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가전체 소설인 麴醇傳(국순전), 孔方傳(공방전) 등을 지은 林椿(임춘)은 중국 사람이었던 할아버지가 고려에 귀화하면서 한반도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는데, 임춘이 예천에 자리를 잡아 살면서 백성들을 보살피는 일을 많이 했다. 그는 예천 임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玉川書院(옥천서원)은 임춘을 모시기 위해 조선 중기에 지은 것이다. 임춘은 산에 굴을 뚫어 물길을 만들어 논에 물을 댈 수 있도록 하기도 했는데, 굴모리굴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
登降城(등항성)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항복문서를 받았던 곳인데,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에 있는 것으로 말의 등처럼 생긴 마산(馬山)이 그것이다.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御臨山城(어림산성)을 없애고 그 자리에 揚水(양수) 댐을 만들었는데, 수자원공사에서 이것을 등항성이라 우기고 있다. 이곳은 신라에서 만들었던 성터가 있던 곳인데, 고려 말에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가던 공민왕이 3개월 정도 머물렀던 곳이어서 어림산성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등항성(마산) 유적지에는 어떤 표지나 안대가 없어서 찾기가 쉽지 않고 아는 사람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풍기 喜方寺(희방사)를 창건하기도 했던 杜雲禪師(두운선사)는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기여했는데, 그의 공로에 보답하기 위해 고려 태조가 세운 사찰이 龍門寺(용문사)이다. 大藏殿(대장전)과 輪藏臺(輪藏臺)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깊은 산속에 웅장하면서도 고즈넉한 사찰이다.
하회탈로 유명한 하회마을은 고려 중엽부터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말 무렵에는 풍산 류씨가 정착하여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촌락이 형성되었다. 조선 중기에 풍산 류씨 문중에서 정계 진출 인물이 배출되면서 더욱 번창했는데, 유성룡(柳成龍)은 임진왜란을 슬기롭게 극복한 명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 북쪽 강 건너에 있는 芙容臺(부용대)에 올라가면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회마을의 핵심은 유성룡의 부친이 살았던 집(양진당)과 유성룡이 살았던 집(충효당)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 산림치유원에 숙소를 잡아서 경상북도 풍기와 예천의 명승지와 유적지를 중심으로 돌았던 이번 여행은 모든 면에서 아주 만족할 정도로 훌륭했다.
첫댓글
성불하십시오._()_ _()_ _()_.
@손종흠 교수님 제주를 떠나신지 10년이 됩니다.
@법운 그러네요.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기억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손종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