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박이도 「어떤 표정」, 김철교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읽기
김철교(시인, 평론가)
1.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스승님은 자신을 아느냐”고 질문하자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른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숱한 수도자(修道者)나 철학자들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예술가, 특히 작가들은 이 문제를 붙들고 작품을 통해 씨름해왔다.
상담심리학에 의하면, “참 나(pure self)”는 의식적 자아(ego), 욕망, 애착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내면의 ‘나’를 의미하며, 참된 내적 평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e Dei)을 따라 창조되었다. ‘참 나’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기 전, 하나님이 처음 자기 모습 닮게 창조하셨을 때의 아담과 하와다. 사탄의 유혹에 휘둘린 후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넘겨다보려는 지혜를 탐한 죄로 인해 하나님 형상이 가려져 버렸다. 마치 태양(참 나)을 구름(욕심)이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가 ‘참 나’를 되찾아, 다시 말하면, 사탄의 유혹을 받기 전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회복하여, 천국의 삶을 -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죽은 후에 까지도 - 누리도록 구원하심에 있다.
“누구든지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요한1서 4:16) 세상 욕심을 걷어내어 ‘참 나’를 찾으면, 사랑하는 마음, 밝고 맑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종교적인 수련과 심리치료의 핵심이리라.
기독교 관련 학자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참 나는 하나’인 내면의 빛(Inner Light)이라고 한다. 불교의 불성(Budda Nature)도, 힌두교의 아트만(Atman)도 같은 개념이다. 흔히 도(道)를 통한다는 것은, 곧 ‘참 나’로 가는 길,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을 알았다는 뜻일 게다.
2. 박이도 「어떤 표정」 읽기
한 여인에게 미소를 지었더니
“당신은 누구신데...”
다시 미소만 지으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나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녀에게 미소를 지은 나는
과연 누구인지.
- 박이도 「어떤 표정」 『영원한 꽃밭』(심산문학진흥회편, 글나무, 2023) 전문.
“거울 앞에 서서
낯선 얼굴을 마주한다
이게 누구더라?”
- 박이도 「데자뷔」 『영원한 꽃밭』(심산문학진흥회편, 글나무, 2023) 부분.
화자가 어떤 여인에게 웃음을 보내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리 잘 웃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실없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웃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꼈기에 웃음을 보낸다.
낯익은 것 같은데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는 현상, 무의식에서는 분명 친한 사람으로 느끼는데 의식에서는 누군지 알 수 없는 현상은 누구나 경험한다. 필자는 이런 경우 ‘아마도 전생에 이웃집에 살았을 것’이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우리 삶의 전부는 관계로 얽혀 있다. 인간과 신의 관계를 이상적인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현실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의식적 ‘자아’(ego)와 내면의 ‘참 나’(self)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건인 셈이다.
시인은 “나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녀에게 미소를 지은 나는/ 과연 누구인지.” 의문을 갖는다. 상대방에 대한 기억을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저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는지, 그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데자뷔」에서도 “거울 앞에 서서/ 낯선 얼굴을 마주한다/ 이게 누구더라?” 묻는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3. 김철교 「나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읽기
뒤를 보면 언제나 따라오는 그림자
밝고 환한 자리일수록
더욱 뚜렷이 각인되는 어두운 욕망들
그늘진 삶의 자리
펼치면 펼칠수록 그림자는
주인과 한 몸이 된다
무의식 깊은 연못에
그분이 심어 놓은 형상 있어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듯
모든 것을 벗어 던져
수련 한 송이 피우고 싶다
그 꽃 피울 수만 있다면
태어날 때 이브가 건네준
덕지덕지 때 묻은 거울 닦고 닦아
내님 주신 얼굴 볼 수 있으리
김철교 「나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내가 그리는 그림』(시선사, 2021)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기원형(self), 즉 ‘참 나(pure self)’가 있다. 우리 마음을 지구와 같은 공의 구조로 가정할 때, 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표피 부분은 자아(ego)가 관장하고, 그 아래층엔 그림자 즉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이 지배하고 있으며, 핵심 부분은 자기(self)라는 자기원형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을 깨달아 나아감으로 우리 자신의 본 모습인 자기원형(self)에 도달하게 되어, 창조주가 우리에게 부여한 존재 이유를 알게 되고, 흔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즉 도(道)를 통하게 되고, 내가 부처가 되고,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찾게 된다.
이 시에서 그림자는 곧 어두운 욕망이며, 그늘진 삶의 자리로 우리를 끌어내리려고 한다. 시인은 모든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즉, 깨달음을 통해 ‘참 나’인 수련 한 송이(pure self)를 피워내겠다는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죄짓기 이전의 하나님 형상(Imago Dei)을 회복할 수 있게 되고 참된 내적 평화를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