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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 대한 법문 경-1
Mūlapariyāya Sutta(M1)
l.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1] 한때 세존께서는 욱깟타30)에서 수바가 숲의 큰 살라 나무 아래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31)
2. “비구들이여, 모든 법들[諸法]의 뿌리에 대한 법문32)을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히셨다.
(1) 범부
3.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33)는 성자들34)을 친견하지 못하고,35)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36)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37) 바른 사람들38)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39)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땅을 땅이라고 인식한다.40) 땅을 땅이라 인식하고서는41)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고,42) [자신을] 땅에서 생각하고,43)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고,44) 땅을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45) 46) 그는 땅을 기뻐한다.47)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그것을 철저히 알지 못했기 때문48)이라고 나는 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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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욱깟타{Ukkaṭṭhā)는 히말라야 산 근처에 있었던 꼬살라(Kosala)의 도시(nagara)였다 『디가 니까야』 제1권 1 암밧타 경J (D3) §l.l에 의하면 이 성읍은 빠세나다 꼬살라의 왕이 뽁카라사띠(Pokkharasāti)라는 당대의 유명한 바라문에게 왕의 하사품(rāja-dāya)이자 거룩한 마음의 표시로 그에게 영지(領地,brahma-deyya)로 준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욱깟타와 세따뱌(Setavya)와 웨살리(Vesāli)를 연결하는 대로가 몇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세상경」 (A4:36), VvA.229,「바까 범천 자따까'」 (Baka-brahma ]ātaka, J405/ii.259)
주석서에 의하면 이 성읍이 욱깟타(Ukkaṭṭhā)로 불리게 된 것은 정해진 좋은 날에 공사를 완료하기 위해서 밤에도 횃불(ukka)을 켜고 작업을 하였기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MA.i.9; DA.i.245; AA.ii.504)
본경뿐만 아니라 본서 제2권 범천의 초대 경」(M49)도 이곳에서 설해졌으며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세상 경」 (A4:36)은 욱깟타와 세따뱌 사이에 난 대로에서 설해진 경이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제2권 「대본경」 (D14) §3.29에는 세존께서 욱깟타의 이곳 수바가 숲(Subhaga-vana)의 큰 살라 나무 밑(sāla-rāja-mūla)에 계시다가 정거천인 무번천으로 올라가신 것이 언급되기도 한다.
31) 본경은 조금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본경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본경에는 모두 192가지 법문(pari -yāya)이 설해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192가지 법문은 24(대상)x8 (경지)=192로 되어 있다. 이 각각에 다른 문단번호를 매기다보니 본경의 문단번호가 §194까지 확장되었다.
① 여기서 24가지 대상은 지 · 수 · 화 · 풍(4대), 존재들, 신들, 빠자빠띠, 브리흐마(범천,초선천), 광음천(2선천), 변정천(3선천), 광과천(4선천), 승자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본 것[見], 들은 것[聞], 감지한 것[覺], 안 것[知], 동일한 것, 다른 것, 전체, 열반의 24가지이다.
② 그리고 8가지 경지는 범부, 유학, 아라한1/2/3/4, 여래1/2의 8가지이다. 이렇게 해서 본경은 이 24가지 대상과 이런 대상을 아는 8가지 경지의 사람과의 관계를 8가지 경지의 측면에서 해체해서 설하고 있다. 본경에 나타나는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범부: 대상을 철저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대상을 인식한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한다. 대상을 기뻐한다.(§§3-26)
(2) 유학 : 대상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대상을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27 –50)
(3) 아라한1: 대상을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51-74)
(4) 아라한2: 탐욕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 (§§75-98)
(5) 아라한3: 성냄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99-122)
(6) 아라한4: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123~146)
(7) 여래1: 여래는 대상을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147~170)
(8) 여래2 : 즐거움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것을 알았으며, 존재[有]로 인해 태어남[生]이 있고, 중생들의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알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171 –194)
이처럼 본경은 각각다른 섬세한 표현으로 범부와 7단계의 성자들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철저히 알다는 parijãnãti를 옮긴 것이다.
인식하다는 sañjãnãti를, 생각하다는 maññatl를, 기뻐하다는 abhinandati 를 옮긴 것이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알다는 abhijãnãti를 옮긴 것이다.
32) ‘모든 법들의 뿌리에 대한 법문’은 sabba-dhamma-mūla-pariyãya를 직역한 것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래 인용은 핵심이 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요약해서 옮긴 것이다.
“여기서 ‘모든(sabba)’이란 남김없이 다 포함함(anavasesa)을 뜻한다.
그러나 ‘법(dhamma)’이란 ①성전을 배움(교학, pariyatti), ②진리(sac-ca), ③삼매(samãdhi), ④통찰지(paññã), ⑤ 자연적인 현상(pakati), ⑥본성(sabhãva), ⑦공성(suññta), ⑧ 공덕(puñña), ⑨ 범계(ãpatti), ⑩ 알아야 할 것(ñeyya) 등을 나타낸다.
① “여기 비구는 경전과 게송의 법을 배운다.”(A.ⅲ.86)라는 등에서는 성전을 배움을 말하고, ② “여기 비구는 법을 보았고 법을 경험했다.” (Vin.i.l2) 라는 등에서는 진리를 말하고, ③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지셨다."(D.ii.54)라는 등에서는 삼매를 말하고,④ “원숭이여, 진실함과 법(통찰지)과 결심과 관대함의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적을 이긴다.”(J,i.280)라는 등에서는 통찰지를 말하고,
⑤ “태어나기 마련인 법, 죽기 마련인 법."(M.i. 162) 이라는 등에서는 자연적인 현상을 말하고 ⑥ “유익한 법" (Dhs.l)이라는 등에서는 본성을 말하고 ⑦ “그때 법들이 있다." (Dhs. 25)라는 등에서는 공성을 말하고 ⑧ “훌륭한 법은 행복을 가져온다"(Sn. 182)라는 등에서는 공덕을 말하고 ⑨“두 가지 결정되지 않은 법이 있다.”(Vin.iii.l87)라는 등에서는 범계를 말하고, ⑩ “모든 법들은 모든 측면에서 부처님 · 세존의 지혜의 영역에 들어온다." (Ps.ii.194)라는 등에서는 알이야 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그러나 본성(sabhãva)을 말한다. 그 뜻은 디음과 같다.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attano 1akkhaṇaṁ dhārentīti dha-mmā).”(한편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는 이 설명은 아비담마에서 “자신의 고유성질(自性)을 가졌다 해서 법들이라 한다. (atta-no sabhãvaṁ dhãrenti ti dhammã).”(DhsA.39 등)라고 정의하는 것과 꼭 같은 표현이다. 그리고 한역 『구사론』 등에서는 이것을 능지자성(能持 自性)이나 임지자성(任持自性) 등으로 옮겼다.)
'뿌리(mūla)'라는 것은 여기서는 공통적이지 않은 원인(asādhāraṇa-hetu) 의 뜻이라고 알아야 한다. [즉 존재 더미[有身, sakkāya]에 속하는 법들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조건(āveṇika-paccaya)을 뜻한다. - MAT.1.57]
'법문(pariyāya)'이란 것은 여기서는 이유(kāraṇa)와 가르침(desana) 둘 다를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법들의 뿌리에 대한 법문'은 모든 법들의 특별한 원인이라고 알려진 이유나, 혹은 모든 법들의 원인에 대한 가르침을 말한다. 본경은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하는 가르침(neyyattha)이기 때문에 [열반을 포함한] 네 가지 세상에 속하는(catu-bhūmakā) 모든 법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존재 더미[有身, sakkāya]에만 한정된 삼계에 속하는 (tebhūmakã) 법들을 남김없이 말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MA.i.l7~18)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짧은 경」 (M44) §2에서 답마딘나 비구니는 “도반 위사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인] 이들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總]들을 존재 더미라고 하셨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듯이 존재 더미[有身]는 오취온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모든 법들(sabbe dhammã)’은 오취온 (五取總) 즉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에 포함된 것으로만 제한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류도 등의 네 가지 도와 예류과 등의 네 가지 과와 열반 이리는 출세간의 경지를 제외한 삼계의 법들만이 모든 법들에 포함된다.
그리고 복주서는 ‘모든 법들의 뿌리(sabba-dhamma-mūla)’로 갈애(taṇhã)와 자만(mãna)과 사견(diṭṭhi)을 들고 있는데(MAT.i.57) 이 셋은 본경 §3 의 여러 주해에도 키워드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본경 §3에서 “범부는 ... 그 것을 철저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라고 나타나듯이 무병(avijjã)도 뿌리가 된다고 복주서는 밝히고 있다: (1bjdJ
본경에서 모든 법들[諸法]은 존재 더미[有身] 즉 오취온을 뜻하고 모든 법들의 뿌리 즉 오취온의 뿌리는 갈애와 자만과 사견과 무명이라는 주석서와 복주서의 이 설명은 중요하다. 특히 본경의§§3~26에 제속해서 나타나는 ‘생각하다[maññati]’를 주석서는 갈애와 자만과 사견의 세 가지 허황된 생각[空想, maññanã]을 통해서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아래 §3의 13번 주해 참조) 이처럼 세 가지 허황된 생각f空想]으로 생각하는 것이 모든 볍들 즉 오취온의 뿌리가 된다는 말이 된다.
냐나몰리 스님/보디 스님도 복주서의 이런 설명을 존중하여 그들이 옮긴 『맛지마 니까야』 영역본의 주해(1162쪽 3번 주해)에서 이것을‘모든 법들 의 뿌리’에 대한 설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33) ‘배우지 못한 범부(assutava puthujjana)’에 대한 설명은 『상윳따 니까야』 제2권 「배우지 못한 자 경」 1(S12:61) §3의 주해를 참조할 것. 주석서와 복주서들은 배우지 못한 범부(assutavã puthujjana)와 선한 범부(kalyãṇa -puthujjana)를 구분하고 있다. 이 둘은 아직 예류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부지만 전자는 온 · 처 · 계 · 연 등의 법에 대한 이론적인 지혜(교학)도 없고 마음챙김의 확립 등의 수행도 하지 않은 자이다. 후자는 이 둘을 다 갖추어 예류도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이다. (SA.ii.200)
34) “‘성자들(ariyã)’이란 부처님과 벽지불과 세존의 제자들을 말한다. 혹은 오직 부처님만을 말한다."(MA.i.21)
35) '친견하지 못하고'는 adassāvi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친견하지 못하고(adassāvī)'라는 것은 성자들(ariyā)을 친견하지 않는 습성(adassanasīla)을 갖고 있거나 혹은 친견하더라도 존중하지 않는 자(na sādhukārī)를 말한다. 눈(cakkhu)으로 친견하지 않는 자와 지혜(ñāna)로 친견하지 않는 자의 두 부류가 있다. 그중에서 지혜로 친견하지 않는 자가 여기서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육안으로나 혹은 천안으로 성자들을 친견하더라도 친견하지 않는 것이 되는데, 그들의 눈은 모습만을 취할 뿐, 성스러움의 영역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나(Soṇa)와 싱갈라(Siṅgāla) 등도 눈으로는 성자들을 친견했지만 성자들을 존중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MA.i.21)
36)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다(ariyadhammassa akovido).'는 것은 마음챙김의 확립(sati-paṭṭhānā) 등으로 분류된 성스러운 법에 대해 능숙하지 않다(akusala)는 말이다."(MA.i.22)
37)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했다(ariyadhamme avinīto).'는 것은 -
두 가지 율이 다시 각각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그에게 없기 때문에 인도되지 못한 자라 불린다.
여기서 두 가지 율(vinaya)이란 단속하는 율(saṁvara-vinaya)과 버리는 율(pahāna-vinaya)이다. 이 두 가지 율은 다시 각각 다섯으로 분류된다. 그중에서 단속하는 율이란 계(sīla)를 통한 단속, 마음챙김(sati)을 통한 단속, 지혜(ñāṇa)를 통한 단속, 인욕(khanti)을 통한 단속, 정진(vīriya)을 통한 단속의 다섯 가지이다. 버리는 율이란 대체(tadaṅga)를 통한 버림, 억제(vikkhambhana)를 통한 버림, 근절(samuccheda)을 통한 버림, 편안함(paṭippassaddhi)을 통한 버림, 벗어남(nissaraṇa)을 통한 버림의 다섯 가지이다....
이와 같이 율은 간략하게 두 가지이고 분류하면 열 가지인데, 그것에 대한 단속이 흐트러지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아서 배우지 못한 그 범부에게는 없기 때문에 '인도되지 못한 자(avinīta)'라 한다. 이 방법은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에도 적용된다."(MA.i.22~24)
단속하는 율의 다섯 가지는 『청정도론』 1.18에서 설명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다섯 가지 버림은 『청정도론 복주서』 (Pm.70, Vis.IV.82에 대한 주석)에 나타난다. "상윳따 니까야, 제5권 「절반 경」 (S45:2) §4의 주해도 참조 할 것.
38) "여기서 '바른 사람들(sappurisā)'이란 벽지불과 세존의 제자들을 이른다. 그들은 출세간의 공덕을 가졌기 때문에 아름다운(sobhanā) 사람들이다." (MA.i.21)
39) '바른 사람들의 법'은 sappurisa-dhamma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바른 사람의 법으로도 옮길 수 있고 바른 사람들의 법으로도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주석서에서 "바른 사람들의 법(sappurisa-dhamman ti sappurisānaṁ dhammaṁ)" (MA.iv.98; DA.iii. 1039)으로 복수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40) "여기서는 먼저 범부를 지칭하신 뒤에, 땅 등의 대상(vatthu)이 존재 더미 [有身, 오취온]를 구성하고 있는 법(sakkāya-dhamma)이라고 여기면서 일어난 [범부의] 허황된 생각[空想, maññan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땅을 땅이라(pathaviṁ pathavito)' 등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여기 '땅(pathavī)'에는 ① 특징으로서의 땅(lakkhaṇa-pathavī) ② 구성요소를 가진 땅(sasambhāra-pathavī) ③ 명상주제인 대상으로서의 땅(ā-rammaṇa-pathavī) ④ 관습적으로 불리는 땅(sammuti-pathavī)의 네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① "도반이여, 무엇이 내적인 땅의 요소인가?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딱딱하고 견고한 것을 내적인 땅의 요소라 한다."(M.i.185) 라는 등에서는 특징으로서의 땅을 말한다.
② "비구가 땅을 파거나 혹은 파게 하면" (Vin.iv.33)이라는 등에서는 구성요소를 가진 땅을 말한다. 머리털 등 스무 가지 부분과 아연, 구리 등 외적인 땅은 형색 등의 구성요소를 가진 땅이기 때문에 구성요소를 가진 땅이라 한다.
③ "어떤 자는 땅의 까시나를 인식한다."(M.ii.14)라는 등에서는 명상 주제인 대상으로서의 땅을 말한다.
④ 땅의 까시나를 통해 禪을 얻은 자가 천상에 태어날 때 [증득의] 출현으로 인해 땅의 신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것이 관습적으로 불리는 땅이라고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이 네 가지 모두 해당된다.
이 가운데서 어떤 땅을 두고 범부는 땅으로부터 인식하고, '땅이다.'라고 인식하고, 땅의 부분을 통해 인식하고, 세상의 관습을 취하여 전도된 인식으로 인식한다."(MA.1.25)
전도된 인식 혹은 인식의 전도는 무상 · 고 · 무아 · 부정인 것을 항상하고, 즐겁고 자아이고 깨끗한 것[常,樂,我,淨]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앙굿따라 니까야』 「전도 경」 (A4:49) §1과 『청정도론』 XXII.53을 참조할 것.
41) "땅을 땅이라 인식하고서는(pathaviṁ pathavito saññatvā)'이란 것은 '그는 그 땅을 전도된 인식[顛倒想, viparīta saññā]으로 인식한 뒤에'라는 말이다. "인식으로 인해 사량 분별이라는 이름이 있다."(saññāridanā hi papañcasaṅkhā- Sn (874))라는 금구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일단 이 땅을 이와 같이 전도된 인식으로 인식하고 나면 다음 단계에서 갈애와 자만과 사견에 의한 사량 분별(taṇhā-māna-diṭṭhi papañca)은 힘을 얻는다. 여기서 그는 허황된 생각[空想, maññanā]이란 이름으로 설한 이러한 사량 분별을 통해 생각하고 헤아리고 이리저리 헤아리고 여러 측면으로 다르게 취한다(maññati kappeti vikappeti, nānappakārato aññathā gaṇ -hāti). 그러므로 '땅이라 생각한다(pathaviṁ maññati).'라고 말씀하셨다." (MA.i.25)
42) “‘[자신을] 땅이라 생각한다(pathaviyā maññati).’는 것은 세 가지 허황된 생각[空想,maññanā]을 통해 '나는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나의 땅이다.' 라고 생각하고, '다른 이는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이의 땅이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혹은 내적인 땅(ajjhattika pathavi)을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taṇhā-maññanā)을 통해 생각하고,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māna-maññană)을 통해 생각하고,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diṭṭhi-maññanā)을 통해 생각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는 머리털, 몸 털 등에서 욕망을 일으키고, 머리털을 즐기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집착한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미래에 나의 머리털은 이렇게 될 것이고, 나의 몸 털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거기에 기쁨을 일으킨다. '이 계행과 청정범행으로 나의 머리털은 이렇게 윤기 있고 부드럽고 가늘고 검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갈망한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머리털 등에 대해 원하는 바를 성취한 것과 성취 하지 못한 것을 두고 '내가 뛰어나다거나 혹은 동등하다거나 혹은 저열하다.'라고 자만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영혼[壽者, 생명, jīva]이 바로 몸이다."( 「잘리야 경」(D7) §1)라고 전해 내려오는 방법에 따라 머리털이 영혼이라고 천착한다. 이 방법은 몸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혹은 "내적인 땅의 요소이든 외적인 땅의 요소이든 그것은 단지 땅의 요소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 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 보아 땅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땅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합니다[離慾]" (본서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 경」 (M28) §6)라는 가르침과는 반대로 머리털 등으로 분류되는 이 땅은 내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라고 천착한다. 이와 같이 내적인 땅을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이처럼 내적인 땅을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땅(bāhira pathavi)에 대해서도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한다."(MA.1.26~27)
43) ‘"[자신을] 땅에서 생각한다(pathaviyā maññati).'라고 하셨다. 여기서 '땅에서(pathaviyā)'라는 것은 문법적으로 처소격(bhumma-vacana, Loca-tive)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땅에서'라고 생각한다. 즉 '나에게 어떤 장애 (palibodha)는 땅에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는 '다른 이는 땅에서' 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의 장애는 땅에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 문맥에 대한 뜻이다.
혹은 "어떻게 물질에서 자아라고 여기는가? 여기 어떤 이는 느낌을... 인식을... 심리현상들을...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여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 이 나의 자아는 이 물질에 있다.'라고 이와 같이 물질에서 자아라고 여긴다."(Ps.i.145)라고 [장소]로서의 뜻을 [『무애해도』에서] 설했다. 그 방법대로 느낌 등의 법들을 자아라고 거머쥐고 내적인 땅과 외적인 땅 가운데 어떤 땅을 자기의 장소라고 상상하면서 '이 나의 자아는 땅에 있다.'라고 땅에서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diṭṭhi-maññanā)이다. 그러면 그 자아에 대해 애정(sineha)과 자만(māna)도 일어나기 때문에(uppādayato)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과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taṇhā-māna-maññana)도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MA.1.27~28)
44)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한다(pathavito maññati).’라고 하셨다. 여기서 ‘땅으로부터(pathavito)’라는 것은 문법적으로 탈격(nissakka-vacana, Ablative)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땅과 외적인 땅으로부터 자신과 다른 이가 태어나거나 혹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혹은 땅과는 상관없이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그의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diṭṭhi maññanā)이다.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을 통해 생각할 때 대상에 대해 애정(sineha)과 자만(māna)이 일어나기 때문에(uppādayato) 갈애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과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tanhā-mäna-maññana)도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MA.i. 28)
나나몰리 스님은 이 부분을 "he conceives [himself apart] from the earth 자신을 땅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로 옮겼다.
45) "땅을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pathavim meti maññati).'라고 하셨다. 여기서는 오직 땅의 근본물질[地大, mahā-pathavi]에 대해서 갈애를 가지고 내 것이라는 방법으로 일어난 한 가지 허황된 생각만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즉 [사견과 자만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갈애에 기인한 한 가지 허황된 생각만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이 땅이 나의 머리털이고 나의 몸 털이고 나의 아연이고 나의 구리라고 이와 같이 내적인 땅과 외적인 땅(ajjhattika-bāhira pathavi)에 연결 시켜야 한다."(MA.i.28)
46) 이상 땅에 적용된 네 가지 허황된 생각[空想, maññanā]의 구문은 본경에 나타나는 나머지 23가지 대상에도 다 적용되어 나타난다. 이 네 가지 허황된 생각은 '① [자신을] X라 생각한다. ② [자신을] X에서(in) 생각한다. ③ [자신을] X로부터(from) 생각한다. ④ X를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로 정리된다. 여기서 ①은 동일시, ②는 근본 ③은 별개 혹은 파생 ④는 소유(전유)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범부는 ① 땅과 자신을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고 ② 땅을 자신의 근본으로 삼고 ③ 땅과 자신은 다르거나 자신을 땅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 여기고 ④ 땅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범부는 이렇게 모든 대상에 대해서 허황되고 전도되고 잘못된 생각[空想, maññanā]을 가진다고 부처님께서는 설파하고 계신다.
특히 이 가운데 '① [자신을] X라 생각한다. ② [자신을] X에서(in) 생각한다. ③ [자신을] X로부터(from) 생각한다.'는 셋은 『상윳따 니까야』 제3권 「야마까 경」 (S22:85) §§11~14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관찰 가운데 처음의 셋인 ① 오온을 여래라고 관찰하는 것과 ② 오온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 것과 ③ 오온은 여래와 다르다고 관찰하는 것의 셋과 같은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상윳따니까야』 제4권 「뿌리 뽑는데 어울림 경」(S35:30) §3과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될 경」 1(S35:31) §3에서 "눈을 사랑하지 않고, 눈에서 사랑하지 않고, 눈으로부터 사랑하지 않고(cakkhuṁ na maññati cakkhusmiṁ na maññati cakkhuto na maññati)"라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를 관찰하는 것과도 같은 방법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야마까 경」(S22:85) §14의 주해를 참조할 것.
47) ‘“기뻐한다(abhinandati).’라고 하셨다. 여기서는 사견과 갈애에 의한 기뻐함(diṭṭhi-taṇhā-abhinandana)으로 기뻐하면서(abhinandanta) 모든 것을 기뻐한다는 뜻이다.”(MAT.i.79)
48) "그것을 철저히 알지 못하기 때문(aparifññātaṁ tassa)'이라고 하셨다. 땅이라는 토대(vatthu)를 '철저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apariññātaṁ)' 그것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기꺼워한다. 땅을 잘 아는 자는 세 가지 통달지를 통해 철저히 안다. 그것은 ① 안 것의 통달지(ñāta-pariññā, 知遍知) ② 조사의 통달지(tīraṇa-pariññā,審察遍知) ③ 버림의 통달지(pahāna-pariññā, 斷遍知)이다.
이 가운데서 ① 어떤 것이 안 것의 통달지인가? "그는 땅의 요소를 잘 안다. 이것은 내적인 땅의 요소이고, 이것은 외적인 땅의 요소이고, 이것은 그 특징이고, 이것은 역할이고, 나타남이고, 가까운 원인이다."라고 철저히 아는 것이 안 것의 통달지이다. ② 어떤 것이 조사의 통달지인가? "물질을 무상으로, 괴로움으로, 병으로 본다."(Ps.ii.238)라고 마흔 가지 측면에서 땅의 요소를 조사하는 것이 조사의 통달지이다. ③ 어떤 것이 버림의 통달지인가? 이렇게 조사한 뒤 최상의 도로써 땅의 요소에 대해 욕망을 버리는 것이 버림의 통달지이다.
혹은 ① 정신과 물질을 분석하는 것이 안 것의 통달지이고, ② 깔라빠를 명상하는 것부터 수순의 지혜까지를 조사의 통달지라 하고, ③ 성스러운 도에 대한 지혜를 버림의 통달지라 한다.
땅을 철저하게 아는 자는 이 세 가지 통달지에 의해 철저히 안다. 범부는 이 통달지가 없기 때문에 철저히 알지 못하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기꺼워한다."(MA.i.29)
세 가지 통달지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은 『청정도론』 XX.3~4와 18~19를 참조할 것.
주석서에 나타나는 pariññāta(과거분사)와 pariññā(명사)는 둘 다 pari+√jñā(to know)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물에서는 여기서처럼 pariññā를 '통달지'로, pariññāta를 '철저히 안으로 옮기고 있다.
[출처 - 초기불전연구원]
Ciraṁ tiṭṭhatu lokasmiṁ sammāsambuddhasāsanaṁ.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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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