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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투어러는 많다. 그리고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모델도 다수 존재한다. 혼다의 ST1300도 그렇고 BMW의 K1300GT, K1300S는 물론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즈키의 하야부사가 그렇다. 그 이유는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과 맞먹는 출력과 장거리를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는 여유를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유로움이 큰 무기인 만큼 플래그십 모터사이클에 준하는 다양한 안전장치 등으로 고급스러움을 더욱 어필하기도 한다. 전후좌우 각, 제조사의 플래그십 투어러는 각각의 마니아 층이 존재하며 그 신뢰도는 매우 높다. 간단히 말하면 타 제조사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다의 VFR1200F는 여타 초고속 투어러 마니아들을 유혹할 만한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혼다의 V4는 혈통에 기대지 않는다 초고속 투어러는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에 준할 정도로 강력한 출력을 갖고 있다. 혼다가 새롭게 내놓은 VFR1200F의 경우, 공개된 제원상 10000rpm에서 최고 173마력(PS)를 낸다. 190마력 이상의 투어러도 존재하는 시점에서 단순히 173마력이란 수치는 큰 매력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VFR1200F보다 배기량이 작은 혼다의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인 CBR1000RR의 최고 출력이 더 높은 정도니 타 메이커와의 비교도 불필요할 정도다. 하지만 혼다의 자존심은 단순히 최고속이나 수치화된 출력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VFR1200F의 발표 이전부터 이슈가 된 것은 혼다의 V4 엔진이 새롭게 변모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전설과도 같이 남아있는 혼다 최초의 V4 엔진, 타원형 피스톤을 사용한 NR500과 8시간 내구 레이스 우승으로 빛나는 RVF750 등은 혼다의 가장 화려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VFR1200F의 V4엔진은 화려함을 내세우지도 않으며, 레이스를 통해 내려온 혈통에 기대지도 않았다. 혈기는 잠시 접어두고 30대를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혈기왕성한 나이다. 투어러의 성격을 갖고 있다곤 하지만, 혼다의 V4엔진을 앞에 두고 욕구가 끓어오르지 않을리가 없다. 수트를 입고 공도를 서킷삼아 마구 휘젓고 다니겠노라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 VFR1200F에 대한 첫 인상은 기대해 미치지 못했다. 출력은 경쟁 모델에 뒤지고, 인터모트 퀼른에서 발표되었던 V4 콘셉트의 형상을 유지했지만, 디자인 역시 그리 달갑지 않았다. 공격적인 모습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달리는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콘셉트 따위는 극한까지 성능을 추구하지 못한 변명처럼 들렸다. 나는 미국의 록 밴드인 ‘메탈리카’를 좋아한다. 마니악하다고 할 정도의 팬들에 비하면 그저 그런 수준이지만, 이들의 데뷔 앨범인 Kill ‘Em All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이 앨범을 평가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듯 나는 무식하게 달려드는 혈기왕성함이 좋았다. ‘The Four Horsemen’은 이 앨범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었다. 엔진 회전수를 끌어올려 달려 나가는 듯한 우직한 매력은 마치 직렬 4기통 엔진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the four horsemen 듣기 VFR1200F의 엔진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토크 곡선도 일정한 곡선을 그리지 못한다. 가만히 스로틀 그립을 감고 있으면, 5000rpm 부근에서 갑작스럽게 토크를 토해내듯 상승한다. 6000rpm 이상에서는 배기음의 느낌도 변화한다. CBR1000RR에도 적용되었던 가변식 배기 플랩 덕분이다. 하지만 V4 엔진의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은 이런 실망감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The Day That Never Comes ♬the day that never comes 듣기 아이들링 상태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언뜻, V트윈 엔진의 감성이 느껴지는 듯하다. 특유의 두둥 거리는 박자를 따라가다 보면, VFR1200F가 한 번 더 반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이질적인 느낌은 감성을 내세우는 유럽 메이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라이더를 흥분시킨다. 경쟁 모델에 비해 다소 뒤처지는 최대 출력과 최고 마력 따위는 상관없다. 스로틀을 가볍게 말아 쥐고 조심스럽고 감아 돌리더라도 어지간해서는 5000rpm 부근에서의 급격한 출력 향상에 대비하기 어렵다. 출발해서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속도를 끌어올리길 바라지 않는 눈치다. 카운터 밸런스가 없음에도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엔진의 회전수를 끌어올려 5000rpm을 넘긴다. 이와 동시에 리어 서스펜션은 마치 체인을 팽팽하게 당긴 것처럼 단단해지는 느낌을 주면서 프론트 서스펜션을 압박해, 자연스럽게 라이더가 모터사이클에 파묻힌다. 본격적인 가속을 위해 변신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엔진에서 뿜어낸 출력의 전달을 방해하진 않는다. 스윙암과 일체형으로 제작된 구동 샤프트는 리어 서스펜션과 별도로 움직이도록 제작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존의 직렬 4기통 엔진을 장착한 초고속 투어러의 감각과는 다르다. 주사기로 비유하자면 직렬 4기통 초고속 투어러의 감각은 주사기의 피스톤을 빠르게 앞으로 밀어내는 것과 같고, VFR1200F는 주사기의 앞부분을 막고 피스톤을 당겼다가 놓은 것과 같다. 프론트 카울과 사이드 카울의 형상은 라이더가 마치 모터사이클에 올라탄 것이 아니라 조종석에 ‘탑승’한 느낌을 연출하며, 실제 가속에서는 그 감각이 더욱 확연해진다. 앉은 자세에서의 포지션은 여유있는 편이지만, 효과적인 방풍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탑승’하는 느낌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다. 물론 어디까지나 공격적인 라이딩을 시도하겠다면 말이다. ‘The Day That Never Comes’은 앞서 언급했던 ‘메탈리카’ 최근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수록됐다. 이들의 데뷔 앨범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에 비해 이 노래는 전혀 다르다. 마구 밀어붙이는 모습은 없다. 오히려 도입부의 절제된 연주와 목소리는 힘을 빼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한 때, 세상에서 가장 파워풀한 노래를 연주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이들이, 이제는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필요한 힘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은 VFR1200F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여타 초고속 투어러에 비해 다소 뒤처지는 수치는 이미 혼다에게 있어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다의 경험에서 우러난 마스터피스 VFR1200F의 직경 43mm의 도립식 서스펜션은 압축과 리바운드에서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노면의 정보를 읽어내 라이더에게 전달하는 것도 정확한 편이지만, 그것이 피곤할 정도인 것은 아니다. 활기차게 돌아나가는 엔진은 1단 기어에서 대략 100km/h를 기록하며, 빠르게 가속해 나가면서 기어를 변속하다보면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 영역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4단 기어에서는 엔진의 회전 한계가 걸리는 시점에서 거의 정확하게 240km를 기록한다. 직선 주로에서의 빠르고 안정적인 가속을 보여주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코너링에서도 결코 둔한 모습은 아니다. 물론 여타 초고속 투어러에 비해 1545mm의 휠베이스는 조금 긴 편이며, 무게도 그리 가볍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가속해 들어가 정확하게 멈추고 다시 코너를 탈출하는 일련의 과정은 깔끔하다. 프론트 브레이크는 320mm의 더블 디스크에 6포트의 캘리퍼가 장비되어 있으며, ABS와 전후연동 브레이크 시스템인 CBS까지 포함하고 있다. 특히 ABS가 작동되는 시점까지는 꽤 여유가 있는 편이며, 훌륭한 조작감까지 가세해 어지간해서는 애초부터 브레이킹을 실수할 여지를 줄여버린 듯하다. ▲투어러 답게 사이드 패니어 케이스가 장비되어 있다. 키를 꽂지 않고는 케이스를 열 수 없는 점은 매우 유감이다. 잠금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보다 편이성이 높기 때문이다. 함께 미지근한 맥주를 마실 사람은 많지 않다 VFR1200F의 시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시승 촬영을 다녀온 이후에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에 차량 반납 이후에도 시간을 내 다시 한 번 시승을 진행했다. 이제는 결론을 낼 시간이다. VFR1200F의 첫인상은 미지근한 맥주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식도를 얼려버릴 듯이 차가운 맥주를 원했던 이에게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맥주의 풍부한 맛과 향은 아주 차가운 상태보다 오히려 미지근할 때 더 강하다. VFR1200F는 이런 맛을 아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모터사이클이다. VFR1200F의 차량 가격은 2290만원으로 책정됐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가격대의 초고속 투어러와 VFR1200F를 비교할 것이며, 다소 높은 가격은 판매량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타 옵션 품목이 경쟁 모델에 비해 부족하다거나, 기본 사양이 아니라는 등의 문제는 말 그대로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본질과 거리가 먼 이야기로 가격적 논쟁을 따지기에 VFR1200F는 그 가치가 분명한 모터사이클이다. 씁쓸하면서도 향긋한 맥주향과 부드러운 거품을 즐길 수 있는 이에게 VFR1200F는 그 어떤 모터사이클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메탈리카의 ‘The Day That Never Comes’란 제목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에게 ‘그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라는 암울한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마지막 가사에서 ‘The Sun Will Shine’ 즉, ‘태양은 빛날 것이다’란 강한 반전을 던진다. 그것도 강렬한 어조로 ‘This I Swear’세 번이나 강조하면서 곡을 마감한다. 때로 희망은 절망을 전재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VFR1200F의 시승기는 메탈리카의 노래보다 적절한 제목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숫자에 불과한 수치만으로 평가해 VFR1200F를 다소 얕잡아 보았던 것을 상기해보면, 이 노래는 매우 잘 어울린다. 그런 의미에서 메탈리카를 흉내내 시승기를 마무리 짓는다. ‘VFR1200F will Shine. This I Swear, This I Swear, This I Swear.’ 기사 제공 : 바이커즈랩(http://www.bikerslab.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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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이커즈랩 원문보기 글쓴이: 바이커즈랩
첫댓글 오메 함 달려보고잡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