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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안>
제목: 하늘의 음성
일자: 2023년 3월 26일 주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9~10
설교 목적: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신다. 성경을 배움으로 우리는 우리의 위치와 정체성을 파악하고 그에 근거하여 우리를 반성하고 갈 길을 정한다. 그것은 하늘의 음성으로 우리 마음에 들려온다. 이 설교를 통하여 나는 우리를 일깨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늘의 음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설교 개요
1. 문제제기: 신앙생활의 목적
2.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3. 야곱아, 두려워 말라.
4. 너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5.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1. 문제제기: 신앙생활의 목적
사람이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말은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늘의 음성을 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하늘의 음성을 들을 때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세상에서 예배당은 가장 소중한 장소입니다. 이렇게 큰 공간이 일주일 동안 가만히 우리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습니다. 유럽에 가면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이나 성당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예배당은 크고 웅장합니다. 왜 예배당은 그렇게 천장이 높고 웅장하게 지을까요? 그것은 그곳에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음성을 듣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음성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음성을 들을 때 인간의 고민과 갈등은 끝나고 삶은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 위대한 보물 같은 음성을 듣는 장소가 바로 예배당입니다.
제가 살아온 길을 돌아볼 때 어렵고 외롭고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다 보면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때로는 저에게 위로를 주었고, 가난도 고난도 견딜 수 있는 새 힘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제 속 사람은 깊이 감동을 했으며 눈물 속에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일상을 살아갈 용기와 웃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이 소중한 예배당은 하늘의 음성을 들은 성도들의 헌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거대한 예배당입니다. 그 예배당도 사실 하늘의 음성을 들으며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은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과 감사와 정성으로 세워졌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그 동일한 말씀이 이 예배당에서 울릴 때 우리 교회도 새롭게 세워지며, 우리의 인생과 가정과 국가도 새롭게 창조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하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울리는 하늘의 음성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예배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자 마음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입니까? 아니면 굳게 닫힌 대문처럼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듣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이곳에 앉아 있습니까?
하늘의 음성을 들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지만, 듣지 못하면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살 것이다.
요한복음 5:25, 표준새번역성경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늘의 음성인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다시 살아나기 위함입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음성은 인생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이 설교를 통하여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2.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성경을 보면, 첫번째 사람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손으로 빚으시고 에덴동산에 들이신 첫 사람들입니다. 그 부부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을 들으면서 아담 부부는 에덴동산을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로부터 들린 음성은 평소와 좀 달랐습니다. 그 음성은 준엄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나무 사이에 숨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담 부부는 왜 두려워하고 왜 숨었습니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들은 왜 하나님 앞에서 피하여 숨습니까? 하늘의 음성은 첫 번째 사람에게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이자 책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담 부부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 자리는 어떤 곳입니까? 그것은 마치 하나님 오른쪽에 있는 의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담 부부의 자리는 하나님 오른쪽 보좌입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 오른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11
아담 부부의 자리는 본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 오른쪽에서 그의 지혜와 권능을 받아 다스리고 충만하게 하는 통치자의 자리입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사람에게는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아담 부부의 자리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머무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봅시다: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0~11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거기 하나님 오른쪽에 늘 계셨다고 소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른쪽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요 1:18). 예수께서는 항상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심으로 하나님이 늘 그와 함께하시고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요 8:29).
그러나 사람은 홀로 있었습니다! 홀로 있는 사람에게 뱀이 다가와서 유혹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잊어버리고 그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아담도 여자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렇게 그 두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맙니다. 그때 그 두 사람은 하나님의 오른쪽에 있는 영원한 즐거움도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있는 기쁨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세기 3:22~23
사람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영화와 존귀의 관을 쓰고 하나님처럼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릴 때 그는 스스로 왕관을 쓰고 하나님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리에서 쫓겨나 땅을 가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납니다. 그는 기쁨도 즐거움도 잃어버리고 자신이 본래 맡은 그 영광스러운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저에게 지난 한주간의 삶이 바로 그런 괴로움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기쁨으로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기도도 찬송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속삭였던 그 음성이 무엇이었습니까? ‘네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도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될거야!’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속삭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첫번째 의미는 하나님처럼 권세를 가지고 일을 처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는, 네가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고,
너의 형 아론이 너의 대언자가 되게 하겠다.
출애굽기 7:1, 표준새번역성경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도 율법을 인용하셔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너희를 다 신들이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8:34, 시 82: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까닭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를 힘입어 땅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의 두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의미입니다. 부정적인 의미로서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스스로 왕관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시고 보실 때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이 홀로 있는 모습을 보시고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을 보고 ‘좋다!’ 또는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정해버리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습니까?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니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고 탐스럽기도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따먹었습니다. 그 결과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자기가 보기에 좋아하는 모든 사람으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 결과 홍수 심판을 받았습니다(창 6:2).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눈을 들어 동편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동산 같고 애굽땅처럼 비옥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불과 유황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창 13:10, 19장).
지난 주일 저도 아담부부처럼 제가 본 것을 바탕으로 좋다 나쁘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이것은 나쁘고 저것은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에 깊은 절망과 어둠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계명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 때는 모든 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의 음성을 잊어버릴 때 저도 아담부부처럼 스스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에덴이라는 말의 뜻은 기쁨이라고 한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어둠이 밀려왔고 제 마음도 어두워지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지며, 웃음은 사라지고 얼굴도 누렇게 뜨고 말았습니다.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지 않습니까?
그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였습니다. 저는 이 음성을 듣고 다시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좋은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므로 제가 다시는 스스로 판단하여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하나님 앞에서와 교우 여러분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짐하는 고백입니다.
3. 야곱아, 두려워 말라.
제가 소개하고 싶은 두 번째 하늘의 음성은 ‘야곱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하나님이 자기의 대리인을 부르실 때 들려주십니다. 그런데 그 대리인은 자기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너무 약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사람이 보통 느끼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애굽의 파라오 앞에 서게 하실 때 모세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모세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10절)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13절)
출애굽기 4장
모세는 도저히 그 일을 맡을 자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셔서 사도로 삼으실 때 베드로도 비슷한 말로 사양을 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5:8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늙은이와 아이들뿐이었을 때 하나님이 그 백성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때도 야곱의 자손들은 스스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하찮게 여겼던지 주님의 말씀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
이사야 41:14, 표준새번역성경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이 음성은 낙심한 사람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격려입니다. 이 음성을 하늘로부터 들을 때 사람은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음성을 들려주심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제가 들었던 음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잊어버린 음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향한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우들이 하나님의 빛나는 상속자들로 변화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금년 우리 교회에 대한 기대를 주보에 새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품격과 실력을 갖춘다!’는 문구였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바꾸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 기대를 가질 때마다 저는 힘이 솟았고 즐거움으로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 음성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은 저와 우리 교회가 지렁이와 같고 벌레와 같이 연약하고 볼품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입니다. 하나님도 야곱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돕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늘의 음성을 붙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입에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늘의 음성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말씀을 암송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의 음성으로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울려야 합니다. 그렇게 사모하고 또 기다려야 들리는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이 말씀이 하늘의 음성으로 들린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하늘의 음성을 듣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소란하고 분주한 일을 내려놓고 새벽 미명이든지 고요한 밤이든지 아니면 아침 이른 시간이든지 주님 앞에 가서 기다려야 합니다. 아니면, 꿈 속에서라도 만나주시기를 간구하며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이 말씀을 음성으로 들려주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주리고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이며(시 107:9),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고 하셨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 하신 분입니다(사 55:6). ‘야곱아, 두려워 말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4. 너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하늘의 음성 세번째는 ‘너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입니다. 이 음성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을 바쳐 그 뜻에 헌신하고자 일어날 때 들려옵니다.
서른 살의 청년 예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이 일하실 때가 되었음을 확신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깨워서 일으키고 사람들을 세우고 격려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이 마음 속에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사실 나사렛 출신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골벽지라는 뜻입니다. 나사렛 출신은 시골뜨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요단강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세례 요한이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세례를 주는 목적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되라고 세우고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청년 예수는 자신도 그 일에 나서야 한다고 느꼈는지 요단강으로 가서 세례 요한 앞에 섰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마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헌신의 의식과 같았습니다.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머리에서부터 온 몸이 젖었습니다. 마치 기름부음을 온 몸에 받은 것처럼 온 몸에 물기가 가득합니다. 바로 그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복음 3:17
그 음성은 마치 시편 2편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를 것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일어난 청년 예수에게 하늘로부터 들린 음성은 ‘너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는 것입니다. 그 음성을 들은 청년 예수는 용기를 내어 그 길로 광야로 가서 마귀를 대적하는 일전을 치르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삼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즉, 별세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별세의 시간이란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동안에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세우는 것입니다.
이제 열두 사도를 세우고 제자들을 충분히 가르쳤다고 확신하셨는지 마지막 일전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일전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백성의 지도자들과 맞서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정과 불법, 그리고 위선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의미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받은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려고 일어선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최측근 제자 세 사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때 산에서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일어나더니 예수님과 일행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태복음 17:5
이 음성은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환상처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는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3~24
하늘로부터 들려온 세 번째 음성, 그것은 너는 내 아들이라는 음성입니다. 그 말씀은 죽음을 도리어 영광으로 해석하게 하는 깨우침을 주는 음성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버리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귀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음성입니다.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자신의 희생을 결코 헛되다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든지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하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5.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다양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때로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늘의 음성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하늘의 음성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은 말씀입니다. 그들은 비록 작은 규모의 교회이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온 세상이 로마 황제의 권세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 왕의 왕으로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나라들과 왕들도 주님이 높이시고 낮추신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교회는 작지만 진실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믿음을 인정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박해하는 유대인 몇 사람을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셔서 그들 앞에 절하게 하셨습니다. 그 교회의 믿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쉽게 호전될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인내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개역개정)
희망이 끊어지면 마음이 병들고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면 생기가 솟는다.
(공동번역 개정판)
잠언 13:12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그때 들려오는 하늘의 음성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요한계시록 3:11
저는 작년 2022년 8월 28일 주일설교에서 바로 이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매주 이 구절을 암송하고 있었지만 하늘의 음성으로 새롭게 들리지 않을 때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주님이 저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쥔 것만을 크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현실은 더 이상 녹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시험이 찾아옵니다.
오늘 저는 네 가지 음성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첫째는,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둘째는, 야곱아, 두려워 말라! 셋째는, 너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그리고 넷째 음성은,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기도의 허리띠를 띠고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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