揠苗助長(알묘조장)
어려운 글자 ‘뽑을 揠(알)’이 들어가서 기억하기가 쉽지 않은 이 고사성어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종(苗)을 잡아당겨(揠) 곡식이 빨리 자라게 돕다(助長)’라는 뜻인데
‘성급하게 이익을 보려다 오히려 망친다, 또는 손해보다’라는 의미로 쓰이며
기원전 3, 4세기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상(上)편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가 제자 공손추에게 한 이 말은 춘추전국시대 주(周)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송(宋)나라 시절의 한 어리석은 농부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어떤 농부가 봄에 볍씨를 뿌렸다. 그는 벼싹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어떻게 하면 자기 논의 벼가 빨리 자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끝에
조금밖에 자라지 않은 벼를 조금 잡아당겨 들어 올려 보니 마치 벼가 더 자란 것처럼
보였다. 하루종일 넓은 논의 벼 싹을 모두 들어 올리고 그가 집에 돌아와
‘오늘은 피곤하다. 내가 벼싹을 자라게 도와주었다’라고 식구들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그의 아들이 논에 가보니 아뿔싸 벼싹은 이미 다 말라 죽었다.
벼의 싹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자라야 하는데
빨리 자라라고 억지로 들어올리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맹자는 ‘천하에는 이처럼 벼싹이 자라게 억지로 도와주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고사성어의 마지막 두 글자 ‘조장(助長)’은 현대에도 자주 사용되는데 ‘바람직
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라는 뜻으로 부정(否定)적인 내용으로 쓰인다.
알묘조장과 유사한 뜻의 고사성어로는
‘사냥꾼 총의 탄환을 보고 새 구이를 찾는다(見彈求炙 견탄구자)’,
‘계란을 보고(새벽을 알리는) 닭을 바란다 (見卵求鷄 견란구계)’라는 등의 말이 있으니
어지간히 급하게 서두는 사람이나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다.
우리 속담의 ‘우물가에 가서 숭늉 찾는다’도 같은 뜻이다.
이 세상일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순리(順理)대로
정성을 다하고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어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건만
우리는 이 평범한 진리를 가끔 잊고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을 할 때가 있다.
공자(孔子)도 논어(論語)의 자로편(子路篇)에서
‘빨리 하려 서두르면 일을 이룰 수 없다(欲速則不達 욕속즉부달)’이라는 말로
일을 할 때 급히 서두르지 말라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 고사성어를 묵상하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최재숙 시인의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이라는 필자의 애송시가 생각나 소개해 본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조그만 땅이 필요해요
때가 될 때까지 조용히 잠들어 있도록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물도 조금 필요해요
메마른 몸을 부드럽게 적셔 주도록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햇볕도 조금 필요해요
얼어 있던 마음이 따뜻하게 녹도록
그리고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해요
조용한 잠에서 깬 꽃씨가 부드러운 몸짓으로 기지개를 켜
움이 돋고 쑥쑥 자랄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활짝 열 때까지
- 최재숙 시인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
송나라의 그 농부가 만일 이 시인과 같은 마음이 있었다면 아마 성급한 마음에
벼싹을 잡아 올려 그해의 농사를 망치는 어리석은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