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엠넷에서 방영하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챙겨본다. 처음부터 애청자는 아니었고 유투브에 몇 개의 짤을 보다가 더 이상 짤 따위로 만족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자 알람을 맞춰놓고 본방을 챙겨보기로 했다. 촘촘히 편집된 것보다 나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전체 영상을 소화하고 싶달까. 배우자 욱과 나는 가볍게 보다가 어느 순간 재방, 삼방, 사방을 챙겨봤다. 즐겨찾는 유투브 클립이 점점 늘어났고 가끔 다음 동작을 가뿐히 예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르겠어. 이 어마어마한 중독성. 같은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고 감탄하고 못난 몸짓이지만 따라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건 일종의 '팬심' 때문이 분명했다.
모든 '댄서'에 대한 팬심이기도 했고, 그중 누구를 향한 짙은 팬심이기도 했다. 그의 팬이 된 게 어느 춤이나 무대 탓이 아니라 '단 한 마디' 때문이라고 하면 거짓말 같겠지만.
"아차 싶었죠."
메가 크루 미션을 수행하기 전 댄서 허니제이는 말했다. 다른 팀에게 무대를 미리 보여주고, 리더인 자신에게만 무대가 집중되는 것 같다는 날선 비평에 그는 어느 변명도 하지 않았다. '아차'하며 어렵지 않게 지금을 인정한다. 나의 노력이 실수로 비춰진다는 것에 대해 날카롭게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부연 설명을 할 법도 하지만, 그 쉬운 원망조차 하지 않는다. 허니제이는 바로 표정을 굳히고 크루원을 위한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그 순간, 나는 허니제이에게 빠지고 말았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허니제이는 걸스힙합이란 장르에서 이미 명성을 떨친 댄서다. 그가 하나의 '장르'라고 표현하는 댄서도 많다. 최고의 자리에서 권위를 내려 놓고 오롯이 '춤'의 평가에 집중하는 그의 태도에 절로 존경심이 생겼다. '아차'하고 멈출 수 있는 용기가 지금 내게 있는가. 되묻게 되었다. 존경과 자아성찰은 한끗 차이일테니까. 하지 못하는 일을 가뿐히 해내는 그에게는 '춤'만 멋이 넘치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선 자리에는 자연스레 작은 권력들이 붙었다. 다스릴 줄 모르는 이에게 붙은 권력이란 늘 추락을 염두해둔 위태로운 비행과 같았다. '행위'에 대한 충고가 곧 '나'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하는 날엔 몸을 한껏 움츠렸다. 넌 나를 잘 모르잖아. 저리 꺼져. 쉽게 내뱉지도 못할 말들을 생각한 자리엔 아물새도 없는 상처가 가득했고 그런 밤엔 흐느껴 우는 꿈을 꾸곤했다. 링 위에 오를 내게 다부진 두 주먹이 필요한가, '타임'을 외칠 용기가 필요한가. '스우파'를 챙겨보며 나의 속도에 대해, 균형을 이룰 지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타임'은 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아차' 했던 허니제이는 빠른 속도로 춤을 재정비해 결국은 자신의 기량을 인정받는다.
"아차 싶었죠. 그 때 적절히 타임!을 외치지 못했다면 전 매번 링 위에서 왕 펀치를 맞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허니제이가 메가크루 미션을 1등했던 날,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능청스레 대답하는 꿈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