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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성경 66권 강해서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 선생
에스라 6장 강해 스룹바벨 성전의 봉헌
에스라 6장 1-에스라 6장 22
에스라 6장 16.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하니
지난 번에 16년만에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한 것을 배웠습니다. 대적이 방해하자 다리오왕에게 편지를 보내 고레스왕의 조서를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합법적으로 드디어 성전 건축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레스의 조서를 찾음)
1,2절을 보십시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다리오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에서 고레스왕이 보낸 조서를 찾았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페르시아 관리 닷드내의 보고를 듣고 다리오 왕은 조서를 내렸습니다.
조서는 문자적으로 명령을 의미합니다. 문서창고와 보물전각은 원문상으로 보물이 쌓인 서적 곳간이라 번역합니다. 이곳에는 중요한 문서들이 보물과 함께 보관되었습니다. 그만큼 고대 국가에서도 문서 보관에 관한 업무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다리오 왕이, 페르시아 제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문서 보관소 중 바벨론에 있던 것부터 찾아보도록 명령했습니다.
페르시아 왕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후 조건이 적절한 지역으로 옮겨다니면서 통치를 하였으므로 문서를 여러 곳에 보관하였습니다. 페르시아 왕들은 겨울에는 바벨론, 봄에는 페르시아의 수산 궁(느 1:1),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사(政事)를 처리했습니다. 만일 다리오 왕의 조서가 바벨론에서 내려졌다면, 그 조서는 겨울에 내려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조서는 바벨론이 아닌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악메다는 페르시아 왕들의 여름 휴양지였습니다. 고레스왕은 B.C. 538년 여름에 이 조서를 내렸습니다.
악메다는 아람어이며, 그것의 헬라어 형태는 에크바타나, 그리고 페르시아어로는 하그마타나입니다. 이 도시는 원래 메대 제국의 수도였고, 고레스에 의해서 B.C. 550년에 정복되었습니다. 여기의 궁은 요새의 의미가 있는 단어로서, 악메다가 요새화된 도시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와같은 도시 악메다는 메대 왕국의 창건자 데이오세스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특히 왕이 살던 궁전은 7중의 원형벽으로 둘러싸여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두루마리는 토판이나 가죽 혹은 두루마리 모두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고대 중근동국가 중에서 애굽인들은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바벨론 사람들은 토판을, 그리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동물의 가죽을 사용했었다는 점에서 볼 때, 본절의 ''두루마리''는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로 봐야 할 것입니다.
거기 기록하였으되 문구 뒤에는 비망록 혹은 의정서라는 의미의 단어가 독립적으로 나옵니다. 3절의 조서는 왕의 선포를 전령이 전달한 내용인 반면, 2절의 조서는 왕의 결정을 행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상세하게 작성된 공적 문서 내용입니다.
(고레스 조서의 내용)
3-5절을 보십시오.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성전 금, 은 그릇들을 돌려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 안 각기 제자리에 둘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왕의 조서에 보면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서 명령하였습니다.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B.C. 539년을 기점으로 자신의 즉위 년도를 계산하였습니다. 그런데 B.C. 538년을 그의 즉위 원년으로 삼은 이유는 첫 번째로 맞이하는 니산월(정월)이 속하는 해(年)를 즉위 첫해로 삼는 것이 바벨론의 계산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레스는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레스는 당시 여러 민족들의 신당 재건도 허락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전은, 고레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여러 민족들에 의해서 숭배되던 많은 신들의 신당 중의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고레스는 그러한 많은 신당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 앞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을 덧붙였습니다.
고레스는 지대를 견고히 쌓고 성전의 높이는 육십규빗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저자가 말하는 솔로몬 성전의 규모의 두 배 이상입니다(왕상 6:2). 고레스는 피정복민 이스라엘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큰 규모의 성전을 짓도록 명령을 한 듯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같은 치수대로 건축되지 못한 까닭은, 페르시아 왕실이 약속했던 건축비를 부담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큰 돌 세 겹에 새 나무 한 겹을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켜는 벽을 의미합니다. 그는 성전의 삼 면(面) 벽을 돌로 쌓으라고 하였습니다. 큰돌은 건축 재료로서 바로 쓰일 수 있는 다듬은 돌을 말합니다.(5:8).
새 나무 한 켜는 돌로 구성된 세 면 이외의 또 다른 벽, 즉 성전 출입문이있는 벽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전 출입문이 있는 벽은 목재로 건축되게 되는 셈입니다.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라고 하였습니다. 왕실이 직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왕실로 마땅히 돌아가게 될(4:13), 강서편에서 거둬지는 세금 중 일부를 성전 재건 비용으로 주라는 뜻입니다(8절).
그러나 이같은 약속은 실제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고레스왕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바벨론에 옮겼던 하나님의 성전 금은그릇들을 돌려보내 성전 안에 각기 제자리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다리오왕의 답변)
6,7절을 보십시오. “이제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관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 곳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
여기서부터는 다리오 왕의 명령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기자는 다리오 왕의 조서 내용 중 중요한 사항만 발췌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의 조서의 서두가 이처럼 허술하게 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네 일행은 성전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 재건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보낸 고소를 기각한다는 말입니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성전이 있었던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비와 제사비용을 도와줌)
8-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성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리노니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다리오왕이 또 조서를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닷드내 등의 페르시아 관리들(6절)이 유다사람들에게 행할 것을 알렸습니다. 왕의 재산 곧 그들에게서 거둔 세금 중에서 성전을 건축하는 경비를 사람들에게 주어 성전 건축을 멈추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이 관대하면서도 자상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다리오가 이 같이 자상하게 명령한 것은 특정한 신의 진노를 면하기 위해서는 희생 제사가 정확한 절차에 따라 드려져야 한다고 봤던 고대 중근동의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궁극적으로 다리오를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이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공급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사 비용도 도와주라고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과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날마다 충분히 주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중근동에는 말이나 심지어는 돼지 등으로 제물을 삼던 민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제물들은 이스라엘의 제사법에 잘 부합되는 것들입니다(출 29:38-46 레 2:1 민 28:1-8). 다리오 왕이 이스라엘의 제사법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였습니다.
수송아지는 속죄제 등 특별한 때에 제물로서 드려졌습니다(레 9:2, 3). 수양은 속건제의 제물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레 5:15 6:6). 어린 양은 상번제의 제물로 조석으로 각기 한마리씩 드려지는 등 가장 많이 소용되던 짐승입니다. 밀과 소금과 포도주들은 희생 제사 곧 화제와 함께 드려지던 소제의 제물들입니다(출 29:40, 41 레 2:14, 15).
다리오왕은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에게 실수나 실패나 게으름이 없이 날마다 주라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주라는 말은 상번제를 주었음을 의미합니다. 제사장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다리오 왕과 왕자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라고 합니다. 향기로운 제물은 기쁘시게 하는 제물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땅으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의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렘 29:7). 고레스 왕도 다른 민족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해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왕이 자기가 섬기던 신과 다른 신을 섬기던 사람에게까지 기도 요청을 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보편적 관행이었습니다.
비록 다리오 왕이 주로 오르무즈드라는 페르시아 신을 섬기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의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신들로부터 은총을 받음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다리오의 이 같은 기도 요청은 그 당시 페르시아의 정정(政情)이매우 혼란스러웠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치 아니할 것입니다(5:1, 2).
닷드네는 성전 건축에 대해서 문의했는데 하나님은 그들이 성전 건축하게 하는 경비는 물로 제물도 주었습니다.
(다리오왕 조서의 절대성)
11,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명령을 내리노니 누구를 막론하고 이 명령을 변조하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의 집은 이로 말미암아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만일 왕들이나 백성이 이 명령을 변조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헐진대 그 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지어다 하였더라”
다리오가 명령을 내리는데 그 명령을 변조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명령을 변조하는 것은 명령의 불이행과 명령의 부분적 이행, 그리고 명령의 왜곡된 이행을 모두 포함합니다. 공문서의(특히 조약이나 조서의) 끝부분에는 이러한 경고문이 관습적으로 부연되었는데, 이는 법령이나 약정사항을 사람들이 가볍게 여겨 위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대 바벨론 및 페르시아 등지에서는 이와같은 명령의 변개가 명령자 자신에게도 엄격한 금기 조항 중의 하나였습니다(4:21 에1:19 단 6:15). 이 명령을 변조하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의 집은 황폐하여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매어 달게 하고는 문자적으로 높이 올려지고 꿰뚫어져야만 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것은 고대 중근동에서는 매우 보편적으로 시행되었던 형벌의 형태였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들보의 한쪽을 뾰족하게 깎은 다음 그 부분으로 범죄자의 복부 등을 관통시키고, 그 들보의 뾰족한 부분을 땅에 박아 놓는 형태였습니다. 그 경우 범죄자는 들보에 복부가 관통된 채 그 세워진 들보의 부분에 매달려서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비록 이것이 수리아역에서는 십자가에 달다의 의미로 번역되기는 했지만, 십자가 형과는 그 형태에 있어서 매우 달랐습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다리오 1세는 모반을 꾀했던 바벨론인들을 무려 3000명이나 나무에 꿰뚫었다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도 범죄자들을 매어달아 죽였던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40:22 민 25:4). 또 범죄자를 돌로 쳐 죽인 후 나무에 매어단 경우도 있습니다(신 21:22, 23).
들보를 제거함으로써 집을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왕명을 거역한 자에 대한 징벌의 엄중성을 경고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단 2:5 3:29). 특히 거름더미는 왕명 거역자의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강조합니다(왕하 10:27). 왕들이나 백성이 이 명령을 변조하고 손을 들어 하나님의 성전을 헐면 그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명령을 신속히 하라고 합니다. 열왕이나 백성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밖에 있던 민족들 및 그들의 왕들을 말합니다.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된 민족들 중 자체 내에 독립적으로 왕국을 유지했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의 손은 여러 문맥에서 힘 혹은 권능을 뜻합니다(민11:23). 그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은 중앙 성소의 지정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 언급된 신 12:21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다리오의 본 조서가 어떤 유대인의 영향을 받아서 작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둔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그들 중에 임재하신다는 뜻입니다.
저희를 멸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에서 멸하시기를은 던져버리다 혹은 전복시키다의 의미로서, 한 민족의 완전한 멸망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유명한 베히스툰 비문의 끝부분에는 그 비문을 훼파하는 자에게 오르무즈드의 엄한 징벌이 따를 것이라는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리오 자신의 명령이 일체의 오차도 없이 신속히 그대로 실행하도록 명령합니다. 신속히는 ‘부지런히’(NIV)이지만, ‘정확하게’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지도자를 쓰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고르바초프 노무현 대통령을 쓰셔서 공산권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지도자를 쓰십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합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릴 때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성전 건축의 완성)
13-15절을 보십시오.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신속히 준행하니라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다리왕의 조서가 내리자 다드내를 비롯하여 그 명령을 신속히 준행하였습니다. 본장의 핵심 문구중 하나입니다. 다리오 왕의 조서가 매우 엄하고 긴박하게 하달되었습니다.
아울러 성전 재건 작업에 참여하는 자들이 열과 성을 다하였습니다. (14절) 스룹바벨을 비롯한 유다 사람과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을 따라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권면은 예언으로 말미암아의 뜻이 있습니다. 성전의 완성은 B.C. 516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학개서는 학개 선지자가 B.C. 519년까지 예언했던 바를 기록하고 있고(학 2:10). 스가랴서에는 B.C.518년까지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성경 기록으로는 남기지 않았지만, B.C. 519년과 518년 그 이후에도 예언을 통한 권면을 성전 완성 때까지 계속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끝냈습니다. 성경 안에는 성전 재건에 관한 하나님의 직접적 명령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고레스에 대한 예언(사 44:28)과 하나님의 고레스 왕에 대한 강권적 감동(1:1-3)과 학개와 스가랴를 통한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관한 적극적 권면 등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명령하셨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와 같은 왕들이 성전 건축 사업을 완성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음을 말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왕들의 조서를 뒤에 놓음으로써, 모든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다만 그 도구로 쓰일 뿐임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여기서 아닥사스다는 실제적으로 성전 건축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성전 건축이 완료된 해는 B.C. 516년이지만, 아닥사스다 왕의 재위 기간은 B.C. 464년부터 424년까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아닥사스다를 그 명단에 집어넣은 까닭은, 그가 비록 성전 재건과는 관련이 없지만 성전에서 사용되는 물품을 지원하는 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7:20, 27), 본서의 저자가 본서 기록 당시 왕위에 올라 있었던 그에게 최대한의 감사와 예의를 표하려는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리오왕 육년 아달원 삼일에 성전 일을 끝냈습니다. 다리오는 B.C. 522년(486년까지)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따라서 그의 즉위 육 년은 B.C. 517년이 되는 셈입니다.
아달월은 유대 종교력으로는 12월이며, 태양력으로는 2, 3월입니다. 따라서 태양력으로 따지면, 성전의 완공은 B.C. 516년에 이뤄졌습니다.
아무튼 예루살렘 제2 성전은 B.C. 53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3:8), 그 해에 중단되어 B.C. 5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 공사는 중단기간을 포함하여 시공(施工) 20년 만에 완공된 것입니다.
이는 중단됐던 공사를 다시 시작한 지(학 1:15, B.C. 520) 4년 만이었습니다. 또한 파괴된지 약 70년 만에 다시 재건된 셈입니다.
아무튼 이 스룹바벨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게 파괴되기까지 약 585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 장소가 되었습니다(헤롯 왕은 이것을 보다 장엄하게 보수만 했습니다). 최초의 솔로몬 성전은 다만 373년 동안만 그 역할을 하였던 셈입니다(B.C. 959-586).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계획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무디는 말씀을 순종하고 체험한 것을 tp(시도하고 증명했다)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역사 구원역사 그리고 심판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전 봉헌식)
16-18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하니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 양 사백 마리를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포로로 잡혀갔던 자의 자손들이 즐거이 성전 봉헌식을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과에서 접속사 과는 탈락되어져야 합니다. 아람어 원문에는 과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습니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문구 뒤에 나오는 제사장들...사로잡혔던 자의 자손과 동격(同格)임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 다음에 즉 혹은 곧이라는 부사가 삽입되면 더 부드러운 번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강조하는 특별한 호칭입니다.
비록 유다 및 베냐민 지파 이외에는 다른 지파의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맺어졌던 까닭에(출19:1-6 수 4:1-4 왕상 18:31), 여기서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칭호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17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자손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특별히 구별된 지파에 속했었다는 점에서(출 32:26-29 신 10:8), 이처럼 별도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봉헌식은 헌신하다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이 단어는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더럽혀졌다가 다시 청결하게 된 후에 시행된 성전 재봉헌을 기념한 축제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원래 이 단어는 제단이나 집(신 20:5) 혹은 성벽(느 12:27) 등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 건립되었을 때에도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 소와 양을 드리고 염소를 속죄제로 드렸습니다. 본절에서의 제사의 규모는 솔로몬 성전 봉헌식 때의 풍부했던 규모와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때는 무려 소 22,000마리, 양 120,000마리를 제물로 사용하였습니다(왕상 8:63 대하 7:5). 따라서 이렇듯 빈약한 제물의 규모는 그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가 대단히 빈곤한 상태에 있었음(학 1:9)을 반영해줍니다.
수염소 열 둘로...속죄제를 드리고 - 여기의 속죄제(레 6:24-30)는 대속죄일에 드려지던 ''속죄제''(레 16장)와는 구별되며 민수기 7장에서처럼 하나님께 성막을 봉헌하는 의식 중의 한 절차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성막 봉헌을 하기에 앞서 죄사함을 받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속죄제는 번제와 함께 드려졌습니다(민 28:22 대하 29:24)
.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린 까닭은, 반드시 귀환자 중에 모든 지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본절은, 성전이 완공됨으로써 희생제물 드리는 일이 본 궤도에 올랐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상 24:1-19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24분반으로 나뉘어져서 성전 봉사를 하였습니다. 각 분반은 차례에 따라 돌아가면서 일 주일씩 희생 제사의 직무를 담당하였습니다(왕하 11:9 대하 23:4 눅 1:5, 8).
추측컨대 한 분반에 속했던 제사장의 숫자는 포로기 이전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사장 숫자 자체가 그때보다 현저히 적었습니다(2:36-39). 여기의 분반은 나누다에서 파생된 명사형입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분반을 둔 목적은 공평하게 일을 분담시킴으로써 하등의 불평이 없도록 하며, 성전 제사가 효율적이고도 원활히 드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레위 사람들도 제사장들처럼 24반차로 구분되어 성전봉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대상 25:9-31). 여기의 반차는 나누다 혹은 분배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몫 혹은 배당의 뜻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 같은 성전 봉사가 없을 때에는 자신들의 향리에서 생활하였습니다(느 11:20). 모세의 책은 모세 오경 중 제사장 및 레위인들의 직무에 관한 전반적 규정들을 다루고 있는 출애굽기 29장, 레위기 8장 그리고 민수기 3장 부분 등을 가리킵니다.
기록된 대로 하게는 서기관 에스라가 돌아오기 이전에도 이스라엘 공동체는 율법 규정을 알았으며 또한 그것을 실행하려고 노력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봉헌식을 하였습니다.
(유월절을 지킴)
19, 20절을 보십시오.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4:8에서 6:18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으나 본절부터는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됩니다. 유월절을 지킨 것은 구속사적으로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출 12:24-27) 유월절 행사에 바벨론에서 귀환한 자들이 참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본서가 출애굽의 모티프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본서의 저자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절기를 지킨 것은 결코 그들의 국수주의적 태도 때문이 아니라 다만 자신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으로 시작된 유월절은 이스라엘 역사상 획기적인 종교 개혁이 있을 때마다 재삼 깊은 의미로 치뤄졌습니다. B.C. 726년 히스기야 왕이 베푼 유월절 잔치(대하 30장),B.C. 624년 요시야 왕에 의한 유월절 잔치(대하 35장) 등이 그러했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오랜 타락을 청산하고 성전 예배를 회복하는 것을 그 골자로 삼았습니다.
정월 십 사 일은 구약시대에 유월절 어린 양이 드려지던 날짜입니다(출 12:6레 23:5). 이 다음 날부터 7일간은 무교절 행사가 지켜졌습니다(출 12:15-20 23:15).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유월절 양을 잡았습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때에 지켜졌던 유월절의 상황과 유사합니다.(대하 30, 35장). 차이점은, 그 당시에는 레위인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던 반면에(대하 29:34), 본문에서는 레위인과 마찬가지로 제사장들도 제대로 준비를 갖추고 있었음이 강조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시체를 만지지 아니하며(레 21:1), 성교를 어느 기간 피합니다.(레 15:16-18), 자신의 몸을 깨끗한 물로 씻는 등(출30:18, 19 레 8:6 22:4-9)의 노력을 해야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자기를 위하여 양을 잡았습니다. 원래 유월절 양을 잡는 일은 한 가정의 가장에 의해서 실시되었습니다(대하 30:17).
그러나 히스기야 시절에 백성들의 부정으로 인하여 레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양을 잡은 이후로는(대하 30:16, 17), 레위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습니다다(대하 35:10-12) 잡으니는 주로 희생제사와 관련있는 동물의 도살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출 34:25 레 4:24 삼상1:25).
(무교절을 지킴)
21,22절을 보십시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유월절 행사에 모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유월절 절기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참여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였습니다.
2장의 귀환자 명단에 포함된 자들과 팔레스틴에서 그 후에 새로이 태어난 자손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한 자들은 다 모였습니다. 원래는 이방 민족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 개종한 자들입니다.
구별하여는 나누다 혹은 분리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수동형으로서, 기존의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절교 및 단절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대상 23:13 느 10:28)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찾는은 원래 찾다 혹은 구걸하다의 의미로서, 경배할 혹은 교제할 대상으로 삼고 간절히 사모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시 77:2 109:10 사 9:13). 더러운 것을 버리고는 스스로 구별하여의 구체적 방법입니다. 이방인들은 이러한 절차를 필히 거친 후 할례를 받고서야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출 12:44, 48).
더러운 것이란 주로 의식적 부정을 표현하는 단어로서 이 단어 혹은 그 파생어들이 구약 성경에 279회 정도 나오며, 그중 64%가량은 레위기와 민수기에 그리고 15%정도는 에스겔서에 등장합니다. 더러운 것은 구체적으로 우상 숭배(렘 2:23 겔 36:18) 및 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성적 타락(9:11)을 주로 말합니다.
이스라엘 무리에게 속하여는 문자적으로 이는 다만 그들을 향하여의 의미를 가집니다. 참 하나님 여호와를 사모하던 이방인들이 그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공동체 이스라엘에 가입하려는 열망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적 측면, 즉 언약을 주도적으로 맺으시며 또한 그것을 신실히 이행하심을 강조하는 호칭입니다. 이와 같은 호칭은 이방 개종자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려는 열망을 보여주는 본 문맥에 잘 부합됩니다.
이스라엘 귀환자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유월절 양을 함께 먹었습니다. 유월절 양을 먹는 일은 유월절 행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즐거움으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문자적으로 보면 즐거움 안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들의 즐거움은 단순한 정치적 축하연이나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이들의 잔치에서 얻는 기쁨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이 기쁨은 깊은 종교적 의의를 지닌 것입니다. 주께서 친히 그들의 심령 속에 기쁨을 불어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 먹고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무교절은 하루 동안의 유월절 그 다음날부터 이어졌습니다(출 12:15-20 23:15). 칠 일 동안은 정월 15일부터 21일까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1:1)부터 시작하여 성전 재건 사업이 마쳐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은혜를 베푸셔서 즐겁게 하셨습니다.
여기의 즐겁게 하시고는 절기의 준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찬양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대하 20:27 시 5:11 9:2 16:9 32:11).
그들은 구원 받은 후 무교절을 지키며 성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있게 하였습니다. 앗수르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렸다는 것은 성전의 완성에 적잖은 도움을 준 페르시아의 다리오를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다리오를 앗수르 왕으로 표현한 까닭은, 페르시아 왕들은 앗수르,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리오 왕은 앗수르의 옛 땅을 자신의 나라로 삼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리오를 앗수르 왕이라고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역사속의 모든 제왕들을 장중에 넣고 친히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저자는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몽둥이로 사용하심으로써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나(느 9:32), 이제는 다리오라는 앗수르 왕을 성전 재건을 위한 선한 도구로 사용하심으로써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돌이켜는 돌다 및 둘러싸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의 사역형으로서,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이 역사 개입을 통하여 상황을 변화시킨 사실을 나타냅니다. 성전 건축을 힘있게 하도록 했다는 말은 강하게 하다 혹은 힘쓰다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의 강조형로서, 추진 중인 어떤 일의 완성을 이룰 수 있도록 마음을 강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신 1:38 삿 16:28 삼하11:25 사 35:3).
에스라 6장 강해 스룹바벨 성전의 봉헌
에스라 6장 1-에스라 6장 22
에스라 6장 16.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하니
에스라 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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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성경 66권 강해서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