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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서문
닿지않던 마음과 마음
잊은 채 살아온 너와 나를
글로 조용히 이어 본다
사는 일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그 사이의 빈틈을
나는 조용히 글로 메운다
자녀가 걸어갈 내일의 길 위에서도
자기 자신과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아빠는 오늘도 글로 마음의 다리를 놓는다.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글을 쓰고 책 한 권을 내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창조에 가까운 일이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장을 하나씩 붙들고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기 삶을 쓴다는 것은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시간을 세상 앞에 꺼내 놓는 일이다.
그 누구도 살아 보지 못한 오직 자신만이 가진 삶을 드러내는 일이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창조하고 있다는 것과도 닮아 있었다.
지나간 시간들은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문장으로 다시 바라보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순간들조차 조용히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이제야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제 나는 내 삶에 머물다 간 자리마다 남겨진 마음의 소리를 듣고, 비로소 나를 찾아가는 이 이야기를 사랑하려 한다.
내 삶의 모든 이야기를 사랑하려 한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하며 얻은 것들이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진리가 아닌,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남긴 기록이기에 실제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는 사랑하는 두 딸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갈 수 있을지, 부부로서 우리는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10년 만에 부모가 되어 자녀로부터 '사람다움'을 배워 가는 길 위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담은, 부모가 자녀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나는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쓰는 데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의 근본과 기준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번에 완성되는 법은 없었다.
자신의 삶을 계속 돌아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도움을 받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평생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은 끝나지 않았지만, 사람이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는 알 수 없기에 살아 있는 동안 경험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 전해 주고 싶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원하면 그것이 곧 나의 선택이 되는 ‘상대 중심’으로 살아왔다.
자신의 이야기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질문하는 것을 좋아했고, 잘 경청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듣는 일이 재미있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의 좋은 점은 배우고 싶었고 부족한 부분은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내 이야기보다 타인의 이야기에 더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타인’이 아닌 ‘나’에게, 다른 존재가 아닌 ‘나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글로 세상 가운데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건, 20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부터였다.
처음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결혼 후 여러 나라를 거쳐 인도 첸나이를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세월을 시간으로 계산하면 175,320시간이다.
돌아보면 그 긴 시간이 나에게 준 선물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야기가 있는 삶’이었다.
남의 것이 아닌, 오직 나만의 삶의 이야기.
그 선물이 고맙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딸들이 곁에 있다 보니 문턱을 넘듯 망설임을 지나,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너의 이야기만 비춰 주던 자리에서 한 발 나와, 나의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전해 보려 한다.
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감정은 ‘낯섦’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과 달리, 느림이 일상인 서남아시아 중에서 특히 인도에서의 정착은 몸과 마음에 낯선 자극을 주었다.
당황스럽고 불편한 긴장도 있었지만, 그 느림 속에서 배운 ‘짜이 한 잔’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문화가 되었다.
그 문화를 가슴에 고이 접어 두고 인도를 떠날 때, 비자로 고생도 했지만 아이들이 한국적 뿌리를 확인할 기회를 얻는다고 생각하며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둘이었던 우리는 넷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아빠’라는 자리로 후반전을 시작하려 하자, 익숙한 땅에서 예상치 못한 혼란이 밀려왔다.
한국 사람인데도 외국인처럼 서 있고, 외국인은 아닌데 또 완전히 한국 사람 같지도 않은 애매한 정체성.
그 혼돈의 시간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숨빛으로 바뀌었다.
긴 호흡을 여러 번 하듯 마음을 가라앉히자, 정리되지 않은 방처럼 복잡하게 흩어져 있던 마음의 공간 안으로 작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빛은 혼란을 단번에 치워 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비추어 주었다.
그때 비로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내 삶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결혼 전까지는 한국에서, 결혼 후에는 해외에서 살았다.
인생의 절반은 익숙함 속에서, 나머지 절반은 낯섦 속에서 보냈다.
그 낯섦이 점점 익숙해질 즈음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오히려 익숙했던 한국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나의 문화에 가까운 한국과 다양성의 문화인 인도에서 살다 보니, 이 둘을 내 안에서 하나로 살아 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문화도, 인도의 문화도 결국 내게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삶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어려웠던 것은 문화가 아니라 그 사이에 서 있는 나였다.
인도와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서 나는 자주 부딪혔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연결을 배워 가는 일이 낯설었다.
그런 낯섦을 지나고서야,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부모와 자녀,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의 낯섦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의 낯섦을 지나고 나서야 타인의 낯섦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지 모르기에, 그 감각은 자연스럽게 관계에 대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먼저 내 안에 있는 서로 다른 문화와 세계를 바라보고, 혼란 속에서 흩어져 있던 나와 나를 맞닿게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와 나를 이해해 가는 시간이 쌓일 때, 서로 다른 문화와 세계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도 더 중요한 방향이 되지 않을까.
편안한 온도의 ‘익숙함’과 새로운 설렘을 주는 ‘낯섦’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둘 다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그 두 문화와 세계를 자연스럽게 잇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늘 상대를 중심에 두고 살아온 나로서는, 내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조차 낯설었다.
오랫동안 나는 타인의 시선과 감정에는 익숙했지만, 정작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제야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게 되었고, 처음으로 내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과 감정에 익숙해진 탓에 내 마음의 중심은 오래 흐려져 있었다.
그제야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단순했지만 깊었다.
그제야 나는 익숙함과 낯섦을 연결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은 하나였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살아온 나, 인도에서 변화된 나,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들 사이에서 부딪히고 충돌했다.
이런 갈등은 한 개인인 내 안에도 있었고, 한국 사회 안에서도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는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했고, 때로는 그 익숙함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인도는 달랐다.
수많은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물론 인도에도 문제는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만큼은, 그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그 두 세계의 장단점을 차분히 바라보며, 건강한 독립성을 바탕으로 다양성과 균형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익숙함과 낯섦이 서로를 비추는 동안 성장통도 컸다.
특히 한국에서 그 균형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거칠었고, 고난에 가까웠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다.
기준을 세우려 했지만 정작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몰랐다.
나는 나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
나를 모르고 있던 그때, 20년 전 이웃집 아저씨가 여전히 익숙한 얼굴로 내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의 눈빛에는 외로움이 덧입혀져 있었다.
오랜 시간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20년 만에 다시 만난 아저씨의 고민과 아픔은 알지 못했다.
나는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은 마치 사진기의 셔터처럼 마음속에 남았다.
우리는 과연 서로를 얼마나 알고 살아가는 걸까.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졌고, 그런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여정을 지나고 있었다.
한국 음식은 여전히 맛있고 익숙했지만, 그것만 먹는 일상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인도 음식을 배우지 않고 돌아온 일을 뒤늦게 아쉬워하기도 했다.
가족은 변함없는 얼굴로 곁에 있었지만, 생각과 가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예전과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것들 사이로 낯섦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그 사이에는 언제나 망설임이 함께 있었다.
내가 꿈꾸는 이상과 눈앞의 현실 사이의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그 틈에서 혼란과 공허를 함께 지나고 있었다.
타인의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왜 흔들리는지,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모른 채로는 그럴듯한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내가 꿈꾸는 삶을 살아 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꿈만 꾸며 머무는 삶을 원하지 않았다.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면서 현실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무는 삶도 원하지 않았다.
남의 말과 눈치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삶은 더더욱 아니었다.
해외에서 아내 한나와 함께 나를 알아 가며 그런 삶에서 조금씩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나는 다시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익숙한 습관들은 오래 남아 있었고, 기준을 세우기보다 상황에 따라 움직이려는 모습도 여전했다.
그것은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 흩어진 마음들을 하나씩 매듭짓고 싶었다.
그 매듭들이 퐁당퐁당 건너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면, 낯설게만 느껴지던 한국의 시간도 언젠가는 내가 사랑하게 될 이야기로 남을 것 같았다.
진짜 관계, 삶을 창조하는 실제적인 고리
‘실제적인 고리.’
그것을 그저 꿈꾸는 데서 멈추지 않기 위해, 나는 질문 앞에 서서 오래 머물렀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씩 나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
해외에서의 시간을 지나 다시 한국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시간은, 내가 살아온 이름과 역할 너머에 있는 나를 바라보게 했다.
나는 오랫동안 욕구와 필요를 중심으로 살아왔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하나님 안에서 먼저 존재하고 있던 내가 있었다.
그런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원한 것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셨는지, 그 마음이 담긴 언약 안에 머무는 시간이었다.
보이는 언약을 이해하고, 보이지 않는 언약과 인격적으로 관계하는 그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조금씩 맞닿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찾고 있던 실제적인 고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약을 알지 못하면 성경 전체를 하나로 잇는 고리가 없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언약 안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던 나의 가치를 다시 알아 가야 했고, 그렇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나와 다시 연결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위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독립이 시작되었다.
독립은 관계를 떠나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 독립 위에서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의 삶을 이루어 갈 때, 그 관계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생명을 향해 열려 있었다.
나는 그 의미를 조금씩, 천천히 알아 가고 있었다.
그 기준을 품고, 익숙한 한국에서 낯선 나를 다시 이어 가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문지방에 서면 익숙함과 낯섦이 번갈아 얼굴을 내밀며 익숙함은 오래전 몸에 밴 습관을 데려왔고, 낯섦은 새로운 관계의 움직임을 불러왔다.
그 사이를 오가며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관계는 생각과 행동의 속도를 늦추어, 익숙했던 흐름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나와 새로운 타인을 알아 가는 미소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얼굴에 번지고 있었다.
그 작은 미소와 흔들리는 감정들은, 내가 나를 알아 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남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익숙함과 낯섦의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지우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두 축임을 알게 되었다.
'나'와 '타인'도 고정된 존재가 아니었다.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다른 얼굴로 나타났고, 다시 알아 가는 기쁨은 내일을 기다리게 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이어 주는 '보이는 실제적인 고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
나와 나, 나와 너를 다정히 이어 주는 '진짜 관계'였다.
끊어진 줄 알았던 것이 다시 이어지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작은 숨빛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 숨빛은 눈에 보이지 않던 내 마음의 코어를 비추어 주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진짜 관계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연합과 연결의 모습이자, 내가 꿈꾸는 삶의 방향이기도 했다.
이 성장의 여정에 이르기까지 디딤돌 같은 공동체 안에서 만난 믿음의 선배들과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내 곁을 지켜 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도움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었다.
믿음의 경주는 결국 내가 바통을 받아 달려야 하는 길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체육대회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가 된 듯, 마음은 늘 긴장으로 달아올랐다.
'끝까지 달려 보자'는 다짐은 설렘이 되기도 했지만, 그 설렘은 곧 긴장과 뒤엉켜 발을 자주 헛디디게 했다.
과거의 나에서 현재의 나로 바통을 건네야 하는데, 어딘가에서 그것을 놓쳐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바통을 주워 들고 달렸다.
넘어야 할 허들이 많아질수록, 정작 가장 높은 허들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마주 보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발견한 나를 하나씩 글로 적어 내려갔다.
홀로 공간 안에 앉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때의 감정 속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는 시간.
그 시간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시간은 처음 마신 커피 같았다.
쓴맛에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이내 은은하게 스며드는 향에 취해 버리던 순간을 좋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요한 방에서 혼자 나를 만나는 시간은 뭔가 애틋했다.
그 시간의 향은 뇌를 자극해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소환했고, 끊어진 줄 알았던 옛 환경과 마음을 다시 비추어 주었다.
그러다 문득 당황스러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과거의 나를 외면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정작 지금의 나, 일상 속의 나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모른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역사나 내가 해 온 일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이, 삶의 시간 속에서 느껴 온 감정과 생각, 욕구의 의미를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뿐인 나만의 이유와 방식이 담긴 소중한 단서들이었지만,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리거나 한쪽으로 밀어 두곤 했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두려움도 모두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것들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오래 머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성실한 삶이라 믿었고, 지나간 감정들은 뒤돌아볼 필요 없는 흔적으로 여겼다.
감정과 생각, 욕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어딘가에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것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몰랐기에 20년 만에 돌아온 한국의 시간은 내게 적지 않은 혼란을 안겨 주었다.
한국이 낯설었던 이유도,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었던 이유도 어쩌면 현재와 미래만 바라보며 달려왔을 뿐, 과거의 나와는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을 찾아 걸었다.
상계5동 골목길을 지나고, 또또슈퍼 앞에 잠시 멈춰 서고, 계상초등학교로 향하던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새롭게 한국에서 나를 만나고 있었다.
나를 알아 가는 지금.
수많은 끊어짐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를 이어 갈 수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일 앞에서 막막했고,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내 이름을 불러 주었던 사람들, 나를 관계 안으로 초대해 주었던 기억들을 더듬으며 천천히 나를 찾아 나섰다.
여러 번 넘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관계 안에서 생겨난 감정과 생각, 욕구에 붙잡힌 채 살아가면, 그것들이 어느새 나보다 커져 나를 다스리게 된다는 것을.
그 상태에서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마음의 바깥으로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그 바깥 자리에서야 내가 왜 아팠는지, 왜 그런 생각에 오래 머물렀는지, 왜 이런 욕구 앞에서 쉽게 흔들렸는지를 조금씩 볼 수 있었다.
감정과 생각, 욕구는 내 안에 있는 소중한 신호이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결핍'과 만나면, 나를 지켜 주는 빛이 아니라 나를 조종하는 어둠이 되기도 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내 삶의 주인은 감정도, 생각도, 욕구도 아니어야 했다.
건강한 관계 안에서 독립한 나, 사랑할 줄 아는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나는 감정의 종도, 생각의 종도, 욕구의 종도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앞으로는 그것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내 안에서 일어난 것들을 무작정 따라가는 대신,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바라보며 묻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왜 아픈가."
"나는 왜 이 생각을 붙들고 있는가."
"나는 진짜 무엇을 원하는가."
그 질문들은 조금씩 나를 나에게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감정과 생각, 욕구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그 사이에서 선택하는 법을 배웠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며, 마침내 나와 진짜 관계를 맺는 연습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감정에 끌려가거나 생각에 갇히고, 욕구를 따라 흔들리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들을 한자리에서 들으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를 알아 간다는 것은 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돕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나와의 진짜 관계를 배워 가고 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단순히 살아 내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잇는 평온하고 다정한 '나와의 관계'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서만 자신을 알아 갈 수는 없기에 그 축을 단단히 붙잡아 준 또 하나의 힘은 '타인과의 관계'였다.
가족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한나를 만나고, 시애와 시은이를 만나고, 공동체를 만나며 나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에 기뻐하고, 어떤 순간에는 서운해하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도 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 가고 있었다.
그 반응 속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상처,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숨어 있었다.
이해되지 않던 타인의 말과 행동을 다시 질문하며 바라보고, 그 마음을 조심스레 헤아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가운데 어디쯤에서 조금씩 맞닿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가운데서 만나는 지점은 서로를 이해하는 작은 새싹처럼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그 마음은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나는 타인을 알아 가는 만큼, 나 자신도 함께 알아 가고 있었다.
이 두 축의 관계는 때로 나를 멈춰 세우기도 했고, 때로는 다시 걸음을 내딛게도 했다.
그 여정의 어느 날, 나는 나와 타인이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 속에서 '존재의 겹칩'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알아 가고 타인을 알아 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삶은 조금씩 겹쳐지고 있었고, 그 겹침은 서로를 닮아 가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일이었다.
서로의 삶이 조용히 맞닿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마음 한편에 작은 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존재는 단순히 ‘거기 있음’이 아니었다.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별함은 진짜 관계 안에서 발견되고 조금씩 자라났다.
자신의 역할을 책임지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함께 나누며, 웃고 울던 시간이 마음 위에 차곡차곡 포개질 때 사람은 알게 된다.
"아, 나는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그 사랑이 순간의 감정을 넘어 오랜 시간 곁을 지켜 줄 때 사람은 알게 된다.
"아,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 본 경험은 나와 나를 하나로 잇고, 나와 타인을 하나로 이어 주는 비밀이 되어 갔다.
나는 그 사실을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한나와 함께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배워 갔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다.
야간대학 수업을 마치고 들르던 소박한 삼겹살집.
한나가 개그맨 이주일 선생님 흉내를 내며 가게 안을 웃음으로 가득 채우던 어느 날이었다.
숨이 넘어갈 듯 웃고 있던 그 순간, 한나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앞니를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상추 낌~”
당황을 숨길 새도 없이 거울로 달려갔다.
정말 큼지막한 상추 한 장이 앞니에 가지런히 붙어 있었고 창피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돌아보면 그날은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이 아니었다.
비싼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멋진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웃었던 하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돌아보면 내가 기억하는 것은 상추 한 장이 아니라, 그 순간 한나와 함께 웃고 있던 우리였다.
평범했던 그 일상이, 그 하루가 마음 깊이 새겨질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거창한 순간보다, 함께 웃었던 평범한 하루 속에 더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해 뒤, 2004년 10월 9일.
우리는 결혼했다.
더 서로를 알아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한국을 떠났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두 딸을 만나며 함께 차곡차곡 서로의 결을 겹쳐 왔다.
그 시간이 우리에게 남겨 준 가장 큰 선물은, '진짜 관계' 속에서 '나' 와 '타인'의 삶이 새롭게 자라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아내는 가끔 나에 대해 "시대의 징후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 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묻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진짜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어쩌면 이 책도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고독의 시간은 때로 나를 흔들었지만, 결국 꿈을 삶으로 살아 내고, 삶을 다시 글로 옮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질문과 고민 사이에서 끄적여 온 아마추어의 글이지만, 누군가의 외로운 밤에 작은 온기 하나쯤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텅 빈 카페에서 나를 위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조용히 문장을 쌓아 올렸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진짜 관계가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데미안의 한 문장처럼,
“나로부터 솟아 나오는 것, 그것을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 갈망 끝에서야 비로소 나와 타인의 진심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것이 진짜 관계임을 믿게 되었다.
나는 그 깊은 맛을 먼저 본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두 딸에게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손에 쥘지도 모를 다음 세대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해 가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부모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라는 뜻은 아니다.
언젠가 부모로부터 건강하게 독립하는 그날이 오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 욕구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얼굴로 살아가면 좋겠다.
굳이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아도 된다.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면 된다.
가장 작게는 ‘나’와 ‘타인’, 누구든 한 사람과 진심을 나누려는 태도, 부끄러움까지 내어놓을 용기, 스스로를 꾸미지 않으려는 마음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면 좋겠다.
삶 속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려 애쓰는 관계를 만나면 좋겠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렇게 살아오며 조금씩 나를 알아 갔다.
어쩌면 삶은 결국 나를 알아 가는 여정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나를 발견해 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 말을 전하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한 문장씩 '나' 와 '타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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