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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삶이 있는가? / 2020년 5월 10일 주일 예배
본문 / 신명기 14:1-2
어떤 목사님이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해 말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옷을 입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세상의 불신자들이 입은 검은 옷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들이 입는 흰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회색 옷을 입고 넓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은 검은 옷을 입고 가는 세상의 불신자들과 같이 영원한 사망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3장에서 “사데 교회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 시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데 교회에는 예수님의 신부가 입는 흰 옷을 입고 있는 성도가 몇 명에 불과했습니다. 사데 교회는 당시 천여 명이 모이는 큰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고 은혜로 입혀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옷, 그 믿음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지킨 성도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데 교회의 실상은 지금 이 시대의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것을 성도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검은 옷을 입은 세상의 불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흰 옷을 입고 있는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도 아닌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영원한 멸망을 향해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 좀 드리고 헌금 좀 하면 천국 가겠지 하고 말입니다.
사데 교회의 교인들은 이 시대의 성도들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이었지만 삶으로는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주로는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선포하고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교회에는 종교적인 열심과 행위로 예배와 헌금과 기도와 봉사와 같은 것으로 성도인척 믿음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삶으로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가치관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그 더러운 죄를 씻어주시며 다시는 네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살라며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흰 옷을 입혀주셨지만 많은 성도들은 거룩한 삶으로 그 흰 옷을 지키지 못하고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던 그 죄악 된 옛 삶으로 돌아가 흰 옷을 회색으로 더럽히며 넓은 길에서 심판을 향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그 은혜로 흰 옷을 입혀주신 것을 믿으십니까? 지금 주님이 입혀주신 그 흰 옷을 거룩한 삶과 깨끗한 행실로 지키고 있습니까? 그 믿음의 옷을 지키기 위해 시험을 참고 고난을 인내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본문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그 땅에 살던 이방인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다른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부르고 택한 성도들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세상에 속한 자들과는 다른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이제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며 어둠의 권세와 마귀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라고 이르시고 2절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선포합니다.
어떤 남자가 결혼하고 아들을 얻고 기뻐하며 사랑스럽게 잘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크면 클수록 외모는 물론이고 성격까지 자신을 닮을 곳을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찾으려고 해도 발가락 하나도 닮은 곳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부자지간에 이렇게 닮은 곳이 없을까? 의심하던 남자는 몰래 유전자 검사를 했고 결국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혈통을 물려받은 아이를 친자라고 합니다. 친자는 무엇 하나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부모의 모습을 닮게 마련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외모로는 저를 안 닮았습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 않으면 부모와 자녀인지 잘 모를 겁니다. 그런데 제가 손바닥의 피부가 벗겨지는 유전이 있는데 언젠가 아들이 어렸을 때 방구석에 앉아서 손바닥을 보며 열심히 무슨 일을 하고 있길 레 가서 보았더니 손바닥에 벗겨지는 피부를 떼어내고 있는 것을 보고 씨도둑은 못 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이 그 자녀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녀로 택하시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타락한 죄인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자신의 육체를 위해 사는 이기적인 자아숭배자이며 세상에 속한 자이며 그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에 속한 자이며 육신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육체의 만족을 위한 정욕적이며 세속적이며 마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세상적이고 마귀적이고 육신적인 것과 전혀 다른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속한 신령하고 영적인 가치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거룩한 성품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또 그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그 거룩한 성품을 공유하게 하셨습니다. 거룩한 성품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죄를 짓고 싶어도 하나님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자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원수이며 죄인이었던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웃의 잘못과 죄를 용서해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를 용서하기를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랑,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하나님의 자녀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의 거룩함이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였던 죄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2년 동안 성경만 읽었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일까? 성경을 수백 번 읽고 얻은 결론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만이 믿음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거룩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그 거룩함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교회에서 선지자 노릇하며 말씀을 전하고, 큰 은사과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놀라운 예언을 하고, 심지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고,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어도 하나님의 사랑, 그 거룩함이 없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은 무엇입니까? 죄를 짓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심판을 받고 죽어야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스라엘 성도들에게 아버지의 성품인 거룩한 삶과 행실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죄를 용서받음으로 썩어질 육체와 멸망할 세상과 사망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기에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가는 나그네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할 세상과 죄와 사망에서 믿음으로 나온 성도는 육체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육신의 위해 사는 자들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에게 죽음은 영원한 사망으로 떨어지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인들과 같이 사망을 애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려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말씀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던 세상에 속한 자들은 사망한 자를 위해 자기 몸을 자해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사망은 심판이며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음부의 신을 달래기 위해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는 자해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섬기던 신의 마음을 움직여 동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짓입니까? 사망한 자를 위해 몸에 상처를 낸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을 이기지 못한 자들은 자기 몸을 자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와 게임과 도박과 약물과 돈과 명예와 영광과 육체의 쾌락과 정욕과 세상의 탐욕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의 몸과 영혼을 자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그 사망의 몸에다 죄악을 더하여 확인 사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죽은 자신의 몸을 숭배하기 위해 하는 모든 그 행위들이 사실은 자신을 자해하는 것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사망을 이기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망이 두렵기만 한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사망을 남의 일처럼 외면하다가 그 사망이 어느 날 찾아오면 벌벌 떨며 절망하며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에게 사망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선포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된 성도들에게 이제 사망은 없습니다. 이미 성도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도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지금 죽어도 천국에서 다시 살 것을 믿으십니까? 정말 오늘 죽어서라도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으십니까? 사데 교회 성도들도 다 그렇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한국교회에 부활을 못 믿겠다는 성도가 있겠습니까? 모든 성도들이 부활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런데 그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능력인 십자가의 죽음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믿는데 십자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죄와 세상과 사망을 이긴 부활의 믿음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만 소망 없이 사는 세상과 다른 거룩함이, 구별됨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시험과 고난이 오면 믿음으로 참아내지 못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을까 두려워 믿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앙심을 품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섬기지 못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섬김 받고 대접 받기만 원합니다. 이 세상의 썩어질 재물에 욕심을 내며 그것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세상의 명예와 영광에 마음을 주며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을 이긴 자이겠습니까?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하나님께 걸쳐 놓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이겠습니까?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그런 믿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속이는 데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결코 심판과 사망을 이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교만한 자신을 끌어내리고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종으로 부려먹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주일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간다고 하나님의 자녀이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합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그것이 성도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즉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저 세상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구별된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고 살고 있습니까? 돈과 재물과 정욕과 탐심과 인간의 욕망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답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사망을 이긴 자답게, 하늘의 속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무엇이 성도를 세상과 구별된 자들로 만드는 것일까요?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말씀합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정말 하얀 색깔의 옷은 관리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때가 묻어도 잘 들어나지 않는 색깔의 옷을 선호합니다. 흰 옷이라고 때가 일부러 더 묻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은 때가 묻어도 드러나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은혜로 입혀주신 믿음의 옷, 신부의 옷, 거룩한 옷, 이 흰 옷을 입고 음란하고 악한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거룩한 자라는 것을 담대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말씀합니다. 세상이 나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나도 역시 세상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성도에게 너는 왜 우리와 입은 옷이 달라 검은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협박하고 회유할 때 즉 십자가에 나를 못 박으려 할 때 그 고난을 불순종으로 피하면(믿음으로 받지 못하면) 그때 주님이 입혀 주신 흰 옷은 회색 옷으로 더럽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죽이려고 하면 다니엘처럼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 흰 옷을 희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예수 믿는다고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까? 정말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지키지 위해 마을에서 쫓겨나고, 붙잡혀서 매를 맞고, 모욕을 받고, 어린 자식들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도 견뎌야 했고, 말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죽기까지 했는데 우리는 그들의 믿음 앞에 무엇이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에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어야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지금 작은 시험도 이기지 못하는 형편없는 그 믿음으로 어떻게 큰 환난을 견딜 수 있을까요? 이미 믿음은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나 때는 먹고 사느라고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었다고 하겠습니까? 마귀가 가장 잘하는 말이 현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생각하고 현실을 위해 살면 결말은 지옥입니다. 내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면 세상은 반드시 나를 지배하여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만이 사망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세상에서 흰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것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하는 믿음의 고난이며 전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흰 옷을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흘린 그 고난의 피로 붉게 적셔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믿음으로 죽는 성도만이 세상과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사망을 이긴 자는 믿음으로 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환난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도의 거룩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거짓 교사들의 입을 통하여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고난을 피해가며 십자가 없이 대충 믿어도 사망을 이기고 구원을 받을 것처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제 천국에 대해 말해도 감격해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 나라에 가고 싶다고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지옥에 관해 선포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곳에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저는 얼마 전 새벽에 기도하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네가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가고 있는 넓은 길에서 돌이키지 않을 것이다. 천국을 어린아이처럼 받들지도 않을 것이며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그 사람처럼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옥의 그 영원한 고통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못 들은 척, 믿음이 있는 척 그들이 하던 대로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는 자가 없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는 자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은 많지만 믿음을 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외치는 자는 많지만 생명수는 없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을 볼 수 없는 시대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가 되어 구별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정말 마음을 다하고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기는 원하십니까? 십자가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있습니까?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많은 성도들은 세상의 불신자와 다를 바 없이 그저 이 세상에 있는 재물과 물질을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당장 손에 세상의 재물과 영광을 넣는 것이 성도들의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으로 자신을 섬기는 일에는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한 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척 하다가 죽어서는 천국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천국은 결단코 없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사망을 이기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이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성도의 거룩한 삶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데 있어서 세상과 내 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도들이 있습니까? 몸과 시간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것은 얼마든지 나를 위해 철회하고 양보하지만 자신을 섬기는 일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속한 자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망을 이기었기에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거룩한 자임을 기억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