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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계절문학 2011년 겨울호에 발표했던 단편입니다.
강아지로 오신 아들
봄날이었다.
학교 화단엔 철쭉과 목련이 담장엔 진달래와 개나리가 가로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온통 꽃 세상. 사람들을 학교나 집안에 가만있을 수 없도록 천지사방에 갖가지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봄날이 주는 의미만큼이나 날씨는 따뜻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봄바람의 실체는 바람이 아니라 꽃이었다.
토요일 오후. 중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들인 정연이와 수연이, 남철이가 집으로 향하는 길. 꼭 같이 붙어 다니던 성민인 학교에 남아 해야 할 일이 있어 세 명만 먼저 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다섯 블록만 지나면 수연이와 남철이가 사는 아파트촌이었고 정연인 두 블록 더 지나 주택가에 산다.
이렇게 좋은 날에 학원에 갈일도 없고 중간고사 기일도 어느 정도 남았는지라 바로 집으로 들어가 방에 처박혀 공부에나 매달리기엔 너무 억울한 기분들이었다. 그래서 그냥 헤어지기가 안타까웠다. 그들은 호기심 많고 놀기 좋아하는 십대였으니 오죽하랴. 더군다나 토요일은 원래 날씨가 좋건 나쁘건, 늙으나 젊으나, 남자와 여자를 불문하고, 모두를 들뜨게 하는 날이지 않은가.
“우리 어디 갈까?”
정연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디 가자는 말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재미있을까? 서로 의향만 묻다가 어느새 다섯 블록까지 와버렸다. 하얀 벚꽃이 보도블록 위에 떨어져 바람에 물비늘처럼 일렁였다. 그래도 떨어진 꽃잎보다 남아있는 꽃들이 훨씬 많았다. 이제 정연이와 헤어져야할 시간.
“오늘도 우린 불쌍하게 집안에 처박혀 있어야나 보다.”
정연이 멈추어 서서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멋대가리 없이 헤어지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자 수연이가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남철일 보지도 않고 느닷없이 신발가방으로 후려쳤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4차선 차도 옆 인도였다.
“야, 너는 남자가 돼가지고 여자들이 어디 가고 싶다면 앞장서서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지 맹추같이 이게 뭐니?”
그랬는데 남철이 서있던 자리가 보도블록과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이었고 가방을 피한다고 뒷걸음친 곳이 20cm 낮은 차도였기에 발을 헛짚어 그만 뒤로 발랑 나자빠지고 말았다.
“어, 나라고 뭐 별 뾰족한 데를 아는 줄 아니?”
그 말과 함께.
아! 그런데 하필 그때 소형트럭이 우회전을 할 욕심으로 속력을 내며 지나치고 있을 때였으니, 어찌 그리 불운의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았을까. 남철이 넘어질 때와 트럭이 지나칠 때가.
“끼이익!”
순식간이었다, 사고가 난 것은. 차와 부딪친 남철이의 몸이 붕 떴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히면서 차체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운전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멈추었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엄청난 일이 벌어져버렸다. 그 놀라운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한 정연이와 수연이는 비명을 지르다 남철이를 부르며 어쩔 줄을 모르고. 밖으로 나온 운전자는 죽을상이 되어 욕지거릴 퍼붓다 뒷바퀴에 걸린 남철이를 빼내보려다 나오지도 않는데다 피만 흥건하게 흘러나오는데 놀라 휴대전화를 꺼내 119에 신고를 하기에 이르렀으니.
구급차가 부랴부랴 달려와 제복을 입은 요원들이 바퀴에 깔린 남철이를 힘들게 빼내 병원에 싣고 갔어도, 정연이와 수연이가 이미 의식을 잃어버린 피투성이의 몸뚱어리를 보고 까무러치며 울부짖었건만, 머리를 심하게 다친 그는 결국 죽고 말았는데. 학교에서 선생님이 오고 날벼락을 맞은 남철이 어머니 고 여사가 달려와 아무리 통곡하고 절규해도 한번 끊어진 숨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꽃들은 그대로 피어있었고 벌들이 부지런히 날아 꽃 속에 머릴 디밀어 꿀을 빨고 연녹색 이파리를 피워내는 가로수들은 봄바람에 살랑거렸으며 하늘엔 뭉게구름이 푸짐하게 피어올랐다. 거리엔 사람들이 제 갈 길을 가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여전히 자동차는 빨리 가고 싶어 경적을 울려댔다. 남철이 허망하게 죽었고 남철이를 아는 사람들의 가슴에 견딜 수 없는 충격이 몰아쳤어도 세상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경찰이 오고 보험회사에서 와서 그들이 목격자인 정연과 수연에게 묻고 또 물을 때마다 그녀들은 울기만 했다.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장례가 끝날 때까지 죄인처럼, 아니 죄인이 되어 몸서리를 쳤다. 누가 특별히 뭐라 하지 않았어도 남철인 자신들이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수연인 더했다. 장난이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착한 남철이의 죽음을, 아니 그렇게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읽은 책이나 어른들로부터 받은 삶의 교훈은 권선징악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어째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철이는 죽어야만 했는가. 삶이란 이렇게 허망할 수도 있다? 아니어야만 했다. 그렇게 이해하기엔 수연이 너무 어렸다.
남철인 더군다나 이혼한 고 여사의 외동아들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서러운 통곡으로 장례식장은 내내 울음바다였고 학교 아이들이 올 때마다 남철이를 불러대는 통에 정연이와 수연이는 식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병원 앞뜰에 심어놓은 벚나무의 웬수(?)같은 하얀 꽃비를 맞으며 남철의 죽음을 절감해야만 했다.
내가 어디 가자고만 안했어도…… 내가 가방만 휘두르지 않았어도…… 만약 남철이가 경계석에만 서 있지 않았어도…… 날씨만 그렇게 좋지 않았어도…… 토요일만 아니었어도…… 아무리 후회하고 만약에를 외쳐도 남철인 끝끝내 불구덩이 속으로 사라져 유골은 그 애만큼 잘 생기고 건강하게 자라는 소나무 밑에 뿌려져 이름표가 걸렸다. 김남철 나무.
학교 교실에 있는 주인을 잃은 남철이의 책상에는 한동안 아이들이 번갈아가면서 놓아둔 꽃다발이 죽은 자를 더 사무치게 생각나게 만들었다. 정연이는 아니라도 수연이는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남철이가 자신으로 인해 죽었다는 죄책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갔다. 별 생각 없이 어깨가 처진 정연이를 위로해줄 심산에 충동적으로 신발가방을 휘둘렀을 뿐인데, 청천벽력이 몰아치다니! 특히 수연이네와 남철이네는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어 거의 매일 만나리만치 친했고 서로의 집에도 자주 가는 편이었다. 수연이 부모도 남철이를 잘 알고 고 여사도 수연일 잘 알았다.
결국엔 수연이 부모가 고 여사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고 여사가 수연일 설득한 끝에 겨우 학교에 다시 나가게 되는 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슬픔의 절정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느끼는 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참척의 고통을 겪는 고 여사였다. 남편의 바람기에 격분하여 이혼해버리고 그런 남자에게 아들의 교육을 맡길 수 없다는 고집으로 남철을 데리고 나와 음식점을 하면서 애지중지 키워왔던 그녀였으니 그 슬픔이 오죽하랴. 아, 그때 고집이나 피우지 말았더라면 남철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흘러간 시간에 가정이란 없지 않은가.
겨우 슬픔을 추스르고 식당에 다시 나간 게 한 달 만이었다. 그 동안엔 식당을 차릴 때부터 고 여사를 도와온 주방장, 전주댁이 사람을 사가며 가게 문을 열었다. 식당이 바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 식당 문을 닫고 아파트로 들어서려면 언제고 남철이가 뛰어나올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식당에서 일을 할 때도 간혹 친구들을 데려 와 잔뜩 먹고 가곤 했던 아들인지라 혹시나 오지 않을까, 시도 때도 없이 밖을 내다보다가 정신이 들어 다신 올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눈물을 짜는 그녀였다. 남철이와 함께 친구들이 오면 그 자리엔 어김없이 수연이가 있었다. 그런 수연이도 요즘엔 전혀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한 번쯤은 남철이와 친했던 친구들을 데려올 법도 하건만. 죄책감도 죄책감이지만 어린 마음에 자신이 오면 더 마음 아파하리라는 걱정도 있으리라. 사실 가방을 휘둘렀다는 수연에게 왜 그랬느냐고 따지면서 실컷 퍼붓고 싶은,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착하기만 한 수연이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박복한 내 팔자려니, 남철이의 운명이 그것 밖에 안 되려니, 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집에 가서도 제일 먼저 들러보는 곳이 남철이 방이었다. 책상이며 컴퓨터, 교과서, 즐겨보던 만화책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 교복까지 깨끗이 다려 걸어놓은 그녀였다. 제일 먼저 청소하는 곳도 남철이 방이었다.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해도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영원히 그녀에게는 낙이 있으리라 생각되질 않았다. 손님에게 보이는 억지웃음 외에는 그녀가 웃는 일은 거의 없었다.
차마 바로 알릴 수 없어 뒤늦게 소식을 전하게 된 이혼한 남편은 생난리를 쳤다. 한번은 고주망태가 되어 식당까지 찾아와 남철이 살려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탁자를 뒤집어엎는 등의 행패를 부려 그렇지 않아도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짓이겨놓고 가기까지 했다. 자신은 벌써 재혼하여 세 살짜리 딸까지 두었으면서.
“흥, 죽어도 재혼은 안한다더니 이제 얼씨구나 잘 되었군!”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고 여사는 그의 행패를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내가 죄인이라고. 아무리 이혼을 했다한들 남철이에 대한 아빠의 애정은 각별했다. 예전에는 그게 참으로 가증스러웠지만……. 이제 남철이는 가고 없다. 어찌 그라고 나만큼 마음이 아프지 않으랴. 어찌 그라고 자신이 죄인이라 생각지 않으랴.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전화한 건 3개월이 지나서였다.
“당신 뭐라 할 생각 없었어. 그럴 자격이나 염치도 없고. 그놈의 짧은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거야. 내가 누구에게 화풀일 하겠어. 정말 미안해. 나보다 몇 배나 더 어처구니없고 참담해할 사람은 당신일 텐데.”
그때 전 남편이 울고 있다는 것을 전화기로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슬픔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열기를 뿜어대고 음식점 바깥 인도에 수시로 물을 뿌려야 하는 염천의 8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호스를 바깥으로 끌어내어 막 물을 뿌리려는데 온몸이 지저분한 강아지 한 마리가 혀를 헐떡이며 식당 앞에 서있었다. 뚜렷하게 어떤 품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잡종개로서 비쩍 마르고 어느 한 구석 볼품이라곤 찾아보래야 찾아볼 수도 없었다. 깨끗해야할 식당 앞에 개라니? 그것도 아주 더러운. 재수 없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저리 가!”
고 여사는 사정없이 내쫓았다. 그러나 그 강아지는 소리치면 잠시 피했다가 곧이어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때 강아지의 애처로운 눈과 마주쳤다. 아! 가슴이 짠해지더니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까지 솟구치는 게 아닌가. 이 강아지가 어미를 잃고 집을 잃은 것이거늘……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한들 내가 이렇게 야박하게 구니 우리 남철이가 떠났을지도 몰라.
그녀는 금방 주방으로 가 샴푸와 함지박을 들고 나와 개를 안아들었다. 함지박 속에 강아지를 넣고 물을 뿌리고 샴푸를 발라 거품을 내 박박 문질렀다. 강아지는 얌전히 있었다. 털 속속들이 거품을 먹여 헹구기를 여러 번 한 후에 자신이 쓰는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빗질을 하면서 드라이로 털을 말렸다. 그러는 동안 강아지 스스로도 기분이 좋았는지 고 여사의 팔뚝을 핥아대기도 했다.
닦아주고 말려주고 털을 빗자 강아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귀가 쫑긋 섰으며 꼬리도 기품 있게 말아졌다. 고 여사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입에 뽀뽀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하듯이 얼러대기도 하고 같이 재롱을 피우다가 얼굴을 비벼대기도 했다.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나를 찾아온 거야. 그런 줄도 모르고 쫓아내기만 하던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어이구 내 새끼. 보면 볼수록 미운 구석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렇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동생이 먹을려고?”
가게 구석에 있는 방에 짬을 내어 누워있던 전주댁이 부스스 일어났다. 고 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과 고기볶음을 비벼 강아지를 의자에 앉혀놓고 먹이기 시작했다. 먹는 모습 또한 그렇게 예쁠 수가!
“남철아, 많이 먹어라 응?”
무심코 나온 남철이의 이름. 고 여사는 스스로 놀랐다. 같이 밥을 먹다가 찌개에서 김치만 골라먹는 그녀의 밥그릇에 고기를 얹어주던 아들. 생선 가시를 발라 밥그릇에 얹어주면 그걸 다시 고 여사의 밥그릇에 옮겨놓던 아들. 아빠가 보고 싶어도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단 한 번도 내색을 안 하던 심성 깊은 아들. 부모의 이혼이 어린 아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조바심이 이는 것을 눈치 채고는 오히려 자기 반에도 이혼한 엄마 아빠들이 많다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위로해주던 아들이었다. 내 아들 돼줘서 고맙다고 말할 때 엄마 아들로 태어나게 해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생글거리던 아들이 눈에 선했다. 그런 네가 엄마는 어떻게 살라 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리다니…… 강아지의 맑은 눈망울이 아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 여사는 강아지를 남철이라 부르기로 작정했다.
“아니 이게 어디서 난 개새끼디야?”
방에서 나온 전주댁이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개새끼라니요, 형님도 참. 내 새끼여요.”
“별 일을 다 보겄네. 식당에서 개를 끌어안고 어쩔러고 그랴? 손님들 보면 질색일 턴디.”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특히 아이들은. 너무 예쁘잖아요, 형님?”
“퍽이나 예쁘겄네. 난 집에서 개새끼 기르는 사람덜 도싱 이해를 못하겄등만. 그놈의 똥오줌은 어떻게 하고 더군다나 사방군디 털 날리는 걸 어떻게 보냔 말여.”
말은 그렇게 해도 아들을 잃은 고 여사를 전주댁은 이해했다. 오죽하면 개새끼를 붙들고 저러랴, 싶었다. 아들 죽은 후 저렇게 환한 얼굴을 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아지 남철이로 인해 고 여사의 웃음이 되돌아왔다. 몇 번 시키지 않았는데도 남철아, 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 꼬리를 흔들어대며 폴딱폴딱 뛰었고 식당 뒤 창고주변에 간이 화장실을 마련해서 두 번 데리고 가 응아를 시키자 단 한 번도 다른 곳에 실례를 하지 않는 영리함도 보였다. 고 여사는 아담하고 예쁜 집을 식당과 집에 마련해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처음으로 아파트에 들어가자마자 강아지가 찾아들어간 곳이 남철이 방이었다는 것. 오랜만에 들어왔다는 듯이 침대에 뛰어올라 벌러덩 들어 눕는가 하면 한참을 뒹굴뒹굴하다가 책상에도 올라가고 의자에 앉아서는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렸다. 고 여사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강아지 집을 남철이 방 한쪽에 둘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 남철이는 여간해선 방에서도 잘 나오지 않았다. 살아생전의 남철이처럼. 참으로 알 수 없는 강아지였다. 고 여사가 주방에서 부르거나 안방에서 부를 땐 곧장 달려와 얼굴을 핥아대고 품에 안겼다가도 얼마 안 있어 남철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남철이가 엄마가 불러 용무가 끝나면 바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듯이.
고 여사는 꼭 아들 남철이가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다. 무너졌던 억장이 다시금 세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제 고 여사와 강아지 남철은 잠시도 떨어져서는 안 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그만 사건이 벌어졌다. 어떻게 꺼냈는지 서랍 속에 있던 남철이 사진이 방안 가득 펼쳐졌는데 유독 수연이 사진만을 찾아 찢어발겨 놓았다. 남철이와 수연이가 같이 찍은 사진도 남철이 얼굴은 말짱한데 수연이 얼굴만 찢겨져 있었고 여럿이 찍은 사진에서도 교묘하게 수연이 얼굴만 짓이겨 놓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고 여사는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수연이가 남철이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보고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왜 강아지는 수연이 얼굴만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느냐는 것이다. 얼핏 강아지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인간과 개가 서로 의지하면 산 역사가 길어 인간의 눈칫밥에 도가 트였다 할지라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강아지는 남철이도 수연이도 모르지 않은가. 혹 방에 남은 남철의 냄새로 인해 가장 가깝게 지낸 수연이에게 질투를 느껴서? 다른 여학생의 사진은 거들떠도 안 보기 때문에 정말 그럴 듯해 보이기도 했다.
남철이가 죽은 지 5개월. 그렇다면 강아지의 나이는? 그 생각에 이르자 소름이 쫙 끼쳤다. 동물병원에 가서 알아보면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다. 행여나 강아지 나이도 5개월 정도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충격을 감당해낼 성 싶지 않았다. 고 여사가 아무리 강아지에게 애정을 쏟고 좋아한다한들 남철이가 죽어 강아지가 되었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불교의 윤회설에선 이승에 살았을 때의 공덕에 따라 사람이 죽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소도 되고 돼지도 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전생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이승의 삶을 결정한다는데 설령 남철의 전생이 만족한 삶이 아니어서 이승에서 15년 밖에 못살았다 해도 그 세월 동안 남철은 그 얼마나 훌륭한 아들이었던가. 잔소리를 할 필요 없이 성적이 뛰어나고 친구관계도 좋았으며 학교에서 말썽 한번 피우지 않았고 그녀가 기억하는 한 남을 해코지 한 적도 없었다. 학교에 불쌍하게 된 아이가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돕기를 원했고 지하도에서 걸인을 만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저에게 없으면 그녀에게 달래서라도 백 원짜리 동전 하나일지언정 줘야만 했던 심성 고운 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강아지가 될 수 있어? 이건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야. 기이한 일일뿐이야.
고 여사는 다른 앨범을 뒤져 수연의 다른 사진을 던져놓아 보았다. 그러자 강아지는 기어이 수연의 얼굴을 이빨과 발톱으로 짓이기더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해놓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소름이 쫙 끼쳤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희귀한 이야기만을 엮은 텔레비전 프로가 있어 몇 번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 강아지와 남철이는 무슨 관계인가
아, 이 방에 들어온 남철이 여자 친구는 수연이밖에 없었다. 냄새라면 귀신이라는 강아지가 어쩌면 수연의 냄새가 남아 있어 광기를 부리는 거야. 남철이와 공유하는 이 방의 주인으로서 수연일 침입자로 간주하는 거야. 틀림없어.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차츰 강아지 남철이를 고 여사보다 좋아하게 된 전주댁이 옆집에서 있었던 강아지 이야기를 출근하지마자 하기 시작했다.
“아 글씨 개가 영물이란 소린 들어봤지만 그 얘길 들으니께 영물은 영물이드랑게.”
전주댁 옆집에 이제 막 육십을 바라보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여자가 혼자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 결혼시켜 제 갈 길을 가고 남편과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별거 상태라고. 그래서 의지하며 키우는 개, 해피를 끔찍이 위하며 사는데. 기독교신자인 옆집 여자가 해피가 짖기만 하면 시끄러워서 못살겠다고 민원을 하도 많이 넣어 더 이상 키울 수가 없게 되었다. 여자는 고민이었다. 너무 정이 들어 헤어진다는 게 끔찍했다. 이사까지 갈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절에 가느라 집을 비운 사이 해피를 부탁했던 산동네 아저씨에게 자신만큼 잘 돌봐주고 키워줄 사람 없겠느냐며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도 해피를 안고서. 그런데 그렇게 잘 먹던 해피가 그날부터 밥을 먹질 않고 산비탈에 있는 아저씨 집만 찾아다녔다. 아무리 해피가 좋아하는 사료와 음식을 줘도 막무가내. 그렇게 되니 여자는 아차, 하는 심정이 들었다. 아저씨에게 하던 말을 해피가 고스란히 알아들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생전 어디 나갈 줄도 모르고 여자 주위만 맴돌던 해피였으니까. 해피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얼마나 자기를 원망했을까 생각하니 해피를 볼 면목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아저씨가 마땅한 사람을 찾아 해피를 주기로 한 그날 산동네를 내려와 건널목을 걷고 있던 해피가 그만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해피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이가 민원을 수도 없이 넣었던 교회 다니는 옆집 여자였다.
“아줌마가 귀신 소굴인 절에 다니는 게 너무 미워 같이 사는 개 짖는 소리까지 듣기 싫어 신고했다고 그러드랑만? 해피를 잃은 여자는 남에게 주고자했던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해피가 충격을 받아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그렇게 죽었다며 징징 짜드랑게. 해피한테 너무 미안해 죽겠다고, 이젠 당신이 며칠째 밥도 못 먹고 있더라니까. 그렁께로 너무 강아지한테 정 주지 마.”
고 여사가 고민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지만 어쨌든 강아지 남철은 고 여사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렇다고 께름칙한 기분이 완전히 가셔지진 않았다.
결국 고 여사는 수연에게 전화했다. 친구들과 한번 와줄 수 없겠니? 아줌마가 맛있는 것 해주고 싶은데…… 꼭 보여줄 친구도 있고.
방학 중이었던 수연은 바로 다음날 정연이와 남철이랑 가장 친했던 남자친구 성민이와 함께 꽃을 한 아름 사들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식당을 찾았다. 한가한 시간을 찾아서 온, 알만큼은 아는 아이들이었다.
“죄송해요, 아줌마.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수연이 오자마자 고 여사 품에 안겨 눈물을 훌쩍였다.
“아냐, 괜찮아. 아줌마도 이젠 슬픔에 많이 단련됐어. 너도 잘 이겨내야 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건강하게 그 날벼락을 이겨낸 날 못 봤을 거야. 그래서 이제야 너한테 전화한 거고. 어떻게, 공부는 열심히 하지?”
“네.”
고 여사는 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성민일 바라보았다.
“남철이 어머니, 저도 죄송해요. 남철인 제 단짝이었는데…….”
“그래 알아, 성민아. 너희들마저 안 오니까 서운하긴 서운하더라. 그렇지만 안 오길 더 잘했어. 너희들이 자주 왔더라면 더욱 남철이를 못 잊었을 걸? 이제 정말 괜찮다? 이렇게 의젓하게 일 열심히 하고 있잖아. 앞으로는 정말 자주 안 오면 진짜로 서운하게 생각할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 올 때는 꼭 빈손으로 와야 돼. 꽃이 얼마나 비싼데 이렇게 많이 사왔어. 너희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절대 그러지 마.”
“알았습니다. 앞으로 성가실 정도로 오겠습니다. 꼭 빈손으로요.”
셋 모두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식당 뒤에서 강아지 남철이가 낑낑거리며 짖어댔다. 고 여사는 강아지에게 미안했지만 바쁜 시간엔 어쩔 수 없이 묶어두었다. 그녀는 과연 강아지가 수연이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그게 궁금했다.
“아, 참. 내가 너희들에게 소개시켜줄 친구가 있어.”
“친구라니요?”
“잠깐만 기다려.”
고 여사는 강아지 남철이를 데려왔다.
“남철아, 친구들이야.”
그러자 강아지는 탁자를 가운데 두고 넷이 앉는 빈 의자에 사뿐히 올라앉아 수연을 보았다. 아, 어쩌면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저 애절한 눈빛이라니! 셋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가 남철이라고요?”
“그렇단다. 남철이 노릇을 톡톡히 하니까 남철이지.”
“그럼 오늘 수연이 짝꿍 찾았네?”
정연이가 짓궂게 웃으며 수연일 가리켰다. 남철이의 일방적 짝사랑만은 아니었나보다. 성민이와 정연이가 친했고 남철이와 수연이가 친했고. 수연이 새삼스러운지 강아지 남철에게 수작을 부리더니 덥석 안았다. 그런 수연이의 얼굴을 강아지 남철은 뭘 알고 그러는지 계속해서 핥았다. 사진을 찢어발기던 때완 전혀 딴판이었다.
“오늘 정말 잘됐다.”
수연이가 강아지 남철을 안고 희색만면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수연이의 얼굴을 보는 고 여사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 물었다.
“뭐가 잘됐는데?”
“아줌마, 오늘요. 우리 사실 여기 들렀다가 남철이한테 갈 계획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강아지가 진짜 남철일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데려가도 되죠?”
진짜 남철이? 그 말을 들은 고 여사는 슬픔이 자욱이 밀려들어 목구멍이 아리고 코끝이 찡해왔다. 아, 이 자리에 남철이가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색을 할 순 없었다. 수연이 사진만 보면 찢어발기더라는 얘긴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고 여사는 손수 갈비를 구웠다. 전주댁이 거든다는 걸 쉬라며 말렸다. 그리고 숲에 가지고가서 먹을 통닭 두 마리도 주문했다. 아이들은 재미있었던 옛날 일을 들춰내며 화기애애했다. 옆에서 듣고 있는 강아지 남철이도 이야기를 알아듣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한 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서 아이들이 주는 음식들을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고 여사는 일만 아니라면 자신도 남철이나무에 가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먹는 동안 고 여사는 꽃집에서 국화를 한 다발 사고 주문한 통닭을 음료수와 함께 가져와 몇 가지 과자를 더 넣어 보따리를 꾸렸다. 모두가 생전에 남철이가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아이들은 한참동안 먹고 마시고 떠들더니 숲에 가야겠다고 일어섰다. 역시 삶의 희로애락은 산 자의 특권이다. 남철이가 죽었어도 산 자는 잠깐 슬픔에 잠겼다가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훌훌 털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엄마인 나도 별 수 없었지 않은가. 변치 않은 건 죽은 자의 부재뿐.
강아지 남철이는 수연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강아지가 수연이 좋아서 붙어있는 건지 수연이가 남철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애틋해서 품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별일은 별일이었다. 고 여사가 그런 강아지가 기특해 손을 내밀었다. 엄마한테 오라고. 그러자 수연을 한번 쳐다보더니 폴딱 뛰어서 품에 안겼다가 얼굴을 잠깐 핥더니 다시 수연의 품으로 날아가 버렸다.
“저 배은망덕한 놈 봐.”
성민이 그렇게 말하자 정연이 말했다.
“생전의 남철인 저러지 않았어. 쟤 아무래도 가짜 같애.”
그럼 진짜일까? 생각하며 고 여사가 한술 더 떴다.
“너 그렇게 엄마보다 여자 친구가 좋니? 돌아와서 보자. 엄마 삐져있을 테니까. 그럼 잘들 다녀오너라.”
고 여사는 아이들이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택시비를 굳이 수연이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모두가 인도로 나가 안녕히 계세요, 를 외치자 강아지 남철이도 꼬리를 흔들며 컹컹 짖어댔다.
내가 괜한 일을 했나? 사그라지던 슬픔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와 고 여사의 가슴에 사정없이 부딪쳤다.
수연이 일행은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그리 멀지 않은 산이라 택시나 버스나 별로 시간 차이가 나지 않거니와 좁은 택시보다 널찍한 버스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산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수연은 강아지 남철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우스운 건 얼마쯤 달려갔다가는 꼭 되돌아보고 다시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수연인 강아지 남철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번쩍 안아들어 꼭 입맞춤을 하고 내려놨다. 그러자 더 신이 났던가, 가다가 돌아오는 거리가 차츰 짧아지더니 아예 숲으로 들어가서는 수연만을 맴돌며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정말 쟤 남철이 똑 닮았다. 남철이 살았으면 아마 저러고도 남았을 걸?”
성민의 말에 정연도 지지 않았다.
“너는 그것도 모르니? 남철이가 뛰는 게 아니라 수연이가 저러고 싶을 걸?”
“어휴, 이것들이 그냥. 너네나 솔직해라. 그러고 싶으면서도 못하잖아. 내가 있어 못하니? 나 안쳐다볼 테니까 둘이 실컷 해보라고.”
“정말 그러고 싶지만 저기 누워있는 남철이 속상할까봐 참는다, 왜?”
“너희가 언제 그런 거 따졌어?”
웃고 떠드는 사이 남철나무까지 왔다. 웃음들이 쏙 들어갔다. 수연인 끝내 나무 둥치에 국화를 놓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덩달아 정연이와 성민이까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두의 숙연해진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강아지 남철이가 힘 있게 짖어댔다. 수연인 그 짓는 소리가 더 애절하게 들렸다.
“미안해 남철아, 진심으로 사과할게. 고의가 아닌 줄 잘 알지? 그렇지만 너는 그렇게 가버렸는데 어떻게 내 진심을 전할 수 있겠어. 공원에서 네가 날 안으려고 했을 때 솔직히 겁이 나서 거절했어. 지금은 그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몰라. 너희 집에서도 그렇고. 그렇지만 남철아, 내 진실은 커서도 너와 계속 사귀고 싶었다는 거야.”
수연인 나무를 오래도록 붙잡고 울먹였다. 그러자 강아지 남철이 낑낑거렸다. 수연인 그런 강아지를 부둥켜안고 볼을 비벼댔다.
“너희 엄마 얼굴을 영영 볼 자신이 없었어. 그런데 오늘 너무 잘해주셨어. 어떻게 내가 강아지 좋아하는 줄 아시고 네 이름과 같은 강아지를 함께 오도록 해주시고. 너무 예쁜 강아지야. 나도 계속 네 이름 남철이라 부를 거야. 그리고 자주 가서 놀아줄 거야.”
그런 사이 정연과 성민은 주변의 잡목들을 발로 밟아 넘어뜨리고 가져온 깔판을 깔아 음식을 풀었다.
“그만 해, 수연아. 남철이도 네가 너무 슬퍼하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그럼 뭐해. 남철인 분명히 나 때문에 죽었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한 건 네가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니잖아. 평소에도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남철이 죽음은 불가항력이었다고. 우리가 길을 지날 때 옆 건물이 무너져 깔려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벼락을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너는 그때 남철이를 위해 우산을 펴들었을 뿐인데 그 우산 꼭지가 벼락을 불러들여 넌 죽지 않고 운이 나쁜 남철이가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성민이가 나름대로 다시 죄책감을 부르고 있는 수연을 달랬다. 강아지 남철이는 수연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핥고 있었다.
“빨랑 와. 남철이 엄마 모르게 깡통맥주 네 개 사왔단 말이야. 먼저 네가 남철이에게 부어 줘. 남철이가 맥주는 곧잘 마셨잖아.”
성민이 재촉하자 수연이 눈물을 훔치고 돌아서 맥주를 손에 들고 강아지 남철을 땅에 내려놨다. 그리곤 마개를 따고 남철이 이름표가 있는 곳에서부터 술을 흘려주었다. 누런 맥주가 줄기를 따라 빠르게 흘러내렸다. 그걸 강아지 남철이 혀를 널름거리며 핥아먹었다. 입맛까지 다셔가면서.
식당에서 갈비를 많이 먹어 치킨에 손들이 왈칵 가지 않았다. 수연인 맥주를 홀짝거리며 치킨을 남철나무 주위에 던졌다.
“너 좋아했던 거잖아, 남철아!”
강아지 남철이 치킨을 좇아갔다.
“맞아, 남철인 치킨 두 마리쯤 먹어야 양이 찼었어.”
숲이라 해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서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큰키나무인 소나무나 참나무 밑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또 다른 숲을 이루었다. 싸리나무, 도토리나무, 깨금나무, 그리고 각종 넝쿨과 억새까지. 바닥에는 차곡차곡 쌓인 낙엽들이 습기를 머금은 채 썩어가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살랑거리고 매미가 줄기차게 울어도 숲은 조용하게 느껴졌다. 목구멍으로 맥주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셋 모두 반바지에 양말을 신지 않은 샌들 차림.
수연이 발이 저려와 발 하나를 싸리나무 쪽으로 뻗었다. 그때 마침 정연의 눈에 뭔가가 수연의 발에 슬그머니 접근하는 게 보였다. 뱀이었다. 야생에서 뱀을 직접 본 건 처음. 그래서였을까.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손가락만 가리키는데. 그 뱀을 향해 번개처럼 돌진하는 뭐가 있었으니. 바로 강아지 남철이었다. 그때서야 정연이 입에서 비명이 터지고. 셋은 벌떡 일어났다.
강아지 남철이 뱀의 목을 물고 있었다. 그런데도 뱀이 강아지 남철의 몸통을 휘감았고…… 아, 그런데 뱀이 강아지 남철의 코를 물고 있다니! 강아지 남철은 펄쩍펄쩍 뛰며 몸을 마구 굴렸다. 뱀과 강아지 남철의 사투였다.
성민이 남자일지라도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떻게 할 줄 모르고 쩔쩔매다가 겨우 가는 싸리나무 가지를 꺾어 손에 들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수연과 정연은 어떻게, 어떻게만 연발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발만 동동 구르고.
한참이나 수풀을 구르며 사투를 벌이던 강아지 남철과 뱀이 조용해졌다. 성민이 다가갔다. 이미 강아지 남철의 코를 물었던 뱀의 입은 떨어져 널브러지고 이따금 몸통만 경련을 일으키듯 꿈틀거렸으며 아직까지도 뱀의 목을 물고 놓아주지 않은 강아지 남철도 지쳤는지 배를 땅에 대고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성민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놀란 가슴만 벌렁거리는데 마침 중년의 등산객 한 명이 산을 내려오고 있는 게 보여 쏜살같이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산이 원래 뱀이 많아. 조심해야 혀. 그런 차림으로 숲에 들어왔다간 아주 위험해.”
등산객은 상황을 보더니 강아지 남철의 배를 휘감고 있던 뱀의 몸통을 스틱으로 걷어내며 뱀 머리를 살피더니 절망적인 말을 뱉었다.
“이거 독사야. 요즘 독이 많이 오를 땐데 강아지가 물렸으니 이미 틀린 것 같은데?”
그러면서 뱀을 스틱으로 감아 아직도 물고 있는 강아지 남철의 입에서 빼내는데 애를 먹었다. 어찌나 세게 물고 있었는지 뱀의 목은 으깨져 있었다. 강아지 남철의 움직임도 사라졌다. 등산객이 강아지 남철의 배에 손을 짚어 숨결을 살폈다.
“안됐지만 죽었어.”
그 소리가 수연을 또 절망케 했다. 수연은 통곡했다. 원래 뱀의 목표는 수연이었다.
“아니, 어린 학생들이 그런 차림으로 이런 데까지 와서 술을 마시고 놀면 어떻게 해!”
등산객은 아주 못마땅하다는 듯 역정을 냈다. 그러자 성민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오히려 등산객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강아지 남철을 남철소나무 밑에 묻어주겠다고 했다. 성민은 조용히 전화기를 꺼내 고 여사에게 다시 한 번 상황 설명을 했다. 한동안 말을 못하던 고 여사의 말이 전해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니. 남철이가 또 한 번 너희를 놀라게 했구나. 제발 침착해라. 그 아저씨가 정말 고마운 아저씨구나. 그 아저씨 말씀대로 거기에 묻어주렴.”
등산객은 스틱으로 빠르게 구덩이를 팠다. 그리곤 바닥에 낙엽을 깔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다 죽은 강아지 남철을 편안한 자세로 눕히고 다시 낙엽을 얹은 다음 파낸 흙을 덮었다. 그러는 동안 수연이는 울고 또 울었다. 자신이 남철이를 두 번이나 죽인 것만 같았다.
고 여사는 성민의 전화를 받고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어이없는 사고로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갈 수밖에 없었던 남철이가, 그 영혼의 간절함이 강아지를 통해 발현한 것으로 믿었다. 또한 수연에 대한 애틋한 사랑까지도 아울러서 그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그걸 예방한 후에 자신이 가야할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라 믿었다. 어쨌든 강아지 남철을 잃은 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남철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리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강아지 남철을 잃고 온 세 아이들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울고 불며 자신들의 놀라움은 뒤로 한 채 고 여사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고 여사는 같이 울다가 웃었다. 얼마나 놀라움이 컸느냐고 오히려 아이들을 다독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강아지가 내게 왔고 오늘 너희를 따라가 뱀을 죽이고 수연이를 위험에서 구한 것은 남철이의 간절한 염원의 발로였다. 우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을 만큼의 간절함. 이제 너희들도 남철이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라. 남철인 좋은 곳으로 갔을 거다.”
그렇게 말하는 고 여사의 표정이 한결 안정되어 보였다.
고 여사의 말을 들은 수연이는 강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배가되었던 충격이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끝-90매).
첫댓글 우와~~~
이 소설을 읽고 보니 나도 단편이라도 쓰고 싶다란 욕심이 솟기도 하고
자신감이 사라지기도 하고 ...
에궁...
단편이지만 짜임이 강하고 너무 감명입니다.
이 작품은 어느 봄날 만개한 벚꽃 그늘에 한참을 서있다가 전류처럼 머릿속으로 짜르르~ 흐르는 게 있어 집에 와 초고를 단숨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재고, 또 재고, 그렇게 퇴고를 몇십 번 거듭한 후에 발표했습니다. 나의 몇 안되는 전인적 작가의 시점으로 쓴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