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음 자료를 읽고 <작성 방법>에 따라 서술하시오. [4점]
(가) 재상 구준(寇準)이 말하길: “폐하의 신무(神武)로 신과 뜻을 맞추어 친정한다면 ㉠적은 스스로 도망갈 것이나, 그러지 않는다면 기묘한 계책을 내어 그들의 모의(謀議)를 어지럽히거나, 방어를 튼튼히 하여 그들의 군대를 지치게 함으로써 우리가 승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종묘와 사직을 버리고 초(楚)나 촉(蜀)으로 출행한다면 어찌 인심이 궤멸하지 않겠습니까. 적이 승기를 타고 깊이 들어온다면 천하를 다시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진종(眞宗)은 뜻을 결정하고 구준에게 말했다. “오늘날 적의 기병이 함부로 달려오는데 천웅군(天雄軍)이 실로 중요한 진(鎭)이 된다. 만일 함락되면 하삭(河朔)은 모두 적의 땅이 될 것이니 누구로 하여금 지키게 할 수 있겠는가?” 이에 구준은 왕흠약(王欽若)을 천거하였다. - 宋史紀事本末 -
(나) 지금 ㉡이원호(李元昊)의 국세(國勢)는 아직 미약하니 만약 이 기세를 타고 부연(鄜延), 환경(環慶), 경원(涇原), 진롱(秦隴) 4로(路)의 병마를 이용해서 두 길로 나누고 더욱이 번이(蕃夷)와 한족 궁수를 합한다면 정병이 가히 20만에 달해 이는 이원호 무리의 3배나 되고 군량을 운반하는 것이 2백 리에 달할 것이다. 양도(兩道)로 나누어 출격하면 한 달이 못 되어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 - 宋史 - |
<작성 방법> ◦밑줄 친 ㉠이 지칭하는 국가의 명칭을 쓸 것. ◦밑줄 친 ㉡이 통치하는 국가의 명칭을 쓸 것. ◦자료 (가), (나)가 가리키는 전쟁의 결과로 송이 두 나라와 각각 체결한 강화조약에서 규정한 국가 간의 관계를 순서대로 서술할 것. |
해설
∙ ㉠요(거란)
∙ ㉡대하(하, 송의 입장에서는 서하)
∙ 1004년 전연의 맹 : 송이 형, 요가 동생의 관계로 화의를 맺었으나(사료 내용 : 형제관계), 1044년 서하와의 화의에서는 서하가 송에 칭신하고, 송은 이원호를 하국왕으로 인정
[2022년 B 7번] 전연의 맹 내용, 서하 / [2024년 A 6번] 거란(요), 연운 16주, 요나라 지배 특징 ---> 가장 최근의 기출들도 잘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년 이내의 기출은 안 봐도 된다는 생각은 안일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기출까지 잘 분석하고 그내용을 보는 공부 방향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 동양사 김종권 p.156]
1) 송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
① 송 문치주의정책에 따른 군사력 약화
② 거란(요) 건국: 5대 각국 압박
③ 서하 건국(1038)
2) 송·요의 대립과 전연의 맹약
① 전연의 맹약(1004)
㉮ 송·요의 평화관계 전환
㉯ 형제의 맹, 송은 세폐를 보냄
② 무역소(각장) 설치
3) 서하의 건국과 국제관계의 변화
① 탕구트족
② 대하 건국(1038)
㉮ 이원호, 흥경부에 도읍, 칭제건원, 전성기
㉯ 송 관제 모방: 중서, 추밀원, 삼사, 어사
㉰ 서하문자 창제, 과거제 실시
③ 송과 서하의 화의(1044)
㉮ 송과 서하 군신관계
㉯ 송은 서하에 매해 세폐를 보냄
㉰ 서하는 황제 칭호를 포기하고 송에 칭신, 송은 이원호를 하국왕으로 인정
송과 거란(요)의 맹약(1004) ∙송의 황제와 요의 황제는 형제의 교분을 갖는다. ∙송은 요에 해마다 비단 20만 필, 은 10만 냥을 보낸다. ∙양국의 국경은 현 상태로 한다. -속자치통감장편 권 58-
거란과 강화하고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 거란에 매년 은 10만 냥, 비단 20만 필을 주기로 약속하였으며 서로 남조와 북조로 칭하기로 하였다. -송사 |
[동양사개론 p.414∼415]
처음 송・요의 대립관계는 五代 때 거란(요)에게 내어준 연운 16주를 되찾기 위하여 宋의 태종이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송의 계속된 패전으로 거란(요)에 대한 공격적 자세를 버리고 방어태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414쪽>
한편 요는 송군의 허약함을 알게 되자 성종이 친히 20만 대군을 이끌고 남진하니 송의 수도 변경(개봉)의 안전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조정에서는 천도론이 제기되었으나 진종이 재상 구준(寇準)의 강경론을 받아들여 친히 전선으로 나가 군사를 독려하였다. 이리하여 송・요의 양군은 지구전으로 대치하다가 전연의 맹약을 체결하게 되었다(1004).
전연의 맹약 이후 송은 요의 군사력을 두려워하여 연운 16주의 회복을 포기하였고 … <415쪽>
▶전연의 맹 : 전연의 맹약으로 송・의 대립관계는 평화관계로 전환되었다. 조약 내용은 형제의 맹을 맺고(송이 형, 요가 제(弟)) 국경선은 전쟁 전 상태로 두면서 그 대신 송은 매년 은(銀) 10만량과 비단 20만필, 차 5만근을 세폐로 주기로 하였다(후에 은 20만량, 비단 30만필로 추가됨). 이 맹약에서 송은 명분을, 요는 실리를 취한 셈이다.
[동양사개론 p.416∼417]
지금까지 중국의 속국이던 서하의 이원호가 황제를 칭하고 독립을 선언한 것은 더 이상 송(宋)을 섬기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도 서하의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용납할 수 없었으므로 여기에 송(宋)・서하(西夏)의 대립이 촉발되었다. 당시 송은 여러 번 서하를 응징하려 하였으나 번번히 참패당하였다. … 정부에서는 한기, 범중엄으로 하여금 직접 전선에 나가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고 서하와의 화의를 추진하였다. 화의가 성립된 후(1044) 송과 서하와의 경제교류는 활발히 추진되었고 서하는 몽골에 망할 때까지 송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화의 내용 : 화의 내용은 서하는 황제를 칭하지 않고 송에 칭신하며 송은 이원호를 하국왕(夏國王)으로 인정하고 서하에게 해마다 歲賜(세사)를 주고 국경에 互市場(호시장)을 열어 교역한다는 내용으로 화의를 맺었다(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