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코스 : 논남기 계곡 - 보아 귀골
경기 둘레길 18코스 들머리 논남기 계곡은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힌 첩첩산중이었다. 뒤로는 한북정맥의 민둥산, 도성고개, 강씨봉 등으로 막혀있고 앞으로는 명지산, 귀목 고개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도 형성되지 않아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가평읍에서 버스를 타고 목동에서 택시로 갈아타고자 호출하였으나 택시가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타고 이 고장에는 택시가 몇 대가 운행하느냐고 묻자 3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바쁠 때에는 택시조차 탈 수 없는 지역이 아닌가! 택시를 타고자 기다린 30여 분의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고 목동에서 논남기 계곡 들머리까지의 요금 25,000원은 아깝지 않았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날에 경기 둘레길 18코스를 걷는다. 산을 오르는 등산인지 아니면 길을 걷는 도보 여행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은 분명 해발 775m인 귀목 고개를 오르는 등산이건만 경기 둘레길 18코스로 지정되었으니 우리 동네의 길을 걸어가는 도보 여행 길이 아니겠는가?
임산교를 건너 임도를 걸어간다. 포장도로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오늘 걸어가는 길은 단순하다. 임산교에서 귀목고개에 올라 보아 귀골로 하산하는 총 8.6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이다.
산에 간다고 하면 고스락에 오르지 않으면 산에 올랐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산악인들의 불문율이고 10km를 초과하지 않으면 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 없는 법인데 오늘의 코스는 정상에도 오르지 않고 겨우 8km밖에 되지 않으니 어쩌면 길을 걷는 사람의 자존심이 손상될 수도 있는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을 걷고자 일산에서 아침 6시에 집을 나와서 환승을 하며 2시간이 넘게 전철을 타고 가평에 내려서 목동까지 버스를 타고 또다시 택시로 이곳에 이르렀으니 3시간 몇 분을 걷고자 5시간을 허비하였고 또다시 5시간여를 대중교통 속에서 허둥거려야 한다.
무엇 때문일까? 길을 걷는 것이 취미라면 동네 인근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간단하다. 길을 걷는 것은 무조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가는 길은 경기 둘레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경기도 외곽지역을 김포 대명항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외곽지역을 한 바퀴 돌아 김포 대명항으로 원점 회귀하는 총 60코스 860km를 두 발로 걸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길에는 ”DMZ 외곽 걷기 길을 연결한 평화 누리길, 푸른 숲과 계곡이 있는 숲길, 강을 따라 너른 들판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물길, 청정 바다와 갯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갯길이 있는데 “(경기 둘레길 홈페이지) 오늘의 코스는 푸른 숲과 계곡이 있는 숲길 가운데의 1코스를 걷는 것이다.
며칠 사이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조심스레 오른다. 하늘 마루 펜션을 지나면서 포장된 길은 흙길로 바뀌고 깊은 산속으로 빠져든다. 임산계곡의 물소리는 한겨울임에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임산계곡은 명지산과 귀목봉 사이의 귀목 고개에서 북면 적목리 논남기까지 이어지는 계곡으로, 길이는 약 7㎞이다. 명지산의 서쪽 능선에서 발원하여 북동쪽 골짜기를 따라 형성되었는데, 계곡을 흐르는 하천은 가평천에 합류한다. 임산계곡(林産溪谷)은 계곡이 위치한 마을의 이름인 ‘임산(林産)’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임산’은 옛날에 벌목할 나무가 많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산계곡 [林産溪谷]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임산계곡을 벗으로 삼아 걸어가는 이 길은 야생화 천국이라고 하였다. 잔설 속에서 피는 복수초를 시작으로 노루귀, 얼레지, 깽깽이풀, 돌단풍, 제비꽃 등이 쉼 없이 피고 진다.고 하였지만, 야생화에 내 눈을 기울이기에는 아직은 더 갈고 닦아야 했다.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걸어갈 때 10시 방향으로 얼굴을 내민 둥근 산이 있어 유심히 바라보니 경기 1봉인 화악산이 우리를 맞이하여 준 것 같았다. 내가 걸어가면 화악산이 사라지고 명지산이 눈에 띄는 듯하더니 또다시 사라진다.
정상에서 만나는 산은 그 자리에서 당당하고 힘찬 기세로 우리에게 힘을 북돋워 주지만 산에 오르면서 만나는 산은 그 모습을 수시로 탈바꿈하여 역동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동행한 김 총무에게 저 봉은 명지산 고스락이겠지요 라고 묻는 순간 벌써 그 모습은 새롭게 나타난 명지 2봉이 대신하고 뒤쪽으로는 명지 3봉이 고개를 내민다.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진행하는데 가는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정다웠던 눈 밟는 소리가 임도의 넓은 길에서 계곡 길로 접어들면서 미끄러운 길이 되었다.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은 눈이 내려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오르막의 경사는 다소 가팔라 진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눈이 내린 곳에는 사람이 발자국이 선명하여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데 사람의 발자국이 없어 우리가 길을 만들면서 진행하여야 했고 바윗길이었기에 한걸음 한 걸 움을 신중하게 떼어야 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르니 땀이 났다. 아울러 숨이 찼다.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올라간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올라도 올라도 산길만이 보이는데 숨소리는 점점 커진다.
지치면 쉬고 가면 되는데 쉴 줄 모른다. 그것은 오르막길에서 중도에서 쉬는 것은 지는 것이란 고집에서 오는 자만감 때문에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오르막길에서 쉬고 간 적이 거의 없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숨을 참으며 호흡을 조절할 수가 있었기에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었으나 이제 다 왔다고 여겼는데 밧줄이 설치되어 급경사가 시작되었다. 산 넘어 산이란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동행한 김 총무는 이제야 밧줄을 설치해 놓다니…. 라고 입맛을 다신다.
쉬지 않고 오를 수 없는 길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 다소 지쳐있고 급경사의 가파른 길에서 어떻게 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반걸음 늦추며 편안히 한걸음, 한 걸음을 옮기니 쉬지 않고 오르지 못할 것 같은 경사진 길도 편안히 오를 수가 있었다.
귀목 고개에 도착하였다. 칼바람이 세차게 불며 온몸을 적신다. 짜릿하고도 시원한 바람이었다. 왼쪽으로 진행하면 명지산에 오르는 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귀목봉에 오른다. 네 갈래의 길에서 둘레길은 상판리로 하산하는 길이다.
” 귀목계곡(鬼木溪谷)은 귀목봉 아래에 있는 귀목 고개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귀목 고개는 생김새가 마치 사람의 귀처럼 오목해 보여서 ‘귀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는 ‘귀목’을 ‘구이목(九耳木)’이라고도 쓰는데, 이것은 귀가 9개 달린 백여우가 고개 중턱에 자주 나타나 길을 가는 나그네의 보따리를 잡아당긴다 하여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한편, 느티나무를 ‘규목(規木)’이라 하는데, 귀목봉에 느티나무가 많아서 ‘규목봉’이라 부르던 것이 ‘귀목봉’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계곡과 능선이 모이는 곳을 길목이라 하는데, ‘길목’이 ‘귀목’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라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귀목계곡 [鬼木溪谷]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귀목 고개를 내려가 상판리로 가는 길은 조용한 숲길로 아늑한 길이었다. 귀목봉과 명진산 일대가 자연 생태계 보전지역이어서 그런지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거진 숲, 하지만 지나가는 등산객을 방해하지 않는 숲길의 계곡 길에서 길에 취했는지 이끼가 낀 돌을 밟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계곡물에도 빠지지 않고 다친 데가 없었지만, 계곡을 지나갈 때 구르는 돌을 조심하여야 했다.
한 걸음을 늦추며 숲길을 내려간다. 끊어질 듯 졸졸 흐르던 계곡물이 실개천을 이룬 듯 야영을 즐길 수 있는 계곡을 형성하였다. 북한강 지류인 조종천이 시작하는 귀목계곡이었다.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여 여러 개의 소(沼)와 작은 폭포가 있다. 우거진 숲에는 햇빛도 잘 들지 않아 여름철 야영지로는 우수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 적합할 것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수백 개인데 여름에 야영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야영을 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즉석에서 길을 걷는다고 말할 것인데 여름철 야영을 운운하고 있을까?
우리는 걸어야 한다. 이 생이 다할 때까지 이 땅을 걷는 것은 나의 사명이요 실천하여야 할 길이다. 문득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인다. 그 방대한 장도의 길, 길을 걷는 사람은 반드시 걸어야 할 우리의 길!
하지만 뜻만 가지고는 안된다. 시간과 재력, 그리고 체력의 삼박자를 갖추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지 않은가? 경기 둘레길과 4대강 종주라도 완주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 희망을 품고 경기 둘레길을 종주하고 있다.
귀목 고개를 내려서니 대형 주차장이 있어 귀목계곡이 여름철에 휴양지로 주목을 받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버스 종점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혀 가래떡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귀목교를 건너 아스팔트 도로에 진입하였다. 자동차 도로와 보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도로의 가장자리로 자동차를 유의하여 걸어가야 한다. 보아 귀골까지 비록 1.9km의 거리였지만 조심스럽게 진행하는데 차량 통행이 잦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보아 귀골에 이르니 13시 25분이었다.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니 13시 45분에 현리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오늘 19코스를 걷기로 계획하였을 때에는 들머리인 논남기 계곡은 쉽게 이를 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보아 귀골에서 현리로 나가는 것은 매우 고생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결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아무튼, 기분 좋은 일이다. 20분 안에 버스를 탈 수가 있으면 서울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렇게 인생은 항시 사람이 생각한 데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임을 은연중 느끼게 하였다.
● 일 시 : 2022년12월7일 수요일 맑음
● 동 행 : 김헌영 총무님
● 동 선
- 10시50분 ; 논남기 계곡
- 12시15분 ; 귀목 고개
- 13시25분 ; 보아귀골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8.9km
◆ 시간 : 2시간3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