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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상고 12
9 ● ▥ 3 계단
6 교문 |
학교 전체 땅(부지)을 4각 시계로 생각하자. 교문이 6시, 앞을 내다보면 막히는 곳이 없이 시선이 닿는 경기상고 경계선을 12시로
생각하자. 중간쯤에 운동장과 고등학교 건물을 잇는 계단이 있다. 이 계단 맨 아래가 시계바늘의 축, 전체 학교 땅의 중심으로 정한다. 계단을 올라 곧장 가면 고등학교 본관 앞을 지나 끝에 강당, 학교 경계선 밖에 자동차길 쪽이 3시 방향이다.
다시 중심에서 왼쪽 인왕산 방향으로 끝에 가정집이 있는 곳이 9시 방향으로 정하자.
등교 시 교문을 들어서기 직전 좁은 개천이 있고 그 위에 짧은 다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다리 같지도 않다. 내 중학교 입학 사진에 보면 다리 난간이 있다. 오른쪽에 오래된 우물에 파란 이끼도 곳곳에 끼어있었다. 북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있기에 우물물이 맑고 깨끗하다. 동네 사람들이 그래도 그 우물을 사용했다. 학교 담을 끼고 양쪽으로 죽 가정집들이 서 있다.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가정집 대문들이 나있다. 교문 왼쪽도 마찬가지이나 왼쪽은 지대가 낮아져서 얼마 안가 내려서는 두어층의 계단이 있었다.
개학을 하면 으레 헌책을 파시는 한 아저씨가 오셨다. 머리가 희끗희끗하시고 머리숱도 적으셨다. 등교 시 오른쪽에 주로 좌판을 펴셨다. 학생들로부터 헌책을 사들여서 다시 되 파신다. 바닥에 깔린 책은 언제나 많지가 않다. 책은 자전거로 두꺼운 누런 상자에 담아 오셨다. 오전 등교 시와 하교 시에 한 시간 정도씩 머물다 가셨다. 수입도 많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우리들도 학년이 올라가면 사용하던 책을 팔고 새로 헌책을 사기도 하였다. 교과서가 아니고 대부분 참고서이다. 가끔씩 문학책도 있다.
아침에 교문을 들어설 때면 학도호국단 학생들이 팔에 완장을 차고 서 있고 우리들은 들어가면서 거수경례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지 그곳에 서 있던 임원들은 생각이 날 것이다.
교문을 들어와서 7시 방향 중학교 본관으로 가는 길 왼쪽에는 아주 큰 은행나무가 두어 그루 있었다. 그리고 꽤 길쭉한 수영장이 있었다. 그래도 그 수영장이 표준 규격에 맞게 지은 것이다. 한 여름에만 사용하니까 물은 없고 언제나 철문이 닫혀있다. 수영장은 내가 다니던 수송국민학교에도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학교를 지으면서 수영장을 세웠다. 일본은 여름에 습기가 많고 후덥지근해 씻지 않고는 잘 수 없단다. 또 해양국가라 수영을 학생들에게 많이 권장했기에 지었단다. 우리도 여름에만 물을 넣고 수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집이 멀어서 수영을 한다고 학교로 가지는 않았다. 또 물 값이 비싸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수영장을 오랫동안 개장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수영장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수영반 친구들은 알 것 같다.
수영장 끝 학교 왼쪽 구석에 작은 교실 하나가 있었다. 이름하여 1학년 5반 교실이다. 외벽은 나무판자를 가로로 붙인 단독교실이다. 아마도 다른 용도로 쓰였던 곳을 교실이 모자라 임시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담임은 임우경 영어 선생님이셨다. 어느 날 영어시간이다. 숙제는 어제 배운 곳을 외워오는 것이었는데 나는 외우지도 않고 수업 중 외우겠다고 손을 들었는데 아 글쎄 나를 시키셨다. 그래 일어나서 외운다고 한두 마디 말하는데 마침 그때 변성기가 와서 목소리가 이상해졌다. 그래서 선생님이 웃으시며 그만 중지시키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교실에서 얼마 후 중학교 본관 뒤에 있던 구관 1층으로 옮겼다. 구관은 신관과 달리 지은 지 꽤 오래되어 나무가 많이 누렇다. 자세한 기억은 물론 없다. 하지만 구관 1층에서 공부한 기억이 난다. 사실 어느 곳을 먼저 사용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구관이 생각나는 이유는 수학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다리가 불편하셔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는데 내가 그 선생님을 놀렸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수업 중에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교통순경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순경이 몰랐다가 나중에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에는 신호등이 없고 교통경찰이 있는 사거리도 많았지.
김건, 변영준, 조병훈, 이만규 등이 1학년 5반에 같이 있던 친구들이다. 여기 이름을 쓸 수 있는 것은 그때 찜뿡이라는 야구 비슷한 놀이를 하면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찜뿡은 교실 앞이 아니라 구관과 체육관 사이 빈곳이다. 교실 바로 앞은 마당 높낮이가 일정하지가 않아 놀이를 할 수가 없었다.
7시 방향, 1학년 5반이 운동장 끝이고 직각으로 꺾인다. 꺾여서는 옛 창고가 길게 한 동이 있다. 건물은 하나지만 문은 양쪽으로 크게 2개가 있다. 언제나 닫혀있어 무엇이 그 안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창고가 끝나면 작은 목조 건물이 또 있다. 이 건물은 문이 담쪽으로 났다. 첫 번째가 역도부실이다. 방과 후에는 역도부원들이 가서 운동을 한다. 운동기구가 꽤 많다. 역기 아령 바벨 또 누워서 역기를 드는 의자 등등이다. 역도부실이 작아 보통 때에는 기구를 밖, 마당으로 내놓는다. 운동부원들이 운동기구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운동을 한다.
그런 운동부실이 있어서 체격이 좋은 친구(김철남, 김희철, 최청평, 안민원, 곽초길, 박영일, 김인보 등등)도 많았던 것이 아닐까. 그 당시에도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을 집에다 사놓고 운동하기에는 사실 어려운 시절이다.
김철남은 몸매만 좋은 것이 아니다. 어깨가 넓고 당당하다. 당수(태권도)를 하였는지 제자리에 서서 발을 올리면 상대편 얼굴까지 쉽게 올라온다. 한 번 맞았다하면 그냥 땅바닥으로 고꾸라질 것이다. 은근히 겁이 나곤했다.
김인보,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호남 형이다. 얼굴에 큰 굴곡이 각지지 않고 완만하게 잘 어우러졌다. 그래서 마치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인중에는 어렸을 적 다쳐 가늘고 흰 상처가 살짝 남아있었다.
최청평은 높은 코에 기상이 넘쳐 학도호국단 대대장이 되었을 때 군인 장성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근육만 따진다면 안민원이 제일 탐스러울 정도로 볼록볼록하게 잘 발달된 육체미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갖지 못한 몸매를 가지고 있고 키도 나만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김희철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면이 있어 부담 없이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곽초길은 콧방울이 멋지게 올라갔다. 삼국지 등에 나오는 의인, 또는 귀인 같은 느낌이었다.
박영일, 그저 평범하다고나 할까, 별 특징이 없었지. 부담이 없으니 어렵지 않아 좋았다.
역도반 옆에도 창고가 있었고 앞에는 책걸상 부서지면 고쳐주는 목공실이 그쪽에 있었던 것 같다. 책걸상이 망가지면 그곳에 갖다 놓고 다른 책걸상을 가져가면 된다.
서쪽 학교 경계선 담장을 끼고 9시 방향으로 올라가면 체육관이 있다. 물론 바닥은 나무이고 무슨 칠을 해서 유리 같은 농구부 전용 구장이다.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운동부가 농구부이었다. 시합에 나가면 그래도 이기고 오는 경기가 농구부. 무엇보다도 전용 체육관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데 농구부 하면 배창남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1학년 때 농구부 모집을 하여 선수가 되는데 배창남이 뽑혔다. 그렇지만 농구는 키가 커야 유리한데 창남이는 2학년 3학년이 되어도 더 이상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키가 커서 선수생활을 잘 하지만 창남이는 결국 농구를 포기해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김인건 송영택 그리고 몇 명이 더 있었지만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일본으로 가서 이기고 돌아온다고 환영행사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으로 원정경기를 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이기고 돌아오다니 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1992년 경복에 재직했을 때에도 농구부는 활발하게 시합에 나갔다. 자주 붙는 상대는 휘문고등학교이다. 맞수가 되는 학교와 경기가 있으면 학생을 단체로 동원, 응원을 나간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모교 출신 선생님들은 꼭 따라 나가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응원을 한다. 모교 출신, 무엇인가 달라도 역시 다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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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시절로 되돌아 간듯, 추억이 새롭구나. 동창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옛추억을 한가지씩 풀어놓으면 책 한권은 되고도 남을텐데. 졸업50주년 기념으로 시도해 보면 어떨까.....
맞습니다. 좋으신 생각이네요. 각자 특활반 하나씩만 맡아서 써도 좋을 듯 합니다. 졸업 60주년이 맞지요.
ㅋㅋ 내정신 좀 보게. 60주년이 맞네요. 잠시 결혼 50주년하고 햇갈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