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tter half’- 더 나은 반쪽을 찾아서
사막을 가고 있는데 물병을 흔들어보니 채 반도 남지 않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물까지 다 떨어져간다며 낙담하기 십상이겠지요. 물론 아직 절반 가까이 남아 있다면서 오아시스를 향한 호흡을 가다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자는 비관론자에 가깝고 후자는 낙관론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담론은 교육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같은 교육현장을 보고도 전혀 다른 분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실은 붕괴되었고 공교육은 이미 죽었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성과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교육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만 하는 것이 교육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우거진 얼굴을 하든 희망적으로 바라보든 실재는 전혀 차이가 없으니까요. 사막을 걷는 당신의 물병에 여전히 물이 절반 정도 남아 있듯이---. 그러나 보는 관점에 따라 접근방법은 전혀 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교육개혁의 잔디밭을 가꾸기 위해 몇 년 째 씨앗을 뿌렸습니다. 잔디는 보이지도 않더니, 마침내 한 귀퉁이에서 잡초 사이로 조그맣게 싹을 틔우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찡그린 얼굴을 한 사람들에게 한 움큼도 안 되는 잔디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온통 무성한 잡초만 보일 테니까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보잘 것 없지만 모퉁이에서 자라고 있는 잔디 싹에 우선 눈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억센 잡초 사이에서 어떻게 싹을 틔웠을까 살펴보고, 그 한 움큼의 잔디가 어떻게 뿌리를 내려 나머지 빈터를 채우게 할까 생각하겠지요.
그 동안 우리 교육에는 얼굴 찡그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이 잡초를 제거한다고 성난 모습으로 휘젓는 통에 한쪽에서 자라던 새싹까지 밟혀버린 경우도 없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더디겠지만 우리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움큼의 새싹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궈낸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이 온통 문제점투성인 것처럼 지적받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상당히 우수한 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석하는데 있어 우리는 지나치게 인색한 면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OECD에서 회원국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2000년 PISA결과에 의하면 28개국 중 우리 아이들은 읽기에서 6위, 수학에서 2위, 과학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성적분포를 보면 최하위권과 최상위권은 적은 반면 평균을 중심으로 중위권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습니다. 이는 학생간의 학업성취 격차가 매우 적다는 점에서(실제 OECD 국가 중에서 그 격차는 가장 적은 편임) 긍정적이지만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 적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 등의 보도 경향을 보면 하향 평준화 운운하는 등 부정적인 내용들만 도드라져 보입니다. 물론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부분까지 홀대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지요. 아이들을 교육할 때 기대를 갖고 대하면 훨씬 높은 성취수준을 보인다고 합니다. 못하는 쪽보다 잘하는 쪽을 보면서, 잘한다고 칭찬하며 가르치면 실제로 훨씬 더 잘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교육이나 교육행정에 있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우리는 너무도 칭찬에 인색합니다. 칭찬은 눈에 잘 띠지 않는 상대방의 다른 한쪽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내어 희망의 씨알로 틔워주는 것이지요. PISA 결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어려운 여건 하에서 애쓰신 선생님들의 노고에 대해 우선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더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실 것이고 행정하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신이나 더욱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배우자를 지칭하는 영어 표현 중에 'my better half'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 나은 나의 반쪽’, 참으로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나은 반쪽을 찾아내는 일은 자신의 약점을 인식할 줄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 ‘교육 공동체’도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입니다. 학교현장과 교육행정과의 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며 일방적 변화를 요구하거나, 반대로 냉소주의로 흘러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잘난 반쪽만 내세우며 상대방의 모자란 반쪽에 목소리 높여서는 언제나 불협화음만 일어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무른 부분을 드러내 상대방의 장점이 스며들 여지를 남겨두며 서로간 ‘더 나은 반쪽’이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일반 국민들도 학교현장이나 교육청, 교육인적자원부를 새로운 눈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잘못하는 점은 물론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변화된 다른 쪽도 제대로 봐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봅니다.
2004.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