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정옥남/온천
서랍 속 깊숙이 간직한 빛바랜 누런 편지 한 통을 꺼내어 보면서 지난 세월 선옥 이와의 소중한 만남을 떠올린다.
지난 1985년 광주 근거리에 있는 O여자고등학교 1학년 학급 담임을 맡게 되었다. 3월 초 가정 방문을 하면서 허름한 토담집 앞에 이르렀다. 학급 부실장을 맡은 선옥이 집이다. 앞은 못 보는 아버지, 그리고 선옥이 백일 무렵 생활고로 인한 어머니의 가출로 주부이자 가장 역할을 대신 해야 했던 선옥이, 또 맹인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오빠, 그리고 허술한 세간살이가 전부였다. 맹인인 아버지 앞에서 선옥이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만 잠깐 나누고 일어섰다. 방문을 나서니 마루가 없는 단칸방이라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신발이 흠뻑 젖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온 선옥이의 가정환경을 보면서 가련함에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비는 여전히 계속 왔고 집으로 오는 통근버스 속에서 어머니와 선옥이 생각으로 가슴이 아리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한 달 전에 운명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어미 잃은 새끼 새의 아픔을 생각했다. 병상에서 투병하다 자식들에게 못다 준 사랑을 애통해 하던 어머니.
어머니는 6‧25전쟁이 나던 해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여 홀시어머니와 6남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많은 일을 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어머니에게는 인근 학교에서 교사 초빙이 들어왔으나 고지식한 할머니가 “여자 목소리가 울타리를 넘으면 집안이 망한다”고 완강하게 반대하여 포기하고 집안일을 물론이고 농사일까지 했다. 할머니의 마음은 이해는 하지만 연악한 몸에 힘에 겨운 일들로 어머니가 병을 얻게 된 것은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 생각만 해도 내 눈가에서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 오는 눈물과 애절한 보고픔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 남편과 두 자녀를 둔 나에게 어머니의 그늘이 이토록 그립거늘, 어려서부터 엄마 없이 자라온 선옥이는 어떠했을까? 대견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선옥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없을까 생각했다.
선옥이는 입학 당시 학업우수 장학금으로 쌀을 사서 생활을 유지해 왔으며 납부금은 학교에서 면제를 받았다. 기타 생활비는 동네 아주머니들 일손 도와 드리기, 딸기밭 매기, 이웃집 아이 돌보기 등으로 약간의 노트와 생활필수품에 보탬을 받고 있었다. 선옥이에 대한 생각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춥고 배고픈 아이에게 따뜻한 양지를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베푸신 따뜻한 사랑이 마음속에 강물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선옥이는 입학 당시 장학금으로 샀던 쌀이 떨어져 아버지만 겨우 밥을 지어드리고 굶고 학교에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급회의를 통해 선옥이 돕기를 전개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도움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웠다.
‘어떻게 할까? 좋은 일자리를 소개하고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권유해 볼까? 그렇다면 앞 못 보는 아버지는 어떻게 하나? 좋은 독지가와 자매결연해서 도울 수는 없을까? 세상은 넓고 좁은 곳이며 필요한 사람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턴데...’ 궁리 끝에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다행히 선옥이에게 지역 실정을 잘 아는 선생님을 통해서 쉽게 지역 경찰서에 연결이 되었고, 방과 후에 방문했다. 생활보호 대상자 창구를 열고자 경찰서 담당부서에 가서 상의하니 선뜻 응해 주었다. 한시름 안개가 걷히는 기쁨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그 후 군청 사회복지과로 연결되어 쌀과 연료비 등 기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선처해 주었다. 그래도 선옥이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은 8월에 끝나는 사글세 방세였다. 마침 광주일보 기자의 도움으로 ‘현대판 효녀 심청이. 소녀 가장’ 으로 선옥이의 효심이 기사화되면서 어려움 속에서 학업성적 우수 장학생임을 취재해 광주일보 1985. 7. 27자 기사로 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보도되자, 도지사님을 비롯한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까지 각계각층에서 위로의 편지와 함께 성금이 모아졌다. 모여진 성금으로 단칸방에서 전세방으로 옮겨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되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어두운 밤길 허허벌판에서 보금자리를 찾는 새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여름 방학에도 선옥이는 오전에는 주산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지도해 주고 집에 오면 주부 역할을 하였다. 개학이 되어 2학기가 시작되면서 학교에서는 모아진 성금에 대해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의견을 모아서 전달식을 가졌다. 그리고 졸업 후 여러 곳에서 취업 약속을 받았지만, 아버지를 부양해야 되기 때문에 연고지인 관내 단위 농협으로 결정하고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후 선옥이의 갸륵한 효심과 꿋꿋한 생활 의지가 널리 알려져서 광주지방 검찰청과 청소년 선도 위원회가 주최하는 청소년 선도대상 “효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극한 효심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다. 따뜻한 온정은 사회가 아무리 각박할지라도 샘물처럼 솟고 있음을 느꼈다.
‘선생님의 사랑에 힘입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누렇게 변한 편지가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어머니가 그리운 언덕에 그 사랑에 힘입어 살아가는 이유가 있음을 느낀다.
푸르러 가는 신록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져만 간다.
첫댓글 사랑은 위대한 에너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