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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 문인산수화의 거목 소천 김천두 화백 작품세계 나의 산수화 이야기 02
소천 김천두 나의 산수화 이야기
남종문인 산수화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문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데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남종문인 산수화는 북종산수화보다 더 추상적이고, 더 많은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산에 오르면 이름을 얻게 되고 수양 하면서 살기도 좋다.처음 으로 산수화를 사생 한 곳은 유천재에서 많은 시인 묵객과 화가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다.어릴적 미산 선생께서 자주 유천재를 방문 하였는데 처음 으로 산수화를 마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소치 선생의 병풍 그림을 보면서 그려 보기도 하고 하면서 산수화의 기본적 느낌을 표현 할 수 있었다. 특히 허소치 선생의 목단 그림이 유명 하였는데 우리 지역 에서는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그림 이었다. 유천재에서 다초 위복량 선생님 으로 부터 글 공부를 배울때 유천재에서 바라 본 천관산 연대봉 따라 피어 오르는 구름 모습을 보고는 한시를 짓기도 하고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특히 유천재 앞에는 대나무 숲과 연못 앞에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룡(龍)처럼 생겨서 고태의 태고의 미를 자랑 하고 있었다.그리고 마을 뒤에는 형제송 이라는 오래된 소나무 있어서 틈만 나면 지필묵을 가지고 가서 그렸던 기억이 난다. 또한 다초 위복량선생을 따라서 다산제에서 공부를 하면서 때때로 장천재 계곡을 따라 올라 가면서 대숲을 지나 가다 보면은 오래된 멋진 소나무 한 구루가 자태를 자랑 하면서 서 있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태고송이 있다. 태고송을 그리면서 그림에 예지력 많이 느낄 수 있었다.또한 산수화에서 소나무 그림을 그릴때면 실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고향을 떠나 서울로 진학 하여 선린상고를 다닐때에 서울 용산 마포쪽 한강 풍경을 수채화로 많이 그렸으며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북한사,도봉산,수락산 풍경을 접하면서 자주 사생 하였다. 그리고 일본 건너가서 구주 유전촌(有田村)에 있는 금강제도공사에서 도자기 그림을 그렸는데 일본 구주 지방 길촌(吉村),묵정촌(墨井村),덕산(德山)등지를 여행 하면서 그린 풍경과 꽃그림 화조화등의 장식적 그림을 주로 많이 그렸다.한국 으로 귀국 하여 고향에서 교편 생활을 하면서 의제 허백련선생에게로 그림 공부를 하러 다녔는데 그곳에서 옥산 김옥진 녹설 이상재 희재 문장호등과 동문 수학 하였고 무등산 춘설헌에서 무등산 서석대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고 또한 화순의 적벽 그리고 담양 평장사에서 바라본 무등산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 하였다.그리고 남농 허건 선생께서 장흥에서 전시를 하셨는데 남농선생을 만나서 목포로 따라 가게 되어 그곳에서 그림 공부를 하여 남농 선생님이 가지고 있었던 고서화를 볼 수 있었고 허소치 선생 이래로 소장된 서화에 대한 이론서적을 탐독 하여 미술사적 공부를 하고 연구 하였다.
그곳에서 영암 출신 도촌 신영복 아산 조방원 청당 김명제 만나고 수학 하였다.목포 유달산 풍경과 목포 앞 바다 다도해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특히 은사 이신 남농 허건 선생께서 목포 유달산과 다도해 풍경을 많이 그리시면서 실경산수화를 많이 그리도록 지도해 주신 것이 생각이 난다.또한 남농 선생님과 함께 간 진도 운림산방을 에서 본 소나무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여 그려본 소나무가 그림이 있다.목포를 떠나 장흥,강진,보성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순천,여수로 가서 여수 바다와 오동도 동백숲의 동백나무 동백꽃을 많이 그린 것이 생각이 난다.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성수동에 화실을 마련하여 뚝섬 한강을 많이 그렸고 한강변에서 바라본 남산을 그리다 보면은 성수동 영동대교 쪽에서 남산을 바라다 보면은 남산쪽에서 부터 내려온 석양이 한강 물에 비친 석양의 모습은 미국의 금문교에서 바라본 모습과 같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때때로 서울 떠나 어린 시절 장흥 용산 상금마을 죽림정사에서 잠계 백형기 선생 밑에서 같이 한시(漢詩) 행(行),초서(草書)를 배우면서 함께 수학한 죽마고우의 친구인 백종식 이라는 친구가 경기도 연천에서 백병원을 운영 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집에서 유숙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곳에서 재인폭포를 그리기도 하였고 불탄소 비롯하여 한탄강 유역의 산수화를 정리하여 그린 대표적 산수화 작품 제목이 무진강산(無盡江山) 이라는 대작 산수화 이다. 그 그림으로 말 할것 같으면 재인폭포을 올라 가다보면은 초당으로 지은 정자가 있는데 그곳에 풍경을 출발하여 재인폭포를 그리고 폭포를 따라 흘러가는 물 줄기를 따라서 배를 타고 한탄강 불탄소를 지나서 멀리 펼쳐 있는 강 풍경들을 종합 하여 정리한 산수화 대작 그림 이다.연천 생활을 하면서 그린 산수화로 제일 기억에 남는다.그리고 지리산 구례 화엄사 등을 사생 하면서 고향인 정남진 앞 바다 다도해를 그린 산수화 금포선경자취(金浦仙境自醉)을 보면서 사의적(寫意的)인 남종문인산수화를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명승고적을 찾아 사생도 하면서 심신 수련을 하면서 실경 사생을 많이 하여 생명력 있는 건전한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1988년 유천재에 소천 김천두 나의 산수화 이야기
그의 작품은 산수문인화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화제를 담는다. 화제는 고시(古詩)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작시도 적지 않다. 시를 읽다가 화흥(畵興)을 일으켜 화필을 잡는 일도 있거니와 그림을 그리다가 시작(詩作)에 이끌리는 일도 있어서 시와 그림을 동시적으로 행하고 있는 셈이다.
소천 김천두는 “동양화는 고상해야 제 멋”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상한 그림은 손으로 그린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려져야 고상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라며 “나의 산수화에서 전체적인 인상이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필선은 그렇게 무심하다.”고 말했다.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그의 산수화를 두고 “산과 물과 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남화풍의 소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그의 산수에서 특이한 필법을 발견할 수 있다. 형태가 명확해서 전체적인 인상이 선명하다. 필치에 힘을 실음으로써 형태를 명확히 찾아들어간 데 연유한다.”고 평론했다.
박용숙 미술평론가는 “소천의 화법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필선이다. 그는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장 개성적인 산수화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글씨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림이 되고 있다. 덩어리를 깨면 글씨의 파편이고, 그 파편들을 모으면 그림이 된다. 그러나 그 글씨의 파편들이 지극히 생동적이어서 매우 박진감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고 평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한국화가가 되려고 한다면 그림의 기교에만 빠지지 말고 만권(萬卷)의 시, 서를 읽어 먼저 학자가 되어야 한다. 유· 불교의 깊은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고상한 그림은 안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천 김천두는 한국의 전통 회화인 남종화를 그렸습니다. 남종화는 수묵과 간결한 묘사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입니다. 김천두는 남종화의 특징을 잘 살려, 한국의 자연과 풍경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김천두는 유천재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유천재는 김천두는 유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유천재에서 그린 김천두의 작품들은 한국의 자연과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한국 회화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남종문인화가로, 한국 회화에 큰 공헌을 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천 김천두
소천 김천두는 전남 장흥에서 출생하였고 남종 문인화의 거목으로 평가받았다.
전통적인 명문 광산김씨 양간공연의 후예로 본명은 김석중이다.
향리인 천관산 기슭 유천재 서당에서 한서와 시·서·화를 수업했으며
한학의 대가인 다초 위복량 선생과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다.
남화의 정상급 거목 남농 허건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배웠다.총39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아세아현대미술전,한중교류전,프랑스국제미술교류전,동경국제미술협회전,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초대출품 등 다수의 초대전에 출품하였다.그의 작품은 국무위원 회의실 일본국 대판 시장실 육군사관학교 대강당 등에 소장,전시되어 있다.한국서화작가부회장,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고문을 역임하였다.
개성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등이 있다.
한편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재학)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소천 김천두 문인 겸 화가로, 남종문인 산수화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산수화에 능했습니다. 그의 산수화는 소박하고 담백한 필치와 자연스러운 구도로 특징지어집니다. 그는 또한 시와 글씨에도 능했으며, 그의 문집인 《소천한시집》있습니다
남종 문인산수화의 거목 소천 김천두 화백 작품세계 02
남종문인 산수화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문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데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남종문인 산수화는 북종산수화보다 더 추상적이고, 더 많은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산에 오르면 이름을 얻게 되고 수양 하면서 살기도 좋다. 처음으로 산수화를 사생 한 곳은 유천재에서 많은 시인 묵객과 화가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다. 어릴적 미산 선생께서 자주 유천재를 방문 하였는데 처음으로 산수화를 마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소치 선생의 병풍 그림을 보면서 그려 보기도 하고 하면서 산수화의 기본적 느낌을 표현 할 수 있었다. 특히 허소치 선생의 목단 그림이 유명 하였는데 우리 지역 에서는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그림 이었다. 유천재에서 다초 위복량 선생님으로 부터 글공부를 배울 때 유천재에서 바라 본 천관산 연대봉 따라 피어오르는 구름 모습을 보고는 한시를 짓기도 하고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특히 유천재 앞에는 대나무 숲과 연못 앞에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룡(龍)처럼 생겨서 고태의 태고의 미를 자랑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뒤에는 형제송 이라는 오래된 소나무 있어서 틈만 나면 지필묵을 가지고 가서 그렸던 기억이 난다. 또한 다초 위복량선생을 따라서 다산제에서 공부를 하면서 때때로 장천재 계곡을 따라 올라 가면서 대숲을 지나가다 보면은 오래된 멋진 소나무 한 구루가 자태를 자랑 하면서 서 있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태고송이 있다. 태고송을 그리면서 그림에 예지력 많이 느낄 수 있었다.또한 산수화에서 소나무 그림을 그릴때면 실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고향을 떠나 서울로 진학 하여 선린상고를 다닐때에 서울 용산 마포 쪽 한강 풍경을 수채화로 많이 그렸으며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북한사,도봉산,수락산 풍경을 접하면서 자주 사생 하였다. 그리고 일본 건너가서 구주 유전촌(有田村)에 있는 금강제도공사에서 도자기 그림을 그렸는데 일본 구주 지방 길촌(吉村),묵정촌(墨井村),덕산(德山)등지를 여행 하면서 그린 풍경과 꽃그림 화조화 등의 장식적 그림을 주로 많이 그렸다. 한국으로 귀국 하여 고향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의제 허백련선생에게로 그림 공부를 하러 다녔는데 그곳에서 옥산 김옥진 녹설 이상재 희재 문장호등과 동문 수학 하였고 무등산 춘설헌에서 무등산 서석대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고 또한 화순의 적벽 그리고 담양 평장사에서 바라본 무등산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 하였다.그리고 남농 허건 선생께서 장흥에서 전시를 하셨는데 남농 선생을 만나서 목포로 따라 가게 되어 그곳에서 그림 공부를 하여 남농 선생님이 가지고 있었던 고서화를 볼 수 있었고 허소치 선생 이래로 소장된 서화에 대한 이론서적을 탐독 하여 미술사적 공부를 하고 연구 하였다.
그곳에서 영암 출신 도촌 신영복 아산 조방원 청당 김명제 만나고 수학 하였다.목포 유달산 풍경과 목포 앞 바다 다도해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특히 은사 이신 남농 허건 선생께서 목포 유달산과 다도해 풍경을 많이 그리시면서 실경산수화를 많이 그리도록 지도해 주신 것이 생각이 난다. 또한 남농 선생님과 함께 간 진도 운림산방을 에서 본 소나무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여 그려본 소나무가 그림이 있다. 목포를 떠나 장흥,강진,보성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순천,여수로 가서 여수 바다와 오동도 동백숲의 동백나무 동백꽃을 많이 그린 것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성수동에 화실을 마련하여 뚝섬 한강을 많이 그렸고 한강변에서 바라본 남산을 그리다 보면은 성수동 영동대교 쪽에서 남산을 바라다 보면은 남산 쪽에서 부터 내려온 석양이 한강 물에 비친 석양의 모습은 미국의 금문교에서 바라본 모습과 같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때때로 서울 떠나 어린 시절 장흥 용산 상금마을 죽림정사에서 잠계 백형기 선생 밑에서 같이 한시(漢詩) 행(行),초서(草書)를 배우면서 함께 수학한 죽마고우의 친구인 백종식 이라는 친구가 경기도 연천에서 백병원을 운영 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집에서 유숙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곳에서 재인폭포를 그리기도 하였고 불탄소 비롯하여 한탄강 유역의 산수화를 정리하여 그린 대표적 산수화 작품 제목이 무진강산(無盡江山) 이라는 대작 산수화 이다. 그 그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재인폭포을 올라가다 보면은 초당으로 지은 정자가 있는데 그곳에 풍경을 출발하여 재인폭포를 그리고 폭포를 따라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서 배를 타고 한탄강 불탄소를 지나서 멀리 펼쳐 있는 강 풍경들을 종합 하여 정리한 산수화 대작 그림 이다.연천 생활을 하면서 그린 산수화로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지리산 구례 화엄사 등을 사생 하면서 고향인 정남진 앞 바다 다도해를 그린 산수화 금포선경자취(金浦仙境自醉)을 보면서 사의적(寫意的)인 남종문인산수화를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명승고적을 찾아 사생도 하면서 심신 수련을 하면서 실경 사생을 많이 하여 생명력 있는 건전한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1988년 유천재에 소천 김천두 나의 산수화 이야기
그의 작품은 산수문인화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화제를 담는다. 화제는 고시(古詩)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작시도 적지 않다. 시를 읽다가 화흥(畵興)을 일으켜 화필을 잡는 일도 있거니와 그림을 그리다가 시작(詩作)에 이끌리는 일도 있어서 시와 그림을 동시적으로 행하고 있는 셈이다.
소천 김천두는 “동양화는 고상해야 제 멋”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상한 그림은 손으로 그린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려져야 고상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라며 “나의 산수화에서 전체적인 인상이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필선은 그렇게 무심하다.”고 말했다.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그의 산수화를 두고 “산과 물과 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남화풍의 소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그의 산수에서 특이한 필법을 발견할 수 있다. 형태가 명확해서 전체적인 인상이 선명하다. 필치에 힘을 실음으로써 형태를 명확히 찾아들어간 데 연유한다.”고 평론했다.
박용숙 미술평론가는 “소천의 화법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필선이다. 그는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장 개성적인 산수화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글씨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림이 되고 있다. 덩어리를 깨면 글씨의 파편이고, 그 파편들을 모으면 그림이 된다. 그러나 그 글씨의 파편들이 지극히 생동적이어서 매우 박진감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고 평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한국화가가 되려고 한다면 그림의 기교에만 빠지지 말고 만권(萬卷)의 시, 서를 읽어 먼저 학자가 되어야 한다. 유· 불교의 깊은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고상한 그림은 안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천 김천두는 한국의 전통 회화인 남종화를 그렸습니다. 남종화는 수묵과 간결한 묘사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입니다. 김천두는 남종화의 특징을 잘 살려, 한국의 자연과 풍경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김천두는 유천재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소천 김천두는 유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유천재에서 그린 김천두의 작품들은 한국의 자연과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한국 회화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남종문인화가로, 한국 회화에 큰 공헌을 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천 김천두
소천 김천두는 전남 장흥에서 출생하였고 남종 문인화의 거목으로 평가받았다.
전통적인 명문 광산김씨 양간공연의 후예로 본명은 김석중이다.
향리인 천관산 기슭 유천재 서당에서 한서와 시·서·화를 수업했으며
한학의 대가인 다초 위복량 선생과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다.
남화의 정상급 거목 남농 허건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배웠다.총39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아세아현대미술전,한중교류전,프랑스국제미술교류전,동경국제미술협회전,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초대출품 등 다수의 초대전에 출품하였다.그의 작품은 국무위원 회의실 일본국 대판 시장실 육군사관학교 대강당 등에 소장,전시되어 있다.한국서화작가부회장,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고문을 역임하였다.
개성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등이 있다.
한편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재학)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소천 김천두 문인 겸 화가로, 남종문인 산수화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산수화에 능했습니다. 그의 산수화는 소박하고 담백한 필치와 자연스러운 구도로 특징지어집니다. 그는 또한 시와 글씨에도 능했으며, 그의 문집인 《소천한시집》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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