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법문 선 (禪)과 정토 (淨土)
(대각 연화회 법문)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후, 불법을 전파하시고 중생들을 제도하셨다.
전 4부 대중은 불법의 혜택을 입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행복과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그 근기에 따라 다른 방편을 이용하셨다. 때 맞춰 비가 내려 모든 초목이 수분을 얻어 무성하듯,
모든 중생들이 이익을 얻고 스스로 성장하였다. 여러 가지 다른 방편들이 있지만, 그 근원은 같다.
중생들이 모두 같은 불성을 지녔기에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바뀔 수 있다. 각자는 작기의 역량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들을 바르게 인도할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혼란에 빠진다. 바른 인도를 못 받으면,
중생들은 고통의 바다에 빠진다.
육조 혜능 대사가 오조를 뵈러 왔을 때, “ 어데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혜능이 “ 영남(嶺南)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오조께서 물었다 “ 남쪽의 야만인들도 불성이 있느냐?” 혜능이 대답하였다. “ 사람들은 남북을 가리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없습니다.”
이러한 대화는 마치 겨울잠을 자던 모든 생물을 깨우는 천둥처럼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극소수 많이 깨우침을 얻었다.
선불교가 육조에 의해 남부 중국에서 온 나라로 전파 된지 천년의 세월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염불삼매(念佛三昧)
즉 아미타불에 대한 일심칭명(一心稱名)과 관법 (觀法)이 또한 가르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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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를 수행하려면 ( 사바세계의 ) 고통스런 상황을 혐오하고 서방 정토에 태어나기를 갈망해야 한다.
매일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고, 아미타 부처님께 예배하고, 참회의 경전을 독송해야 한다.
수행자는 굳은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악업을 줄이고, 서방 정토에 왕생하려는 서원을 발해야 한다.
누구나 진실하게 이러한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비록 생사의 이 사바세계에 살고 있어도 매우 뜻 깊은 수행의 목표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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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란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모든 중생이 똑같은 불성을 갖고 있으므로 누구나 다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
불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중생이고, 불성을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 부른다.
우리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아미타 부처님이 우리의 자성(自性)이고, 정토는 우리의 마음이다.
누구라도 생각생각 일심으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깊이깊이 집중할 수 있다면,
아미타 부처님이 항상 그의 마음속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아미타 부처님을 십만억 불토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 만일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국토가 청정하지 않다.
만일 사악한 생각이 마음에 오면, 온갖 장애(障碍)가 나타난다. 만일 착한 생각이 떠오르면, 모든 곳에 평화가 있다.
그럼으로, 천국과 지옥은 모두 마음속에 있다.
모든 선남자 선여인 들은 자신의 장래와 생사의 큰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이 지나도 다시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베틀 위의 베짜는 사람의 손가락처럼 해와 달이 창공을 럼 빨리 움직이는 것과 같다.
시간은 여러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만일 사람 몸을 잃으면, (오랫동안) 그것을 되 얻을 수 없다.
마지막 순간이 오면,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다. 모든 것들이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없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는 이 불행한 상황을 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경에 이르기를 보통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 그리고 성스러운 사람들이 모두 똑 같다고 한다.
(이들의 불성에는) 차이가 없다. 오직 마음의 청정하느냐 않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이 서로 다르지 않다 ” 라고 한다.
청정한 마음이 부처이고, 청정하지 않은 마음이 중생이다.
부처와 중생은 오직 (바르거나 미혹한) 마음들이 일어나느냐 안 나느냐 에서 차이가 난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순수하나, 탐욕, 진애, 어리석음, 오만, 다섯 가지 욕망과 여러 가지 미혹으로 오염되어 있다.
따라서 이렇게 오염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중생이라 부른다.
만일 이러한 마음의 때들이 씻겨지고, 마음이 청정해진다면 이를 부처라 한다. 다른 사람들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든 중생들은 무시겁(無始劫) 이래로 무거운 악업을 지어 왔으므로 오염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이 오염된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 하여는 대부분 화두 참구나 일심 염불 등의 수행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많은 수행법들을 보지만, 이들은 모두 마음의 병들을 고치기 위한 약방문이다.
예로서, 거울이 본래 밝지만, 만일 먼지로 덮여 있으면 아무 것도 비추지 못한다.
그것을 깨끗하게 하자면 세제(洗劑)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세제가 비록 다른 먼지를 씻어내어도, 역시 일종의 또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다.
거울이 한번 밝아지면, 다시는 다른 세제가 필요 없게 된다.
이것은 마치 흙, 모래 가루와 돌 맹이로 더렵혀진 금광과 같다.
그것이 일단 제련되어 순수한 금이 나타나면, 더 이상 제련할 필요가 없다.
중생의 특성인 오염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열심히만 수행하면 이일을 이룰 수 있다. 이일이 성취되면 밝고 청정한 마음이 나타난다.
이런 까닭에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 한다. 오염된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을 부처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선 수행과 화두 참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중요한 방법 들이나,
불행이도 오늘 날 참으로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이 이유는 그들의 선근이 얕고, 수행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그들을 지도할 훌륭한 스승을 만나지 못 하면, 쉽게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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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선과 정토를 같이 닦아야 한다. 이것이 바르고 안전한 법이다.
부처님 이름을 부르면서, 부처님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오랫동안 관찰한다면, 불성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열리고, 자신의 마음 바탕에서 밝은 지혜가 흘러나온다.
이것은 화두 참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진실한 수행과 끊임없는 정진이 필요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릇된 마음으로 열심히 정진하지 않으면서,
수행을 경시하고 나날이 개으름만 피운다면 당나귀의 해까지 미혹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개으름과 그릇된 생각을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금생을 그릇 되게 보낼 뿐만 아니라,
수 겁이 지난 후에도 아직 미혹에서 깨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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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러분이 염불하기에 좋은 상황에 있다면, 시작하세요.
비록 여러분이 이 혼탁한 시대의 괴로운 세계에 살고 있더라도, 일단 염불을 시작하면 많은 번뇌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경에 이르듯이 만일 여러분이 맑은 물이 들어나도록 모래와 흙이 바닥에 가라앉도록 놔두면,
이 것이 객진 번뇌를 극복하는 첫 걸음이 된다. 모든 모래와 흙이 제거되면,
오직 맑은 물만 남겨지고, 이것이 바로 모든 번뇌와 미망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
그러면 여러분은 티끌만한 실수의 두려움도 없이 조용히 홀로 염불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미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또는 경에 이르듯이 마음이 청정하고 밝아져서
객진번뇌가 장애가 되지 않은 경계에 이른다면, 아미타 부처님이 오셔서 여러분을 극락정토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여러분을 칭찬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