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4일 마태복음15:21-28 제목 : 가나인 여인의 믿음 최일규 목사
FC : 가나안 여인의 믿음
SⅠ : 서론
SⅡ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의 부르짖음.
SⅢ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고난을 이겨내는 믿음이었다.
G&A : 여자여 네 믿음이 크 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
SⅠ : 서론
두로와 시돈은 대표적인 해양도시요.
바알신의 본 고장입니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이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큰 믿음을 보시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은혜를 베풀어 그 소원을 성취케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단어는 신앙, 신조, 신념, 신뢰등의 여러 의미로 대체될 수 있는 풍부한 개념을 지닌 어휘입니다.
CQ : 문제를 해결하기위하여 가나안 여인은 부르짖습니다.
SⅡ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의 부르짖음.
본문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해석 : 가나안 여인은 소리지르며 예수께 다가왔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 지경에서 나와서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지경에서 나와서” 히브리어 ‘게불’(복수형 케불로트)인데,
어떤 경계선을 넘을 때에 사용됩니다. 때로는 국경선도 됩니다.
기존의 경계선 안에 있는 공간에서 과감히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자기 영역에서 나왔습니다.
자기 종교와 관습까지 버리고 말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와야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관주 :신11:10절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말씀처럼 나와야 들어가는 것을 이 여인은 알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과거로부터 탈출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버리고 얻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부르짖어 외쳤습니다.
절규했습니다.
귀신들린 딸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다이모니온”이라고 원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영들을 말합니다.
CQ : 그러면 딸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악한 마귀로 인해 심히 상해 있다”
히브리어는 “메운나”인데 “괴롭힘을 당하다,”
“황폐화 시키다.” “매우 상해 있다”.
본문에서 흉악하다고 말합니다.
고난을 당하여 상해 가는 딸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부르짖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BS : 히스기야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산헤립을 하나님 앞에 고발했습니다.
산헤립이 무찔렀다고 하는 이방신들이 사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조각뿐임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산헤립을 물리쳐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산헤립의 침략에 너무도 궁지에 몰려서 다급함에 어찌할 줄을 몰라서 울부짖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제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형편을 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가 자신에게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믿는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관주 : 대하 32장 20절에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BS : 한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한 한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한나는 자신의 은혜만 찬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고 찬양했습니다.
한나는 누구를 원망하기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의 생활로 그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맡긴 후 이러한 일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관주 :삼상1:12-13절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일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한나는 속으로 절규했습니다.
관주 :막7:25-26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리니 26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부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BS : 여리고에 사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입니다,
바디매오는 육신으로는 소경이요 거지였으나,
영적으로는 건강하고 믿음이 부요한 자였다.
그 증거로 그는 예수님 오시는 곳을 알았고,
예수님이 성경에 약속하신 메시야임을 깨달았으며,
자기를 위해 오신 그 약속을 붙잡고 부르짖었고,
새 인생을 주실 것을 믿고 겉옷을 벗어버렸으며,
눈을 뜬 후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다.
관주 : 막10:46-47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람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CQ : 가나안 여인은 믿음으로 순종하며 모욕과 고통을 참았습니다.
SⅢ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고난을 이겨내는 믿음이었다.
본문 :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해석 : 가나안 여인은 딸의 고침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서 도움을 구했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시끄럽고 귀찮다고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3가지 이유 때문에 침묵합니다.
첫째,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답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릇된 것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신 이유는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
본문 :2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해석 : 여인이 인내 가운데 더 처절하게 도움을 구했을 때에는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나의 사명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너를 도와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CQ : 여러분! 무엇을 요청했는데 거절하면 어떻게 합니까?
거절하는 눈치만 보여도 기분이 나빠서 돌아가죠.
이게 바로 우리의 자아입니다.
자존심이 강합니다.
거절감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감당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답은 예수님의 말씀이 전부 옳다는 겁니다.
다 맞으니까 나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25절에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더 쌔게 나가셨습니다.
26절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인의 인격을 건드립니다.
개라고 하면서 인격을 멸시했습니다.
철저히 무시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27절에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가나안 여인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인이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관주 : 약1: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CQ ; 가나안 여인은 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절규 같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G&A : “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거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CQ :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3절에 보면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는데 말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제자들은 그 와중에 예수님께 청하여 말하기를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심각한 딸의 문제를 가지고 와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합니다.
호소하는 어머니의 간구가 제자들의 귀에는 한낱 ‘시끄러운 소리’,
‘귀찮은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야속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까?
병든 자식을 둔 어미의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려주지 않으니 어머니는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CQ : 그렇지만 가나안의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
멀리서 소리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잃어서 안 되겠다고 싶어서 예수님가까이에 와서 절하면서 애원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 가운데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본문 : 27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개’는 불결하고 비천하고 탐욕스러운 짐승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 딸의 문제를 두고 안타깝게 부르짖는 여인에게 ‘개’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당신 말대로, 이방인인 저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인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는 개와 같은 처지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다윗의 자손,
공평과 정의로 ‘만민‘을 통치하실 참된 왕, 참된 임금님 아니십니까?
그러니 당신의 은혜의 통치를,
개와 같은 저에게도 허락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것이다.
CQ :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인종 차별에 대하여 아무런 여과 없이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나 주어질 하늘의 축복을 개 같은 이방인들에게 줄 수 없다는 의미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매몰찬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일까요?
그녀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 매몰찬 예수님의 반응 가운데 가나안 여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움츠러들어 그만 좌절해 버렸습니까?
예수님께 ‘너무합니다’라고 원망했습니까?
그녀는 항의하거나 오해하지를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너는 개와 같다”는 말에 “옳습니다”라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은 개 같은 이방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그녀의 마음에는 귀신들린 딸을 고칠 수만 있다면 개 아닌 돼지가 된다해도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가나안 여인은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순종했습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순종의 믿음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님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