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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학생의 길
제6장 선생님의 학창시절
제3절 선생님의 신념과 사상
1) 선생님의 기도생활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간을 위해서만 기도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안 합니다. 인간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늘을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고, 예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셨는데 갚아야 된다 이겁니다. 오늘날까지 수고하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고, 더 나아가서는 만민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험을 해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6- 344)
선생님은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서 해결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3- 33)
선생님이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무릎에 굳은살이 박여서 지금도 굳은살 박인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공을 들여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리워서 미칠 만큼 사무친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땅이라면 하루에 천 번이라도 왔다 가고 싶을 것이나 그런 땅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선생님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동삼삭에 솜바지저고리를 눈물로 적실 때가 있었습니다. 칼을 꽃아 놓고 담판기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60-212)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솜바지저고리가 다 젖도록 기도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고, 칼을 가지고 뱃가죽을 찌르며 맹세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짐한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219-19)
선생님은 지금까지 뜻을 위해서 고생해 나왔고, 지금도 자나깨나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셔 보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자다가 눈만뜨면 엎드려 기도합니다. 왜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이 한밤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성은 들이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못지않게 박자를 맞춰 줘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선생님이 잠을 잘 때는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는 자식이 고단해서 잠자는 것을 아버지가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대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26- 138)
2) 일찍부터 인생문제를 놓고 고민하심
선생님은 어렸을 적부터 인생문제에 대해서 심각했습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심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 걸 알고 세상이 어떻다는 걸 다 탐구하고 ‘나는 이렇게 간다. 공식적인 노정이 이것이다’ 라고 결정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갈 길입니다.
일생 동안 핍박받고 일생 동안 생각하면서 나왔으니까 무슨 생각은 안 해봤겠습니까? 심각한 자리에서도, 어려운 자리에서도, 고통스러운 자리에서도 다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 많은 적을 총칼로 막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배후의 여러 가지 작전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편안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그르다 이겁니다. 장군 될 사람이 출발할 때의 생각은 졸병 될 사람이 출발할 때의 생각과 달라야 됩니다.
(124- 198)
선생님은 책 한 페이지 갖고 몇 달 동안 연구하고, 한 제목 가지고도 몇 달 동안 생각하며 들여다본 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인생의 근본문제, 실존문제를 놓고 그랬습니다. 그런 문제는 생명을 걸고 대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내 개체뿐만 아니라 만민이 해방될 수 있고 하늘땅의 해원성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죽는다하더라도 그 죽음은 탄식의 죽음이 아니라 멋지고 영광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전후좌우를 가려서 참된 결과가 어디에서부터 결정되는 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신념을 가지고 대들라는 것입니다.
(37-140)
선생님은 소년시대부터 인생에 관한 여러 가지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죽은 후에 우리의 생명은 그대로 계속되는 것일까?
또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혹은 무력한 존재이신가?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하나님은 왜 인류세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이 지구에는 왜 수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그 후부터 9년 동안 선생님은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영계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점차 하나님께서는 놀랄 만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길고 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진리 안에서 선생님은 영광스러운 새로운 문화의 서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102-288)
3) 선생님의 생활표어와 수양목표
1. 생활표어 선생님의 3대 표어
①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② 문의(問議)하고 행하라.
③ 명령에 의해서 행동하라. 27- 298
2. 수양의 3대 목표
공적인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① 믿음을 주시옵소서 뜻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믿음을 ② 사랑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아직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랑을
③ 지혜를 주시옵소서.
(27- 298)
선생님은 수양 도중에 3대 목표를 정하고 나왔습니다. 옛날에 이 뜻을 세워 나올 때에 3대 목표를 정하고 나왔던 것입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이게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언제든지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갈 때는 ‘나’라고 하는 것 은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때는 ‘이놈아!’ 하면서 조절하는 겁니다. 또 이 눈은 좋은 걸 보려고 하고 나쁜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럴 때는, ‘이놈아!’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입은 좋은 걸 먹으려고 합니다. 그때는‘안 된다!’이러는 겁니다. 좋은 것을 듣고 자기를 내세우려고 합니다.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또 남자로 생겨나서 여자를 생각하고 사랑문제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 이놈의 자식아!’ 하는 겁니다. 사랑이 생각되면, ‘내가 자아를 주관하고 조절하지 못하면 우주주관이 다 깨져나가 버린다.’ 이러고 나왔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자는 문제가 제일 어렵습니다. 그다음에는 배고픈 것입니다. 그 다음이 정욕문제입니다. 이것이 3대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을 새우면서도 그것을 수양의 과정으로 세워 나온 것입니다.
굶으면서도 수양의 과정으로 세워 나왔다는 겁니다. 혼자 살면서도 수양의 과정으로 세워 나왔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생각할 때는 선생님은 성인이기 때문에 다 다르다고 하겠지만, 선생님은 그런 문제에 더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더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를 주관하기 전에는 우주주관을 못 합니다. 나를 주관하고 나서야 우주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나를 주관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부를 수 있고, 하나님의 주관권을 바랄 수 있는 것이 원리관입니다.
아담이 자기를 주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이놈의 손이 어디로 가느냐? 이놈의 발이 어디로 가느냐? 생각이 어디로 가느냐? 보고 듣는 것이 하나님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섭리를 대행하겠다고 해야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야 원리관에 합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주관하지 못하고는 선생님이 가는 데 못 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사탄세계의 근거지가 있고 응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악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나쁘고 세계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131-137)
4) 선생님의 생활신념
선생님은 어머니 아버지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는 굴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울면 그냥 울지 않습니다. 한번 울면 하루종일 우는 겁니다. 울게 한 그 장본인이 와서 머리 숙이고 항복하기 전에는 절대 안 그칩니다. 그렇게 지독한 사람입니다. 울어도 가만히 울지 않습니다. 피가 나고 눈꺼풀이 다 벗겨지도록 우는 겁니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저 애 하자는 대로 전부 다 해주자’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머니도 나한테 항복하고, 아버지도 나한테 항복하고, 형님도 나한테 항복했습니다. 평생 잘 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의에 입각해서 천리를 따라가는 데는 부모가 반대 안 하고, 아무 말 안 했습니다.
(105-237)
오늘 이 세기말적인 역사의 끝에서 태어난 여러분, 이왕 한번 사나이로 태어났으니 결판을 내자 이겁니다. 그러려면 살살 피해 다니지 말고 몽땅 붙안고 몹쓸 것은 집어던지고 멋지게 해치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선생님에게는 무한한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노동판에 가면 일등 노동자입니다.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령 내가 어떤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더라도, ‘아 통일교회 선생님이 밥벌이가 곤란해서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고 알면 그 건 큰 오해입니다.
나는 당장 어디 가든지 이 몸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한번 붙드는 날에는 끝을 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어디서 무엇을 한다하면 설렁설렁해도 3등 이내는 한다 이겁니다. 하나님도 지혜로우신 분이라서 나 같은 사람, 특종을 잘 택하신 것 같습니다. 한번 손을 대서 시작하는 일은 가다가 죽더라도 해치워야 직성이 풀립니다.
시시껄렁하게 하려면 아예 시작부터 안 합니다. 누구든 한번 붙드는 날에는 네가 망하든지 내가 망하든지 둘 중에 하나다 이겁니다. 내가 이 길을 나설 때에도 ‘하나님 있습니까?’ 하고 끝까지 캐서 하나님이 계신 걸 확실히 알고 출발했습니다.
다음은 ‘하나님 소원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서 하나님의 소원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 내가 필요합니까?’하고 여쭈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필요합니까?’ 하고 따졌습니다. 이렇게 내가 한번 찾아가 붙으면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시든가 아니면 보따리 싸들고 다른 데로 가시든가 해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13-201)
레버런 문은 어떤 사람이냐? 한 가지 재간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미욱하게 그저 똑바로만 가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입을 좀 다물고 좀 적당히 돌아가면 될 텐데, 왜 자꾸 욕먹게끔 작용을 하고 그러느냐 이겁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아야 한 고개를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사랑하던 사람들이 반대하던 것도 전부 넘어갈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라 이겁니다. 그러면 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 가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이끌리면 곧게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곧은 길을 찾아오셨기 때문에 곧게 가야 된다 이겁니다.
(97-257)
5) 선생님의 뜻길
여러분은 뜻의 길을 걸어나오면서 얼마나 심각해 봤습니까? 선생님은 일생 동안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처자도 모릅니다. 선생님만 알고 하나님만 압니다.
고독단신 외로운 사나이가 가는 길을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이 협조해서 인간들이 놀랄 만한 실적을 가지고 오늘날 이 사회에 문제를 제시했고, 또 피폐해 가는 이 민주세계의 사상권 내에 새로운 파급을 일으키는 문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외로운 분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고독한 분이고 나 같은 분이기에 나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그분의 뜻과 소원을 하나라도 풀어 주고, 그 분야를 한 터전이라도 확대시켜서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나의 사명인 줄 알고 나온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반대할 줄 모르고, 매를 맞아도 복수할 줄 모르고 사랑으로 참아 나온 것은 하나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요, 그분의 뜻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전통을 어떻게 세우느냐를 생각하면서 비틀걸음을 하나, 허리를 구부리고 가나 배밀이를 해 가더라도 이것만은 남겨야 된다고 하며 싸워 나온 것입니다.
(82- 47)
선생님은 아시아인입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세상으로 보면 중진국가의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왜 여러분이 레버런 문을 따르고 여러분의 마음이 왜 선생님의 가는 길과 더불어 같이 움직이느냐? 그것은 선생님이 천리대도의 원칙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이렇게 밀접하게 맺을 수 있는 전통적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가야 할 본연의 길이 거기에 연결되므로 여러분의 마음은 거기에 동요되고 거기에 안 끌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은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선한 영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 그 손가락에 의해 자기의 일족이 망하고 일국이 망할 수 있게끔 말려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불평이 없어야 됩니다. 선생님의 입에서는 불평이 없습니다.
불평이란 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뜻앞에서는 ‘노’ 라는 말을 모릅니다. ‘노’ 와 ‘불평’이라는 말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10대 때부터 갖고 나온 사상입니다. 일생 동안 가지고 나왔는데 이 원칙은 틀림없이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131-330, 1984. 5.19)
6) 선생님에 대한 우리의 자세
하나님의 사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가인을 자연굴복시켜 절대복종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뜻을 중심 삼고 선생님도 고생하고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이 고생한 것을 자기의 고생으로 여기고 눈물 흘리며 뜻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권 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내가 당한 것같이 느껴지고, 가슴이 아프고, 슬프고,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분해야 됩니다. 여러분을 선생님과 동감하게 하기 위한 재료가 선생님의 고생입니다.
선생님이 고생을 했지만 그것은 오늘 현실에서 같이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선생님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게 될 때에는 선생님 앞에 가인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과 여러분이 사랑하고 하나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 영원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복귀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기르는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3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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