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푹신 한 것이 꼭 솜털 이불 같아요."
"솔잎 낙엽으로 덮힌 땅을 사뿐사뿐 밟으니 솔향이 온몸으로 느껴져요."
2월 19일 여수풀꽃사랑 수암산 답사길은 4시간 내내 콘크리트 길이 아닌 숲길, 흙길을 걸었다. 신월동에서 출발하는 31번 버스가 오후 1시가 아니라 12시 44분으로 변경되어서 시내버스 때문에 시작부터 혼쭐이 났다. 결국 향일암님은 차를 놓쳐서 택시를 타고 율촌면 신산마을까지 서둘러 오셨다. 페이스북 안내를 보고서 함께하신 청유 선생님은 마을 초입에서 합류를 하여서 모두 15명이 되었다.
모두들 오늘은 평소보다 사람이 적어서 정감이 가서 좋았다고 한다. 신풍 봉화산인 신산마을 뒷산에는 범바위가 있다. 마을 뒤 대나무숲 오르는 밭 언덕에는 개불알꽃과 냉이꽃이 앙증맞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에 질세라 코를 씩씩 불면서 매화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매화꽃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범바위 오르는 소나무와 진달래 사이에는 새파란 노루발 뿌리잎이 여기저기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꽃대가 올라오면 훨씬 보기가 좋을 것 같다.
가까스레 범바위를 올라 발 아래 펼쳐진 율촌산단과 광양만을 둘러본 풀꽃 식구들은 입이 쩍 벌어진다. 광양 컨테이너부두와 여수가 이렇게 가깝다는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암벽타기 기분을 만끽하면서 산 능성이까지 올라서 남서쪽 방향을 따라 내려간다. 여기서부터는 소나무와 진달래가 엮어내는 은밀한 숲길이다. 솔잎이 융탄자처럼 푹신푹신한 길을 걷고 있으면 '나 잡아봐라!'가 절로 나올 것 같은 길이다.
간간히 고려잔디가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얼었던 흙과 마사토가 밟으면 부시시하고 부스러지면서 내는 소리가 더욱 촉감을 느끼게 한다. 후산마을에서 올라오는 재 몰랑, 덕전골은 옛적에 백자를 굽던 가마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족히 100년을 넘었을 산벚나무 고목 아래 널따란 돌은 힘들여 고개까지 오른 나그네에게 쉼터를 만들어 준다.
이제는 경사가 심한 태봉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산을 빙빙 돌아서 선바위 2개가 신전 기둥 같은 양지바른 묘에서 즐거운 주전부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도 역시 각기 다른 것들을 싸오셔서 맛보기가 바빴다. 시인께서 가져온 집에서 만든 엿이 쬐끔 더 인기였는지 모른다. 처음 오신 선생님께서 살을 빼려 산에 와서 오히려 살을 찌게 생겼다고 엄살을 떠신다.
태봉산 정상이 눈에 보이는데 걱정이다. 예비 답사 때 사기점골까지 내려가는 길이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오르기로 하였다. 키 작은 진달래와 싸리나무, 청미래덩굴이 뒤덮힌 곳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사람이 빤히 보이면서 발 아래 길은 다른 데여서 당혹스런 산행이다.
정상에서 노란 리본을 보았지만 그 때부터 우리는 탐험가의 자세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내려갔다. 무조건 북쪽으로, 돌 무더기가 많은 곳으로 내려갔다. 정작 길이 아닌 것 같았고, 잘못 들어섰는 것 같았는데 눈썰미가 좋으신 분이 '그대와 함께 걸으면 행복한...'이라고 씌여 있는 부산 사람의 리본을 발견하였다. 길이 아닌 것 같으면서 길인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길을 발견한 기쁨은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하였다.
취적리 레미콘회사쪽으로 올라오면 만나는 논이 많은 곳을 '사기점골'이라고 한다. 옛날 조선 백자 가마터가 모여 있는 곳이다. 지금도 백자 그릇, 일반 백성들이 쓰던 그릇 조각들이 나뒹굴고 있다. 흰색의 점토, 고령토가 많이 보인다. 이곳은 아직도 3천평 가량의 넓은 논을 경작하고 있다. 수암산 주변은 5개의 저수지가 있고, 1급수인 연화천이 시작되는 물방아골은 절경 중에 절경이다.
수암산의 투구봉을 산 아래에서 보면 진짜로 커다란 투구처럼 생겼다. 그 옆과 산 정상에는 거북이와 같고, 두꺼비 같은 것이 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의 바위가 있다. 이쪽에서 오르면 몇번 불이 나서 민둥산 같이 어린 나무 뿐이어서 금세 오를만한 수암산이다. 투구봉 꼭대기에서 와온쪽을 보면 해가 곧 떨어질 것 같다. 서둘러 산 정상까지 올라 내려가는 작은 봉우리, 바위 위에서 해넘이를 보는 순간, 모두가 뿅 간다. 이렇게 아름다운 낙조에 정신이 팔려 내려갈줄 모르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율촌면 가장리, 지금은 아름다운 '가'와 길 '장'을 쓰지만 옛날에는 임시로 매장하는 뜻의 가장이었다고 한다. 풍장을 하는 풍습이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수암산에서 가장리 문화마을까지 내려가는 길은 반대쪽에서 수암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길었다. 만약 거꾸로 오른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한다.
6시를 살짝 넘긴 어둑해져서야 문화마을에 도착하였다. 예쁜 집들이 곳곳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빈터가 많이 남아있다. 우리를 기다리는 '풀뿌리 흑두부집'에서 우리는 1인분에 8천원 하는 청국장과 순두부를 돌솥밥에 먹었다. 시장이 한 몫 하였겠지만 까다로운 여자분들의 입맛은 높은 점수를 주었다. 여러 가지를 넣은 뜨끈뜨끈한 잡곡밥에 정갈한 반찬은 펜션 같은 집안 분위기와 어울려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고, 7시 20분에 두봉에서 출발하는 31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거의 시내버스를 우리가 전세낸 것이나 다름 없었다. 우리 풀꽃 식구들은 오늘 신풍 봉화산과 태봉산, 수암산을 잇는 4시간 정도 숲길은 역시 '은밀한 숲길', 조선 백자를 지게에 지고 다녔던 길, 여순사건, 동학전쟁, 6.25 전쟁 때 쫓기는 몸이 다니기 안성맞춤인 길이었다.
첫댓글 행복한산행을 다녀오셨네요 땀 흘리고 난후 먹은 저 밥상은 얼마나 맛있었을꼬
넘 맛있어 어떻게 먹은줄도
새봄맞이 산행에 지역 홍보에 역사까지 풍성한 하루엿네요 좋은흔적은 많은분들이 거워 하는군요
여수에도 역사에 서린 추억들이 깃든 산행코스가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