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천군(吉川君) 권공(權公)의 두 아들은 모두 어질다. 막내아들의 이름은 척(倜), 자는 불기(不羈)인데, 나와 함께 기축년(1589, 선조22)에 태어났으며, 집안 사이에 잘 아는 사이였으므로 어려서부터 서로 친하게 지냈다. 길천공께서 막내아들과 나를 가르쳤는데, 비록 하루에 열 번을 뵙게 되더라도 열 번 절하게 하여 공손함을 익히게 하였고, 발걸음을 반드시 장중(莊重)하게 하고 비틀거리지 못하게 하여 근엄함을 익히게 하였으며, 말을 빠르게 하는 것과 천천히 하는 것을 법도가 있게 하여 신중함을 익히게 하셨다. 시선과 몸가짐에 이르러서도 모두 절도에 맞게 하여 성인(成人)의 행실을 익히게 하셨다. 이러한 일에 대해 나는 기(氣)가 거만하고 뜻만 고매하여 넘나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군은 착실히 가르침을 따라 이미 훌륭한 자제가 되었으니, 길천공이 기특하게 여기며 사랑하셨다.
15세에 나와 함께 향시에 합격하고 드디어 진사(進士)가 되었다. 20세에 관직에 진출하여 권지 승문원 정자(權知承文院正字)가 되었다. 자자하게 명성이 일어나 얼마 뒤에 승정원 주서(承文院注書)에 뽑혀 임명되었다. 군은 글을 지을 때, 옛날의 틀에 박힌 법도에 구애되지 않고 오로지 조리 있게 뜻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기주(記注)에 뛰어나 붓을 잡고 재빠르게 써 내려갔는데, 술술 이어져 빠뜨리는 것이 없었으니, 동료들 가운데 따를 사람이 드물었다. 아울러 직무에도 능하여 일을 만나면 곡진히 이치대로 처리하여 사물의 실정을 정확히 짚어 내니, 노숙(老宿)한 서리나 간사한 이들도 감히 기만하지 못했으므로, 뛰어난 재상과 선배들이 군의 재주와 국량을 칭찬하였다. 공조(工曹), 형조(刑曹), 호조(戶曹), 예조(禮曹)의 낭관(郞官)을 역임하고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직하였다.
27세가 되던 을묘년(1615, 광해군7)에 우연히 감기에 걸렸는데, 스스로 죽을 날이 되었다고 하더니 정말로 운명하였다. 당시 길천공께서는 건강하여 17년이 지난 뒤에 운명하셨는데, 공께서 살아 계실 때 나를 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셨다.
군은 대대로 익평공(翼平公)의 옛 집에서 살았다. 그 집은 돌을 깎아 섬돌을 만들었는데, 올라갈 수는 있었으나 높이가 몇 자나 되었으므로 나와 군이 모두 어렸을 때 그 아래에서 놀다가 밀고 당겨도 올라갈 수 없었다. 지금 그것을 볼 때마다 서글퍼진다.
군은 안동의 번창한 성씨의 후손이다. 선세(先世)의 양촌(陽村) 선생 휘(諱) 근(近)과 익평공 휘 람(擥)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들이다. 길천공의 휘는 반(盼)이다. 부인 윤씨(尹氏)는 판서 휘 국형(國馨)의 딸이다. 처음에 길천공의 맏형 준(睃)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군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군은 부사(府使) 이경천(李慶千)의 딸에게 장가들어 심지함(沈之涵)에게 시집간 딸과 아들 삽(趿)을 낳았는데 삽도 일찍 죽었다. 그러므로 형님의 아들 진사 적(蹟)을 후사로 삼았다. 세대가 두 번 끊어졌다가 이어졌으니 서글프다.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사람들 말에 복 가운데 / 人言吉祥
장수가 제일이라지만 / 則莫如壽
아들이 가업 이어야 / 有子傳業
또한 영구하다 할 텐데 / 亦曰永久
요절하고 대도 끊어졌으니 / 夭且絶世
어찌할까 공이여 / 奈何乎公
이미 하늘에서 장수와 자손 받지 못했으니 / 旣之不得於天者壽與子
오직 사람들에게서 얻은 / 惟其得之於人者
그 무덤을 훼손하지 말지어다 / 無有毀傷其宮
[주-D001] 길천군(吉川君) 권공(權公) : 권반(權盼, 1564~1631)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명(仲明), 호는 폐호(閉戶)이다. 《蒼石集 卷18 資憲大夫刑曹判書吉川君權公行狀》[주-D002] 익평공(翼平公) : 권람(權擥, 1416~1465)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시호는 익평이다. 《保閑齋集 卷17 輸忠衛社協策靖難同德佐翼功臣……翼平贈諡權公神道碑》[주-D003] 권근(權近) : 1352~1409. 본관은 안동, 자는 가원(可遠)ㆍ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梅軒集 卷6 陽村先生墓誌》[주-D004] 윤국형(尹國馨) : 1543~1611.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수부(粹夫), 호는 은성(恩省)ㆍ달천(達川)이다. 《愚伏集 卷17 資憲大夫工曹判書兼知義禁府事同知春秋館事尹公神道碑銘 幷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