 여쭙니다. 말로 홍보해도 충분하긴 하나, 초대장 스무 장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통장님이 초대장은 권순복 할아버지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통장님이 권순복 할아버지에게 전화해 부탁하십니다.
권순복 할아버지가 손 글씨로 초대장을 작성하시면 제가 컴퓨터로 인쇄하여 통장님에게 확인을 받기로 합니다.
통장님이 동네사람들에게 가정극장을 홍보하고 있다고 하셨었습니다. 주민분들의 입소문에 초대장 스무 장까지 더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장님에게 여쭈어봅니다.
“너무 많이 오시면 어쩌죠?”
“인원이 너무 많겠다 싶으면 권순복 할아버지 집 주변 사람들만 초대하면 되지.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
마음에 걸리는 것을 말씀드릴 때마다 무엇이 걱정이냐는 듯 말씀하십니다. 통장님은 이미 가정극장을 구체적으로 구상하여 여러 대책을 마련해놓으신 듯 하십니다. 이제 무슨 영화를 상영할지 확실하게 정하기 위해 통장님에게 여쭙니다.
“저번에 팔도강산이나 국제시장을 상영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둘 중 어느 걸 상영할까요? 팔도강산은 다운받아야 할 거 같고요. 국제시장은 청소년 장학센터에 DVD가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통장님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국제시장을 보자고 하십니다. 더하여 DVD는 제가 빌렸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청소년 장학센터는 도서관과 가깝고 주로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니 제가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다음에 통장님에게 장학센터에 함께 가는 건 어떤지 여쭈어야겠습니다. 만약 제가 가야한다면 심부름 다녀와야겠습니다. 통장님에게 인사말씀은 어떻게 하실 건지 여쭈었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인사말씀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가요?”
“오셔서 감사합니다 하면 되지. 인사말씀은 무슨……. 그냥 짧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네, 통장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 짧게 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인사말은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통장님이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장님에게 다음에 언제 뵈러오면 되는지 여쭙니다. 월요일부터 2박3일간 병원에 가신다고 하십니다. 무슨 일로 병원에 가시는지는 여쭙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겁이 납니다. 월요일 아침에 찾아뵙기로 하고 숙소로 향합니다.
첫댓글 고마워요
학생들 귀히 대접하시는 어른들께 배웁니다
(강민 학생 걱정 말아요. 우리 일이니까 우리가 할게.)
이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군요.
강민 선생이 처음 여쭐 때는 대학생들이 와서 영화 상영 해주는가 물으셨는데
강민 선생이 예를 갖추어 걸언하니 어르신이 높아지시고, 어르신들이 기획 준비 진행하시는 어르신들 일이 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경한다 함은 사람다움을 존중하여 사람을 사람답게 돕는다는 말입니다. 어른다움을 존중하여 어른을 어른답게 돕는다는 말입니다.'
복지소학 3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