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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이론의 발전을 위하여
- 한국사회변혁이론의 혁신과제 -
정성희 전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장
1. 들어가며
한국 진보운동은 지금 일반대중들로부터 정치사상적 도덕적 우월성을 폭넓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를 위해 노력하고 산별노조체계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배부른’ 노동운동이란 인상을 능동적으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전국 각 대학의 총학생회선거 결과에서 보듯이, 학생운동은 거듭되는 동원 식 반미통일투쟁 중심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청년학생들의 다양화된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하고 그 세력이 갈수록 고립, 약화되고 있다. 농민운동은 생존권 위기에 몰린 농민대중의 요구를 적극 대변하고 있으나, 여러 농민단체들의 통일단결을 아직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치운동 역시 점차 소진된 초기의 신선함과 기대감을 만회할 정치적 정책적 실천적 모습과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두텁게 쌓지 못하고 있다. 통일운동은 각계각층을 규합해 6.15민족공동위원회 남측본부를 결성했으나 북 핵 시험 등 당면 현안 대응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등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대연합운동의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도 본래의 성격에 맞지 않게 국민들의 관심 밖에 있다. 초기에 교과서 수준의 내용으로 문건 식 캠페인 식으로 접근했고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과 밀접히 결합해 추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중심주체와 내부의 사상적 실천적 통일성은 취약하고 개혁적 시민단체 등 중간세력을 견인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이 왜 노동자, 민중의 폭넓은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가. 분명히 ‘사이비 개혁세력’의 실정(失政)으로 인한 동반추락의 효과도 작용하고 있으나, 그 책임을 남에게 돌려서는 발전이 없다. 진보운동 자체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는 한 마디로 87년 이후 지난 20년간, 필자를 포함한 활동가들이 대중운동의 양적 성장에 걸 맞는 진보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한 목적의식적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사상에서 교조주의와 개량주의를 극복하지 못했고1) 이론과 정책에서 과학성, 구체성을 담보하지 못했으며, 방법과 자세에 있어 창의성과 진정성을 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컨대 올바른 사상과 이론과 방법과 자세를 가다듬은 대중속의 변혁주체를 튼튼히 꾸리지 못한데 오늘 진보운동의 정체와 답보, 위기의 근본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진보운동의 질적 발전에 가장 중요한 지도사상 문제를 논외로 하고2), 높아진 대중의 요구와 변화된 정세, 시대의 특성에 맞는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이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개괄적으로 문제 제기하고자 한다. 향후 진보운동 혁신에 헌신하는 많은 활동가들에 의해 그간의 풍부한 실천경험과 치열한 이론 연구를 토대로 보다 과학적인 변혁이론이 제출될 것으로 기대해마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이 글은 한국사회변혁이론 전체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연구, 해명되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위주로 다루고 있음을 밝힌다.
2. 한국사회, 어떻게 바뀌고 있나
필자는 21세기에 접어든 한국사회가 다섯 가지 시대적 특성을 가진다고 본다. 첫째, 민중의 자주적 요구가 유래 없이 높아진 ‘자주시대’, 둘째, 2000년 이후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6.15시대’, 셋째, 90년대 초반부터, 특히 IMF위기 이후 제국주의 독점자본 주도의 무한경쟁⦁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시대’, 넷째, 87년 이후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가 일부 진전된 ‘합법화시대’, 다섯째, 90년대 중반이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식정보가 광속도로 유통되는 ‘정보화시대’가 바로 그 것이다. 진보운동은 이러한 시대적 특성이 한국사회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세상을 바꾸는 이론과 실천에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운동은 갈수록 민중과의 결합이 약화되고 지배세력의 ‘수구좌파’라는 비난에도 할 말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예속성이 훨씬 강화되고 있다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는 정권과 생산수단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좌우된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미국과 일본은 제국주의 독점자본주의사회일 것이다. 자국의 정치권력과 생산수단만이 아니라 약한 다른 나라의 그 것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 사회인가. 외세와 그 앞잡이들인 재벌, 관료 등이 정권과 생산수단을 잡고 있는 ‘외세 지배하의 전근대성이 남아 있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지금 한국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를 ‘외세 지배하의 천민적 신자유주의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각 정파마다 한국사회를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 식민지자본주의사회, 신식민지예속독점자본주의사회,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 등 그 무엇으로 표현하든, 형태와 방식이 다를 뿐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고 서구의 정상적 자본주의사회에서 보지 못하는 전근대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자본주의사회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과잉자본, 과잉생산에 의한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축적 위기 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 이후, 개방화, 사유화, 자유화, 유연화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입고 있는 노동자, 민중들 자신이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더 잘 알고 있다.
우선 정치적 측면에서 미 대사관, 미CIA 한국지부 등의 교묘한 정치공작을 통한 내정 간섭과 지배는 계속 작동되고 있다. 둘째, 군사적 측면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작전통제권 반환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나 주권을 빼앗긴 한미상호방위조약 아래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전략적 유연성’이란 새로운 미 군사전략에 기초한 한미동맹의 결박은 여전히 단단하다. 여기에 다가 셋째, 경제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정책이 전면 도입되면서 한국사회의 경제적 예속성은 훨씬 더 심화되었다. 70년대 차관경제, 80년대 합작⦁직접 투자 방식의 외자경제를 지나 90년대 초반부터 세계화란 미명하에 초국적 금융자본 형태의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한국경제의 명맥을 틀어쥐고 영미 식 주주자본주의를 강요함으로써 정부의 정책 결정권과 기업의 경영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국내 증시의 약43%, 주요 은행과 대기업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3) 현재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모든 시중은행이 외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이들 은행은 생산적인 기업 대출을 축소하고 가계대출을 확대하면서 국공채 등 안전자산 위주의 자산운용을 선호하고 있다. 대기업도 외자 지분율이 높을수록 주주 배당이 많아 저투자-저고용을 야기하고 내수시장을 위축시키며 서민대중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제국주의 독점자본은 한국 민중의 고혈을 이중 삼중으로 쥐어짜고 있을 뿐만 아니라 S&P 등 각종 신용평가기관을 내세워 한국경제의 국제신인도를 임의로 측정, 유포하면서 외자 철수로 인한 위기상황4)을 카드로 정부 정책을 저들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는 상황이다. 넷째, 사상 문화적 측면에서는 단적으로 3S(Sports, Screen, Sex)범람, 조기유학 붐, 이민 급증 등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국 민중에게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유주의, 퇴폐행락주의, 황금만능주의 생황양식을 퍼트리고 사상 문화적 예속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 비관세 장벽을 완전히 허물어 무역과 투자, 지적재산권 등 모든 부문의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까지 체결될 위기를 맞고 있다. 만일 FTA를 통해 한미 경제통합을 이룬다면,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예속성은 물론, 정치적 문화적 예속성도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고착화되고 말 것이다. 한미FTA체결이야말로 새로운 단계의 식민지로 접어드는, 완전한 주권 상실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혹자는 한국경제의 규모가 세계 11위나 되고 동남아 등지로 자본 수출이 진행되며 주력산업의 기술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근거로 한국경제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도가 더욱 높아진 독점재벌도 매판성, 예속성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었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하위파트너로서의 재벌의 기생, 결탁 현상도 약화된 것이 아니라 강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정부의 출자총액제한제도 규제 완화와 순환출자 금지제의 도입 무산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 같은 사실은 명백하다. IMF초기 적대적 M&A를 위해 기업의 투명성, 건전성을 강요하던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한국 재벌 대기업을 거의 지배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 규제를 반대해 재벌 개혁을 가로막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벌에 대한 외자의 지배력 확대가 재벌체제와 외자의 이해관계를 점점 더 결합시키는 증거이다.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몇 가지 첨단기술과 독자모델 개발도 우리나라 기술 자립의 징표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2004년 한국의 기술무역적자는 26억 6천만 달러로서 OECD가입 27개국 가운데 26위를 기록했고, 이 가운데 전기전자가 약48%, 기계가 12%를 차지하고 있어 원천 및 핵심 기술의 의존도는 여전히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내기업들은 외국기업에 고액의 로열티(기술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으며, 지적재산권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5)
이처럼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을 통해 상당한 자본 축적을 실현하고도 제국주의 독점자본 중심의 세계화바람에 편승한 정부의 무분별한 개방정책과 재벌의 방만한 경영으로 자본, 시장, 기술, 원료의 대외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2) 전근대성은 약화된 채 온존하고 있다.
한국자본주의는 예속성이 강화된 반면, 전근대성(천민성 또는 기형성)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일정하게 약화된 게 사실이다. 이는 정부 주도의 국민경제에서 자본 주도의 국민경제로 전환되고 신자유주의 시장질서가 확산되는 동시에 87년 이후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가 일부 진전되고 지식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된 결과로 해석된다. 90년대 중반이후 정보자본주의6)가 확산되면서 자본의 지배가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이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 점령당하게 되었다. 정보화시대는 인간의 정신노동에 대한 자본 지배를 심화시키고 지식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했지만, 광범한 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의사를 표현할 공간과 수단을 획기적으로 넓힌 측면이 있다. 이렇게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와 지식정보화, 신자유주의 시장질서가 우리사회의 전근대성을 일정하게 약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재벌-정권 간의 재정, 금융 특혜와 검은 정치자금 수수관계가 약화되었고, 임금, 고용, 대 노조 정책에서 반 노동자적 경쟁원리와 법, 제도에 의한 착취와 억압 방식으로 바뀌었다. 반봉건(半封建)의 상징인 지주-소작관계도 농촌의 부재지주문제가 없지 않으나 일찍부터 주요 변수에서 제외되었으며, 개방화와 살농정책이 초래한 농축산물의 가격문제가 농민의 핵심 요구로 등장했다. 토지문제로 인한 모순은 서울강남 등 전국 주요 대도시와 개발지역 도처의 부동산투기로 집중 표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자본주의의 전근대성, 천민성이 없어진 게 아니다. 전근대적 잔재는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를 비롯해 원-하청 불공정거래, 인사노무관리의 낡은 인식과 관행, 사회 전반의 지연 학연 혈연 중시 풍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정상적인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근대적 유제임이 틀림없다. 대기업 보다 중소영세기업, 도시 보다 농촌으로 갈수록 이러한 전근대성은 더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최근 장기파업사업장에서 대체근로 불법판정 이후 이를 시정하지 않는 악덕사업주의 모습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광풍은 87년 이후 일부 진전된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후퇴, 무력화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전근대적 요소와 결합된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가리켜 ‘천민적 신자유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같은 신자유주의 폐해라도 선진자본주의 나라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3) 신자유주의시대와 6.15시대에 맞는 진보운동을!
이와 같이 한국사회가 예속성이 강화되고 전근대성이 약화된 채 온존하는 방향으로, ‘외세 지배하의 천민적 신자유주의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운동은 이를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이론과 실천에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 민주화세력을 포함한 자유주의세력은, 노무현의 ‘친미자주’니 ‘동북아 균형자’라는 황당 주장이나 ‘미군 감축’ ‘작통권 반환’, ‘국내기업의 해외 진출’이나 ‘재벌의 독점 강화’ ‘IT산업의 발전 등 몇 가지 현상만을 바라보고 한국사회의 자주성이 높아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는 뉴 라이트로 변절한 일부 진보학자들의 ‘식민지근대화론’, ‘중진국자본주의론’ 같은 그릇된 이론에 현혹돼 한국자본주의의 독자성을 강조한 전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째, 일부 시민운동은 소액주주, 사외이사, 지주회사 조건부 허용, 상속 증여세 강화, M&A활성화, 금융기관 소유 지배 제한 등 자유주의적 재벌개혁론을 소리높이 외침으로써 IMF를 앞세운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셋째, 그 정반대로 진보운동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수직 계열화되고 있는 외국자본과 재벌과 영세자본의 관계와 그 정치적 함의를 가려보지 못하고 투쟁 대상에서 외국자본 보다 재벌을 더 앞세우거나, 영세 자본까지 포함한 자본가 일반을 민중의 적으로 간주해 투쟁의 초점을 흐리고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넷째, 이 같은 전략적 오류와는 다르더라도, 신자유주의시대에 정치군사적 영역만의 반미반제투쟁을 답습하는 경향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한국경제 지배방식이 70~80년대 정부⦁상업 차관-합작⦁직접 투자 형태일 때는 경제적 영역보다 정치군사적 영역이 더 강조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은행, 주식 등의 금융시장을 통해 한국의 거의 모든 산업을 사실상 지배하고 재벌-중소자본이 그 부담을 전가하는 과정에서 사회양극화와 빈곤을 확대시키고 있는 조건에서는, 정치군사적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영역을 비중 있게 다루고 사회적 평등문제와 밀접히 결합시켜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진보운동 일부는 지난날의 관성대로 정치군사적 소재 위주의 반미반제 통일투쟁만을 일삼아 일반민중과의 괴리현상을 야기했다.
다섯째, 또 일부 정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근본 원인을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에서 찾지 못하면서 그 주범인 국제독점자본의 총체로서의 미제국주의자를 집중 공격하지 않고 그 종범인 정권과 국내자본만을 문제 삼았다.
최근 외국투기자본 감시 활동, 한미FTA 저지 투쟁 등을 통해 이런 현상이 일정하게 극복되고 있으나, 세상을 바꾸는 올바른 방향 정립을 위해 빠른 사고 전환과 실천이 요구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이 결정적 변수라는 아마추어적인 원론 주장, 그 이상의 응용력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진보운동은 또한 6.15시대에 맞는 정치활동의 내용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이 유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6년간의 ‘겨레의 행진’이, 사상적으로는 민족자주의식 고양과 반공반북의식 약화를, 정치적으로는 노골적인 냉전수구세력 후퇴를, 경제적으로는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 가능성을, 문화적으로는 민족동질성 회복을 명확히 증명해주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우여곡절은 계속되고 있으나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민족의 단결, 단합은 부동의 추세이다. 그러나 진보운동의 일부는 6.15시대의 이 거대한 생활력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기계적으로 분리하고 남북교류협력을 자본의 진출 통로나 집권여당의 치적 정도로 편협하게 이해하는가 하면, 제국주의자와 그 앞잡이들의 악의적인 정보만을 믿고 북쪽사회를 왜곡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반북대결에 동참하는 경향이 있다.
남쪽에는 뉴 라이트, 한미자유무역협정, 전략적 유연성 등을 통한 식민 지배, 북쪽에는 금융⦁경제제재, 인권시비, 전쟁시나리오 등을 통한 고립 와해가 미국의 변함없는 한반도전략이라면, 이에 맞선 반미반제자주화, 신자유주의 저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추진은 한국 진보운동의 일관된 전략적 원칙이자 목표이다.
그러므로 일부 정파들도 기존의 교조적 관념에서 벗어나 자주⦁평화⦁통일운동의 대열에 적극 합류함으로써 7천 겨레는 물론, 세계평화애호민중들의 염원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여러 난코스가 예상되지만, 6자회담 재개를 통해 결국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보장이 실현될 것이므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의 급속한 발전을 내다보면서 6.15시대 진보정치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3. 어떤 성격의 ‘세상을 바꾸는 운동’인가
1) ‘반제반자본 사회주의변혁’이 아니라 ‘반제(반매판 반독점)’ 민주주의변혁이다
한국사회는 예속성이 심화되고 전근대성이 남아 있는 외세 지배하의 신자유주의사회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 한국사회변혁은 반제민주주의변혁, 즉 자주적 민주주의 변혁이다. 일부 진보운동이 조급하게 주장하는 반제 반자본, 즉 자주적 사회주의변혁단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북구(北歐)식 사회민주주의나 그 좌파 정도의 민주적 사회주의도, 신자유주의 시장경제하의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는 케인즈주의도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에 맞는 처방이 될 수 없다.7) 한국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는 길은, 외세 지배하의 분단된 예속자본주의사회를 자주적 민주사회로 바꾸고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반제민주변혁에 있다. 다시 말해 자주적 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자주적 민주대개혁으로 자주적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동시에, 가능하다면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이전이라도 7천만 겨레의 대단결에 기초해 연방제 방식의 통일 위업을 실현하는 반제 반매판 반독점 민주주의 변혁에 우리민중의 살 길이 있다.
그런 다음에 이러한 자주적 민주주의변혁은 자주적 민주대개혁의 성과와 근로민중의 준비정도, 변혁과 반 변혁 간의 역관계, 해당 정세의 변화에 따라 반제 반자본의 자주적 사회주의변혁 단계로 전환, 발전되는 2단계 연속 과정인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이러한 2단계 연속 변혁의 길에 대해서는 진보운동 내부에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1단계 자주적 민주주의변혁을 위해서도 아직 많은 준비가 필요한 때이고 더구나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민주노총 총파업의 위력이 약화되고 총학생회 선거에서 뉴 라이트에 밀리고 6.15민족공동위가 제 역할을 못하며 상설연대체 건설에 난항이 조성되는 등 진보정당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통일운동과 연대연합운동이 답보, 정체되는 원인을 규명하고 새롭게 혁신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2단계 자주적 사회주의변혁단계로의 발전 로드맵까지 미리 공표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전략 연구나 사상의식 제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현재 대중의 눈높이에서는 과도한 것으로 비쳐 진보운동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설령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전후로 한 해당 정세가 급변해 짧은 기간에 자주적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 자주적 사회주의변혁단계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지금부터 이를 공공연하게 주장함으로써 지배세력에게 악선전의 빌미를 제공하고 중간층을 이탈시키는 전략적 과오를 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제 반 자본 사회주의변혁’을 주장하는 것은 현 단계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매우 어렵게 만들 소지가 있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반제 반 자본’ ‘자주적 사회주의’이란 개념은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와 지향을 담고 있는 것으로 노동운동의 교육선전 내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외세와 그 앞잡이들을 제외한 광범한 민중을 하나로 묶어세워 세상을 바꾸는 현 단계 사회변혁운동을 성공시켜야 하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는 반드시 ‘반제 반 매판 민주주의변혁 단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반제 반독점’이란 표현도 신중하게 사용되고 올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재벌은 초국적 금융자본 형태의 제국주의 독점자본에 기생, 결탁하는 주 측면과 경쟁, 대항하는 부 측면을 갖고 있다. 특히 IMF 위기 이후 더욱 집중된 독점형태를 띠고 있으나 제국주의 독점자본과의 관계에서 재벌의 독자성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재벌을 ‘매판 독점자본’ 또는 ‘예속독점자본’으로 성격 규정해야 옳을 것이다. 현재 주력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전기전자 등에서 재벌 대기업의 국제적 지위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수직적 국제 분업체계에서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하위 파트너일 뿐이다. 외국 투기자본의 기업 사냥=적대적 인수합병의 표적이 돼 경영권 방어에 급급한 실정이며, 설비투자, 기술개발, 고용안정과 적정 임금 보장을 외면하고 자사주를 매입, 소각해 지분을 늘리기에 바쁘다. 또 배당을 높여 최대 주주인 제국주의 독점자본에 봉사하는 한편, 정부의 재벌 규제를 막는데 외자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반독점이란 용어가 마치 한국재벌이 독자적 지위를 가진 독점자본인 것처럼 혼란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반제 과제와 반독점 과제의 비중과 선후를 구분하지 않고 반매판 반독점 투쟁을 반제투쟁 보다 앞세우거나 평균적으로 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반 매판 반독점 과제의 실현은, 우리나라의 통일과 변혁의 변증법적 관계8)에서 볼 때, 더욱 정교한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외자 지분율 등 초국적 금융자본과의 관계에서 각 재벌 대기업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일부 재벌이라도 6.15시대 남북경협의 활성화와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남북경협에 적극 참여하는 일부 재벌의 역할을 사전에 봉쇄하고 무차별적 제거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통일이 변혁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변혁이 통일의 질을 높이는 유기적 관계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2) 외자 규제를 기본으로 재벌 해체를 결합시켜야
진보운동은 그 강령과 정책을 대중 앞에 제시해 동의와 지지를 구할 때도, 한국사회의 성격과 현 단계 변혁의 임무에 맞게 해야 한다. 이 가운데 국가기간산업을 비롯한 공공부문, 재벌 대기업 등 중요 산업의 소유와 경영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초국적 금융자본 형태의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국내 중요산업을 거의 장악해 성장둔화, 투자 부진, 분배 악화, 국부 유출, 상시적 구조조정, 해외소비 급증, 이민과 유학 열풍 등 온갖 망국적이고 반민중적인 폐단을 야기하고 정부 정책과 기업 경영을 노골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경제 강령은 외국 투기자본문제 보다는 재벌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9)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경제체제’ 구현을 외치면서 재벌 총수 일족의 지분을 공적 기금으로 강제 유상 환수해 재벌을 해체하고, 해당 기업 노동자 등 국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한다는 재벌정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을 뿐, 한국경제의 예속적 재생산구조를 바꾸기 위한 외자 규제 정책을 부차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경제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인식과 처방은 재벌 대기업노조를 비롯한 전체 노동운동이 눈에 보이는 재벌 총수만을 공격하고 그 배후의 더 큰 도둑놈의 실체를 드러내는 투쟁을 방기하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최근 론스타, 소버린, 뉴브리지 캐피탈,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외국투기자본의 폐해가 일부 폭로돼 외자의 위험성이 많이 알려졌지만, 재벌 대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의 경우, 노동조합이 자기 사업장의 재무구조만 분석해 적극적으로 선전해도 노동자, 민중의 고혈이 어디로 어떻게 빨려 나가는지 온 국민들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도 이를 매우 소홀히 다루고 있다. 이는 바로 한국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기존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신자유주의시대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국내 재벌의 예속적 결탁 관계를 도외 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운동은 한국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 독점자본 문제의 해결을 기본 축으로, 재벌 총수 일가의 소유와 경영 문제 해결을 보조 축으로 결합하는 전략적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현 단계 한국사회변혁운동의 핵심적 경제정책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사유화를 억제하고 국가기간산업을 비롯한 중요 산업에 대한 외자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철도, 도로, 항만, 운수 등 기반시설은 물론이고 현재 외자가 최대 주주로 있는 은행, 전력, 통신, 제철, 정유, 반도체 등은 반드시 돌려놓아야 한다. 해당 산업과 기업의 특성에 따라 외국자본의 지분을 일정 비율로 제한하고 단기 투기자본의 이동에 대한 직 간접적 규제만이 아니라 중장기적 합작, 직접투자 자본에 대해서도 중요산업의 발전과 자주적 민중경제를 저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장려되어야 한다. 또 과도한 배당, 이자 등의 잉여 유출은 재정, 금융, 경영 감독을 통해 조절, 통제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외자 규제로 인한 공백은 부동산 투기 근절을 통한 약400조원의 비생산적 부동자금과 약250조원의 연⦁기금 등으로 메움으로써 외자 소유를 전민중의 소유로 전환하고 경제 산업정책 수립과 주요 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지배와 간섭을 차단하고 경제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중요 산업분야의 국공기업화는, 정권의 성격이 문제였을 뿐 과거 개발독재시대 때도 실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시각으로도 크게 무리한 것이 아니다. 현재 재벌 대기업의 외자 비중이 주식만 거의 50%에 육박하고 외자가 지배하는 은행의 채권까지 합치면 그 지분은 더 크기 때문에, 대규모 외국인 주식을 매수하고 향후 공공성이 강화된 은행의 채권을 출자 전환하면, 재벌 대기업은 사실상 국 공유화, 즉 민중의 사회적 소유로 전환된 것이나 다름이 없어지며 재벌 총수의 황제 경영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재벌 총수 일가의 소유에 대해서도 노동자⦁민중의 준비정도와 해당 정세에 따라 단계적 또는 급진적으로, 일부 또는 전부, 유상 환수 또는 무상 몰수의 방법으로 국 공유화와 노동자의 자주적 관리를 실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경제 강령에서 말하고 있듯이, 재벌 지배의 통신, 운수, 병원, 학교 등의 공공서비스부문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으로 전환하게 되고, 그 밖의 기업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 노동자를 비롯한 하청기업인, 지역 주민, 소액주주, 소비자 등 다수 민중들이 공동 소유, 공동 경영하는 ‘민주적 참여기업’이라는 과도기적 형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대기업집단으로서의 재벌은 점차 전민중적 소유를 지배적 지위로 하는 다양한 소유 형태가 병존하는 경쟁력 있는 전문 대기업으로 변모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재벌 총수 일가의 소유와 경영에 대한 진보진영의 입장은 참여연대 식 자유주의적 재벌개혁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재벌해체와 민주적 참여기업(국민기업화)론, 일부 좌파들의 급진적 국유화론 등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제 노동조합, 진보정당, 연대연합조직이 반제민주변혁의 임무에 맞게 <외자 규제-재벌 해체를 통한 사회적 소유를 위주로 사적 소유의 결합, 민중의 대표가 민주적으로 선임한 전문경영인과 노동자의 자주적 참여의 결합을 통한 사람중심, 노동 중심의 경영 체제와 방법>이라는 재벌개혁 프로그램을 가지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산업별 노조 시대에 그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졌다.
진보운동은 지금부터 외자 비중은 점차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농간에 의해 언제든지 제2, 제3의 경제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중 주도의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전후로 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간섭으로 외자의 일부 또는 전부가 빠져 나가 우리나라 산업 전반을 마비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정책방향에 입각해 우선 외자 규제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외국자본 진출 국가 심사, 핵심 산업 소유권 제한, 외국자본 공시제도 강화, 재벌개혁과 연동한 신주발행 검토,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 경영참가 등을 실시하도록 대정부 대자본 투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3) 중소영세기업의 부분 협업화를
현재 우리나라 중소영세기업은 사업체 수 약 300만개(99.8%), 소속 노동자 수 1천47만 명(87.0%), 생산액 340조원(50.6%)이며, 서민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압도적이다(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통계, 2003년 기준 300인 미만 사업체). 이는 주로 10~20인 영세사업장 수와 그 종사자 수가 급증한 데 기인한다. 300인 이상의 대기업만이 아니라 100인 이상의 중기업의 수와 그 종사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기에 중소기업의 하향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90년대 이후, 특히 IMF위기 이후 대기업과 중기업의 빠른 구조조정에 따른 외주화(outsourcing)와 고용방출에 그 원인이 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 같은 중소기업 영세화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저하시키고 비정규직을 늘였으며, 노동시간, 작업환경 등 노동조건을 전반적으로 후퇴시키는 객관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기업에 비해 10~29인 사업장은 60%, 30~99인 사업장은 67%, 100~299인 사업장 73%, 300~499인 사업장 80%이며, 10인 미만 사업장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중소영세기업들은 이렇게 임금을 적게 주면서도 경영 압박과 노동력 수급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자금 확보, 원자재 구매, 기술력, 판로 개척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며, 특히 중국으로의 공장 이전과 부품 반입, 내수 침체, 원-하청 불공정 거래에 환율 인상까지 겹쳐 도산의 위기에 처했으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저임금, 비정규직, 실업 노동자에게로 전가되고 있다.10)
진보운동이 대대적인 중소기업 회생을 추진해야 한다. 사회복지분야 등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중소영세기업을 살리지 않고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 실업해소는 거의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의 당이자 중소상공인의 당으로서 비정규직 권리보장입법쟁취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연계시킨 중소기업 회생 종합대책’을 내놓고 그 관철을 위한 다양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를 울산, 창원, 포항, 광양, 안산 등 전국 각 지역의 산업노동정책으로 구체화해 민주노동당 지역조직과 의원들, 대기업․중소기업․비정규직 노조, 시민단체들의 긴밀한 협조체계 속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연계한 중소기업 회생대책을 대전제로 노사정 연대 기금 조성과 사회양극화 해소, 원-하청 불공정거래 중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연동된 대기업노조 임금동결 또는 무쟁의선언 등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과감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 특히 최근 장기파업사업장이 늘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중소기업체이다. 실제 중소영세업주는 양보의 폭이 없는 조건에서 전근대적 노무관리의식까지 버리지 못해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협약 체결 노사교섭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대개 노조만의 대응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산별노조 또는 연맹과 진보정당과 지역의 제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체작전을 통해 일면 투쟁하고 일면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이런 악성사업장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평소 중소영세기업 회생 책을 적극 선보여야 사용자측에 대한 정치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진보운동의 중소영세기업 정책도 반제민주변혁단계에 맞게 추진되어야 한다. 현 단계 한국사회변혁운동의 중소기업 정책은 자주적 사회주의변혁단계의 협동조합적 소유와 경영이 아니라,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그에 기초한 부분 협동조합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또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국내 재벌의 부담 전가를 막아내고 그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해 대등한 노사협력의 길로 나아가도록 민주적으로 조절, 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 교환 이상의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현재의 중소기업 협동조합 중앙회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정부 지원을 대폭 강화해 인적 자원의 질적 고도화와 기술 개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금융, 정보, 물류시스템의 확충, 원-하청 불공정거래 엄단과 대, 중소기업 상생협력 등을 실현해야 한다. 따라서 진보운동은 중소영세자본가에 대해 재벌 총수 일가와 차별화해 악덕 사업주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적극 견인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가로막는 사람들
우리사회에는 “세상을 바꾸자”하는 사람들과 “이대로”를 외치며 이를 가로막는 사람들, 그리고 중간에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세상을 바꾸자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사람들, 이렇게 세 부류가 있다. 첫째가 변혁의 주동력이고 둘째가 변혁의 보조동력이며 셋째가 변혁의 대상이라 하겠다. 세상을 바꾸는데 어떤 이해관계, 어떤 생각,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원칙과 기준으로 볼 때, 현 단계 한국사회변혁운동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양심적 지식인을 주동력으로, 도시빈민, 소상인 및 자영업자, 양심적인 중소영세자본가와 종교인과 하층 군인 등을 보조동력으로 삼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인 매판독점재벌, 친미 보수적 관료와 정치인, 수구언론 등을 변혁의 대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변혁의 동력과 대상에 대한 분석도 신자유주의시대와 6.15시대가 각 계급계층의 삶과 의식에 미치는 영향 등 한국사회의 변화를 세밀하게 반영해야 한다. 보다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계급계층 분석은 행동하는 사회과학자들에게 맡기고 거칠게 몇 가지 사항만 거론한다면 다음과 같다.
(1) 누가 세상을 바꾸는가?
1) 비정규직도 대기업 정규직도 중요하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 임시직과 일용직 비중은 58.8%(여성 72.1%)에 이르고,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55.9%(여성 69.2%)에 이른다. 50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는 93년 210만 명(17.2%)에서 2003년 130만 명(8.7%)으로 80만 명(8.5%) 감소했고, 50인 미만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740만 명(60.7%)에서 1천 20만 명(69.3%)으로 280만 명(8.6%) 증가했다. 실질임금은 상승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정체 상태이고,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0.0%로 외환위기 이전(13.5%)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가계수지 흑자폭은 대폭 감소했고, 가계수지 적자 가구는 증가했다. 남녀, 학력, 고용형태, 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되면서 임금소득 불평등은 빠른 속도로 증가해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저임금 계층은 380만 명(전체 노동자의 26%), 법정 최저임금 미달 자는 80만 명(5.6%)에 이르고 있다.11)
비정규직보다는 안정적이지만 정규직도 극심한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3.4%를 정점으로 2004년 58.8%로 하락했다. 노조 조직률은 외환위기 이후 11%대로 1970년대 이래 가장 낮고, OECD 30개 국 중 29위이다. 조합원 구성은 ‘대기업 정규직’으로 편중되어 있으며, 대다수 단위노조와 산별(노조)연맹은 규모가 영세하고, ‘복수노총-복수산별 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단체교섭은 기업별로 분권화되어 있고, ‘전국-산업-기업’ 사이에 조정은 원활하지 않으며, 단체협약 적용률은 OECD 30개 국 중 30위이다. 외환위기 이후 파업발생건수와 부당해고 구제신청건수가 급증하고 있다.12)
이 같은 노동자계급의 상태로 볼 때, 약86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의식화, 조직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위한 산업별 노조로의 전환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관건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계급의식과 계급적 단결에 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고서 조직의 형식과 제도 변경만으로 산업별노조의 위력을 발휘할 수도, 노동자의 자주적 요구를 관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화, 조직화는 물론, 노조를 통해 먼저 훈련된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의식 전환이 간절히 요구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의식화, 조직화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정규직, 특히 대기업 조직노동자가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약화된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표가 노동자를 위한 정부를 세우고 노동자가 참여하는 진보적 개혁정책으로 노동자가 주인답게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한국사회의 성격상 선거투쟁, 의회투쟁만 아니라 대규모 대중정치투쟁, 그 최고단계인 전민항쟁에 기초한 선거투쟁으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라면, 국가기간산업을 포함한 공기업과 민간대기업의 정규직 조직노동자의 단결력과 투쟁력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안정된 일자리에 안주하기 쉽고 이미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유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는 대기업, 공기업 노동자들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느냐, 이들의 변혁 지향적 실천의지를 어떻게 발동하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대기업, 공기업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것이 매우 절박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함께 하는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계급적 단결’과 각계 민중들과 함께 하는 “민중도 하나다”라는 ‘사회적 연대’, 북녘 동포들과 함께 하는 “조국도 하나다”라는 ‘민족대단결’, 이상 3대 정신을 얼마나 잘 무장하느냐가 관건이다.
2) 300만 농민 총 단결로 농촌을 변혁의 근거지로
통계청의 ‘2005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농가인구는 343만 4000명, 15년 전의 666만 1000명에 비해 322만 7000명이 줄었다. 전체인구에서 농어업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8.3%이다. 또 65세 이상 농가인구 비중은 29.1%로 90년 당시 11.5%였던 노인비중이 15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농촌총각들은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국제결혼을 해야만 한다. 아이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초등학교가 하나 둘씩 폐교되는 등 농촌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식량 자급률은 주곡인 쌀을 빼면 5% 밖에 안 되며 75%이상 외국 농산물을 수입해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의 쌀 생산비 조사결과, 논 300평당 총 수입은 87만 9411원이지만 생산비를 제외하면 순수익은 29만 1516원으로 2004년 44만 2533원보다 34.1% 줄었다. 또 국민 한사람이 소비한 쌀은 80.7kg으로 하루 221.2g에 불과하다.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은 120g 안팎으로 하루 소비량은 두 공기도 안 된다. 한 끼 분량의 쌀값이 300원에 못 미치니 껌 한통(500원)보다도 못하다.13)
개방농정, 살농(殺農)정책, 고령화로 농촌사회 전체가 붕괴되고 있어 빈농, 소농은 말 할 것도 없고 중농, 부농의 처지도 매우 어렵다. 최근 한미FTA 저지 투쟁에서 전농과 연대해 나선 한농연 등 중간층 농민들이 급진화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변혁적 농민조직인 전농의 대중적 지지기반이 급속히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농민운동은 농민들의 당면 생존권적 요구를 대변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농민조직과의 통일단결 수준을 높이고 농업협동조합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등 농촌사회 전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도 그렇지만, 농민이야 말로 변혁 없이 생존 없기 때문이다.
3) 대학생의 보수화를 막자
청년학생들이 어려운 경제사정과 그 원인을 옳게 인식하지 못하면서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다. 그래서 일반 대학생들이 파업 등 노동문제에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IMF위기 이후 취업난과 생활고 탓이기도 하고 신자유주의 경쟁논리와 이념공세의 영향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안에 대한 설득력 있는 교양이 절실한 대목이다.
또 6.15 이후 민족의식이 성장하고 반공의식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기풍이 범람하고 있다. 사이버상의 주도권은 바로 이들 자유주의자들이 쥐고 있으며, 영화, 음악 등 문화생활에서도 자유주의 풍조가 넘쳐 대학생들을 탈정치 허무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유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은 대학생들의 의식과 정서에 맞는 교양선전사업이 부재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대중투쟁의 의제 개발에 실패하고 있으며, 학생회의 대중적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학생운동 상층의 분열로 통합적 지도집행력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뿐인 대학을 제외하면 약280개 대학 가운데 조금이라도 운동역량이 있는 곳은 120개, 과거에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비율에서 운동권이 압도적이었는데, 갈수록 역전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최근 뉴 라이트 학생조직이 전국적 규모로 총학생회장을 출마시켜 적잖은 성과를 챙긴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학생운동의 급선무는 첫째, 활동가들의 교양체계를 새롭게 세우고, 둘째, 학생회, 학회, 동아리 등을 철저히 대중조직의 원리에 맞게 운영하며, 셋째, 교육투쟁, 청년실업문제 등 대중적 의제를 정확히 잡아 대중투쟁을 활성화하면서 반미반제, 통일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생운동의 쇠퇴로 사회변혁운동의 선봉대를 상실하고 운동역량의 재생산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은 학생운동의 위기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운동 전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4) 진보적 지식인들의 단결과 세력화가 시급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사회에는 교수, 언론인, 변호사, 의사 및 약사, 과학자, 문화에술인, 각종 전문가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사회를 선도하는 핵심 여론주도층이랄 수 있는 대학교수들의 의식성향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필자와의 대담을 통해 “한국 대학사회의 교수는 총 3만 명 정도이며 문과계통은 1만 명으로 추산 된다”면서, 이 가운데 대략 성향별로 구분해 “진보 10%, 중도 50%, 보수 40%”라고 했다. 또 진보10% 중에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맑스주의경향 20%, 민족주의경향 15%, 사민주의경향 40%, 케인즈주의경향 20%, 무정부주의경향 5%가 되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중도성향 50%에는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정책노선 가까운 자유주의경향의 교수들이 포함 된다”고 말했다.
변호사들도 대한변협 소속이 민변소속 보다 훨씬 그 수가 많으며, 민변 소속 변호사 중에서도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압도적이다. 대학교수와 변호사들의 의식성향 분포가 이와 같다고 할 때, 언론인, 의사, 약사, 각종 전문가 등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비슷한 여타 지식인그룹들도 대동소이하지 않겠는가 싶다.
외세 지배하의 천민적 신자유주의와 민족의 분열⦁분단으로 인해 노동자, 민중의 고통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를 이끄는 이데올로기와 과학기술, 문화의 생산자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인들의 의식상태가 이러하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지식인들의 조직화, 정치세력화 수준도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진보적인 교수들조차 각종 진보학회, 학단협, 민교협, 교수노조 등 여러 조직으로 묶여 있으나,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통일단결하지 않고 사소한 차이로 서로 나눠져 있으며, 진보 정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로 결집하지 않고 광범한 개혁적 교수들을 힘 있게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또 자유주의성향의 교수들은 노무현정권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폐해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도 이를 소극적으로 방관하거나 비판하고 지지를 철회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을 뿐, 진보정치세력화에 동참하는 등의 새로운 모색에 나서지 않고 있다.
5) 500만 소상인이 변혁의 성패 좌우할 터
영세상공인, 특히 소상인=서비스업 자영업자의 변혁적 지위도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기업, 은행, 공공부문의 수많은 명퇴, 조퇴 자들이 대거 창업에 나서면서 서비스업 자영업자가 무려 529만2천명으로 늘어났다(2003년 기준). 그런데 이들의 처지는, 신용불량자의 30~40%, 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이 24.7%(2003년 기준)14), 정부지원 생계형 창업자 중에서만 1년 내 휴폐업이 약 24%이며, 상당수는 권리금, 임대료문제 때문에 폐업하고 싶어도 임차대계약이 이뤄지지 않는 난감한 실정이다. 300만 농민보다도 그 수가 더 많은 소상인은 신자유주의 시대 실업노동자의 또 다른 모습인 점을 고려해 노동자, 소상인의 연대투쟁 등 다각도의 실천 노력이 요구된다. 또 정책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통한 노동자로 흡수, 성공적 창업과 실패 확률 감소를 위한 각종 인프라 제공, 업종별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원활한 조정 매커니즘, ‘규모의 경제’를 위한 협업화, 사회적 약자인 점을 감안한 사회보장제도, 직업훈련과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추진해야 한다.
소상인은 사회계급간의 역관계에 따라 동요하는 측면이 있으나 퇴출된 노동자의 다른 얼굴이라는 점, 그 처지가 매우 어렵다는 점, 그 수가 많다는 점, 특히 지역사회의 여론주도층이라는 점 때문에 이들의 견인 여하에 따라 한국사회변혁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진보운동이 소상인, 즉 서비스업 자영업자들에 대한 응당한 주목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큰 허점이 아닐 수 없다.
또 일용노동자, 노점상, 철거민, 파출부 등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업급여와 생계비 보조, 노점상 강제단속 중단 및 생존권 보장, 기술교육 및 훈련 확대, 주거생활 보장 등을 내걸고 적극 지원함으로써 이들을 사회변혁운동의 동력으로 의식화, 조직 화 해야 한다.
6) 양심적인 중소영세기업인들도 민중의 편이다
중소영세자본가들은 자본가 전체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2004년 말 현재 한국의 대기업이 4,957개인 반면 중소기업체 수는 약300만개이므로 중소영세자본가들도 약300만 명인 셈이다.15) 이들은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이에 결탁한 매판적 독점재벌의 온갖 불공정거래와 정부의 푸대접으로 인해 자본, 원자재, 시장 등 모기업이 4,957개인 반면 중소기업체 수는 약300만개이므로 중소영세자본가들도 약300만 명인 셈이다.15) 이들은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이에 결탁한 매판적 독점재벌의 온갖 불
그러므로 중소영세자본가들은 분명 착취계급이지만,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재벌에 의해 고통과 피해를 입어 불철저하나마 반제반재벌의식을 갖고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자주적 민주개혁을 지지할 수 있다. 이는 2004년 총선 시에 창원공단의 영세기업인들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데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영세자본가들은 자신의 협소한 계급적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또 노동자, 민중의 변혁적 진출에 동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제민주변혁단계에서 그들이 소유하는 중소영세기업체는 산업의 국, 공유화 대상에서 제외되고 자주적 민주정부에 의해 그 발전이 장려돼 서민경제 회복에 중요하게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적 사회주의변혁단계에 이르러서도 재벌 총수 일가와는 달리 그들 사업체는 협동조합적 소유와 경영으로 전환해 점진적으로 본인들의 동의에 따라 노동자로 바뀌게 된다.
때문에 한국사회변혁운동은 중소영세기업의 90%이상이 재벌에 수직 계열화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요구와 의사를 잘못 해석해 적의 편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중소영세기업 보호, 육성 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적극 견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현재 거의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중소영세기업 강령과 정책을 보완하고 다양한 정치조직사업으로 이들을 적극 견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정책방향은 변혁세력을 최대화하고 반 변혁세력을 최소화하는 사회변혁운동의 전략전술에도 맞고 반제민주변혁의 성격과 임무에도 맞을 뿐만 아니라 영세자본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도 맞다.
7) 양심적 종교인과 하층 군인에도 관심을 돌려야
현재 한국의 종교인들은 7~80년대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당시의 사회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비교해 현저히 보수화되어 있고 종교계 내의 진보세력이 고립적인 게 사실이다. 특히 과거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양심적인 종교인들조차 기독교인 김영삼 대통령, 천주교인 김대중 대통령을 거치면서 체제내화되고 신자유주의가 창궐해 민생을 파탄내고 있는데도 민중의 실질적 민주화 요구에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그나마 6.15이후 남북 종교인의 교류협력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모습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로 인한 기층민중의 고통과 민족분단으로 인한 7천만 겨레의 아픔을 종교인들의 양심에 호소해 이들을 다시 변혁운동에로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그 밖에 이미 기득권세력이 된 장성과 고위 장교들을 제외한 국군사병과 중하층장교에 대한 의식화, 조직화사업도 요구된다. 이 점과 관련, 출범한지 1년 4개월이 된 ‘평화재향군인회’(약칭 평군)는 애국 군인을 조직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평군은, 기존의 재향군인회가 일부 고급 장성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모임으로 전락했다고 판단, 재향군인회 폐지법안(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 발의)의 통과를 촉구하면서 “국내외 반전평화 운동조직과 합심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드는 일, 자주국방을 국민 속에 뿌리 내리는 일에 총력을 다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 누가 세상을 바꾸는 길을 가로막는가?
1) 미제국주의자가 1차 투쟁 대상임이 보다 분명해져
거듭 강조하지만, 미국 제국주의는 초국적 투기자본, 금융자본 형태의 제국주의 독점자본을 앞세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요하고 이를 통해 한국 정부의 정책결정권과 한국 기업의 경영권을 빼앗고 한국의 노동자, 민중을 초과 착취, 수탈하고 있다. 특히 한미FTA 체결을 통해 경제통합을 이루면, 한국경제는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 하청경제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에 ‘전략적 유연성’이란 새로운 군사동맹과 대북 제재, 신종 친미세력 육성 등으로 한반도 지배와 간섭을 보다 노골화하고 있다. 때문에 이제 일반 민중의 눈으로도 제국주의 미국이 한국 민중의 고통의 근원이고,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1차 대상임이 보다 분명해졌다. 따라서 진보운동은 ‘주권 침해, 민생파탄 미국 제국주의 책임론’을 강조하고 정치군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서민 생계와 직결된 경제적 영역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생생하게 폭로, 규탄함으로써 반미반제투쟁의 대중화를 비약적으로 이뤄내야 할 것이다. 또 남미, 중동, 한반도 등 세계 도처에서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패퇴하고 있는 국제정세를 들어 미국 지배 60년의 공미, 숭미, 친미 등 온갖 대미 의존적 사대주의 의식을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2) 정부관료 보다 재벌, 보수언론의 입김이 더 강화돼
87년 이후 한국경제는 자유주의적 자본 축적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93년 김영삼 정부의 OECD가입 추진을 계기로 모든 부문과 산업이 전면 개방화되고 97년 IMF 위기를 겪으면서 제국주의 독점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장질서가 가속화되었고, 그에 따라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재벌,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정부 관료, 그리고 정부 관료와 재벌 간의 관계도 일정하게 변화되었다. 외국자본이 은행, 주식 등 금융시장을 거의 장악, 한국의 중요 산업과 주요 기업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의 입김에 한국 정부와 재벌이 놀아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지배-예속관계에 놓인 정치군사적 이유만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한국의 대미 예속성은 훨씬 강화됐다는 의미다. 따라서 투쟁대상의 변화상황을 정확히 인식해 투쟁의 초점과 비중을 올바로 설정해야 한다.
또 친미보수성향의 정부관료, 정치인들은 IMF프로그램과 그 이후 일련의 경제정책, 그리고 최근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과정을 통해 미제국주의자와 제국주의 독점자본, 그 하위 파트너인 국내 재벌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과거에 비해 자본에 대한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의 입김도 많이 약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자본을 조절, 통제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권의 이러한 정책 의지가 없을 뿐이며, 이는 노동자, 민중에 기반 하지 않은 정권의 성격에 기인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표방하고 있듯이, 민중 주도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하루빨리 수립해 재정, 금융 등 다양한 방법으로 외자와 재벌 등 자본 측을 규제해야 예속적 민중수탈구조를 타파하고 민생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것이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한국의 보수언론은, 과거와 달리 이제 정권도 어쩌지 못할 지경이다. 그야말로 ‘제4부’라 칭할 정도로 힘이 커졌다. 조, 중, 동을 비롯한 친미보수언론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편승해 전쟁광풍을 부채질하기도 하고, 한 목소리로 대북 포용정책 폐기, ‘북한 퍼주기’ 비난, '간첩사건' 대서특필을 통한 신공안정국을 조성하기도 한다. 이들은 종부세 '위헌시비'를 부추겨 부동산 투기 억제를 가로막고 외국 투기자본의 폐해에는 눈 감은 채 재벌의 정부 규제를 비판하면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 행사와 집회 시위에는 쌍심지를 켜고 악선전함으로써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이 같은 친미보수언론이 한국사회변혁운동의 주요 대상중의 하나임을 직시하고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5.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모든 전략전술은 목표와 수단과 방법으로 구성되는데, 현 단계 한국사회변혁운동의 전략전술도 반제민주변혁의 성격과 임무에 맞게 목표, 수단,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우선 그 목표에서 반미반제자주화를 앞세우고 반 매판 반독점 민주화를 밀접히 결합시켜야 하며, 그 수단에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진보적 지식인을 위주로 소상인 및 자영업자, 도시빈민, 민족적인 영세자본가, 군사병과 중하층 장교, 양심적인 종교인 등 광범한 계급 계층에 대한 의식화, 조직화를 결합시켜야 한다. 또 그 방법에 있어서는 사회변혁의 준비기에 맞게 합법투쟁을 십분 활용하면서 반 합법투쟁과 비합법투쟁을 결합시키고 정치투쟁을 위주로 경제투쟁을 결합시키며 각계 민중들의 당면한 모든 투쟁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전략적 목표 달성에로 맞춰야 하며, 좌우편향을 극복하고 투쟁을 통해 변혁역량을 축적, 성장시키는 원칙을 철저히 견지해야 한다.
진보운동 전반을 일대 혁신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지금, 변화된 한국사회의 특성과 정세의 요구에 맞게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여기에 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의식이 높아지고 대중조직화가 진전되며 대중투쟁이 발전하고 있는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시대와 6.15시대, 형식적 민주화시대와 정보화시대의 특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1) 대중의식화의 내용과 방식을 혁신해야
우선 대중의식화의 내용을 바꿔야 한다.
첫째, 반제자주의식화의 내용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갖춰야 한다. 기존의 정치군사적 소재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독점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로 인한 피해사례 등 경제적 소재를 위주로 사상 문화적 소재, 생태 환경적 소재까지 풍부하게 활용하되, 그 주범으로서의 미국 제국주의자들에게 투쟁의 예봉을 돌려야 할 것이다. 미군 철수나 미군기지 평택 이전 확장 저지도 중요하지만, 효선⦁미선 사건, 미8군의 한강독극물 방류, 론스타 투기자본, 한미FTA 등을 고리로 한 대중적 반미반제의식화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는가를 보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둘째, 대중의 주인의식, 공동체의식, 변혁의식을 높여야 한다. 민족자주의식, 계급의식 등 정치의식화만으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민중의 올바른 사상의식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신자유주의가 정치적 경제적 예속과 독점으로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유주의, 퇴폐향락, 일확천금 등 온갖 잡사상과 저질 문화를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자주의식, 계급의식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나로부터’, ‘너와 함께’, ‘우리 하나로’라는 자주, 민주, 통일의 정신을 구현해 노동자, 민중들의 주인의식, 공동체의식, 변혁의식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가능한대로 진보정당과 노조, 농민회 등의 대중조직과 연대연합체에 망라된 조직대중부터 정치생활, 경제생활, 문화생활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생활공동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생활 속에서 올바른 의식을 유지,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세상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처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변혁의식을 갖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자유주의 전면화는 대중의식화 공정을 단축시켜주고 있다. 일정한 민족의식, 계급의식 이후의 변혁의식, 경제투쟁 다음에 정치투쟁이 아니라, 곧바로 변혁의식을 높이고 곧바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시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의식화의 방식도 혁신해야 한다. 소수 활동가들만의 사상교양, 교과서적인 학습, 일방적 강의나 선전선동, 오프라인 위주의 교육선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합법적 공간이 넓어지고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빨라진 형식적 민주화시대, 정보화시대에 맞게 다수 대중을 위한 사상교양,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사례 중심의 교육토론, 쌍방향 및 다 방향의 토론식 선전, 온오프 라인 결합 등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개발해 실천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래, 춤, 시, 촌극 등 문화적 접근에 보다 많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일상문화생활 속에서 수천수만의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대규모 의식화사업을 공세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또 6.15시대에 맞게 아리랑 공연 관람, 우리겨레 서로 돕기 등 대규모 남북교류를 전개하는 것도 우리민족끼리 의식, 민족단결단합정신을 함양하고 고질적인 반공반북의식을 약화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다.
2) 사상 중심, 내용 중심의 조직화를
대중조직화 방식도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대중조직화 이전에 대중의식화를 철저히 앞세워야 한다. 또 조직의 체계와 형식이 아니라 조직의 사상과 내용을 갖추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운동에서 기업별 노조체계의 산업별 노조체계로의 전환은 백번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산업별 노조의 성격에 부응하는 조합원의 사상의식 수준, 운영 원리, 활동 내용이 준비되지 않으면, 조직 내부의 갈등과 분열, 현장 공동화, 관료주의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학생운동에서 한총련의 한국대학생연합으로의 발전 전망도 단순히 조직형식의 전환이 아니라 올바른 사상에 기초한 새롭고 풍부한 내용을 갖추는 작업을 선행시키지 않으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따라서 조직 형식이 아니라 조직의 사상과 내용이 대중조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자주성을 기반으로 민주성과 통일성을 결합시키는 원리’를 조직 운영과 활동에 철저히 구현해야 한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 사람의 자주성, 민중의 자주성, 대중의 자주성에 기초하지 않은 어떤 조직, 집단, 사회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자기 개성시대,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조직의 체계와 운영에서 수직적 관계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대중의 자주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양하기 위해 무릇 조직이라는 조직은 한 결 같이 피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조직, 집단, 사회의 주인인 구성원들의 자주적 요구와 참여를 높이는 다양한 사업이 실시되고 그들의 자주적 의사와 지혜를 민주적으로 수렴하면서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로 만들며, 그래서 위력적인 집단의 힘을 발휘하는 과정이 부단히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진보운동은 조직운영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소홀했다. 이제 진보운동도 ‘자주성을 기반으로 민주성과 통일성을 결합하는 원리’를 통해 이 땅의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새롭게 혁신하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운동의 양적 성장에 자족하고 자주성에 기반 하지 않은 민주집중제로 조직을 운영하고 활동해 형식주의, 관료주의의 폐단을 낳았다는 엄연한 사실로 인해 ‘자주성을 기반으로 민주성과 통일성을 결합하는 원리’는 더욱 중요해졌다. 동구사회주의의 붕괴도 국가와 사회의 운영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에 기초한 민주주의 원리를 견결하게 고수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 87년 이후 우리사회 전반에 확산된 직선제 등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도 민중의 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결여와 함께 대중의 자주성을 높이지 않고 이에 기반 하지 않음으로써 그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현대 부르조아경영학이 오히려 앞서가고 있다. 물론 노동자들의 자주성, 창의성을 자본의 이윤 극대화에 복속시키기 위한 목적이지만, 조직체계와 운영 원리를 부서장체계에서 팀제로, 팀제에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개념16)으로 전환해 노동자들의 자주성,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발버둥이다. 물론 자본가계급의 이 같은 경영수법은 한계가 있으며 결국 실패할 것이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돈 중심, 집단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 협동과 단결이 아니라 경쟁과 분열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의 자주성, 노동자, 민중의 자주성,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운동의 ‘자주성을 기반으로 민주성과 통일성을 결합하는 대중 주체의 조직 운영 원리’는, 그 목적과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과 합법칙성으로 인해 필승불패(必勝不敗)이며 난공불락(難攻不落)이다.
셋째, 진보정당이 연대연합운동의 합법적 중심주체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조직전략과 관련, 진보운동 일각은 여전히 합법적 진보정당에 대한 이해와 참여가 부족하다. 진보정당을 의회활동을 위한 분견대 정도로 치부하거나 연대연합체를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등 합법 진보정당의 지위와 역할을 잘못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또 참여연대 등 일부 개혁적 시민단체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정확치 않은 가운데 몰 계급적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을 표명함으로써 진보정당운동과 연대연합운동 참여에 소극적이고 사회변혁운동의 발전에 빗장을 놓고 있다. 합법적 진보정당은 87년 이후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가 일부 진전된 시대적 조건에 부합하는 단일조직 형태의 통일전선적 정치조직으로서 각계각층의 진보적 대중조직과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적 안내자이자 연대연합체의 합법적 주체세력이며 의회투쟁까지 담당하는, 한국사회변혁운동의 중심 주체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이 많이 부족하지만, 진보적 민중들 개인은 합법 진보정당으로, 단체는 상설 연대체로 결집하는 것이 올바르다. 한편, 진보운동 일각에서는 운동 내부의 사상과 노선과 작풍의 차이, 주도권문제 등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데, 다수의 포용력, 정치력과 소수의 단결 정신 회복이 그 어느 때 보다 절박하다
3) 대중의 요구와 정서에 맞는 대중투쟁을 순발력 있게
첫째, 당이든 대중조직이든 연대연합체든 당면 정세, 대중의 요구와 정서에 맞게 시기를 놓치지 말고 대중투쟁의 의제를 잡고 신속하게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특히 진보정당은 정치사상적 통일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단일 정치조직이란 장점을 십분 발휘해 능동자재한 기동전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민중적 전국적 범위에서 한미FTA 저지투쟁을 전개하는 와중에도 부동산문제가 민중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 이에 대한 투쟁의 비중을 높여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늦어도 48시간 이내 부동산 투기 잡는 해법을 내놓고 인지도가 높은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각급 당 조직이 길거리로 나서 다양한 대국민 정치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민주노동당은 투쟁기획, 정책조정, 아니면 실천의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거의 민란 수준의 부동산문제에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으며, 그래서 아파트 반값이니 뭐니 하는 여야 보수정객들에게 국민적 의제를 선점당하고 말았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대중투쟁의 의제 선정과 배치, 그 실천에서 얼마나 유연성과 탄력성, 순발력과 기동력을 잃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또 모든 산업별 노동조합운동도 자기 특성에 맞는 전민중적 의제를 앞세워야 하지만, 전교조는 민족민주인간화 참교육, 공무원노조는 공직사회 개혁과 부장부패 척결의 기치를 한시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직업적 이해관계를 지나치게 앞세우게 되면, 그때부터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고 광범한 민중의 기대와 지지를 잃어버리게 되며 마침내 조합원들마저 이견과 갈등을 일으켜 조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대중투쟁의 형태와 방식에 있어서도 보다 창의적인 연구, 개발이 요구된다. 핫이슈에 대한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나 시민단체들의 인상 깊은 퍼포먼스, 삼보일배나 만민공동회, 위력 있는 사이버 시위 등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러 대소 규모의 집회와 시위는 80~90년대의 그것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치열한 전투 상황이 아니라면, 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하는 마당극 형식의 집회 프로그램이나 대규모 군무(群舞)와 합창 등 집단적 힘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투쟁문화, 집회문화가 필요하지 않는가 싶다.
둘째, 진보정당과 노조, 농민회, 학생회 등의 대중조직과 연대연합조직의 모든 활동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전략노선에 복무해야 한다. 한국사회변혁운동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자주적 민주개혁을 실현해 세상을 바꾸는 길은, 선거투쟁, 의회투쟁 위주가 아니라 대중투쟁을 활성화하고 그 최고 형태로서의 ‘전민항쟁에 기초한 선거투쟁’에 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4.19혁명, 6월 항쟁 등 우리나라 변혁운동사와 최근 남미, 중동의 자주적 민주정권의 등장과정을 보더라도 이는 명백하다.
그러므로 진보정당도 대중정치투쟁을 기본으로 선거, 의회투쟁을 결합하는 원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며, 득표 위주의 당 활동을 능사로 알아서도 곤란하다. 또 노동조합도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로 임금, 고용, 노사관계에서조차 정치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으므로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는 목적의식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경제 불황 또는 공황 시기에 노동자대중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전체적 구조적 변혁적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의식화에 매진하지 않으면, 보수정치세력의 기만과 왜곡으로 심지어 파쇼체제를 지지하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 자주적 민주노조운동도 총파업투쟁 등 대중투쟁을 기본 축으로 대 정부, 대 사용자 교섭을 보조 축으로 결합하는 원칙을 견결히 고수해야 한다.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적 힘의 관계에서는 노사정 교섭을 통한 유의미한 요구 관철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합법화시대,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일부 진전된 조건에서 교섭을 포기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노동자 요구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정부와 자본 측의 반 노동자적 태도를 폭로하는 장으로서 전술적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은 지난날 ‘교섭 없는 투쟁만능주의’, ‘투쟁 없는 교섭주의’의 양 편향을 극복하고 조합원대중의 ‘자주적 단결을 기반으로 투쟁을 중심으로 교섭을 결합하는 원칙’을 튼튼히 견지해야 한다. 또한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이 정치총파업과 같은 대중투쟁을 힘 있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자주성을 기반으로 민주성과 통일성을 결합하는 원리’에 따라 조합원대중의 자주적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일상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적 동의의 폭을 넓히는 데 많은 관심을 돌려야 하며, 정부와 자본 측의 악수(惡手)도 십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예컨대 마을마다 집회를 열고 군단위, 도단위로 마침내 서울 여의도로 총진군한 지난 30만 농민대항쟁의 조직화과정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노동자들도 자기 부서의 현장토의로부터 시작해 단위사업장 총회, 지역별⦁업종별⦁산업별 총회를 거쳐 마침내 100만 전국 총궐기를 조직할 수 없는 것인가.
6. 마치며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결정적 시기는 제2의 IMF 위기가 도래하거나 엄청난 민생 파탄으로 민중의 자연발생적 시위가 번질 때가 아니다. 미국이 자신의 군사전략 차원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때도 아니며, 또 여야 보수층 등 지배세력의 분열과 갈등으로 더 이상 자신들의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도 아니다. 이 같은 변수는 조건이고 기회일 뿐, 한국사회변혁을 일으키지도 성공시키지도 못한다. 오직 한국사회변혁의 결정적 시기는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노동계급과 근로민중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주인이고 사회변혁의 주체인 노동자, 민중의 결단을 누가 도울 것인가. 이는 활동가들의 몫이다. 이러한 숭고한 사명을 부여받고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는 활동가들의 진보운동 혁신 의지에 달렸다.
‘나로부터’ ‘너와 함께’ ‘우리 하나로’라는 자주 민주 통일의 정신을 뼈에 새기자. 노동운동, 학생운동, 진보정당운동, 통일운동, 연대연합운동 등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 진보운동의 혁신을 위해 신명을 바쳐야 한다. 활동가들부터 사람중심, 민중 중심, 대중 중심의 올바른 사상을 확립하고 자주시대, 합법화시대, 정보화시대, 신자유주의시대와 6.15시대에 맞는 과학적인 이론과 노선을 정립하자. 그리고 ‘대중에게서 대중에게로’라는 자세로 보다 설득력 있는 정책을 배우고 익혀 진정성 있게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모범을 창출하고 전파하자.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해 지금은 사상혁신, 생활혁신, 활동혁신, 3대 혁신운동이 필요한 때이다.(2006. 12. 2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