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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 白頭大幹 ]
* 위 치 : 경북 문경, 충북 괴산,
* 산행일시 : 2022년 07월 17일
* 교통편 : 안내산악회
* 회차 : 대간 63-9
* 산행코스 : 분지리 안말~(접속)~사다리재~백화산(인증)~황학산(인증)~이화령~조령샘~조령산(인증)~신선암봉(인증)~깃대봉삼거리~조령3관문~(접속)~고사리주차장
* 산행시간 : 01:56~12:33 (산행 10시간37분/휴식시간:1시간 37분)[약25km/13시간]
* 산행속도 : 2.75 km/h
* 산행거리 : 24.79km
* 날씨 : 안개
* 기온 : 25℃
* 약수터 정보 : 조령샘
* 조망점 : 정상
* GPX 트랙 : 별도 첨부
* 산행 난이도 : 고도차: 상 , 거리:상
* 주요 볼거리 : 능선길. 정상 조망.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러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이나라 골격의 틀 중에서 장대하고 당당한 산줄기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연결된 장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는 약 1,400km이나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향로봉까지 약 684km이다.
오늘은 사다리재에서부터 조령산을 넘어서 신선암봉. 깃대봉 가는 코스이다.
아마도 암릉구간으로 제일 힘든 구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주흘산 부봉구간의 경치가 제일 멋지기 때문에 기대도 해본다.
며칠전 비가와서 그런지 습도도 높고 땅도 질어서 미끄러워서 산행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일전에는 이곳에서 하산을 했는데..!
이번에는 이곳으로 올랐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하는데 땅이 비가온 다음이라서 그런지 미끄럽다.
그리고 풀은 전부 물기를 머물고 있어서 산행하면서 옷은 다 젖었고 분지리 쪽에서는 괜찮았는데.
올라와보니 안개가 있는 것 같다.
안말에서 이곳까지 약2.2km이고 5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무래도 처음 산행이 시작되니 다 같이 속도를 맞추면서 늦으면 속도를 줄이고 함께 이곳까지 진행을 했다.
사다리재
사다리재는 분지리 사다리골의 뒤편 고대이다.
괴산 분지리와 가은 원북리를 연결하는 오솔길과 교차하는데 분지리 길은 남아있지만 반대편 길은 흔적이 없다.
암릉은 아닌데 능선의 양편이 너무 가파라서 오르내리는 경사가 급하여 마치 사다리를 타는 것과 같아서 붙여 졌다.
미전치(薇田峙) 라고도 하며 고사리밭등으로 부르는 고개로 이곳을 넘나들던 연풍 분적골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다하여 고비 미(薇:고비미)자를 써서 미전치라 한다.
분지리 안말까지 1.9km는 접속로입니다. 상당히 고약한 내리막 길입니다.
백화산 구간에는 이런 흰여로가 정말 많았다.
하지만 깜깜한 밤이라서 쉬 사진을 담을 수 없다.
백화산으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씩 암릉도 있지만 험하지 않은 등산로.
그래도 조금씩 고도차가 있지만 평탄한 능선길을 걷는 코스이다.
사다리재에서 평전치까지는 약 2.4km 정도 된다.
또 이곳에서 백화산까지는 약1.2km가 된다.
하지만 이화령까지는 아직도 8.2km를 가야만 한다.
평전치
평전치 남쪽으로 사면은 벼랑에 가까운 경사를 보인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사철 바람이 강하게 분다.
분지리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오른쪽으로 내려가며 평평한 산밭이라는 뜻인데 실제의 지형은 전혀 딴판이다.
평전치(平田峙) 마을 사람들이 쓰는 이름은 평밭등이다.
이름의 유래는 알수 없으나 이곳은 연풍 분적골 사람들이 마성면 상내리 쪽으로 내려가던 고개였으나 지금은 폐로가 되어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 상내리의 한신마을은 마원리. 중평리. 여우목마을. 연풍지역과 더불어 천주교 성지로 백화산 일대 대간 능선을 넘나들며 선교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허기진 몸을 숨겼던 첩첩산중 천해의 은신처였다. 한다.
백화산이다.
사다리재까지는 힘들게 올라야 하지만 사다리재에서 백화산까지는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며
이곳까지 약6.0km이고 2시간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백화산까지는 10여명이 함께 진행을 하고 다음부터는 5명정도 함께 진행을 한 다음
조령산에서부터 몇명을 빼 놓고서 다 같이 함께 움직였다.
백화산이다.
예전에 이곳으로 해서 문경으로 하산하였는데 기억이 거의 없다.
조망은 좋은 것 같은데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행하게 하늘의 수퍼문은 잘 보였다.
고도가 높을수록 안개가 있고 낮은 평야지역에는 안개가 없었다.
사다리재(2.4km/3.6km)-평전치(1.2km)-백화산-황학산(1.8km)-조봉(3.8km/5.6km)-이화령(1.5km/7.1km)-조령산(2.5km9.6km)-신선암봉(1.6km)
백화산 [白華山]
높이 : 1063m
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충북 괴산군 연풍면
백화산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문경의 백화산은 이화령 황학산 희양산과 함께 준령을 이루며 괴산군 연풍면을 병풍으로 두르듯 하고 있다.
시내에서 보면 남서쪽에 근접해 있으면서 북서쪽에 있는 조령산과는 이화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 등산로는 마성면과 문경읍 마원리 각서리 이화령 등이 있으나 문경시내 쪽에서 가는 것이 편리하다.
점촌에서 문경역 방향으로 가다 문경교 직전에 왼쪽으로 꺾어지면 마원리 오서골 마을 회관까지 들어갈 수 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9백49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찾을 수 있다.
계곡길을 벗어나자마자 급경사로 이어진다. 그리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어서 가는 중간중간에 길이 희미해지기도 한다.
안내리본도 흔치않다. 물론 이정표나 안내판도 없다. 봉우리에 도착하기까지는 소나무와 잡목 숲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시야가 트이지도 않는다.
정상까지는 가파른 암봉과 갈대밭이 이어진다. 정상 동쪽에는 넓은 터가 있고, 남쪽면은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주흘산과 운달산 희양산 등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황학산이다.
이곳에 5시 10분경도착을 했는데..!
이곳에는 조망 되는 곳도 없고 안개로 인하여 오늘 일출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곳까지 약 7.9km이고 2시간58분이 소요되었다.
황학산
높이 : 912m
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황학산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추를 이루는 황학산은 제3번 국도인 이화령 남쪽 6㎞ 거리에 솟아 있고 바로 옆에 덩치 큰 백화산(1,064m)이 있기에 잘 알려지지 않는 곳이고 이 때문에 호젓한 산길과 산마루에 펼쳐진 큰 억새밭과 참나무 숲길은 어느 산과 비교해 보아도 뛰어나다.
문경방면 마원리에서 산행이 시작되면 밑에서 보이는 밋밋한 산세가 무척 수월해 보이지만 막상 산행에 임해보면 경사가 예상 외로 급하고 또 정상에서 백화산으로 잇는 능선은 수많은 암봉과 가득한 수림으로 덮여 있어 고산다운 면모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내려가는 길에는 이렇게 그늘사초가 장관을 이뤘다.
이런 그늘사초가넓은 곳에 있어서 아늑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가는곳에 이렇게 늪이 있다.
이곳에 잘 찾아보면 이런저런 곤충과 파충류 그리고 야생화가 있을 것 같은데.
갈길이 멀어서 오늘은 그냥 진행한다.
가다보니 사진으로 담을 것도 없고 하여 제일 앞서게 되었다.
조봉에 도착을 했다.
전체적으로 백화산부터 내리막 길이고 육산으로 어렵지 않은 등산로이다.
이곳에서 이화령까지는 약 1.5km만 가면 된다.
조봉
이화령의 옛이름인 (큰) 새재의 뒷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영산과 이웃해 있는 조봉산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각종 기암괴석으로 조각된 듯한 바위 만물상들이 마치 새의 입 부리처럼 뾰족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하여 산 이름을 조봉산이라고 지었다 한다.
이화령에 도착을 했더니 작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을 돌아서 이화령으로 가도 되고 이렇게 올라서면 군부대 훈련장인지 있는데.
그곳에 이런 작은 타래난조 몇 그루를 담을 수 있었다.
저 터널 위로 내려와서 이곳 주차장 와서 아침을 해결하고 잠쉬 휴식을 취한 다음 조령산으로 향했다.
아침 6시30분경 되었는데 이른 아침인데 젊은이들 3명이 자전거를 타고서 이곳에 있었다.
어디서 부터 시작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른 새벽에 출발을 한 것 같다.
이화령 고개
높이 548m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소백산맥의 조령산과 희양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사지리지》에 이화현(伊火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고 《대동여지도》에도 이 고개 이름은 이화현으로 표기하고 있다. 위치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화현(伊火峴)은 현 동쪽 7리 문경현 경계에 있다."라고 하고 있으며 《여지도서》에는 "현 동쪽 15리에 위치한다"라고 하여 다소 상이하게 되어있다. 《구한말지형도》, 《조선지지자료》, 《조선지형도》와 같은
1910년대 발행된 지도에는 현재의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화령의 뜻은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고개가 험해 여러명이 어울려서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이유릿재, 이우리재 등으로도 불렸다.
이화령은 소백산맥의 조령산(鳥嶺山, 1,017m)과 갈미봉(葛味峰, 783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동쪽사면은 조령천(鳥嶺川)의 곡구(谷口)인 진안리에서 서쪽으로 분기하는 하곡과 통하고, 서쪽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達川)으로 흐르는 연풍천(延豊川)의 하곡으로 이어진다.
도로도 위에 언급된 계곡을 따라 개통되었으나, 동편의 진안리에서 이화령 고개까지는 갈미봉의 산록을 따라 올라가고, 서편은 행촌리까지 ‘잣밭등’의 남쪽을 따라 내려간다. 고개 아래 연풍은 영하취락(嶺下聚落)이다. 옛날의 국도는 새재[鳥嶺]로 통하였으나, 새재는 몹시 높고 산로(山路)가 험하므로 신국도 3호선은 이화령을 통하게 되어 연풍은 이화령에 교통로가 열린 뒤에 발달한 신흥취락이다.
연풍에서 하곡을 따라 올라가 원풍리를 거쳐 분수령에 이르면 동쪽은 새재마루의 조령 제3관문이고, 서쪽은 소조령(小鳥嶺)이다. 소조령을 넘으면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水安堡)에 이른다. 이와 같이 이화령은 충청북도의 충주권과 경상북도 북부의 점촌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화령의 개통으로 북쪽의 조령은 제1·2·3 관문과 주변의 성곽 등을 사적 제147호로 지정하고 크게 보수, 축조하여 도립공원으로 정비하였다.
조령의 통과는 중초리에서 통제되고 관광객이나 등산로 외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이화령은 국도 제3호가 통과하여 주변지역에서 산출되는 특용작물의 수송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리하여 옛 조령에 이어 이화령은 새로운 교통요충지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국도 3호선은 도로가 구불구불하여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투자사업으로는 처음으로 3번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이화령 터널이 뚫렸다. 그 뒤 이화령 터널 옆으로 고속도로의 상하행선 터널이 추가로 관통됨으로써 모두 3개의 터널이 있게 됐고, 옛 이화령 포장도로까지 합쳐 10개의 차로의 도로들이 나란히 있는 실정이다. 이화령 터널을 건설할 당시 예상한 이용률보다 훨씬 적어서 문제가 되었고, 2007년 건설교통부가 ‘이화령 터널’을 인수하여 2007년 8월 1일 터널 통행료가 폐지되었다.
다른 일행들은 저 위에서 아침을 먹었다한다
이곳에서 30분 가량 휴식을 취하고 올랐더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조령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요즘 많이 보이는 꿩의다리이다.
자주꿩의다리가 많이 보이고 가끔 산꿩의다리도 보이는데 아직 꽃이 다 피지 않은 좀꿩의다리가 아닌가 한다.
여름에 대표적으로 음지에서 보이는 가는장구채이다.
곳곳에 이렇게 피어 있다.
물레나물도 한구르 보았다.
들에 가장 많이 보이는 달맞이꽃이다.
그런데 높은 산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이곳에 몇그루가 있었다.
긴산꼬리풀 있는 곳에는 정말 많은 개채수가 있는데.
오늘은 이곳에 딱 이 한구르만 있었다.
다른 곳에는 나리꽃이 정말 많은데.
이곳에는 거의 대부분이 이런 하늘 말나리이다.
어쩌다 한번 나리꽃을 보기도 했지만 사진으로 담기는 어려웠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기린초도 아직 지지 않고 이렇게 활짝 피어 있다.
나비나물
속단
동자꽃.
흰여로
등골나무
풍경사진을 담아야 하지만 조망이 전혀 되지를 않는다.
새벽에는 밤이라서 풍경을 담을 수 없고.
지금은 짖은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조령산이다.
이곳에 도착을 하니 일행들 전부 만났다.
단체사진을 담고서 이제부터는 끼리끼리 몇명씩 그룹으로 산행을 하였다.
조령산 [백두대간 마루능선을 이루는 웅장한 산]
(1025m)
* 주소 :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조령산은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을 나누는 백두대간 마루능선을 이루는 산의 하나다. 충북과 경북에 걸쳐 있는 이화령과 조령3관문 사이에 위치하고, 산림이 울창하며 대암벽지대가 많아 기암괴봉이 노송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도 같이 아름답다. 문경새재를 허리춤에 안고 있는 조령산은 산보다 재가 더 유명하다.
이화령(큰세재)에는 휴게소와 대형 주차장이 있고, 북쪽 구새재는 조령 제 3관문(조령관)이 있으며 관문 서편에는 조령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어 여러사람이 찾아와도 부담이 없다.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 대소 암봉과 암벽 지대가 많아 산의 웅장한 면모를 느낄 수 있고,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 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등 아름다운 계곡이 있어 여름철 산행으로 그만이다.
조령산은 전체적으로 산림이 울창하며 대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괴봉이 노송과 어우로져 마치 한 폭의 산수화와 같다.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성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대소암봉과 암벽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 되어 있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가는 조령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개인 문경새재를 품에 안고 있으며, 산세가 우람한 주흘산과 마주 하고 있어 예로부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접했다.
특히 정상에서 깃대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설악산 공륭능선의 축소판으로 뛰어난 경관미와 위험을 도사리고 있다.
특히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흘산의 주봉(1075m)과 영봉(1106m) 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북동쪽으로는 거대한 바위봉인 부봉(935m)이 육체미 선발대회에 출전한 선수의 힘살처럼 불끈불끈한 근육을 과시하고 있으며, 그 뒤로 월악산의 영봉 (1094m) 이 손에 잡힐 듯 조망된다.
정상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길을 지나 안부에 도착하니 4거리 갈림길이다. 왼쪽은 상암사 터, 오른쪽은 조령 제1관문(주흘관) 가는 길이다.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기를 수십 번, 드디어 직벽의 로프를 잡고 오르니 신성암봉(937m) 이다. 조령산 종주구간의 중간에 위치한 암봉으로 조망이 좋고 오르내리는 코스도 다양해 단독 등산으로도 좋은 산이다.
계속되는 너럭바위와 노송 숲을 지나 바위지대를 만나고 여기를 통과하면 절골의 중앙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조금 지나면 공기바위에 도착 한다. 여기서 뒤돌아보면 신성암봉의 바위슬랩과 조령산 정상으로 뻗은 백두대간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이구간은 남과 북으로 이화령과 새재라는 고갯길이 없다면 날아다니는 새들과 하얀구름 이외엔 이 분수령을 넘나들지 못했을 것이다. 겨울에는 경험 많은 등산인이라 해도 쉽게 넘어 설수 없는 구간이기도하다.
일월비비추이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몇그루씩 보이기도 한다.
자주꿩의다리.
왜솜다리..!
이 왜솜다리는 이곳 신선암봉으로 향하는 길에 잘 찾아보면 있는데.
딱 2그루만 보았다.
저 위가 신선암봉인데.
짖은 안개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예전에는 다 밧줄을 타야 했지만.
이번에 보니까 거의 대부분 구간에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신선암봉이다.
이곳까지는 약 18.2km 정도 되고 6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내가 제일 앞서서 암벽의 밧줄을 타면서 안전하게 진행을 했다.
신선암봉
939m
충국 괴산군, 경북 문경시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풍면 원풍리와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이다.
신선암봉 남쪽으로는 조령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깃대봉이 연결되어 소백산맥의 줄기를 형성하는데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속한다.
[한국지명람]에서는 이 산을 신선봉으로 소개하고 있고 고사리봉. 할미봉. 온산으로도 불렸다고 적고 있다.
신선봉이라는 지명은 옛날에 신선이 달밤에 놀았다고 해서 할미봉이라는 지명은 마고 할머니가 이곳에 와 놀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괴산의 명산 35곳 중의 하나이지만 [조선지형도]나 [1:50000지형도] 에는 이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큰까치수염.
곳곳에 많이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 꽃이 시드는 시기라서 이렇게 완벽한 꽃을 담기는 어려웠다.
드디어 처음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안개가 자욱하지만 주흘산의 윤곽만 잠깐 보여준다.
다른곳은 다 시들었지만 아직 이곳에는 이쁘게 꼬리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돌양지꽃.
제법 많은 개채수가 있었다.
산수국도 이렇게 파랑색과 주황색들이 있었는데.
어룸 때문에 주황색을 담지도 못했다.
이제 다 끝날 시간인데 조금씩 조망이 보인다.
저곳이 주흘산 부봉인것 같다.
다음에 가야만 하는 코스이다.
드디어 깃대봉 갈림길에 도착을 했다.
깃대봉까지는 지천에 있어서 1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오다가 일행 한분과 같이 내려왔는데.
소식이 없어서 전화 해보니 이제야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중간에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내려온 것 같다.
문경세재
명승 제32호
소재지 :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는 잘 알려진 고갯길이다. 새재에서 먼 한반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한 진도에서 부르는 〈진도아리랑〉에도 사설의 첫 대목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제1대로였던 영남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 문화권과 남한강 문화권을 연결하는 중요한길목인 새재는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부산 동래까지 이어진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컸다.
영남에서 거둬들인 세곡이나 궁궐에 바칠 진상품은 물론,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나선 영남의 선비들도 대부분 이 고개를 넘었다.
새재는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높은 고개'라는 유래가 가장 흔히 알려져 있다.
조령(鳥嶺)은 이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또 옛 문헌에 기록된 초점(草岾)에서 '억새꽃이 우거진 고개'라고도 해석한다.
그리고 순 우리말 지명에서 '새'를 '사이'로 풀면 새재는 이우리재(이화령)과 계립령(하늘재) 사이의 고개가 되고, '새로운'으로 이해하면 계립령 대신에 '새(新)로 개척한 고개'로 해석할 수 있다. 새재는 조선 태종 때 본격적으로 개척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발굴조사 때 조령관 터에서 훨씬 이전의 토기류가 출토되면서 고려시대 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고개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엔 한양과 영남을 잇는 길의 중심관문으로서 또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활을 감내 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북진할 때 신립(1546-1592)장군이 천혜의 요새인 이 새재를 지키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토기요마사와 고니시유키나가의 군대를 맞아 싸우다 전멸되기도 했던 사연이 있다.
함경도 변방에서 용맹을 떨쳤던 신립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 최고의 정예부대인 기마병을 이끌고 충주로 내려왔다.
작전회의에서 문경새재에 진을 치자는 의견과 협소한 새재에선 기마병이 힘을 못 쓸것이라는 의견이 갈렸다.
기마병을 믿었던 신립은 새재 대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널찍한 평지에서 전투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선택한 지형은 저습지였다. 게다가 전날 비가 내려 말은커녕 보병도 기동이 힘든 진흙탕이 되었다. 진흙땅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조선의 기마병들은 왜군이 가진 소총에 속수무책이었다.
신립이 새재를 막지 못하고 탄금대 전투에서 패하자 선조는 결국 피난길에 오를수 밖에 없었고, 호남을 제외한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새재는 그만큼 한반도 방어에 중요한 고개였던 것이다. 이렇듯 영욕의 세월을 보낸 새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추풍령과 이화령 등에 밀리면서 점차 잊힌 길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 새재의 유적지를 복원하자 사람들은 조선시대 한반도의 대표고개로 명성을 떨쳤던 문경새재의 실체를 확인하러 찾아들기 시작했다.
복원할 때 도로를 비포장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운치가 한껏 넘친다.
제1관문인 주흘관, 제2관문인 조곡관, 제3관문인 조령관,
그리고 경상 감사가 직인을 주고받았던 교구정 터, 객사가 있던 조령원 터 등을 살펴보며 걷는 역사의 맛은 오르지 문경 새재에서만 누릴 수 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주차장으로 하산을 했다.
오늘은 산악회에서 준비해준 수박 2통과 함께 일행이서 오리백숙으로 간단하게 술한잔을 했다.
GPS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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