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카라코람 11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물 마실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훈자가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술 마실 훈자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달인>
1.훈자에서 추석 차례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지낼 준비를 했다. 밥 타는 냄새가 진동해서 취사를 맡은 오달인에게 이야기하니 위에서 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믿을 걸 믿었어야지! 이 훈자 땅에서 빵 타는 냄새가 아닌 밥 타는 냄새가 어디서 나랴? 오달인도 어디서 밥 타는 냄새가 난다고 혼잣말하다가 부랴부랴 뛰어가서 가져온 휘슬러 밥솥은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안탄 곳을 골라 퍼서 묏밥을 올렸다. 나침판으로 방향을 잡고 좌포우혜, 홍동백서, 두동미서 등을 짚어가면서 제사상을 차린 다음 정성껏 차례를 올렸다.
식사를 마친 다음 언덕 꼭대기 숙소에서 사정없이 다운힐로 내려가 카라코람하이웨이에 합류했다. 아쉬워 뒤돌아보니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이 훈자 카르마바드의 고성(古城) 발티드 요새와 계곡을 둘러싸고 있다. 카라코람하이웨이는 인간만의 위대함(세계 8대 불가사의)을 현장으로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임영주대원의 Bike에 펑크가 난다. 원정을 가면 왜 그렇게 펑크가 많이 나는지!
다소는 낯설고 다소는 거치른 풍경을 뚫고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 나갔다. 고도가 높아지면 삭막하고 거칠어지지만 강물은 조용하고 그윽하게 흐르고 있다. 내일 국경도시 소스트 이민국에서 출국 수속을 해야 하지만 숙박시설이 삭막하므로 굴미트에서 머물기로 하니 라이딩 거리가 짧아진다. 내일 가파르게 쿤제랍패스를 올라쳐야 하므로 오늘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고 가지고간 학용품과 옷을 나누어 주고 더불어 의료봉사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2. 굴미트-Upper Hunza 한가로운 마을
고도가 높아갈수록 초록과 생명이 귀해진다. 억세게 외롭고 황량하면서 아름다운 길이다. 항상 경험하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풍경은 단순하고 간명해진다. 점심 무렵 도착한 Silk Route롯지는 넓은 정원에 사과나무와 가을꽃이 만발해있다. 멀리 훈자 강을 건너면 밀라노 두오모 성당과 흡사하게 닮은 이름하여 캐티드랄(Cathedral) 봉의 수많은 첨탑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바로 아래 훈자 강에는 너른 모래톱 사이로 강물이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먼지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Blue이다.
오래된 버드나무는 마을의 파수꾼처럼 군데군데 도열해서 서있다. 나뭇잎파리들만 가을 햇볕과 한가로운 바람을 받아 반짝거리며 떨고 있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면 유연한 곡선을 이루는 돌담이 길과 집, 밭과 집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거세고 빠르게 바이크를 타고 지나왔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오직 강한 자아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쉼 없는 움직임(動) 자체였다. 그런 급변하는 흐름에서 잠시 일탈(逸脫)해 평화를 만끽하면서 시간의 속도를 제어해본다.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공간 안에서 고요함을 바라본다. 느긋하게 잊혀진 이들의 묘비명도 읽어보고 속도에 밀려 지나쳐 버렸던 섬세한 사유의 그물코를 다시 짜 본다. 휴식은 완급의 조화이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내 몸을 휘감고, 따갑지만 까칠하게 느껴지는 햇살이 내 피부를 스칠 때 온 몸으로 가을을 느끼면서 잠시 감각의 쾌락을 느껴본다. 물끄러미 내 몸 밖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며 또 다른 자아(alter ego)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인디언들이 이 자연의 대지와 숲과 동물의 정령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될 것 같다. 따뜻한 밝음과 일렁이는 바람결에 몸을 맞기고 생각은 자유롭게 지나간 세월 속으로 기웃거리며 들어가 본다.
마을에 들어가 먼저 호텔 사장이 요청한 집에 들러 왕진했다. 환자는 30대 고등학교 교장의 늙은 모친이었다. 일단 우리 몸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골반을 교정해주고 무릎을 교정해준 다음 침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골반상단과 견갑골하단에 베개 고여서 몸을 활짝 펴고 눕는 건강법을 가르쳐 주었다.
교장선생의 여동생은 아직 미혼이고 대학에서 식물학(botany)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해서 깍두기 총각 임영주 대원 이야기를 했더니 이미 약혼해 곧 결혼할 거리고 한다. 거구의 마부, 그램, 호텔 사장이 느긋하게 도열해서 앉아 권련을 즐기고 있다. 치료 후 이 집의 여인네들은 자파티와 커피, 차를 가지고 온다. 맛있는 잼이 기억에 남는다.
이 집은 7백년 된 집이므로 이 마을은 적어도 7백년이상 된 것이다. Upper Hunza에 속하는 Gulmit에서 가장 오래 된 이 집은 기둥과 대들보 뿐 아니라 집안의 가구들도 거의 모두 살구나무로 만들어졌단다. 살구나무는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벚나무속이다. 살구 열매는 청 살구에서 6월초 쯤 노란색 진황색으로 변하며 익는다.
살구나무 재목은 예로부터 재질이 단단하여서 가구과 중요한 실내 건축 재료로도 많이 쓰인다. 손톱으로 눌러보니 단단해서 자국이 들어가질 않는다.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은 소리가 깨끗하고 영롱하단다. 살구나무를 베어 동네 연못 뻘 속에 한 5년간 담가놓았다가 꺼내어 다듬이 대를 만들면 절대로 갈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낮은 진흙 뻘 속에서 피어나는 로터스(연꽃)가 생각난다. 상류층에서는 살구나무로 관도 만들었다고 한다.
3.이스마일리즘
이슬람 나라를 가면 수니파, 시아파, 이스마일, 이맘, 칼리프 등 귀에 익었지만 자세히 모르는 종교 용어가 많이 나온다. 상식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수니파는 마호메트의 후계자를 정통 칼리프(계승자 ·대리자라는 뜻)로 보았다. 그래서 수니파는 정통파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경전이 꾸란, 모하메드의 순나 (Sunnah;언행 관행)를 기록한 책인 하디스(Hadith)를 중시한다. 수니는 이 순나 Sunnah에서 유래되었다. 수니파는 모든 무슬림 중 85~90%정도로 절대 다수이다.
시아파는 수니파 이외의 분파(分派)를 총칭한다. 교조 모하메드가 아들이 없어 사후 후계를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시아파가 생겨났다. 시아파는 마호메트의 혈통(딸을 통해)을 이은 알리만을 칼리프로 인정해서 일명 ‘알리파’로도 불린다. 마호메트의 사위 알리(제4대 칼리프)를 정통 칼리프로 보고 그 후계자들을 이맘(교주)으로 보았다. 시아파는 이맘의 존재가 중요해서 시아파가 80%인 이란에서는 최고 종교지도자가 이란의 무슬림들을 이끈다. 시아파의 어원은 "시아 알리(알리의 추종자들)"에서 비롯되었다. 시아파는 알리의 자손을 이맘(교주)으로 세웠다.
시아파는 6대까지 계속되다가 7대째 다시 둘로 나뉜다. 6대 이맘의 아들 ‘무사’를 7대 이맘으로 추대한 적자(嫡子)들은 ‘12이맘파’로 시아파의 본류(本流)가 된다. 그러나 무사의 형 이스마일의 아들 모하메드(무사의 조카)를 이맘으로 추대한 사람들을‘7이맘파’라하고 이스마일 이름을 따서 ‘이스마일파’로도 부른다. 훈자사람들은 시아파 중의 7이맘파( 이스마일파)를 믿는다.
시아파가 많은 나라는 이란(80%), 이라크(60%), 바레인, 아제르바이잔 등이다. 단순한 일신교적 믿음과 폭탄테러, 납치를 일삼는 눈매가 날카로운 탈레반들은 수니파이지만 시아파에 원리주의자들이 더 많다.
일신교(一神敎)의 단․무․지(단순․무식 ․지독)한 광신적 원리주의(fundamentalism)는 상상외로 위험하고 무섭다. 종교적인 어록에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피적(exoteric)인 표현이 있고, 정말 열린 마음과 깊은 생각을 가져야 이해할 수 있는 비밀스런 밀의(密意;esoteric)가 있다. 이 원리주의자들이 위험한 것은 겉에 문자로 표현된 것만을 최고의 진리인양 추종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진술은 문자적hylic 의미, 심적psychic 의미, 영적pneumatic 의미 신비적mystic 의미가 있다고 한다. 초․중․고․대학의 4단계의 수준에 비유할 수도 있다(또 다른 예수;오강남). ‘비나이다 비나이다’식 기복 불교,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단순 무식한 ‘문자적’ 종교관은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05년 동남아 쓰나미 재해 당시 예수 안 믿어서 벌 받았다고 설교했던 목사는 성서의 문자적 표현을 그대로 따른 문자주의자이고 근본주의자이며 초등학교 수준의 낮은 문자적 종교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는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들어와 양말에 선물을 잔뜩 넣고 간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믿는다. 그러나 대학생이 ‘그렇게 믿거나’ 또는 ‘거짓말이라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탈레반 원리주의자들의 단순 무식하고 지독하며 날카로운 모습과 달리 훈자의 사람들의 여유롭고 낙천적이며 관대한 모습이 비교가 된다.
4. 특설 봉사 캠프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려 했지만 늦어서 중간에 만난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었다. 이 학용품은 환자분 김영길님이 기증한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훈자 사람들이 사는 동네 골목길과 개울을 따라 만들어진 작은 소로길를 따라 가면 오래된 집들과 포플러와 살구나무가 있어서 다정해 보인다. 고만고만한 꼬마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 다니며 자기들을 보아 달라고 고함을 지르고 웃고 떠들고 있다. 정다운 흙냄새가 풍기는 감자밭에서 젊은 남녀들이 즐겁게 떠들며 감자를 캐고 있다.
시골 마을의 특유의 정적과 평화로움이 있다. 굴미트 마을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훈자에는 풍요다산에 의해 많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다른 지역에 비해 학교가 많다고 한다.
저녁때가 되니 마을 환자들이 실크루트 롯지로 몰려왔다. 방 하나에 임시 캠프를 차렸다. 주로 요통, 각통, 슬통 등 운동기 쪽 증상이 많았다. 골반을 중심으로 ‘차고, 펴고, 맞춘다’는 올리브(Allive) 교정법으로 치료했다. 침에 대한 경험이 없고 공포가 심해 스티카 원침(圓針)만 붙여주고 아픈 침은 생략했다. 한 오륙십명 정도 틀어진 몸을 잡아주고 치료를 해주었다.
알리 마부의 밀고에 의하면 이 집 사장은 카라치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한 사람으로 이 지역 인텔리인데 담배도 피고 하루도 안 쉬고 매일매일 술을 마신다고 한다. 어찌 북쪽 깊은 곳으로 갈수록 무슬림도 날라리들이 많다. 북쪽 훈자지방 남자들은 유쾌하고 밝고 명랑해 보인다. 골수 무슬림들 속에 있더라도 눈치과 코치(시각과 후각)만 빠르면 술담배도 가능한 모양이다. 뜻이 있으면 길(술, 담배)이 있다. 훈자의 물 ‘Hunza Water’는 온도가 우리의 체온(36.5℃)보다 더 높은 40도에 가깝다. 식사 중 배급된 1잔을 마셔보니 사과냄새가 여운이 길게 따라오는 독한 증류주였다.
오늘 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란 완벽한 표현을 쓰는 만월(full moon)이 뜬 야심한 밤에 세레모니(吟風弄月)를 해야겠지만 가혹한 감이 오는 내일의 고행을 위해서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최소한 90km정도를 가파르게 라이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는 동안 참새가 방앗간을 들락거리듯 오달인은 안주를 찾아 술을 찾아 들락거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지막 남은 큰 페트병 하나가 사라졌다. 오달인은 훈자의 대지주이고 옛 훈자왕국의 왕손이자 장군출신인 칸이란 노인과 지역유지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