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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詩學) – 익살스러운 흉내
남진원
한울림문학회 2020년 회지를 발간하는데 회장님께서 문학평론 같은 글도 한 편 보내달라고 하여 생각다가 글을 정리하여 ‘시학’이란 글을 보내고자 하였다. 덕분에 앞으로 ‘시학’ 글을 계속 이어서 쓰면 나름대로 글쓰기에서 내 개인적인 문학에 대한 생각도 자리 잡을 것이라 여겨져 고맙기 그지없다.
1.
글다듬기를 추고推敲라고도 한다. 글을 쓰고 난 후에는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 고치고 다듬는 것을 뜻하는 말을 ‘추고推敲라 하였다.
이 말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말을 타고 가면서 지은 시의 한 구절에서 비롯 되었다.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조숙지변수 승추월하문
☞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
새들은 집을 찾아 숲으로 돌아가고
달빛 아래 스님은 문을 두드린다.
이 시를 지어놓고 추推자가 마음에 안들어 말위에서 고敲자로 할까 추推자로 할까 망설이다가 마침 경윤京尹의 행차에 부딪쳤지요. 가도賈島는 불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 사유를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경윤京尹은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며 ‘추推’자 보다는 ‘고敲’자가 더 낫다고 하였지요. 그 경윤京尹은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인 한유韓愈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두 사람은 친교를 맺었다고 합니다.
이 시에서 ‘두드린다(敲)’를 넣을 때와 ‘민다(推)’의 글자를 넣을 때 시가 주는 느낌은 매우 다릅니다.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밀고 들어간다’는 것은 여운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는 구절은 여운을 남기고 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역사 이래로 유명한 문장가치고 이 추고를 게을리한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한테 문장이 주옥같다고 칭찬을 받은 체홉도 하루는 잡지사 편집자에게 자기의 원고를 주며 “빨리 가져 가게, 오래 두었다간 자꾸 깎여서 문장이 없어질 것 같네.” 라고 했답니다.
또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소동파蘇東坡도 하루는 친구가 와서 ‘적벽부赤壁賦’를 며칠 만에 지었느냐고 물으니까, “며칠은 무슨 며칠 지금 단번에 지었지.” 하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더랍니다. 그런데 소동파가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자리 밑을 보니 초고草稿가 한 삼태기나 나오더랍니다. (※)
이처럼 글을 일차 쓴 후에 ‘추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추고시 생각해 볼 점은?
1.낱말이 문법에 맞게 쓰여져 있는가.(文法性)
2.반복하여 강조할 이유가 없이 중복된 낱말이나 구, 문장이 없는가.(單一性)
3.글의 내용이 일관되게 이어져 있는가.(一貫性)
4.나타내고자 하는 주제가 담겨 있는가.(主題性)
5.의도가 인상적으로 드러나 있는가.(印象性)
6.개성적인가.(個性)
7.문맥의 흐름이 조화되어 있는가.(調和性)
8.자기 감상에 치우쳐 있지 않는가.(沒感傷性)
9.낱말이나 시어가 적절한가(詩語의 適切性)
10.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는가.(含蓄性)
11.반드시라고 할 수는 없어도 관념적인 언어는 구체적인 언어로 바꾼다.(시어의 구체성)
추고 작업은 중심사상이나 중심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할 것이다.
낱말(한 덩어리의 생각을 나타내는 낱낱의 말)이 잘못 쓰이면 문장이 어색하여 좋은 글이 되기가 어렵다.
따라서 낱말의 쓰임이 문장이나 구에 적절하게 쓰여야 한다.
문장이나 시의 구절에서 똑같은 말이나 뜻이 같은 말이 거듭 나오게 되면 뜻을 약화시키게 되고 웃음거리가 되기 쉽다.
(※이성교,한영옥:現代文章作法,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1993.P.154-157.)
추고를 다 했다고 하여도 그 다음에 다시 읽어 본다.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고쳐야 한다.
추고에 심혈을 기울인 시인 맹교孟郊는 평생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다듬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추고에 대한 시를 쓰기도 했다. 이는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마땅히 본받을 태도이다. 그러나 그의 시가 향기를 전하지 못하는 것은 생각의 편협된 틀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음苦吟
生應無暇日 생응무가일
死是不吟詩 사시불음시
살아서는 편안한 날 없다
죽어서는 시를 짓지 않을 테니까
맹교(孟郊. 751-814):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고 자는 동야東野이다.
그는 일생 동안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근심에 겨운 생활과 불평이 담겨있다. 그는 당대의 대문장가 한유보다도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추고에 대한 평가만을 받은 이유는 근심과 고통을 약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고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도賈島가 지은 한시 한 수를 감상해 보자.
松下問童子 소나무 아래에 있는 아이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 스승은 약초캐러 가셨다 하네
只在此山中 이 산중 어디엔가 계시겠지만
雲深不知處 구름 깊어 계시는 곳 모른다하네.
- 松下問童子 -
당대 약 300년간 과거에 시가 과제課題로 되었기에 2천 2백여명(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작자 수)의 시인을 배출했다.
수많은 시인군에 따라 초당(初唐618-709) 성당(盛唐710-765) 중당(中唐766-835) 만당(晩唐836-906)의 4기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당 시대에는 사회 비판 정치 비판의 시인 그룹이 있었다. 백거이는 사회파 시인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이들은 두보의 사회시를 발전시켰다.
사회파 시인에 대항하여 표현 면에 연구를 한 고음파苦吟派 시인에 한유를 중심으로 맹교 가도 이하 등이 있다. 이 그룹은 두보가 고심한 표현 연구의 전통을 계승했다.
가도賈島의 시 ‘소나무 아래’와 흐름을 함께 하는 율곡의 시 또한 감상해 볼 필요를 느낀다.
山 中
李 珥
採藥忽迷路 캘 채 약 약 갑자기 홀 잃을 미 길 로
千峰秋葉裏 일천 천 봉우리 봉 가을 추 잎 엽 속 리
山僧汲水歸 뫼 산 중 승 물길을 급 물 수 돌아갈 귀
林末茶烟起 수풀 림 끝 말 차 차 연기 연 일어날 기
약초 캐다 갑자기 길을 잃었는데
가을 낙엽 자욱히 덮인 산속에
스님은 물 길어 돌아가고
숲 속 저 편에서 차 닳이는 연기가 피네
2.
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시를 쓰는 행위나 노동을 하는 행위나 음악을 하는 행위나 모두 인간의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노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일상을 지속해 나간다. 그러한 삶의 일면을 진솔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생활의 탐색이라 한다. 생활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관조하기도 하고 궁구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활을 즐겁게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것들 앞에 희망이란 요소가 필요하다. 이 희망을 잃으면 삶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생활에 대한 탐색은 먼저 희망을 찾는 탐색이다.
여기서는 우선 행위의 중요성이 전제된다. 그리고 ‘나의 무엇이 이러한 행동을 가져오는가?’ 를 살펴보고 그것을 시로 엮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를 쓰기위해 시 자체에 너무 매달려 왔다. 그러다보니 시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그저 시인이란 이름을 얻기에만 급급해왔다. 시는 나의 생활에 중요한 요인이다. 시가 생활의 전부가 될 수 없지만 시적 생활은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를 시로 엮을 때에 나의 가치가 드러날 수 있다. ‘행위의 시’ 는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인 ‘바라보기 시’ 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의 탐색이 없는 시는 생명력이 없다. 나의 삶을 시로 건져올릴 때에, 내가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시로 표현할 때, 진정한 시의 본질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역할 중에 하나는 무엇인가? 미나리처럼 연못에 뿌리를 내리고 세상을 정화시키는 일을 해내는 몫이다. 시인은 시인이 걸어가는 땅, 거대한 자유에 의해서만 책임질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시인의 행동은 위대하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나 또는 우리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시인의 자유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3.
시는 독특한 인격이 빚어내는 언어의 조형물이다. 시를 쓰는 시인은 매력적인 개성의 소유자이다. 설령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끼어들게 된다. 시가 언어의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또한 예술적 속성을 지닌다.
시인이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란 말 속에는 독특한 문체와 특징이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전의 시인들이 갖는 문체 속에는 서정적 자아가 중심을 이루는 경향이 보였다. 점차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외래 지향과 사회적 자아의 확대로 번졌다. 우리 사회가 변증법적으로 이동되듯이 한국의 현대시도 전통적 서정시에서 새로운 변화와 모색을 하여왔다. 또한 우리의 삶이 서정보다는 치열한 생존, 즉 ‘살아남기’ 에 급급하여 시 또한 서정적 요소가 배제된 모더니즘 적이거나 해체시 쪽으로 달려가기도 하였다.
우리가 쓰는 문학 작품은 새로운 도전과 전통의 보전이라는 이중적 문제를 안고 문화적 충격을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를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1.전통성 서정시: 자연친화적이며 감정이 중심이 된다.
2.현대성 서정시: 생활에 묻어나는 구체적 정서를 이미지로 재현시키고 자연과의 교감도 적극적이다.
3.지성시: 환상적 언어의 사용이 빈번하고 은유를 통하여 이야기 하고자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모순에 대한 비판과 자기 개혁 내지 자기 파괴에 이르는 길마저 모색한다.
4.생활시: 관념적인 성향을 배제하고 반성적 자기 발견을 중시하고 구체적 삶을 드러내는데 치열하다.
5.철학시: 관념적 세계를 구체적 이미지로 드러낸다.
4.
시를 쓰는 시인은 적어도 작품에 대한 치열한 자기 탐구가 있어야 한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는 시를 잘 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그는 평생 동안 좋은 시를 쓰기 위하여 고치고 또 고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무척 노력형의 시인이었다. 후일 그의 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生應無暇日 살아서는 응당 한가한 날 없으리라
死是不吟詩 죽어서는 시를 짓지 않으니.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1.노력을 해야 한다.
2.이미지나 상징에 참신성이 있어야 한다. 이미지는 사물에 대한 형상화라고 하겠다. 여기에는 생동감이 있어야 하고 현대적 감각의 이미지 표출에 노력해야 한다.
3.구성력이 뛰어나야 한다.
4.시 자체가 생물 같은 것임을 알고 부단한 자기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5.
시詩란 무엇인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시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편안하여서 시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자연에 있는 동물, 식물, 사람 무생물로부터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리고 시에 나타난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고 느낀다.
시인은 자신이 좋아하고 아름다워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것을 표현하면 독자는 향유한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눈 내리는 것’이라고 하면 눈 내리는 모습을 나타내면 될 것이다.
함박눈 내리는 산골의 밤
하얀
눈이 옵니다.
눈에 안겨
마을이
포근히 잠이 드는
동화 속처럼
아름다운
밤
부엉이 소리도
멀어지고
모두가
백옥 이불을 덮고
꿈을 꿉니다.
위의 글은 작자가 눈 내리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눈 내리는 모습을 의인화하여 표현하였다.
이처럼 시 창작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6.
시도詩道라고 하니 거창한 이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시를 쓰는 길이다. 여기엔 시를 쓰는 방법과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여러 가지 방법과 행위가 있겠지만 나는 다섯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 시 읽는 것을 좋아하자.
두 번째, 시 듣는 것을 좋아하자.
세 번째, 시 모으는 것을 좋아하자.
네 번째, 시적 접근 방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자.
다섯 번째, 시 쓰기를 좋아하자.
시를 좋아하면 시인이 된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시인을 만들어준다.
시 읽기를 좋아하자. 시를 읽으면 재미를 느낀다.
시 듣는 것을 좋아하자. 시를 들으면 즐거움을 느낀다. 시 낭송회에서 낭송하는 시를 들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행복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시 모으는 것을 좋아하자. 시를 모으는 것을 취미활동으로 삼으면 그것은 지극한 즐거움이 된다.
시적 접근 방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자.
시 쓰기를 좋아하자. 시 쓰기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 내면의 고통을 직시하면서 그 속에서 건져내는 울림의 미학이 ‘詩’이다. 그래서 윤동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 시를 쉽게 쓰는 것에 대해 아파하였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 작품은 ‘쉽게 씌어진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 시 쓰기가 버릴 수 없는 아픔이라면 차라리 즐기자. 시 쓰기를 좋아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7.
현대 서정시는 서정 즉 인간의 감정이 중심이 된 시이다.
아름다움의 의미
세상살이가
무시로
억울함에 취해 울고 있나니
더러는 시름에 겨워
잠들다 깨다가 하거니
인생은
나무옹이 같은 것
가슴에 박힌 옹이를
쓰다듬는 사람아
슬퍼하지 마라
우리는 완행열차의 흔들림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가는 거라네
그렇게 흐르며 가는 거라네
8.
시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 시인의 인격과 무관한 작품에 대한 찬사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시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시인의 개성이 존재하는 것이며 인격이 존재한다는 말과도 같다. 한 시인이라면 그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가질 수밖에 없는 인격이 시 속에 묻어 나와야 한다. 그것은 자제할 수 없는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언어와 언어의 관계가 긴밀한 서정의 세계로 몰아가는 것이 특유한 서정성이다. 또한 새로운 서정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역할은 중요한 시인의 몫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위적인 흠을 없애기만 한다면 말이다.
글을 쓸 때 주관성이 진하면 감정의 여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절제 없이 그냥 흘러 보내고 싶은 경우가 많다. 이는 글을 쓸 때에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종류의 글이다. 이런 작품은 감정의 개입이 너무 지나쳐서 아름다움이 한결 퇴색되고 있다.
*
쓸쓸한 가야금 소리
이 밤 슬피 울고
못 내 타는 내 가슴은
한잔 술에 취해 흐느적거린다.
*
우리들 가슴 속 사랑은 이글거리고
감미로운 선율의 파도
당신의 뜨거운 입김이여
내 정열과 함께 불탄다.
그대를 사랑하는 내 마음
그리움의 흐느낌을 아는가.
서정의 불꽃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속에서 타오르고 그 열기와 빛이 주위를 밝혀주는 것이 아름답다. 속을 갈무리할 줄 아는 사랑은 항상 가야금 소리처럼 울림이 크다. 정서의 객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少年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저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무가지 우에 하늘이 펼처있다. 가만이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손으로 따뜻한 볼을 쓰서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속에는 사랑처럼 슬픈얼골 ---아름다운 順伊의 얼골이 어린다. 少年은 황홀이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얼골 ---아름다운 順伊의 얼골은 어린다.
이 작품은 1948년 초간본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윤동주 시집에 실린 글이다.
순이라는 대상에 대해 그리움의 느낌을 단풍잎, 가을, 하늘 등의 시어 속에 담아놓았다. 소년이란 객관적 자아를 설정하여 놓은 것도 특징이다. 이 시에서 정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파란 물감과 맑은 강물이다. 사랑처럼 슬픈 얼굴로 보여 지는 그리움의 대상 순이는 파란 물감과 맑은 강물의 이미지로 환치되면서 격앙되는 정서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음미하게 한다. 맑고 깨끗한 서정시이다.
9.
서정시에 대한 변화는 필연적이라 보여진다. 이는 서정성의 표현 문제가 중요한 변화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드러내어 시를 치졸한 감정풀이로 생각하는 시인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시의 앞날을 매우 어둡게 하고 있다. 몇몇(?) 시인들의 너무 안이한 작시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아동문학의 경우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동시의 시적 변화를 위해 유경환 시인께서는 지금도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일부 사람으로부터 욕을 먹으면서도 앞장서서 선도하는 그런 분이 계시기 때문에 아동문학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보여진다. 시의 경우에는 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시를 평하는 경우에도 서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칭찬해주는 정도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어찌해서 월평이나 계평을 보면 손꼽을 만한 사람들 이름만 일년 내내 들먹거리고 있는지 참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시 잘 쓰는 한국의 시인들이 그리도 없다는 말인가? 이 말은 반어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국 서정시의 시쓰기는 문학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시의 기술적 문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야 되리라고 본다.
포스트모던 쪽의 시를 쓰는 시인 중에서는 간혹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시인을 본다. 서정시를 쓰는 시인을 폄하하고 현대시라고하면 모던해야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시인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하였다.
다양한 시적 패턴을 요구하는 시대에서 일정한 방향만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한쪽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더욱 못난 짓이다. 그렇게 되면 언어만 있고 시는 실종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의미와 이미지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는 시적 담론이어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형식주의의 틀을 변화 발전시키면서 서정성이 스민 아름다운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옷을 입은 신선한 서정시 같은 경우는 어떨까 싶다.
10.
서정시는 기본이 되는 시이며 가장 많은 독자를 형성하고 있는 시의 한 종류이다. 서정시는 인간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구비적 형태로 전해왔다고 보여진다. 사람의 감정이란 시대에 따라서 정서가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의 역사를 말할 때에 서정시를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다.
70년대와 80년대에 서정시는 외면을 받았다. 어려운 시, 모던한 시들이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정시는 이제 본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정서의 새로운 환기는 감정을 정화시켜주고 인간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이제는 서정시가 서자 취급을 받지 않게 하기 이해서도 서정시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서정시가 지니고 있는 서정성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해도 그 모습은 이제 변해야 한다. 서정의 지적 모습이 있어야 하겠고 지성시에 서정성이 내포되어야 한다.
서정의 모습(감정, 자아, 꿈 등)에서 사랑은 논리적인 것 비논리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있다.
사랑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 으뜸이다. 사랑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보자. 이 세상의 부귀가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쓸쓸한 황무지일 따름이다.
멀리 있기에 더욱 그립고 절실한 사랑은 외로움의 바다에서 별이 되어 날아오른다.
사랑의 정신적 합일은 슬퍼서 흠도 티도 없는 가치에 이른다. 합일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환희를 낳게 한다. 사랑의 힘은 파도의 거센 자태를 인간의 열정적인 사랑으로 표현하여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사물을 바라볼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환경과 환경을 받아들이는 감정, 성격, 독서량 등 종합적 인격과 무관하지 않다.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활 중에 사랑을 빼고 얘기한다면 얘깃거리가 없을 정도이다. 사랑은 우리들 삶의 본질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노래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쪽에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인다.
임이여, 청산에 꽃 되오소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꽃 되오소
나는 한 마리
나비 되오리다.
가다가 곤하면
길섶에서 잠이 들고
잠들면 꿈속에서
임의 꽃 가르쳐주오소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꽃 되오소
나는 한 마리
나비 되오리다.
가다가 힘 들면
아무 꽃잎에 앉으리까
아무 풀잎에나 앉으리까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가는 길도
임의 향기로 가르쳐 주오소
임의 향기로 붙들어 주오소.
11.
서정의 깊은 구렁에는 한이 도사리고 있다. 2500년을 긴 강물처럼 굽이굽이 흘러내려온 限, 그 한의 표출은 다양한 형태로 민중의 가슴에 심어졌다. 그 한 모습을 한국의 시인들은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봄은 서정의 한 가운데에 있다. 봄은 만물의 시작이다. 봄은 생명의 몸짓이 싱싱하게 표현되는 계절이기에 많은 시인은 봄을 노래하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은유는 서정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데 흔히 쓰인다. 직유나 직서법 보다 한층 감정의 농도를 진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품격이 있기 때문이다.
봄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은유의 표현을 담은 시를 찾아 읽어보자.
서정의 모습(감정, 자아, 꿈 등)에서 한발 물러나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단아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시인의 마음이 호수처럼 고요하고 그윽하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즐거움에 있을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의 일이 더 없이 중요하고 즐거운 일이란 것을 시인은 시로써 보여주어야 한다.
12
큰 것과 작은 것 중 어느 것이 더 대단한가 하고 물으면 큰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큰 것은 큰 대로 하는 일이 있고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하는 일이 있으니 어찌 公平하다고 하지 않을 것인가.
큰 것이 작은 것을 비웃지 않고 작은 것이 큰 것을 부러워하지 않으니 이를 일러 太平이라 한다.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민들레 꽃씨가 나는 모습을 볼 때, 느티나무와 민들레 꽃씨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고 가벼운 민들레와 크고 우람한 느티나무를 통해 삶의 무게를 가늠해본다는 것은 참으로 가벼우면서도 깊은 思惟이다.
사람이 사는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일은 분별을 떠나 있음(存在)을 생각하게 한다.
함께 어울려 사는 아름다움은 가벼운 미소와 무거운 고뇌가 서로 이름을 불러주며 다독이는 모습이 아닐까?
13.
일상적인 삶에서 얻는 감동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것은 생활을 아름답게하며 진실되게 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참담함에 놓여진 현실 때문에 진실 혹은 그리움에 대한 무의미를 탄생시킨다. 마음 아파하며 살아가는 것은 존재의 겨드랑이를 간지르는 삶의 가벼움이며 또한 진통이다.
14.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작업은 신비롭다. 바람의 세계를 꺼내지 않더라도 초월적 달관의 세계는 그윽하다.
바람의 사전적인 뜻은 기압의 변화에 따라 일어나거나 사람이 일으키는 공기의 흐름이다. 그러나 문학의 세계에 들어오면 바람은 다양하게 변신을 한다.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를 보면 바람의 상징성은 창조적 숨결 또는 창조적인 발산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우주를 지배하는 요소가 된다.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환인 천제에게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환웅은 인간세상을 다스려보고 싶어 한다. 아버지 환인은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바람의 신, 구름의 신, 비의 신을 부하로 내려 보낸다. ‘바람’은 세상을 움직여 가는 생명의 숨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5.
시어가 갖는 상징성을 알아보자. 예를 들어 ‘빛바랜 모자’는 오랜 생활이 숨
쉬고 인간의 정이 묻어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면 ‘쓸쓸한 나무 의자’는 어떤 상징을 띄고 있을까? 인간 존재의 삭막함, 공간 속에서 받는 공허감, 삶과 죽음의 공간, 인간 존재의 실존적 물음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놓고 싶지 않은 놀라운 일을 당하면 숨기려고 한다. 의롭지 못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일에 의해 이루어진 일들이 속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나 겉으로는 모두들 그런 일을 누가 한 것이 드러나면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는데 앞장선다. 부정한 짓을 한 사람이 그런 일에 더욱 앞장 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 즐거운 일이나 희망적인 일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다른 무엇으로 나타내는 것은 그 기쁨을 깊숙이 하기 위함이다. 색채를 나타냄으로써 그 깊은 의미를 더하고자 하는 것도 상징에 있어서는 중요한 표현 방법이다.
흑색은 허무 절망 정지 침묵 견실 부정 죄 주검 암흑 밤 등을 의미하다.
보라색은 이별 가을 방황 삶에의 연민 쓸쓸함을 상징한다.
연두색은 봄을 나타내고 우울하지 않으며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젊은이에게는 싱싱한 건강함이요 나이든 사람에겐 삶의 재생이요, 생의 확충이다.
이런한 상징도 시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아침노을’은 부지런함을 나타내지만 ‘저녁노을’은 슬픔을 띈다.
16.
서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난해한 현대시를 낳게 하였다. 꿈, 자아, 감정에서 탈출하여 규범적인 세계를 지향하고자 한다. 감정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시쓰기는 시를 단백질이 함유한 식품처럼 맛갈스럽게 만든다. 시각적 회화성 뿐만 아니라 청각 미각 취각등을 자연스러운 표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이른바 모더니티라고 자처하는 혹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그 표현의 어지러움은 자못 피해가 심각하다. 교묘하게 꾸민 말은 겉으로 보면 멋스러운 것 같지만 진실성이 없고 말재간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전달의 힘이 약하고 사물에 대한 지적 수준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현대시는 감동 이전에 저항감을 먼저 받는다.
‘언령言靈’이란 말이 있다. 말에 깃든 신령스러운 힘이란 뜻이다. 언어 사용의 조심성과 신중성을 기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말이 비록 서툴고 어눌하여도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깨끗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 또한 언령이 있기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시와 반시에 대한 생각도 분분하다.
시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 시는 시일 뿐이다. 시와 예술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존재의 가치를 지니기를 희망한다. 시의 순수성이 내포된 말이다.
반시 적인 경우, 사람이 쓰는 시가 사람의 문제를 다루고 역사와 현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사유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시는 시 존재 가치 이외의 무엇을 위하여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
다양한 시적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대시의 의미가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시는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서정과 지성이 조화되고 뜻이 고양된 언어의 집이어야 될 것이다.
17.
사물 앞에 몇 장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방법이다. 단조로운 이미지에서 보다 복합적이고 다중적 이미지를 탄생 시킨다.
햇살은 밝음, 기쁨 , 환희 등의 상징을 갖고 있다. 즐거운 느낌을 표출하는 이미지들이 있다.
▷아무리 비춰도 바래지 않는 달의 물결
섬처럼 하나 씩 띄운다
▷둥글둥글 네 얼굴
가슴 가득히 멍멍한 귀울림이다
물기 머금고 반짝이는 흰 섬유질이다
▷침묵처럼 날아드는 별
▷하얗고 작아서 작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은빛 뿔
▷온갖 산새소리 실타래처럼 풀어 트리는 바람
▷흐르면서도 보이지 않는 바람
화성에서 온 아이처럼 웃는 햇살 [직유의 표현]
눈부신 꽃으로 온 햇살 [은유의 표현]
봄이 스며든다.
연두색 아지랑이 스멀스멀
옆구리 생채기 나도록 간질이며…
봄이 스며든다.
매화꽃
환한 차가움 속으로
수런대며 수런대며…
내가 앓고 있는 그리움의 밭에 누웠다.
18.
글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묘사 되어야 한다.
몸의 여기저기 한 뭉텅이 씩 털이 빠졌다.
눈빛이 어둡다
어디서,
다쳤나?
꼬리가 잘려나가고
목이 비뚤어져 한쪽으로 기울어졌는데
다리마져 상이용사이다.
- 개 -
느닷없이 배가 아프고 피부가 거칠어진다. 벌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기침이 난다. 건너지 못하는 사랑의 강 앞에서 가난을 울부짖었다. 미욱한 바보 온달이 무시로 부럽다.
- 온달 -
19.
닮음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동일시한 표현이 은유적隱喩的 방법이다. 은유隱喩는 ‘A’라는 존재와 사물 ‘A'’라는 존재를 동일시하여 나타낸 방법이다.
시에서 은유는 단순하게 시에 쓰이는 여러 가지 비유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은유(Metaphor)는 그리스어의 Metaphor에서 나왔는데 이는 meta(초월) pherein(전한다.운반한다)에서 유래되었다. 어원적인의미를 보더라도 은유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의 의미를 초월한 새로운 의미를 나타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은유는 새로운 하나의 판단이며 단정인 만큼 보다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럴수록 은유가 독단적이 되지 않고 참신하면서도 보편적 의미, 보편적 생명성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사물과 사물 사이, 관념과 관념 사이, 사물과 관념 사이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 보다 예리한 통찰의 힘이 필요하다.*(1)
또한 은유는 말 뜻 그대로 숨겨진 비유(hidden figure)로써 기존의 의미세계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그 이미지를 신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은유에 의하여 언어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표현력을 증대해 간다. 그것은 기존의 언어와 의미를 바탕으로 재생(再生)됨으로써 시의 세계를 더욱 창조적인 것으로 상승시켜 주는 것이다. *(2)
은유는 시 기법에서 꽃이라 부를 수 있는 가장 드는한 표현이다. 직유가 대상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간접 접근의 방식을 사용한다면 은유는 직접 접근의 방식을 사용하여 자아와 타아가 일물(一物)이 되는 것이다. 즉 은유는 나와 맞는 님을 찾는 일이다.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찾아나서자.
님을 찾는 것처럼 은유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모습이 강렬하며 품위를 높여준다. 다만 두 사물 사이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시적 포괄성은 커지지만 난해의 숲으로 빠져들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즉 이혼율이 높다.
*(1):홍문표,「현대문장론」,綜合協同硏究社,1973.P.147.
*(2):김용직,박태상,정한모,조남철, 앞의 책, P.77.
20.
문장과 문장 사이에 담는 것 중에 심층적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녀가 내 앞에 산소 나무가 되어 걸어온다. 걸어오는 그의 발자국에 햇빛이 가득 묻어있다. 그의 어깨에서도 햇살이 떨어진다. 그녀는 그대로 꽃이다.
- 그녀 -
내면의 풍경을 위해서는 실제로 쓰는 서술어에는 ‘젖는다, 흐른다, 탄다, 피었다’ 등 움직임과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대부분이다. ‘시냇물이 흐른다’는 표현은 ‘구상’이고 ‘즐거움이 흐른다’는 표현은 비구상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표현이다.
바다는 젊은 아이들
숲처럼 깊은 숨소리가 들린다
하늘빛이 꿈틀거린다. 새벽이 오고 있다.
- 바다 -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파란 하늘 사이로 흐른다
언뜻언뜻 놓여진 구름의 무늬는
움직이는 물고기 떼
희고 부드럽게
빛나는 것들, 은빛 고기가 있어서
더욱 상쾌하다.
- 구름의 여행 -
횡단보도 앞에 섰다.
멈춘 바닥 위에
시간에 썩은
열쇠 하나가
버려져 있다.
버려진 채 눈을 뜨고 있다.
- 열쇠 -
21.
패러디는 ‘익살스러운 흉내’라는 뜻이다. 창작의 한 요소인 패러디 기법은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모방에서 비롯된다’는 함축적 의미에서 그 토대를 마련한다.
패러디를 활용하면 막연한 것들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안내하여 상상력을 높인다. 또한 원래의 사물이나 형상을 조롱하기 위해서도 많이 쓰인다.
22.
인식과 행위는 사람의 외형적 인체조직과 마음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행위가 표출되는 원인은 지금까지 이어온 습성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생각은 인간의 의식세계와 무의식 속에 담겨있는 표출 입자이다. 우리의 생각은 몇 겹의 막으로 쌓여있다.
단순한 인간의 행위는 생각의 막 중에서 제일 바깥에 있는 생각의 막이다. 생각의 막은 겉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생각의 막이 겉으로 나올수록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시를 쓰는 것도 행위이다. 시를 쓰는 행위는 언어적 행위이다. 시가 출현되는 현상을 보면 체험적 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추상적 생각의 구체화 작업도 긴밀하게 이루어진다.
생각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부분을 관념적 인식의 세계라 하고 더욱 깊숙이 들어가면 무의식의 세계에 닿게 된다.
시 읽기는 무의식의 세계에 닿기 전 인식의 세계에 대한 작품을 읽기 위해서이다. 인식의 요소에 담겨있는 요소는 희망, 기쁨, 뜨거움, 절망, 욕구, 조용함, 안타까움, 아득함 같은 비구체적 관념의 표상들이다.
이러한 관념을 시적 언어로 그리는 작업은 인식의 형상화이다. 인식의 형상화는 사물과의 긴박함이나 절박한 만남에서 효과가 크다. 그것은 강열한 욕구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 효과가 입체적이다.
시 쓰기에서 우리가 고심하는 일이 있다면, 사물에 대한 대상을 항상 새롭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의 장래를 위해서 매우 행복한 일이다.
23.
사람들은 글쓰기의 과정을 흔히 물길에 비유하기도 한다. 특히 시조의 경우에는 기승전결의 방법이 요즘도 많이 쓰이는데 이는 시조가 갖는 흐름 때문이다.
시조는 3장이란 특수성이 있으며 특수성은 기승전결의 보편적인 흐름이 있다. 물길이 처음 시작될 때를 ‘기’라고 하며 물길의 유유한 흐름을 ‘승’이라 한다. 그러다가 변화의 수를 만나는데 당황스럽고 긴장감이 서리고 헤쳐 나가야 할 결단이 서는 곳, 이것이 ‘전’이다. 마치 물길이 폭포수를 만나 곤두박질쳐야 하는 경지가 그런 것이 아닐까. 그 다음에 다시 평온을 찾아 조용히 흐르며 잦아드는 것, 이것이 시조의 흐름이다. 시조를 창작할 때에는 기승전결에서 ‘전’의 묘미를 불러와야 한다.
24.
화담집 의 ‘동유록(東儒錄)’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그 옛날 서경덕 선생은 화담에서 살았는데 화담의 물은 성거산(聖居山)으로 물이 항상 검푸르고 많이 고여 있었다고 한다. 작은 봉우리 아래 집을 짓고 즐거움으로 소요하며 사는 것이 마치 속세를 벗어난 것 같았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말년에는 얼굴에 덕성이 흐르고 피부가 맑아 세상의 높은 경지를 궤뚫은 듯 하였다고 하였다. 항상 달을 보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귀를 씻고 마음을 닦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런 모습은 향기 나는 시 한편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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