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용버스를 타고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를 다녀오는 일정이다. 어젯밤 일몰을 못 볼 정도로 먹구름이 끼고 비도 내려 오늘 날씨가 걱정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이다. 얼마나 힘들여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이곳까지 왔는데 토레스 델 파이네를 제대로 못 보고 간다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남미 여행을 와서 우유니와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보고 가지 않으면 온전한 남미 여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곳 또한 죽기 전에 보아야 할 버킷리스트 10위 안에 들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 Pehoa 호수에서 바라 본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토레스 델 파이네라는 말의 의미는 토레스(Torres)는 스페인어로 탑이라는 뜻이고 파이네(Paine)라는 말이 파타고니아 토착어로 푸른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하면 푸른 탑이란 뜻이다. 원주민들이 보았을 때 마치 푸른 탑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처럼 산 전체가 푸른색이 감도는 것은 산 표면이 녹청색이 나는 반려암(gabbro)과 섬록암(diorite)으로 덮여 있기 때문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는 화강암 위에 반려암과 섬록암이 퇴적되면서 생성됐다고 한다.
▶ 토레스 델 파이네 지도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 대부분이 이 곳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트레킹 하러 오는데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피츠로이와 더불어 유명한 트레킹 코스로 모양이 W자처럼 생겼다고 w-트레킹이라고 하며 3박 4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제한된 기간 동안 남미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개 버스를 이용해 당일 또는 1박2일 정도 돌아보는 일정을 갖게 마련이다.
▶ 국립공원관리사무소
▶ 로드 킬 방지를 위한 철조망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간식과 점심식사를 챙겨 오전 8시 버스에 오르니 마음이 설렌다. 나탈레스를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반 쯤 달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정차해 입장권을 사고 공원 출입 수속을 하느라 잠시 정차한다. 이곳으로 오다 보니 도로 양편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공원 무단출입 방지를 위한 것인 줄 알았더니 곰 등 야생동물들의 로드 킬 방지를 위한 것이다.
▶ 그레이 호수 입구 휴게소
매표소를 출발한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과 호숫가를 돌고 돌아 한 시간 반을 더 달려 휴게소로 보이는 곳에 우릴 내려놓는다. 이곳은 그레이 호수 입구로 주차장이 갖춰진 제법 큰 현대식 건물에 레스토랑과 매점, 화장실을 갖춘 여행자 편의시설로 많은 여행객들이 그레이 호수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다.
▶ 그레이 호수로 가는 숲 길
▶ 그레이 호수로 가는 출렁다리
우리 일행들은 이곳에서 용변을 보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인솔자를 따라 그레이 호수 트레킹에 나선다. 울창한 원시림처럼 보이는 숲길을 10여 분 걸으니 물살이 거센 강 위에 설치된 출렁다리가 보인다. 인솔자가 이 출렁다리는 안전을 위해 다리 위에는 6명 이하 만 있을 수 있으니 건너편에서 사람이 건너오지 않을 때 6명씩 조를 짜 건너라고 한다. 100여m 쯤 돼 보이는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다리가 흔들리며 출렁거리자 일행들이 긴장하며 줄을 잡고 조심스레 건넌다.
▶ 출렁다리를 지나 숲길을 조금 가면 그레이 호수가 보인다
▶ 그레이 호수 전경
▶ 그레이 호수
이 출렁다리를 건너면 숲길이 조금 이어지다 커다란 그레이 빙하 호수가 나타나고 빙하가 퇴적해 놓은 모래 언덕이 나타난다. 모래 언덕을 따라 건너편으로 걸어가는데 빙하 호수엔 푸른색의 빙산들이 떠 있고 멀리 그레이 빙하(Gray Glaciers)가 높은 산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으며 우측으로는 토레스 델 파이네 암봉이 구름 속에서 이따금 그 모습을 보여 줘 신비로움을 더 한다. 관광객들이 모래 언덕을 걸으며 호수와 빙산, 빙하 그리고 토레스 델 파이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이 그레이 호수는 배를 타고 유람할 수도 있다는데 우린 걸어서 호수를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 그레이 호수 전망대
▶ 무슨 꽃과 열매인지?
20여 분 모래언덕을 걸어가면 바위로 이루어진 산길이 나타나고 산길을 따라 10분 쯤 올라가니 그레이 빙하가 잘 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빙하와 토레스 델 파이네 암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산길과 전망대 주변에는 땅에 기는 듯한 작은 풀들이 앙증스런 꽃을 피워내고 있어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의 끈질김을 느끼게 한다. 전망대에서 산길을 따라 계속 가면 아르헨티나라고 한다.
▶ 곰을 본 곳인데 카메라엔 안 나타난다.
전망대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 여행자 편의시설로 온다. 그런데 우리 버스 기사분이 산 중턱을 가리키며 곰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기에 기사 분에게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 카메라를 보여 준다. 다시 기사분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어미 곰이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숲이 우거진 산 중턱 커다란 바위 옆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세상에! 내 눈으로 동물원이나 TV화면이 아닌 실제 야생 곰을 보게 되다니! 가슴이 설렌다. 자연이 살아있는 이곳에 내가 와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감동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보니 어디 있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 점심을 먹은 Pehoe 호숫가 캠핑장에서 본 토레스 델 파이네
▶ Pehoe 호숫가에서 본 토레스 델 파이네
다시 버스에 올라 토레스 텔 파이네를 바라보며 20여 분을 달려 호숫가에 캠핑장이 있는 Campin Lago Pehoe라는 곳에서 정차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대체로 최고봉인 파이네 그란데(Paine Grande 3.050m)봉을 위시하여 파이네의 뿔이라고 하는 짙은 커피색으로 날카롭게 서 있는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Cuenos del paine 2.600m)봉과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파이네의 얼굴이라고 하는 알미란테 니에토(Almirante nieto 2.668m)로 이루어졌는데 이곳에서의 백미는 3개의 돌출 암봉이 단연 압권이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숨을 멈추게 하고 말을 잊게 한다. 이 장엄하고 아름다움에 감동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이 3개의 깎아지른 봉우리는 빙하호인 페호(Pehoe) 호수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도 바람이 세차게 불고 운무가 잦아 운이 좋은 사람들만 관망할 수 있다니 항상 평상시의 삶의 행적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점심을 먹은 Pehoe 호숫가 캠핑장
이곳은 호수 건너로 토레스 텔 파이네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아늑한 곳으로 캠핑용 탁자와 의자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데 이미 그곳은 먼저 온 여행객들이 점령하고 있다. 우리 동감내기 부부들은 햇볕이 따스한 잔디밭에 둘러 앉아 미리 준비한 햄버거와 컵라면 등으로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우리가 사 온 햄버거는 하나를 혼자 먹기엔 너무 크고 옆에 자리 잡은 어제 공항에서 캐리어를 분실한 부부와 친구 4명이 함께 온 분들이 미처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이 분들에게 우리가 사 온 햄버거를 건네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 아르마딜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쓰레기도 치울 겸 화장실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풀밭에 카메라들 들이대고 무언가 찍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아르마딜로 한 마리가 잔디밭에서 무언가를 찾으며 기어 다니고 있다. 아르마딜로는 야행성으로 흰개미나 곤충들, 식물, 작은 동물, 썩은 고기 등을 먹는다고 알고 있는데 이 녀석이 이 대낮에 나온 게 신기하다. 배가 어지간히 고픈 게 아니면 여행객들이 남긴 음식물을 얻어먹으러 나 온 것 같다.
▶ 살토 그란데 폭포로 가는 길
점심식사와 휴식을 마고 호숫가를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살토 그란데 폭포(Salto Grande Waterfall)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주차장에서 폭포로 다가갈수록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걷기조차 힘들다. 길가의 풀들도 뿌리로 땅을 움켜쥔 채 90도로 누워 세찬 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어찌 이곳에 자리 잡아 이런 모진 풍파를 겪으며 살고 있는지?
▶ 불 탄 나무들
우측 산록에는 검게 타다만 나무들이 거센 바람에 을씨년스럽게 몸을 흔들어댄다. 꼭 죽음이 노려보는 듯한 음산한 살풍경이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2011년 이스라엘 여행자가 휴지를 태우다 남긴 불씨로 인해 생긴 산불의 흔적으로 무지막지한 파타고니아의 바람을 타고, 불길은 파죽지세로 대지를 죽음으로 내몰아 115km²가 산불피해를 입었으며 550명의 소방대원이 투입돼 5일 만에 진압되었으며 그 후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는 일체의 화기 반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 살토 그란데 폭포
거센 바람을 헤치고 주차장에서 20여 분을 걸어가니 엄청난 양의 옅은 회색의 빙하 녹은 물을 쏟아내는 폭포 소리가 고막을 흔드는 가운데 폭포로 다가가니 물보라가 얼굴을 때린다. 폭포 규모는 작지만 수량은 엄청나 보인다. 이 폭포의 물은 그대로 아래에 있는 Pehoe 호수로 흘러든다. 웅장하게 솟은 암봉 아래로는 빙하가 할퀴고 지나간 깊은 웅덩이가 형성되고 깎아내린 바위의 부유물로 인해 에메랄드빛 호수가 신비한 색깔을 담아내고 있다. 호수와 호수로 흐르는 물은 또 다시 물보라를 일으키며 폭포로 연결되는데 대표적인 폭포는 노르덴페르드(Nordenskjold)호에서 페오에(Pehoe)호로 흘러가는 살토그란데(Salto Grande)다. 눈이 시릴 만큼 옥색의 빙하호와 뛰어난 산악미의 만년설을 인 거봉들과 폭포로 연결되는 평원은 숨이 막힐 만큼 장엄함과 신비로움이 한데 어울려 남미대륙의 숨겨진 보석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살토 그란데 폭포 위 노르덴스퀄트 호수와 그 뒤로 보이는 토레스 델 파이네
폭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노르덴스퀄트(Nordenskjöld) 호수에서 폭포로 물줄기가 흐르고 노르덴스퀄트 호수 건너로 맑게 갠 하늘 아래 흰 구름이 살짝 드리워져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삼봉이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하는 듯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데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온다. 옥빛의 호수들은 여기가 인간세계가 아닌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세찬 바람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게 만든다.
▶ 사르미엔토 호수와 토레스 델 파이네
한 시간에 걸쳐 폭포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토레스 델 파이네 삼봉을 뒤로 하고 노르덴스퀄트 호수와 사르미엔토(Sarmiento) 호수 중간 산줄기를 넘어 사르미엔토 호수 끝 초원지대에 정차한다. 인솔자는 여기서 내려 마지막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와 작별인사를 하자고 한다.
▶ 사르미엔토 호수 전망대에서 바라 본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사르미엔토 호수 전망대에서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맨 오른쪽의 뾰쪽한 모양의 봉우리들이 유명한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삼봉, 그 왼쪽의 큰 삼각형 석산이 알미란테 니에토 산(Mont Almirante Nieto), 그 왼쪽의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봉우리들이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Cuernos del Paine), 맨 왼쪽에 있는 것이 파이네 그란데 산(Cerro Paine Grande)이란다.
▶ 난두
▶ 과나코
이제 제법 멀어진 삼봉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데 풀밭에 타조 새끼 같은 새가 보인다. 인솔자가 난두라는 새란다. 길가 초원에는 과나코들이 떼를 지어 군데군데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호수와 설산을 배경으로 비춰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 칠레-아르헨티나 국경 근처에서 휴식하며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오는 길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이 있는 곳에서 잠시 정차하여 용변도 보고 휴식도 취한다. 풀이 무성한 평지에 인위적으로 그은 국경선 같다. 양국의 출입국사무소가 멀지 않은 곳에 각자의 국기를 휘날리고 있는데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국경을 넘는 사람과 차량들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둠이 내린 오후 6시 반경 나탈레스 호텔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