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마을에 대한 꿈과 관련된 단상
허 병 섭 (무주 진도리 생태마을 대표)
하나- 생태마을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 까지 96년 4월에 이곳 진도리로 삶의 자리를 옮길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유기농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이 불러 일으키는 감성에 젖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초기의 얼마 동안은 자연 속의 낭만에 취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우리에게 주는 정과 사랑에 빠지면서 신선한 삶을 살고 있었다. 밥상에 놓인 푸성귀의 반찬과 앞상에 피어오르는 뭉개구름 그리고 능선, 진초록의 병풍에 둘러 쌓인 자연이 천국같은 자족감에 젖어 있었다. 농사를 하는 일도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감동이었다. 생물계의 신비를 맛보고 점점 빨려들어가고, 손 뻗는 곳에서 갖가지 열매를 따먹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가 감자를 까 먹는 우리의 삶은 최대의 행복이었다. 우리의 삶을 자연, 흙, 식물을 살리는 ‘밀알 노동’으로 집중하고 있는 과정에 전북대학의 이석영 교수를 만나면서 ‘생태농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고 생각하면서 발견하는 것이 있고 세상의 모든 소식들을 접하지만 지금 삶의 안경으로 다시 바라보며 해석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새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 가는 보람이 생기고 마음과 생각이 풍부해 지며 우리의 삶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생태농업은 곧 생태교육이라는 발상을 갖게 하던 충에 귀농운동 본부장인 이병철씨가 생태 마을을 조성하자고 재안하면서 또다른 경지를 학습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계기가 녹색 연합의 김경화씨와 만나게 되고 녹색연합을 알게되고 이 단체를 통해서 생태마을에 관한 지식이 싹트고 현장에서 생태마을에 대한 의식과 논의와 반성과 상상력이 날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둘- 생태마을에 대한 처음 생각 YMCA 다락방 모임에서 생태마을이 인간을 위한 생태적 환경의 조성하기 위안 노력으로 보였고 자연의 생태적 분위기에 젖어 자연과 함께 생명을 일구어 가는 노동 즉 ‘밀알 노동’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 병철씨는 나의 발제문이 성명서 같다는 말을 했다. 그 이후 김경화씨와 함께온 곽교수와 식생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태마을에 관한 생각이 아직 관념적인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산림청에서 ‘생태마을 만들기’ 심포지움에서 생태마을에 관한 전문성과 그 깊이를 맛보게 된다. 마을의 외형적 틀도 중요하고 그 전문성을 따르기로 했다.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깊은 생각이나 연구를 할 수 없었고 녹색연합의 전문성을 배우며 따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제각기 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협의하고 토론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생태마을의 성격을 모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이다. 그러나 전북대학의 모 교수님은 음식물 쓰레기를 생태적으로 재활용하는데 선도적 실천을 하고 있었고 우리의 생태마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분의 입장은 자연훼손에 대해 이의를 재기하였으나 가난한 귀농자들을 수용하고 생태마을의 현실적 요건인 주택과 최소한의 경작지 확보를 위해서는 개간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하고 나는 이것이 무주군에 살고 있는 한 개인의 의식과 실천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무주군의 행정 실무자를 이 모임에 참여하도록 했고 그 결과 지금은 무주군에 ‘생태마을 육성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셋- 이곳 생태마을에 참여할 사람들 일반 사람들이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의 생태마을’하면 ‘...광대정 마을 등 사례...’를 떠올리고 있다. 그러나 광대정에서 농사하고 있는 귀농자들은 자기들을 ‘생태마을’의 범주에 끌어들이는 것을 원치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로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받고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조용히 착실한 생명순환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와 김경남목사, 장진희씨, 김광화씨 등이주동하여 매입한 임야를 중심으로 생태마을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태마을 조성에 대한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임야 6만 5천평을 매입하였고 그중에 약 2만여평은 준임지 보존지역(준 농림지역에 해당됨)로 된 것을 군의 산림과에서 확인했다. 처음 참여한 4세대가 주축이 되어 이 산을 샀고 생태마을 만들기에 공감하고 있었으며 본인에게 그 생태마을 조성 과정을 위임받았다고 판단하였다.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상세히 정보를 교환하였고 여타의 사람들은 이 신선한 프로잭트에 대해 다른 의견을 재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임야를 마을로 조성하기 위해서는 경직되기도 하고 때로는 유연성이 있는 행정적 절차를 밟아야 하고 집을 짓기 위해서 도로도 내어야 하며 터도 닦아야 한다. 그리고 여러 세대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여러개의 터를 닦아야 한다. 그러나 살아있는 소나무를 비록 관목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비명(저항)을 지르는 집사람을 보면서 생태적 감성이 발달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산 중턱에 두체의 집을 짓고 보니 ‘이제 생태마을이 시작되는구나’ 십었다. 다시 조경도 하고 농작물도 심으면 처음 개간할 때의 아픈 마음들이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위로받고 있었다. 야생화를 해 보겠다는 사람, 도자기를 하겠다는 사람 음악가, 작가, 성직자, 노동자, 천부적 농민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의 땅을 ‘찜’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 동참하려는 사람들 중에 자기의 경작지 옆에는 ‘집을 지을 수 없다’고 문제를 재기 하면서 일정 지역에 집을 짓지 말라는 저항이 생겼다. 그 이유를 확인해 본 결과 ‘개간을 많이한다는 것은 생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가졌든 죄의식이 막 지워지고 있는 찰라에 다시 이런 저항을 받고 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생태 의식의 차이로 같이 살아갈 사람과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판단이 생겼다. 그리고 이참에 나 자신에 대해 보다 철저하고 충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아니 내가 일을 처리해 나가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믿고 따라주는 경향이다. 모든 일을 나에게 위임하고 있다. 나중에 구체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그 때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생태마을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없다. 녹색연합이 설계한 내용에 충실해 보려는 것이다. 이 설계를 기본으로 해서 생태마을을 조성하면서 현장의 실정에 마추어 조금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이 이곳에 와서 느꼈던처음의 행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안정된 삶의 자리에서 스스로 깨닫고 명상하며 탐구하고 감동하는 삶에 만족하자고 다짐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진행한 일들 중 책임을 져야할 부분을 재외하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생태 공동체(마을)에 관한 새로운 입장을 찾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입장을 [한겨레 문화센터]의 [생명사상과 대안적 생태공동체 운동]이라는 문화강좌에서 한 강연에서 밝혔다. 그 일부를 이어가겠디. 다소 중복이 있겠지만 양해를 구한다.
넷- 생태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조건을 어떨게 만들 것인가?
생태 공동체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 일반적으로 생태 공동체라 하면 생태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 하고 그 생태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가는 집단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의복도 그 지역의 기후에 맞는 옷을 자급적으로 지어 입으려 할 것입니다. 식사도 생식을 하거나 채식을 하려 할 것이고 공해없는 음식을 스스로 농사하여 먹게 될 것입니다. 주택도 흙과 나무를 소재로하여 자연 생태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자재를 선택할 것입니다. 에너지도 자연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을 할 것이고 태양열로 난방을 할 것이고 천연가스(메탄가스 등)로 취사를 하려 할 것입니다. 오폐수의 자연 정화에도 신경을 쓸 것입니다. 경제행위인 농업도 유기농과 자연농이라 불리우는 생태적 농업을 할 것이고 도시와 농촌의 직거래 운동을 펼칠 것이고 유통구조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자본에서 해방하려면 지역 통화운동(LETS)으로 서비스를 교환하는 서비스 품앗이로 돈의 사용을 최소화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의 문제도 대안 학교를 세워서 질?은 교육의 모범을 세우려 할 것이고 한국 사회의 교육을 개혁하는데 이바지 하려 할 것입니다(제도권내의 대안학교). 그것도 아니라면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른들이 교사가 되고 삶의 현장을 교과서로 삼으면서 생태적 삶의 가치와 행복을 교육이념으로 설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자율적 대안학교). 어떤 사람은 습지를 중심에 두고 생태 마을을 조성할 수도 있고(강화도), 문화 예술을 중심에 두고 생태마을을 조성할 수도 있습니다(무주 안성). 이처럼 어떤 생태적 특성을 중심에 세우고 다양한 특성간의 조화와 유기적 관계로 생태 공동체를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너지, 오폐수 시설, 건축양식, 생물다양성 따위를 특성화하여 생태마을을 표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생태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만 웬지 사람들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위에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자연적 생태공동체에 관하여 꿈을 꾸어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생태 공동체의 프로그램들이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 생태 공동체가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연적 생태 공동체에 관하여 생태란 말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선 단어인가 봅니다. 어떤 방문객에게 생태마을 어쩌구 저쩌구 하니까 그는 “생태인지 명태인지 잘 모르지만 ...”하고 응답하기에(물론 농담이겠지만) 어처구니 없구나 하고 속으로 삭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생태란 말을 평범한 말로 바꿀 수 없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국어 사전에서는 “생물이 자연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생물에 대해서는 “스스로 영양을 섭취하며 성장 번식 운동을 기본으로 하는 생활 현상을 가진 유기체. 동물과 식물을 크게 나누어 유생물 무생물”이라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낱말을 종합한다고 생태라는 말이 다 설명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생태를 생명체 일반을 총칭한 말로 쓰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 다시 말하면 동물 중에는 사람을 비롯해 야생동물, 소동물, 가축이 있는가 하면 지렁이 같은 미물도 있습니다. 그리고 새와 같은 날짐승도 있고 곤충도 있습니다. 식물로 말하면 크게는 고목나무나 느티나무를 비롯해서 산에는 소나무, 잣나무, 가문비 나무등 산림을 이루는 식물이 있고 그 아래에서 자라는 관목의 종류가 수천가지나 될 것이고 또 그 아래에서 자라는 약초며 산채 갖가지 풀과 꽃과 열매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농사하면서 재배하는 수천가지의 농산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생명이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종류도 수억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모으면 생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생명체들을 끊임없이 살아있게 하고 생명을 일으키고 있는 흙, 그리고 흙이 생명을 일으키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는 물과 햇빛과 공기와 바람도 생태의 범위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우리의 선조들도 그랬지만(산림경제) 독일의 바이오 다이나믹 농사법의 아버지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작물의 생장에는 우주 전체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고 하늘의 별자리가 땅에 열의 원소를 쏟아 붓기도 하고 빨아들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빛의 원소, 흙의 원소 물의 원소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별자리에 따른 바이오 다이나믹 농사달력(독일사람 마리아 도운)을 만들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입김(바람)을 불어 넣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지음 말로 하면 “기”(氣)라고 합니다. 이것까지 포함해서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이 어루러 진 것을 생태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태의 체계를 생태계라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유진 오덤이 쓴 책에 의하면 생태계를 “생명부양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의 생태계는 이미 광범위한 생명체와 생명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공생과 공존,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공동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태 공동체에 관해 말하려면 자연의 생태적 공동체성을 연구하고 그 본질과 특성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은 이 자연의 생태 공통체에 합류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자연의 생태적 공통체에 관해 연구한 사람은 아닙니다. 단지 자연의 생태공동체에 합류하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이 합류의 단초는 제가 처음 농사한 그 경험입니다. 이 경험을 지속적이고 보다 철저하게 살아가면서 생태 공동체의 진수를 깨닫게 될 것을 믿고 있을 따름입니다. 농촌에 오기 위해서 준비하는 동안 생명을 일으키는 힘이 무엇인지를 찾아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라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성경의 말씀이었고 이를 철학적으로 정리한 책을 접하면서 확신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밀알 노동이 생명을 일으키는 힘이란 사실입니다. 성경의 이 말씀은 예수가 자신을 비워 인간의 종이 되었고 인간의 생명(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하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을 ‘예수가 인간에게 먹히움을 당한 희생제물’이며 예수는 부활하므로 인간을 먹었다고 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생태계의 생명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먹힘을 당하고 서로 먹음으로(以天食天) 말미암아 일으켜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자연의 생태계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뿌리에 붙어 있는 미생물(근권미생물)의 활동에서 드러납니다.미생물은 스스로 분해하고 부식하면서 자신의 분비물을 내어 놓습니다. 씨앗도 흙 속에서 자신을 분해하고 썩어서 미생물의 분비물을 먹고 자신의 분비물을 미생물에게 먹히움으로 싹이 트고 뿌리가 생기며 생명을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생물의 노동을 다시 서술해 보면 자기의 몸을 도구로하여 분비물이라는 물질을 내어놓고 그 물질을 뿌리에게 내어주고 그 대가로 뿌리가 주는 분비물을 먹고 자라는 노동인 것입니다. 그리고 벼가 자라기 위해서는 버드나무나와 장미꽃이라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벼라는 친구에게 달라붙는 병충해를 버드나무나 장미꽃이 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고추는 당근 파 양파 들깨와 같이 이웃하며 자라기를 원합니다. 이 생명체들의 친구관계를 조금 더 나열하해 보겠습니다. 토마토 갓 파 마늘 부추가 서로 잘 어울리고, 가지와 콩이 어울립니다. 옥수수는 오이 호박 감자 고구마와 양파는 딸기와 당근과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이는 섞어심기(혼작)로 자연 생명체의 공생적 관계를 도와주는 농사의 방법입니다. 오랜 유기농업의 경험으로 발견한 부안의 정경식씨에게서 배운 것입니다만 이는 자연 생명체들의 공동체성으로 풀이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공생의 관계 즉 공동체성은 열매나 잎의 공생관계이면서 뿌리와 뿌리에 붙어있는 미생물들의 상호 보완과 공생관계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역할이란 이 공동체성을 살리고 확대하여 땅의 생명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이 자연의 생명체들과 한 가족이되고 친구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유기질 퇴비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하는 등 많은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의 생태 공동체를 육성하기 위한 인간의 봉사와 희생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태적 공동체의 삶을 농업이라는 산업구조로 말한다면 다품종 소량생산의 구조를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독점과 대량생산, 시설농업은 자연의 생태 공동체를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삶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위한 것이 남의 생명을 위한 것이 되고 남의 생명을 위한 존재가 되려 할 때 자신의 생명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어 주는 겻은 밀알노동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토대로 자연의 생명체들 모두가 이 밀알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축적하거나 과식하거나 남을 압도하거나 우점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평등 평화의 체계인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가설이 증명된다면 생태 공동체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서 말씀드린 생태적 자아도 밀알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문제를 제 방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어떤 경로로 이 자연의 생태공동체에 합류할 것인가?’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농사의 첫 경험에서 말씀드린 경로로 자연의 생태공동체에 합류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첫 경험을 더 심화시키려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이와같은 경로를 거쳐야 생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태에 관한 지식이나 의식이 풍부하고 투철하다 하여 누구나 자연적 생태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생태문제를 해결할 프로그램이 있고 기술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자연적 생태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생태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적 생태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요지음 생태적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시(詩)를 읽으면서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자연적 생태 공동체는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자연 중심적 감성에 먹히움을 당하는 사람이 합류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기독교 및 서구 사회가 인간중심의 역사였다면 앞으로 21세기는 자연중심의 역사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태공동체란 프리즘으로 세계와 역사를 바라보고 국가와 민족,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생태공동체적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자기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대면할 때에도 이런 말을 쓰고 있습니다. 자연의 생태계를 대면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유기농의 도사에게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벌교에 계시는 분(강대인)은 잡풀을 향해서 공손히 큰 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기존 상식과 통념을 벗어난 자기비움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큰절을 해야만 자기를 비우는 것이냐고 질문하실 분이 있다면 잡풀 앞에서 인간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포기해도 되느냐는 질문과 같은 것이 될 것이고 이는 자연의 생명체들에 대한 자기 비움이 결여된 마음이라고 보여집니다. 여러분 중에 ‘자연의 생태 공동체에 합류한다는 것이 기인(미친놈)과 같은 것이기에 사회성도 없고 운동성도 없지 않느냐’고 비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도시에 살면서 이런 비판을 한다고 하면 반증하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농촌에 살면서도 똑 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경제적 문제를 도외시 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달에 3십만원 정도의 현금이 필요합니다. 공과금(전기세, 전화세, 보험료, 경조사비용 등)이 무거운 경제적 짐이 되고 있습니다. 전기도 전화도 쓰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직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험료와 경조사 비용은 기존의 사회적 삶에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책무입니다. 최소한의 영농비용도 1년에 약 2백만원은 필요하겠구요 그래서 1년에 5백만원의 돈은 만들어야 합니다. 보통 귀농자들의 경우 적게는 1년에 6-7백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 정도의 수입은 얻어야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연의 생태 공동체에 합류하는데 이처럼 반 생태적(전기, 전화)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이유가 없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봅니다.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생태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고 전화가 필요없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자율적 지역 자치주의’(북친의 ‘사회생태론의 철학)가 실현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고요. 겉으로는 기다리는 모양세를 띄겠지만 내면에서는 현 정치 사회 경제의 문제를 의식하고 분석하고 있겠지요. 자연의 생태 공동체에 합류한 결과가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 구조로 어떻게 평가 받느냐는 안중에 없습니다. 아니 이러한 우리의 삶이 매도당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우리는 이런 주변의 눈길과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염려와 인간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우리를 이토록 몰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생태 공동체에 합류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이들을 위한 안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훈련 혹은 수련)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지요. 이 일은 한참 후에나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도 이제 그 첫 걸음을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자연적 생태 공동체의 삶은 반드시 농촌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들의 경우도 생태적 공동체의 마인드를 가지고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이 21세기의 사회와 역사를 위해서, 어쩌면 ‘제 2의 건국’을 위해서 지녀야 할 새 패러다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마감하는 말 우리는 이곳(농촌)에서 뼈를 묻을 생각입니다. 헬렌 니어링의 책 제목처럼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이곳에서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식도 다 키워놓고 나이도 그쯤 되었으니 그럴만 하다.’고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고 늦게 내려온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떤 후배들은 ‘우리도 자식을 다 키워 놓고 내려가겠습니다.’라고 말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있다면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정신 내면적 삶의 행복을 위해서도,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서도 농촌 즉 자연의 생태 공동체는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우리는 농촌 사람들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농사 이야기에서 이 사람들의 은혜를 말씀드렸지만 한가지 더 첨가한다면 각종 종자와 모종도 남아 있으면 나누어 줍니다. 우리는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지음 귀농자들 사이에서도 종자의 교환은 자연스레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농사하지 않아도 먹을거리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다 먹을 것들입니다. 열매와 푸성귀가 풍부합니다. 냇가에는 여러 가지 민물고기가 있습니다. 이것도 자연의 은혜입니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 전체가 어린이의 지성과 감성을 일께우고 있습니다. 자연의 소리에는 음악이 있고 철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색갈에는 예술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도 자연의 은혜입니다. 농촌에 살고 있는 우리만 이런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의 생태 공동체는 우리 모든 인간에게 생명을 주며 먹을거리와 주택과 의복을 은혜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생태 공동체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이 자연의 생태 공동체에 대해 보답해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보답하지 않거나 보답하지 못한다면 자연은 우리 인간에 대한 엄청난 보복을 할 것입니다. 하나뿐인 지구는 지속가능하지 못하여 우리의 존재 기반이 소멸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미치광이 같은 사람의 이야기 였습니까? 남이 하지 않는 일과 삶, 소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힘든 일에 제 자신을 내어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앞에서 푸념처럼 말한 것 같군요. 이런 저의 모습은 저의 자아실현 과정이기도 합니다. 보편성도 합리성도 있어 보이지 않기에 설득력도 없구요. 어떻게 보면 사회의 이단자 같이 보이기도 하고, 또다른 유아독존이며 돈끼호태 같은 사회적 말썽꾸러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었고 그들은 당대에 반사되지 못했지만 후대에 빛을 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저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소수의 선각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소수의 진실에 제 자신을 위탁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은 계속 반성되고, 반성된 결과가 사회에 반사(영)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때나 일을 할 때 꼭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을 만나거나 단순한 일을 반복해서 할 때는 다람쥐 체바퀴 돌 듯 지루하거나 짜증스럽지 않든가요? 물론 이런 자아의 실현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가 그런 짜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다람쥐 체바퀴와같은 삶도 있고 영웅담적 삶(명예,인기,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삶)도 있지만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삶의 진실을 찾아 나서는 영원한 순례자의 삶으로 자아실현을 완성 하자고 주장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출처: 모심과 살림 원문보기 글쓴이: 흰그늘
첫댓글 생태건축은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군요.실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무엇보다 마인드와 철학이 중요하군요.단순간에 이루낼 수 있는 게 아니고.........특히,교육문제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생태건축이 잘못되면 젊은이들이 없는 단순한 퇴직자나 나이 드신 사람들이 모여사는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화가 될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