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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섭리하신 근본의 뜻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자기 고향 산천과 정든 향토정과 부모에 대한 정리라든가 친척에 대한 정리라든가가 아브라함에게는 큰 고통의 대상이었으나 하나님의 뜻를 세우는 노정에는이 모든 것의 문제되는 곳에는 시작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정은 하늘 정을 성사하고자 하는데는반대되는 직접행동 여하를 도약하게 하는 것이다.
2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것을 문제로 하지 않고 갈대아우르를 출발하는 그 행동은 과연 인간으로서 찬양하여야 할 문제인 동시에 사탄에게 대한 복수적인 하나님 뜻을 성사하는 터의 행동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자기의 기본 뜻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본격적 출발을 보고자 함이었다. 사탄은 아브라함을 빼앗기고는 아브라함에 대한 반대 공작을 시작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 성사를 파괴하고자 함이었다.
3 그래서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하여 축복하려할 때 아브라함 자체에 대한 축복보다도 뜻을 중심하고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본의였다. 아브라함이 복의 기관이 될 축복을 하여주며 이로 하여금 큰 족속을 이루리라고 축복하여 주신 뜻을 받들어서 고향산천을 출발하는 아브라함 자체에는 하늘의 공작 시작을 받게되는 하나님의 대신 뜻 성사의 기본행동의 시작은 완성하였다.
4 아브라함을 빼앗아 낸 하나님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전목적을 두고 축복과 약속에 대한 새로운 결정적 언약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하여 결정적 언약을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족속에게 잡혀간 롯을 다시 찾아와 승리한 후에 시작하였다.
5 이와 같이 한 바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민족과 대립케 함은 하나님 자신이 뜻을 세울 수 있는 확고한 기초를 세우는(세울 수 있는) 동시에 벌써 하나님이 미워하는 나라가 원수적 입장에서 하나님 편에 섰기에 결정적 언약 성사를 시작하였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민족건설의 시작이며 이를 확대시켜서 국가건설에로, 그리하여 세계복귀의 근본 의의를 두고 하는 언약이 전부의 시작, 즉 아브라함의 언약중에 포함되어지는 근본 사실을 알 수 있는 바이다.
6 그런고로 하나님이 비몽사몽에 말씀하시기를 구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창15/1) 나는 자식이 아직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가 없다하니,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이 너의 친자식으로 인하여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데리고 밖으로 나아가 말씀하시되 하늘을 우러러 보라 하며, 뭇별을 다 셀 수 수 없는 것과 같이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되리라. 하심에 아브라함은 이를 믿으니 의로 여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목적을 완성키 위하여서 갈대아우르로 인도하였다 하시면서 이 땅을 너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함이라 하시었다.
7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얻어 기업삼을 것을 무엇으로 아리이까? 하니 너가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 한 마리와 삼년 된 산양 한 마리와 삼년 된 암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를 바치라 하니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둘로 쪼개서 우와 좌에 놓고 그 비둘기는 쪼개지 아니하여 제단 위에다 놓고 제사를 드리니 그 제물 위에는 독수리가 날아와서 앉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정녕히 알라. 너 자손이 객이 되어 사백년 동안 고역하리라 한 노함을 보게 되었다.
8 이 제물은 무슨 제물이었는가 하면 그 후손에 대한 전부의 제물의 표시물이었다. 즉 그 제물이 전 하나님의 뜻이 되는 백성을 찾고자 하는 목적이며 온 인류를 찾아야 할 하나님의 근본목적을 표시한 대신적 제물이었다. 이 제물 위에 독수리가 내렸다 하는 바는 무었을 말하는가 하면 벌써 사탄의 침입을 증거하는 사실이다. 즉 아브라함 하나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할 때에 사탄은 뜻을 깨뜨리기 위하여 아브라함 한 자신의 결과적 행동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제물을, 즉 전 하나님의 목적을 두고 예약적 제물임에 틀림없다. 이 제물을 실패하면 다시금 사탄한테 침입노정을 양보하는 행동인데 아브라함의 온 뜻을 합당한 뜻에 맞게 제물을 헌제하지 못함은 하나님의 계획의 뜻은 벌써 이루지 못할 것을 표시하는 중대한 것이 이 제물이었다.
9 그런데 아브라함 자신은 이 중대한 제물을 드리는 자신으로서 제물을 전부 쪼개지 못함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 제물을 쪼개는 바는 사탄편 사람과 하늘편 사람이 있다는 전인류의 표시였다. 그런데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손과 사탄 소유된 사람과 갈라서 섭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전체 뜻이었는데 쪼개지 않은 바는 하나님 자손될 약속과 언약이 성립을 보는 제물에 완성한 성립을 보지 못하고 마는 사실이니 다시금 그 자손까지 사탄이 침입할 수 있는 터를 지은 것이 시작을 보게 되어 사탄은 자기편쪽 표시로 갈라지지 않는 제물 비둘기를 취하려고 하여 제단 위에 내린 바이다.
10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한 전 목적은 사탄이 다시금 차지하는 뜻으로써 제물헌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3대 제물은 무슨 표시냐 하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진리 목적 중심은 소생에서 장성으로 장성에서 완성으로써 한 제물을 통하여 표시한 바이었다. 즉 비둘기를 드리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 생겨남을 표시함이고 양을 드리라하심은 성장을 표시함이고 소를 드리라 하심은 완성을 표시하는 중대제물이었다.만일 이 제물의 뜻에 합의하게 헌제하였으면 애급 사백년 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없었을 것이었는데 사백년 고역이라는 것은 이 헌제물의 중대한 실패를 고하는 바의 사실이다. 사백년 연대의 뜻은 나중에 논하려 한다.
11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약 제물에 실패를 보니 그것은 자손을 사탄한테 빼앗기는 표시로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자손 중에도 사탄이 침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근본 목적은 다시금 미성사적 원인으로 기인이 되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브라함 자손에게 사탄 침입의 길을 막으려니 대신 제물은 사탄한테 빼앗기셨기에, 그것은 즉 아브라함 자손 전부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사탄의 뜻 성사를 본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사탄한테 제물 들인 것과 같이 되어버렸다.
12 즉 아브라함도 사탄 소유의 근거점이 되어 전목적의 미성사를 가져오게 되니 다시금 하나님은 비록 약속제물은 빼앗겼지만 아직 실체 자손되는 것은 빼앗기지 않으려니 하나님은 부득이 또 다른 입장을 취하여 아브라함에 따르려는 민손에 대한 사탄 침입을 막으려 함에 하나님은 그 자손의 시작인 한 자체가 사탄과 하나님과의 직접문제의 요구물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식 이삭을 취하여야 하겠고, 사탄은 벌써 이삭에 대하여서 취할 수 있는 예약제물 대신제물을 자기가 소유하였던 것이기에 사탄 역시 그 제물 대신 되는 실체인 이삭이 요구물이었다.
13 그런고로 하나님은 다시금 순종을 세워 하나님 편으로 전자손을 돌리려니 아브라함에 대하여 실체자식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는 문제를 제기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즉 아브라함으로 모리야 산상에서 제물로 이삭을 드리려는 근본 뜻은 여기 있는 바이었다. 그때 뜻 중심하고 순종하면 사탄은 떨어지고 하나님 편으로 속하는 것이었다.
14 그때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대신 제물을 잃어버린 것을 실체로써 찾는 모양으로 헌제의 명령에 순종하게 되었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런 원리적 문제는 알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에 아브라함의 순종은 용이한 문제가 아니었으나 예약 대신 제물을 헌제시 실패가 전자손에게 4백년 동안 이 고역의 뜻을 알고 나니 이번에 실패하면 말할 수 없는 큰 곤란한 문제가 생기리라는 것을 아는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되어 뜻대로 번제로써 자식을 드리는 확고한 그 입장에서 사탄은 목적상대인 이삭에게서 물러가게 되는 바의 시작을 볼 수 있다.
15 그런고로 이 사실의 근본 뜻을 현 사람들은 알지 못한 것이나 성경에도 아브라함이 실수한 구절을 알게 하는 구절이 있나니, 즉 창세기22장 12절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에 그 아들에게 손를 대어 해하지 말라. 네가 너의 독자를 나에게 바치기를 아끼지 아니하니 이제야 네가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아노라 하셨다. 이 성경구절 중에 이제야 하는 그 구절이 즉 전번 실패를 경고하는 동시에 뜻 계승 성사를 고함이었다. 이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뜻의 노정을 찾아 나가는 그 도중에는 예약 대신 제물로 실수한 험물로 받은 아브라함 자손에게는 4백년 동안 원수 앞에 고역해야만 본 노정에 들어설 것이었다.
16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 애급 4백년 고역은 필연적 과정이었다. 진리를 찾으려니 진리에는 소생의 단계가 있고 장성이 있고 완성이 있는 바이니 하나님도 이 찾고자 하는 뜻을 한 진리노정이니 이와 같은 3대제물이 요구되었다. 이 제물적 사명에 소생부분은 즉 구약시대의 상징이다. 소생하면 장성 완성으로 나아가려던 것이 인간이 절대 순종하지 못함으로 분립을 자아내는 것으로 전개할 것이 표증 되어 있다.한 제단 위에 3제물은 한꺼번에 뜻을 이루어야 할 것이 근본 뜻이었다. 여기에 소생역사는 하나님의 책임분담으로 시작 기초를 잡는 것이고 장성은 예수가 오셔서 근본복귀의 복수의 예로 해와를 찾아야만 되는 것이고 완성은 예수를 중심하고 전인류와 합하며 또 하나님과 합하여서 전 근본 창조목적 달성을 보고자 함이 표시로 된 제물의 의의다.
17 제물 중에 비둘기는 소생 단계를 표시함이니 구약시기를 말함이고 양은 장성단계이니 신약시기를표시함이고 암소는 완성이니 재림을 말함이다. 장성과 완성과 함께 할려는 뜻은 사람 순종하지 않은 것과 불신으로 인하여 예수를 죽이니 재림이라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암소는 완성의 표시이었는데 왜 암소였던가. 즉 완성하려면 해와 한 존재가 문제되는 중심점이니 암소는 해와를 표시하는 뜻이다. 사사기 14장 18절 이하에 만일 너희가 나의 암소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나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으리라.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처를 암소로 표시하여 말함도 예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암소는 해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해와가 즉 완성할 수 있는 목적 대상이었다. 간단한 제물 내용을 소개하였지만 다시금 본론으로 들어가서 보면 사탄은 이삭이 실체에게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다시금 그 자손에 대하여 대립적 태도는 물론이며 다시금 실체자손에 침입의 길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18 이삭의 한 존재가 예약 대신제물의 침입을 보였기에 그 이삭에게도 불순종의 터는 벌써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잘못하면 생기는 것을 사탄은 바라보고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제물을 자기 것으로 하였던 사실이 있음으로 사탄은 여전히 그 후손에게 대하여 대립성을 갖고 대하게 되었다.그런고로 이삭이 자식을 낳으니 쌍태인지라, 즉 에서와 야곱이었다. 이 쌍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의 실패로 인한 제물에 원치 않은 존재의 침입이 있었던 것이므로 이 실체자식 이삭이 문제되어 또다시 찾았으나 이삭의 자식한테 대하여는 사탄 역시 사탄이 찾고자하는 한 터를 양보하였던 실수가 있었으니 그 자식되는 쌍태는 원수적 표시의 소유자와 하나님적 표시인 소유자가 한 태중에 있음을 표시함이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싸웠음은 이와 같은 근본 배치의 존재이니 복중에서부터 싸운 것이다. 자식을 낳으니 에서와 야곱이더라.
19 에서는 원수 사탄의 대표요, 야곱은 하나님 편적 대표이었다. 즉 에서는 아브라함이 지난번 제물 실패의 씨요. 다음 야곱은 잃어버린 이삭을 실체로서 찾아서 제물까지 찾아 세우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제2차적 존재인 야곱을 통하여서 뜻을 세우고자 함은 근본이 그와 같이 되었기에 빼앗아서 성사하는 모양이니 하나님이 에서의 축복을 야곱에게로 돌리는 근본 의의는 여기에 있음이다.
20 그래서 제물 실패가 없었으면 이삭의 자식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에서와 같은 존재는 없었어야 할존재가 생기게 된 것은 다시금 사탄을 분립하게 하여 하늘 편과 사탄편을 분립하게 하는 것이다.이것은 하나님이 사탄과 다시는 아브라함의 자손한테 미련을 다시는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므로 이와같은 표시적 사실로써 야곱이 에서의 장자의 직분을 빼앗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다시금 예수가 와서 원수 피를 받은 전인류를 빼앗아 넘길 것을 예고하는 사실이다.
21 이런고로 이 한 사실이 근본을 밝혀주는 것인 동시에 뜻을 이루는 한 표징으로 되는 바가 되어야하는 바는 아브라함의 언약은 전체 목적의 표시인 약속이었기에 이런 의미의 한 분기적 존재는 이삭이니(이삭부터 이니) 그 자손 에서와 야곱의 사이에 되어진 실상이었다. 그런 결과의 영향을 받고 낫기에 맏 자식은 하나님 앞에 사랑 받지 못한 사실의 원인이니 창세기 전면에서 보여주는 사실이다.
22 예를 찾으면 이삭, 야곱, 요셉, 에브라임, 아벨 등등의 사실은 이와 같은 사탄 피를 받고 태어낫기에 맏자식은 미움의 상대이었다. 여기서 뜻 성사 출발의 후손은 야곱을 중심하고 택한 백성 12형제요 12지파로 시작의 출발은 야곱부터 시작하게 한 것은 근본적 뜻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과 사탄이 바라는 존재 입장의 아담과 같은 두 상대격 입장이었기에 근본 출발을 못했다.
23 즉 이삭부터가 애급 출발이 아니고 야곱부터 되는 바는 이상 해설 중 원리로써 명백한 사실이다.이리하여 택한 하늘 백성이 되어야 할 그 근본은 애급으로 옮겨지게 되는 바는 뜻 성사의 첫 출발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원인이 생기게 되었다.)
24 지금부터 하나님과 사탄과 분립되어 복귀의 출발은 시작된다. 이것이 곧 하나님적 분담 책임성사의 출발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이것이 근본이 되어 즉 표본이 되어서 장성과 완성적 사명 분담 책임자의 본이 되어야하는 제1차 하늘적으로 하나님 직접 사명하고자 하는 기초는 시작되는 동시 제물 표시 소생 과정의 발로이었다. 그런고로 애급에서부터 가나안 복귀까지는 예수님이 오셔서 할 기본 표시 공작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한 목적을 한 완성으로 볼 수 없는 한 터의 공작이니
25 애급서부터 솔로몬 왕까지는 제2차 완성하여야 할 존재가 나타나서 성사할 한 예고적 표시로 되어 있다. 즉 예수 오셔서 애급서부터 가나안 복지에로 가는 양으로 우리 인간 이상복귀의 땅으로 찾아 들어가는 한 사명적 기초 표시로 전개시키고자 함의 의의를 알아야 한다. 애급서 가나안 복귀노정은 예수의 노정을 표시한 바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뜻이다.
26 그리하여 타락시킨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이 자기 자신적 책임분담에 대하여 시작하는 것이 즉 모세를 세우심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고 바로는 사탄을 대신하고 나오게 되었다. 모세가 택함을 받은 원인은 원수가 이스라엘 백성을 극도로 학대하는 동시에 강제로라도 전멸시키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가게 되어 고역 중 원수의 사람과 즉 애급사람과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는 것을 죽이는 모세는 본래 애급 궁중에서 성장하였으나 애급 사람을 원수시하는 바는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변하지 않는 지조는 과연 하나님이 택하시는 귀여운 행사였다.
27 애급 궁중에서 자라났으나 애급 사람이 아니고 하늘의 백성으로 변함없는 그 자체였다. 이 자체는 애급 원수의 모든 제일 미워하는 자체인 동시에 사랑받고 자라난 존재였다. 이 자체가 애급 궁중에서 나왔으니 애급과는 다시 결탁 안하는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그 위에 애급 사람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확고한 존재이니 하나님 택한 바가 원인이 있는 바이다.
28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서 애급 왕 바로를 대하여 공작을 하게 하기 위한 시작을 명령하게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되는 모세는 자기 자신이 애급 백성 앞에 믿게 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하니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는 첫 이적을 보게 하신지라. 그리하여 조상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을 알게 하여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함이었다. 그 다음에는 손을 품에 넣어라 하심에 손을 품에 넣으니 문둥병이 된지라. 그 다음에 다시금 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니 나은지라. 그 다음에는 듣지 않거든 강물을 가져다 부으라. 그리하면 피가 되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었다. 그 다음에는 모세는 말씀을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려 할 때에 이런 이적을 보여주었냐 하면 하나님이 장래 하시고자 하는 사실의 터가 되는 행사이니 그 표시되는 모든 뜻은 전부 예수가 오셔서 할 목적성사의 한 상징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 되어야 할 원리적 목적이 있는 것이다』.
29 또 지팡이라는 것은 대신 의지자를 표시함이었다. 즉 나를 대신 보호할 것을 말함이고 모든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합당치 않은 것을 쳐서 뜻대로 성사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즉 예수가 우리의 모든 생명에 대하여 보호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뱀을 보여 주심은 뱀으로 유혹한 표시적 존재로 해와에게 역사한 것을 보여주었으니 예수님이 오셔서 뱀과 같은 역사로 사탄 수중에서 빼앗는 역사를 하여야 할 하늘 뱀적 표시를 예고하기 위하여서 착수할 것을 의미 하심이엇다. 사탄 네가 뱀 가지고 했으니 나도 뱀을 가지고 예수로 역사한다는 것이 근본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한 의미가 있는 바이다. 모세 뱀은 예수는 사탄 뱀을 잡아먹어 승리할 것의 예고적 표시였다.
30 모세가 손을 가슴에 넣은 것은 첫째 번은 사탄의 유혹받아 사탄 품에 안긴 해와의 행동은 인간을 죽이는 역사였으나 다시금 손을 품에 넣으심은 예수가오셔서 해와를 품는 사실은 나병과 같은 사망 중에서 소생하여 산다는 표시로 손의 병이 나은 것을보여줌이었다. 즉 제1차 품은 것은 사망이나 예수가 제2차로 품으심은 생명이라는 영생의 시작을 예증한다.
31 강물이 피가 된다는 것은 물은 세상을 표시하는 것인데 예수가 와서 사망 중에 처한 존재들이 예수가 오셔서 피로 된 생명주입을 시작한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었다. 말씀의 요구는 상대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중요한 책임중개체이니 말씀을 요구하는 것은 창조물전부를 말씀으로 지은 것을 잃어버린 것을 예수가 와서 말씀의 상대 이상적 실체를 다시금 성사한다는 뜻을 표시함이었다. 즉 말씀은 창조목적물의 실체를 말하심이다. 아담 해와를 찾는다는 것과 전인류와 만물을 찾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32 그때 모세가 요구하는 전부를 허락하시고 애급으로 돌아가라 하심에 모세는 자기의 처자를 데리고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애급으로 돌아가 바로에게 청하기를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라하라.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 그래도 바로가 놓아 보내지 않으면 장자를 죽이리라 하는 명령을 받고 돌아오는 도중에 한 숙소에서 여호와가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죽이고자 할 때에 모세의 처는 아들의 양부 끝을 베어 던져서 죽음을 면하게 하면서 처가 말하되 당신은 피 흘리는 남편이라 한지라. 그것은 할례를 한 연고더라.
33 여기에 야곱의 어머니가 야곱과 협조하여서만 공작하여 뜻을 성사한 것과 같이 모세의 처자 즉 모자가 협조하여 모세를 살리는 행례를 성사한 것이었다. 그 근본 의미는 무슨 뜻인가 하면 모세는 즉 할례를 성사 못하면 죽는 것이고 성사하면 산다는 중대 의미가 있는 바이다. 예수 오심은 무슨 목적이냐 하면 할례의 근본 목적을 완성하는 실체인데 그것은 그 모친과 협조하여서만 성립되는 근본 의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이었는데 처자와 협조하는 일이 없으면 뜻 성사 못하고 예수는 죽는 십자가가 있다는 예고적 사실을 표시함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의 장자로 성사하느냐 못하느냐하는 문제가 모세가 살아야만 될 것이었는데 모세 한 생명은 전이스라엘의 대신 생명이고 전이스라엘의 대신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이었다. 이 모세에게 있어서 할례가 없으면 모세는 물론이고 전체 이스라엘 백성도 전부 사망하는 표시적 행례였다.
34 그런고로 모세 처자가 할례가 있었기에 살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생사의 중요문제를 우좌하는 근본 문제 성사의 책임을 표시한 바다. 이 입장에서 모세 처자의 협조함이 큰 승리적 조건의 성립을 봄이었다. 또 지팡이라는 것은 대신 의지자를 표시함이었다. 즉 나를 대신 보호할 것을 말함이고 전체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합당치 않은 것을 치워 뜻대로 성사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즉 예수가 우리의 전체 생명에 대하여 보호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35 이 뜻을 세우지 못하였으면 모두 실패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이 한 모세의 아내와 자식의 한 할례가 전체 택한 백성에게 대한 맏아들 장자의 명분을 완성하게 하는 근본 자체가 즉 할례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오셔서 모친과 합력하여 할례성사의 뜻을 성사하여야 할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이 뜻을 못 성사한 실패적 근본이 있었음은 누구나 미지의 사실이다. 그런고로 모친이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에 예수는 모친에게 대하여 갈릴리 가나에서 이적을 볼적에 여인이여 하신 말씀의 근본 의의가 있음이라. 그 외 모친에 대하여서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 말씀 등의 시작은 예수는 뜻 성사의 제1차 시작의 실패를 가져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의 십자가 상에서 죽음의 시작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즉 모세가 하나님 앞에 뜻 성사할 수 없는 자기 생을 가지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 사실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이 하시는 노정의 숨어 있는 원리의 목적을 누가 알 수 있으랴!
36 여기에 할례에 대하여 말하기로 하자 본래 성경에 할례라는 명사가 생기게 된 것은 타락되었기에 생기게 기인되는 사실인데 본래 해와가 사탄 피를 받고 아담까지 타락되었기 때문에 할례의 중심문제가 요구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아담이 주관하여야 할 해와를 주관하였다면 타락조차 방지하였을 터인데 해와한테 주관받고 나니 타락되었다. 즉 아담의 양부를 통하여 전체 타락이 성사되었으니 책임은 아담인 남자에게 있는 것이었다. 이 남자되는 아담이 지배받고 나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로 됨에 타락의 시작의 성립을 보게한 실체는 즉 남자의 양부였다.
37 그런고로 어두움의 피를 받아들인 그 자체이니 어두움의 피를 다시금 빼는 사실을 표징함이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자손은 할례를 해야만, 즉 어두움의 피를 먼저 받아서 죽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써 살려면 그 실체로써 사망의 피를 빼야만 하나님께 속할 수 있는 시작을 보는 것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할례는 아브라함의 영원한 규례로 세움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있으므로 주관성을 다시금 복귀하는 남자의 자격을 부여함이다.
38 할례에는 마음의 할례가 있고, 육신할례가 있고, 만물할례가 있다.
1. 죽음의 피를 빼는 표 - 마음의 割礼(신10/16)
2. 주관성을 다시 찾는 표 - 肉身割礼(창17/10)
3. 근본 뜻의 자녀의 길을 찾는 약속의 표 - 萬物割礼(레19/23)
이상과 같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 즉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시던 근본 의미라는 것을인간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미지의 것이다. 또 몰라야 하는 것이 한 원리였었다.
39 그런고로 모세의 이 행례는 모든 이스라엘에게 대하여 짊어진 전목적 성사를 표시함을 다시금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모세의 행동여하는 예수가 오셔서 할 사명적 행로의 전형 표시로 그의 모든 일은 표징된 바라는 것이 원리로 보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사명분담책임의 過程은 예수의 기초가 되겠으니 같은 뜻의 목표표시로 만사는 드러내어 나아가는 것이 근본 의의였다. (또 지팡이라는 것은 대신의지자를 표시함이었다. 즉 나를 대신 보호 할 것을 말함이고 모든(全)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합당치 않은 것을 치어 뜻대로 성사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즉 예수가 우리의 모든 생명에 대하여 보호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40 모세에게 아론을 주워서 이스라엘의 속죄적 행례의 대신자로 세우심은 모세를 협조하여 한 목적의뜻을 성사하고자 하는 시종이었다. 즉 백성의 대신 속죄 책임 역할을 하심은 해와 자체로 될 성신과 함께 예수의 뜻을 시종하여 인간 대하여 직접 속죄의 책임을 할 것을 표징함이었다. 모세에게 한 대신 협조자가 없다 하여 아론을 준 바는 아니지만 말씀(言)의 대신을 요구할 적에 아론을 세우심은 아론은 말씀 대신자임을 표시하니 말씀의 최고의 문제자는 해와의 한 존재이었다. 즉 말씀 성사는 해와를 완전하게 찾는 목적으로 기인되니, 즉 아론를 세워 대신 속죄하심은 예수도 해와가 합하여서 인간범죄의 직접 문제를 하여야 할 자기자신의 사명분담역할이었다.
41 즉 해와도 죄를 지었으니 해와로서 대신 씻는 역할을 하야 할 책임분담이 되어 있으니 아론은 모세의 한 상대격자로서 백성을 대하여 모세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을 성사하게 협조한 바는 예수 오셔서 말씀 상대를 찾아 뜻 성사를 잡을 것을 표징하는 의의다. 모세에 이상과 같은 여러 조건이 성립되어 바로를 대하여 직접 대립을 취하여 나서게 되었다.그때 바로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순응하지 않은 반면 도리어 모세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증오심을 갖게끔 하나님은 바로를 강퍅하게 할 것을 말하면서 바로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어 광야에 나아가 삼일쯤 여호와께 제사하기를 청하라 하시었다.
42 여기 삼일노정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체 생명이 놓이느냐 안 놓이느냐 하는 문제는 이 삼일노정이라는 문제를 걸어 놓고 시작하게 되는 기본요구 조건이었다. 이 삼일간이 허락이 되지 못하면 이스라엘 전폭적 목적은 전부 시작할 수 없는 문제를 말하는 바이었다.이 삼일노정이라는 것이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성사하게하는 작업이 기본되는 요구조건이었다.
43 그런고로 예수가 오셔서 사탄 대하여 삼일기간에 대한 과정에 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이 과정을 성사하려면 모세에게 속한 구비조건 같은 제 조건의 구비를 보여야 할 것이었는데 이 구비조건은 광야시험을 통하여 그 터는 사탄에게 승리함으로 성립되었으나 그의 대신역자 아론과 같은 해와의 존재의 구비 성사를 보지 못하여서 삼일노정의 시작 노정을 자유롭게 넘어서지 못한 원인으로 십자가 죽음 삼일간이 기본적인 근본 시작이었다.
44 이때 예수 앞에 어머님과 합하는 뜻 성사를 중심하고 해와 한 존재와 인간들이 하늘 편 쪽으로 순종하였으면 예수의 십자가 노정은 다른 방향으로 효과적 노정을 보아 사탄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책의 성립을 시작하였을 것인데, 그 대책을 어떻게 바로 성사할 책임이 예수의 책임이니 죽어서라도 3일기간을 터치는 사명적 책임분담을 완성하야 할 의무가 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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