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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지혜(智慧)”라는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꿀 때에 “슬기”가 되며, “슬기”는 사물의 이치를 밝혀 시비를 가리고 사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낯선 여자”는 잠언 4장과 5장에서 대조되어 언급됩니다.
외국어에는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시는 여성 명사입니다. “지혜”는 여성 명사입니다. 잠언 4장과 5장에서는 여성 “지혜”와 “낯선 여자”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잠언 4장은 “지혜”를 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1) 잠언 5장은 “낯선 여자”를 품는 것은 미련하다는 내용입니다.2)
사람은 “지혜”를 품어야 하며, “낯선 여자”를 품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양쪽 중에 누구를 품느냐에 따라서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잠언 4장은 “지혜”를 품으면 지혜가 그 품는 자를 높일 것이라고 하였고, 잠언 5장은 “낯선 여자”를 품는 자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품어야 할 대상이 있고 품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1. 서론: 지혜에 주의하고 이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잠언 5장 1-2절에 “나의 지혜에 주의하고 나의 이해에 귀를 기울여라. 너는 분별들을 지키기 위해서고 너의 입술이 지식을 보호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성적인 유혹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해 숨기지 아니합니다.3) 성경은 성적인 유혹에 대해서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성적인 영역에서 굴복할 경우 있게 될 재앙을 경고하는 동시에 순결한 마음을 소유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성적인 기쁨을 약속합니다. 교회에게는 성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4)
우상숭배의 매춘을 언급하든지 창녀나 혼외정사의 유혹을 언급하든지 그 유혹과 그 위험은 매우 큽니다.5) 그 유혹이 육체적인 것이든지 영적인 것이든지 그 위험이 매우 큽니다.
5장 1-2절은 ‘음행에 대한 경고의 서론’인데, 주의하라는 것입니다.6) 미리 경고하는 것입니다.
지혜롭다면 자신의 마지막에 어떻게 되겠음을 이해합니다(신 32:29). 지혜롭다면 지금 방식대로 살면 멸망하게 될 것을 이해하고 회개합니다.
잠언을 읽는 첫째 목적은 지혜와 훈계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잠 1:2). 미련한 자들(fools)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잠 1:7).
지혜가 우리의 마음 안에 들어올 때에 우리는 올바름을 이해할 것이고 지식이 우리의 영혼에게 유쾌할(be pleasant) 것입니다(잠 2:9-10).
따라서 인류가 지혜를 발견하고 이해를 얻을 때에 복됩니다(잠 3:13). 따라서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하며 또한 이해를 얻어야 합니다(잠 4:5).
귀를 지혜에 주의시키며 마음을 이해력에 기울여야만 합니다(잠 2:2). 이해력을 얻으려고 이해력에게 우리의 음성을 주어야만 합니다(잠 2:3). 들어야 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청각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과 관련됩니다. 사람은 지혜와 이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식과 이해력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잠 2:6).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배워도 지식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오게 됩니다.
지식(知識)의 근본, 지식의 처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지식의 처음이 없는 것입니다.
옷을 입을 때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전부 잘못 끼우게 되는 것이며 지식의 처음이 없으면 아무리 다른 지식을 많이 가질지라도 잘못됩니다.
분별이 우리에 대해 지키며 이해가 우리를 보호할 것입니다(잠 2:11). 분별력이 있어야 그 분별력이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에 주의하며 지혜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잠 4:20). 지혜에게 주의하고, 이해력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잠 5:1). 분별들을 지키기 위해서고 입술이 지식을 보호하여야만 합니다(잠 5:2).
지혜자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말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7)
지혜에 주의하고 이해력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분별들을 지키고 우리의 입술이 지식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분별”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의 근본을 갖출 때에 분별력이 생깁니다. 이러한 지혜를 기반으로 다른 지식들을 쌓아 가는 것입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백신을 맞아야 된다는 악인들의 거짓말을 분별해 내어야 합니다. 그저께에는 유아기와 유년기 아이들에게도 백신을 맞히라고 안전 문자가 왔습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자기가 아끼는 어린 자녀의 몸에 독약을 꽂는 것입니다.
마스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스크의 미세 플라스틱이 폐를 석회화시키고 손상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위험함 마스크를 입에 쓸 것을 3년 동안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부모들은 분별력이 없었기에 자기 자녀들에게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시켰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초등학교 입학식에 아이들은 가슴에 무엇을 달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손수건입니다. 아이들이 콧물을 흘리기 때문에 콧물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코로나는 감기입니다. 감기가 무섭습니까? 3일, 길어야 일주일이면 낫는 것입니다. 이런 감기를 핑계로 국가는 3년 동안이나 국민들의 입에 입마개를 씌우고 국민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섭던 바이러스가 이제는 대중교통 수단에서만 살 수 있는 것입니까?
2. 교훈: 낯선 유혹자를 피하여야 합니다(잠 5:3-14).8)
1) 낯선 유혹자는 표리부동한 자입니다(잠 5:3-6).9)
잠언 5장 3절에 “음녀의 입술은 흘러 떨어지는 꿀을 똑똑 떨어뜨리고, 그녀의 입천장은 기름보다 매끄러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말, 사랑의 노래. 사랑의 밀어라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성적 행위는 문화적으로도 언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10) 유혹은 말과 관련됩니다. 사람은 말로 유혹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제비에게 유혹되는 것이 그 외모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화하다가 추켜세우고 칭찬하는 말에 녹아내리고 유혹당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자는 매력을 발산하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매끄럽습니다. 유혹자의 매끄러운 말은 불가항력적 힘으로 희생될 자를 이끕니다. 유혹자의 에 누구든지 쉽게 빠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11)
그 입술은 꿀을 똑똑 떨어뜨리고 그 입천장은 기름보다 매끄럽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가장 노골적인 성애의 묘사입니다.12)
“다른”은 “이상한”(strange)이나 “다른”(other)이라고 번역됩니다. 익히 알았던 것이랑 다른 것이기에 이상하고 낯섭니다(출 30:9). 분향하는 제단에 속세에서 사용되는 이상향 향을 오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각 사람이 향로를 취하고 그들이 그것들에 불을 주고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가까이 오게 하였습니다(레 10:1).
그들은 성소 밖에서 가져온 허가되지 아니한 불을 접근시켰습니다.13)
“다른 불”은 “공인되지 아니한 불”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14)
그들은 “정통성이 없는 혹은 불법의(illicit) 불”로 향을 살랐습니다. 그 불은 “낯설고”(strange) 다른 불이었습니다. 그들의 범행은 불법적인 향이 아닌 불법적인 불에 대해서였습니다.15)
하나님께서는 다른 향이나 불을 싫어하십니다(출 30:9, 레 10:1).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그가 명령하신 방법에 따라서 예배하여야 합니다.
레위기 10장 2절에 “불이 야훼의 앞에게로부터 나왔고 그들을 먹었고, 그들이 야훼의 면전(presence)에서 죽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불”이 하나님의 면전으로부터 나와서 그들을 먹어 버렸습니다. 두 사람은 즉시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16)
1절의 “낯선 불”과 2절의 “야훼의 앞으로부터 나온 불”이 대조됩니다. 야훼의 앞으로부터 나온 불이 그들을 먹고 그들이 죽었습니다(레 10:2).
이스라엘은 낯선 것들(strange gods)로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였으며, 혐오스러운 것들(abomination)로 그를 분노하게 하였습니다(신 32:16).
여기서 그들이 낯선 것들로 그를 질투하게 만든 것은 미완료 형태로서 과거의 반복적, 습관적, 지속적 동작을 강조합니다.17)
“낯선 것들” 및 “혐오스러운 것들”은 “낯선 신(神)들”을 가리킵니다.18) 그들은 배반하고 우상들을 섬기는 종교로 가서 우상을 섬겼습니다.19)
“낯선 신(神)들”이 낯선 이유는 이스라엘의 신(神)이 아니기 때문인데, “낯선 신(神)들”은 민족들이 섬긴 다른(other) 신(神)들이기에 낯섭니다. 이스라엘은 낯선 신(神)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였습니다.20) 언제부터입니까? 황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 때부터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거주할 때에 쭉 그랬습니다. 판사들의 시대에도 그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神)들을 섬겼습니다. 왕정시대에도 금송아지를 섬기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닌 다르고 낯선 신(神)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앞에 2장 16절에 “낯선 여자로부터 너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낯선(strange) 여자”는 영어로 “부도덕한 여자”로도 번역되었습니다. 한국어 개역 성경에 “음녀”, 새 번역에 “음란한 여자”로 번역되었습니다. “낯선 신(神)들”은 이스라엘에게 “음녀”와 같은 존재들입니다(신 32:16).
“낯선 여자”가 낯선 이유는 자신의 아내인 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낯선 신(神)들”이 낯선 이유는 이스라엘의 신(神)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낯선 신(神)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였습니다.
유혹하는 간부(adulteress)의 입술은 흐르는 꿀을 똑똑 떨어뜨립니다. 유혹하는 자의 말은 벌꿀처럼 달게 들린다는 의미입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유혹하면 달콤하게 들린다는 의미입니다.21) 유혹자의 말은 이렇게 달콤하게 보이고 맛보면 달콤하다는 것입니다.
간부의 달콤한 입술 및 매끄러운 입천장은 감언이설을 가리킵니다.22) “감언이설”이라는 한자는 “단 말씀 날카로운(이로운) 말씀”을 뜻합니다.
낯선 유혹자의 입술은 흘러 떨어지는 달콤한 꿀을 똑똑 떨어뜨립니다. 낯선 유혹자는 그 달콤한 말과 매끄러운 아첨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귀를 즐겁게 만드는 달콤한 말은 듣기에는 좋으나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현재의 쾌락을 좋아하고 그에게 영원한 삶보다 지금이 중요하며, “당신의 최고의 삶은 지금”(Your Best Life Now)이라며 유혹을 합니다.
“당신의 최고의 삶은 지금”이라고 한 “Your Best Life Now”라는 말이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의 원래의 책제목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조엘 오스틴의 “믿는 대로 된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으나 거짓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조용기 목사 같은 사람이 현세의 복을 강조하여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강조하면서 물질의 복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이상하고 낯선 말이 달콤하게 들릴지라도 성경과 다른 거짓입니다.
성경이 현세에서의 복을 강조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죽었습니까? 왜 그들은 세상에서 잘살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전도하다가 죽었습니까?
스테판 집사님은 왜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은 것입니까? 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가난하게 살고 안 믿는 자들은 더 부자입니까?
성경과 다른 말은 듣기에는 좋으나 영혼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생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구원영생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잠언 5장 4절에 “그녀의 마지막 때(her end)는 쑥과 같이 쓰고 두 날 가진(two-edged) 칼과 같이 날카로우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뱀과 전갈이 있는 두려운 황야에 이스라엘을 가게 하셨고, 이스라엘에게 물을 부싯돌의 반석으로부터 나오게 하셨습니다(신 8:15).
그에게 황야에서 만나를 먹게 하시니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한 것이며 그를 비천하게(humble) 만드시기 위해서였고 그를 그의 마지막에 좋게 하시려고 시험하시기 위한 것입니다(신 8:16).
하나님께서 마치 황야의 길과 같이 척박한 인생길을 가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우리의 마지막에 좋게 만드시기 위해 시험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인생길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좋은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마지막에 구원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한 것이며, 이것을 이루시려고 우리로 하여금 황야와 같은 인생길을 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 마지막에 좋게 되는 것이 중요하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을 이해하여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신 32:29).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살다가 죽는 자들의 마지막은 지옥의 심판입니다. 지금부터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자들은 구원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달콤한 입술은 쓴 쑥이 되고, 매끄럽던 입천장은 예리한 칼이 됩니다. 거짓된 신(神)들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줄 것처럼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마지막에는 쓴 쑥처럼 고통을 안기고 날카로운 칼처럼 치명타를 줍니다.
그 알랑거리고 아양 떨던 시작과 다르게 그 끝에는 변절합니다. 꿀처럼 달콤하던 것이 쑥처럼 쓰고 매끄럽던 것이 날카롭게 변화됩니다. 그런 까닭에 달콤하고 매끄러운 유혹자의 말에 유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잠언 5장 5절에 “그녀의 발은 죽음으로 내려가며 그녀의 걸음들은 저승(hell)을 붙드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발의 행로를 평탄케 하면 우리의 길들이 확립됩니다(잠 4:26). 우리는 우리의 발을 악으로부터 떠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잠 4:27). 그 발은 사망으로 내려가며 그 걸음들은 저승을 붙듭니다(잠 5:5).
이 말씀은 유혹자 및 그를 따르는 모든 자의 최종 멸망을 뜻합니다. “죽음으로”는 ‘죽음의 신(神)인 모트(Mot)에게로’일 수도 있습니다.23)
“죽음”은 한번 내려가면 다시는 거기에서 올라올 수 없는 곳입니다. 걸음들이 저승을 붙든다는 것은 저승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24)
세 치 혀로 속이는 낯선 음녀와 같은 거짓에 속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이단은 바른 것과 다르다는 뜻이며 얼토당토않은 이단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바른 것처럼 보이는데, 약간만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속기 쉽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가 나는 것이 더욱더 위험합니다. 현세의 복을 가르치는 메시지가 분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쥐약은 쥐를 죽일 수 없는데, 쥐가 그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살하고 싶은 쥐나 코 막힌 쥐가 아니라면 쥐가 왜 쥐약을 먹겠습니까? 그러면 쥐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쥐약이 혼합된 음식입니다. 쥐는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하고 먹다가 소량의 쥐약 성분으로 죽습니다. 문선명이나 이만희의 가르침은 표면화된 위험이기에 주의하면 되겠지만 더욱더 위험한 것은 개신교 안의 거짓 예언자들이 교묘한 가르침입니다. 그들에게 미혹될 때에 그들과 함께 지옥으로 내려가며 지옥을 붙듭니다.
잠언 5장 6절에 “그녀가 생명의 통로를 숙고하지 아니하나니 그녀의 행로들이 방황하며 그녀가 알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낯선 음녀”는 “생명의 통로”에 대하여 무지하며 무관심합니다. “낯선 음녀”는 자신의 길도 찾지 못합니다.25)
그녀의 행로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아니합니다. 그녀에게는 “생명의 통로”를 알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있지 아니합니다. 이와 같은 그녀를 가까이하는 자도 “생명의 통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낯선 음녀가 걷는 그녀의 행로들의 종착역은 죽음입니다.26)
달콤한 음식이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달콤한 거짓이 영혼을 해칩니다. 그것은 “생명의 통로”에서 멀어지게 만들며 “죽음”으로 내려가게 만들며 지옥을 붙들게 합니다.
우리는 낯선 음녀와 낯선 신(神)들의 매력이 거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매력은 화장을 지우면 드러나는 본판처럼 분장된 가면에 불과합니다. 결점을 가리는 화장과 달리 음녀의 위장은 혐오스러운 본색을 감춥니다.
그녀는 변신술에 능한 그리스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매력적인 여자나 사실상 그 여자의 매력(魅力)은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마력(魔力)입니다.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마귀의 힘은 그 미혹하는 힘에서 나옵니다.
낯선 음녀와 같은 거짓 예언자들은 생명의 통로를 숙고하지 아니하며, 그 자신들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미혹하여서 지옥으로 이끌고 갑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서 구원영생의 길을 걷는 성도들이 다 됩시다!
1) David A.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류근상 역 (고양: 크리스챤출판사, 2003), 299.
2) Bruce K. Waltke, 『NICOT 잠언 Ⅰ』, NICOT 성경주석, 황의무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342.
3) Duane A.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NAC 성경주석, 황의무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09.
4)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NAC 성경주석, 109.
5)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NAC 성경주석, 109.
6) 김정우, 『잠언』, 성경주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207.
7) Waltke, 『NICOT 잠언 Ⅰ』, NICOT 성경주석, 347.
8) 김정우, 『잠언』, 성경주석, 206.
9) 김정우, 『잠언』, 성경주석, 206.
10) Waltke, 『NICOT 잠언 Ⅰ』, NICOT 성경주석, 348.
11) Waltke, 『NICOT 잠언 Ⅰ』, NICOT 성경주석, 349.
12) Waltke, 『NICOT 잠언 Ⅰ』, NICOT 성경주석, 349.
13) Rooker, 『레위기』, NAC 성경주석, 192.
14) Wenham, 『레위기』, NICOT 성경주석, 174.
15) Hartley, 『레위기』, WBC 성경주석, 327.
16) Hartley, 『레위기』, WBC 성경주석, 328.
17) 김정우, 『히브리 시학』 (서울: 도서출판 기혼, 2013), 186.
18) Christensen, 『신명기 21:10-34:12』, WBC 성경주석, 578.
19)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신명기』 (서울: 사랑플러스, 2014), 644.
20) Christensen, 『신명기 21:10-34:12』, WBC 성경주석, 578.
21) Tremper Longman III, 『잠언 주석』, 베이커 지혜문헌·시편 주석 시리즈 5, 임요한 옮김 (서울: CLC, 2019), 239.
22)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NAC 성경주석, 110.
23) Waltke, 『NICOT 잠언 Ⅰ』, NICOT 성경주석, 350.
24) 김정우, 『잠언』, 성경주석, 211.
25) 김정우, 『잠언』, 성경주석, 212.
26) 김정우, 『잠언』, 성경주석,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