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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성령 안에서 사는 새로운 삶(로마서 8:1~8)
* 본문요약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찬 양 : 486장(새 368) 주 예수여 은혜를
447장(새 393) 오 신실하신 주
* 본문해설
1. 생명의 성령의 법(1~4절)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우리의 타락한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연약해져서 할 수 없던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 곧 우리의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정죄함이 없나니(1절) :
정죄는 사형선고,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의 선고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해제된 것을 말합니다.
- 생명의 성령의 법이 … 너를 해방하였음으라(2절) :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새 생명인 영(영의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면서
동시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이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고,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4절) :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인 영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계명을 다 이룬 것으로 여기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2.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5~8절)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육신의 생각에 매인)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육신을 좇는 자(5절) :
육신대로만 있는 자.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에만 집착하는 자.
추구하는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모든 과정이 육신에 속한 것뿐인 사람.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땅의 일에만 몰두하는 자.
- 영을 좇는 자(5절)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인 영의 일을 추구하는 자.
주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자,
혹은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원하는 자.
- 생각(5~7절) : 프로네오
‘생각한다’에 해당하는 ‘프로네오’는
‘마음에 두다, 관심을 기울이다’라는 뜻으로,
‘생각과 관심,애정과 목적을 집중하게 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를 뜻합니다.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야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내가 애정을 품고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생명과 죽음은 바로 이 ‘생각’이 결정합니다.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7절) :
자기를 기쁘게 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단지 나 자신을 위해 살았을 뿐인데,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원수 맺는 일로 여기십니다.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절) :
육신에 속한 자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point
1. 생명의 성령의 법
1) 구약의 율법의 한계 : 율법을 지킬 사람이 없다는 것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아담과 하와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이 땅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그 영광을 다 상실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으나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서 죄를 짓지 않은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를 불쌍히 여기셔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시고는,
누구든지 이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 역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주신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만,
그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1절)
사람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구약의 율법이 사람을 구원할 복음의 역할을 못 하는 유명무실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죄를 이길 힘이 없어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치명적인 연약함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순결하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심판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주님의 십자가로 이미 우리의 벌을 받았으므로
마지막 심판대에서 정죄(定罪, 죄의 선고)를 받지 않습니다.
3)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스도인(2절)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때때로 죄를 범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지만(6:4),
우리 몸 안에 여전히 죄의 유혹에 반응하는‘죽을 몸’(6:12)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넣어 주신 새 생명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일에 자극을 받고 거룩한 삶을 살려 하지만,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죽을 몸은
우리 몸에서 죄의 욕망이나 세상의 일에 자극을 받아
여전히 육신 속에 남아 있으려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법과 죄의 법, 이 두 법 사이에서 갈등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2. 새 생명과 죽을 몸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스도인
로마서 6장에서 우리는 새 생명과 죽을 몸이
우리 안에서 어떤 갈등과 번민을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여기에서 다시 한번 요약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죄와 사망의 법(1~2절)
➀ 죄와 사망의 법 :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
죄는 마귀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육신의 본능을 자극하여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좋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는 자가 되게 합니다.
또 사람의 마음에 근심과 불안을 심거나, 삶을 바쁘고 분주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길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하여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렇게 마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거나,
자기가 스스로 세상을 택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게 되거나.
어찌 되었든 하나님 없이 자기의 생각과 욕심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곧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② 본래는 복음이었던 구약의 율법도 죄와 사망의 법이 되었습니다.
율법 역시 구원을 위한 복음의 말씀입니다만
사람이 연약하여 그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사람의 구원하기 위해 주신 율법이 죄와 사망의 법이 되었습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알리기만 하고, 그 죄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힘과 능력이 없는
죄와 사망의 법이 된 것입니다.
➂ 죄와 사망의 법은 : 죄를 따라가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 안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유혹에 반응하는 죽을 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만 있었으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우리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새로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이 두 법이 우리를 동시에 자극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우리의 육체의 욕심과 욕망을 자극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신령한 열망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망이나 세상의 일에만 반응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면
결국 죄가 그를 지배하여 죄의 몸, 멸망의 몸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따라가면 멸망에 이르고 만다는 것,
이것이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2) 생명의 성령의 법(2절)
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니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마치 엄마가 아이를 돌보듯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죄의 찌꺼기들을 청소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넣어 주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이제 막 받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가진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제 막 나의 영을 막 치료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3)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줌
성령은 바라고 구하는 자에게 들어오십니다.
내가 연약하여 죄를 이길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그의 몸속에 있는 죄의 독을 제거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심으십니다.
구약은 이 모든 일을 나 혼자의 힘으로 해야만 했으나,
이제는 성령께서 이 모든 일을 다 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께 도우심을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연약한 자도 도우심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福音)입니다.
4)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심(3~4절)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넣어주십니다.
이때 우리에게 생긴 새 생명(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영’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에 자극을 받는 새 생명인 영을 우리 안에 새로 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영혼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 몸 안에서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에 자극을 받고 반응하는 신령한 부분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 새롭게 생긴 이 새 생명(영)은
성령께서 신령한 자극을 주실 때마다 반응합니다.
그 자극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반응하고 움직이는 자는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룬 자로 여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3.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
1) 좇아 행한다 :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5~6절)
➀ 육신대로만 있는 자
육신에 속한 자는 그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은 없고
오직 죄와 사망의 법만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오직 육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육신대로만 있는 자입니다.
➁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에만 집착하는 자,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땅의 일에만 몰두하는 자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육신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일이나 각종 봉사활동 등 신앙생활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형식적으로 참여하기만 할 뿐,
그의 마음은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에만 집착하고 몰두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신앙생활에 참여하고 있을지라도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그의 마음의 가장 중요한 중심점에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➂ 추구하는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모든 과정이 육신에 속한 것뿐인 자
이런 사람은 그 추구하는 목표가 세상입니다.
또한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 역시 육신의 방법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육신의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할 뿐이고,
찬양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할 뿐입니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삶의 목적이 이 세상에 있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평안과 안락이 삶의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 중에도 주님을 믿는 목적이
이 세상에서의 평안과 안락에 있다면 육신을 좇는 자입니다.
그가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 영을 좇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락을 찾는 자입니다.
영을 좇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를 찾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를 찾는 자는
때때로 이 세상에서는 불편함과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더 크다는 것을 믿기에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이런 자가 영을 좇는 자입니다.
2) 생각한다 :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5~6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은
결국 생각의 자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인정하시는 ‘생각’은 어떤 것을 말하는지 그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➀ 생각한다(프로네오) : 생각과 관심, 애정과 목적을 집중하게 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
여기에서 ‘생각’에 해당하는 ‘프로네오’는
생각과 관심과 애정과 목적을 집중하게 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날 내가 어떤 것에 마음이 꽂혔습니다.
그날 이후 내 생각과 관심과 애정과 목적이 그것을 향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생각’입니다.
➁ 애정을 품고 지극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 :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
이것은 ‘예정을 품고 지극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질문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아무리 열심히 참여하고 있더라도
그가 애정을 품고 지극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세상이면
그는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보다 더 큰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 안에 있는 죽을 몸과 새 생명은 우리의 생각에 따라 반응하고 자랍니다.
늘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좀 더 편안하게 잘 살 것인지만 생각하는 자는
그 생각에 따라 육신을 좇는 자가 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는 자는
그 생각에 따라 영을 좇는 자가 됩니다.
3)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7~8절)
주님을 믿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자기는 살인이나 간음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으니
최소한 중간은 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을지라도
그가 이 땅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 원수라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 묵상 : 순전한 예배와 찬양과 기도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순전한 예배’라고 합니다.
마음과 생각까지 주님을 생각하며 드리는 예배와 찬양과 기도가
바로 순전한 예배, 순전한 찬양, 순전한 기도입니다.
생각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것이 잘 안 되면 주께 내 생각의 자리를 지켜주시도록 도움을 청하십시오.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부터 영의 일이 시작됩니다.
* 기도제목
1. 성령이여 나에게도 주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옵소서.
2. 성령께서 주시는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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