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가까운 친지의 딸 결혼식에 갔습니다. 언제부턴가 결혼식에서 신부를 보면 눈물이 났습니다. 가까운 사이건 조금 먼 사이건 신랑과 신부의 분주한 또는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도 걱정스런 마음이 앞서는가 봅니다. 다들 지혜롭게 잘 살 것인데 노파심에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갈 날에 대한 염려가 앞서는 까닭인가 봅니다.
아주아주 오래 전 제 결혼식에 저보다 더 떨었던 남편의 모습도 생각나고 처음이라 너무 서툴렀던 장면과 장면 사이의 아쉬움도 결혼식을 떠올릴 때마다 영화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때 너무 늦었던 신부 하객들의 지각 사태와 철모르고 몽땅 불렀던 신부 하객들이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주었는데,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미안한 생각,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제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했던 작은아버지에 대한 아쉬움들이 두고두고 결혼식을 볼 때마다 겹쳐지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번 결혼식은 단촐한 공간탓도 있지만 친척 손자손녀들에게 줄 용돈을 따로 챙기느라 뒤늦게 들어갔더니 앞자리 내빈석까지 가기도 뭐하고 하여 그냥 뒷쪽에서 결혼식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직도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것인지 서른이 넘은 아들이 계속해서사진을 찍어 달라는 성화에 손으로는 아들 셀카를 대신 찍고 귀로만 결혼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례가 생략된 결혼식에서 신부 아버지와 신랑 어머니가 축사를 하였습니다. 청첩장에는 있지만 자리를 채우지 않은 신랑 아버지의 빈의자를 보면서 축사를 하는 신랑 어머니의 울음 섞인 축사가 여러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아들 순서로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왔지만 떠날 때는 맨 나중에 자신의 곁을 떠나는 장남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는 신랑 어머니의 당부말을 들으며 순탄하지 못 했을 신랑의 서른다섯 해가 조금은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신부 아버지의 축사가 먼저 있었고 신랑 어머니의 축사가 나중에 있었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신부 아버지의 축사였습니다. 신부를 위해 이런저런 말을 했을 터인데 아들의 셀카 독촉으로 듣지를 못하고 흘려듣다가
"지금까지 30년 동안 제 곁에서 ..."
라는 말이 나왔을 때 습관처럼 다음 말을 유추하였습니다. 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대견함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짐작을 하며 들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항상 함께 해 준 제 집사람 ooo 여사님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축사를 마쳤습니다. 그 순간 내빈석에서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감사의 말에 모두들 당황하였고 멋있다는 생각에 공감한 듯합니다. 자식의 결혼식에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부인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순간에 그보다 더한 주례사는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위해 30년 동안 살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마음을 '감사'로 공표하는 선언하는 용기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가해진 시간에 짬을 내서 왜 그런 말을 하였는지 꼭 물어봐야 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무렵에 바로 신부 어머니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들은 아내로부터 결혼식 참석에 대한 답례 전화를 받았다. 자신도 남편이 그런 깜짝 발언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였다. 아,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때 아내의 기분은 어땠는지는 묻지를 못 했다.
깜짝 고백의 당사자이자 신부 아버지는 작년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질병으로 죽을만큼 힘이 들었는데 그때 자신의 곁에서 남편의 불평불만과 짜증을 다 받아주며 자신을 돌봐준 아내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단다. 하지만 쑥스러워서 그 말을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데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고마움을 이번 기회에 꼭 하고 싶었는데 결혼식에 하면 더 좋을 것 같았지만, 사돈 내외가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걸 말해도 되나 우선 걱정이 되어서 신부인 딸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고 하였다.
다행스럽게 딸이 축사에 엄마에 대한 감사 표현이니 하여도 괜찮다고 하면서 원래 신부 아버지가 왜 고마운지 몇 마디 더 하려고 했던 말은 딸이자 신부가 안 된다고 하면서 잘라서 겨우 세 마디는 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이 나왔다. 고마움의 맥락상 왜 고마운지가 빠졌는데 딸한테 커트된 부분이 그 부분이라는 것이다. 아쉬움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나까지 맥락 연결이 약했다고 하니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웃었다.
세 문장으로도 충분히 메시지 전달이 되었고 주례사를 대신한 멋진 축사였다고 전했다. 딸에게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축사이자 주례사였다고 하였다. 결혼식의 출발부터 불안해하는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신부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딸에게 너도 엄마처럼 남편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남편에게 아들 결혼식에 축사를 할 거면 왜 고마운지까지 넣어서 아내에게 고마움을 만천하에 알리는 멋진 남편이 되어달라고 강요를 하였으나 그럴 자격이 있는가를 성찰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내가 깜짝 놀라며 듣게하는 남편도 아내도 우리 부부는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