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많은 나라의 명절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처럼 최대의 명절이다. 음력으로 설을 쇠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체로 중국, 몽골, 베트남, 싱가포르, 대만, 타이 등이다. 그러나 같은 날의 설날이라도 나라마다 설을 쇠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이러한 설 명절에 고향 생각이 간절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결혼여성 이민자들이다. 한국에 시집온 이후로는 한국식으로 설을 쇄야 했기 때문에 어쩌면 고향의 설 풍경이 더 그리운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결혼 이민 여성의 고국 문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행여 한국 가정과 사회가 이들에게 고국의 문화를 잊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다문화가정, 말 그대로 이들의 가정에 문화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두 나라 의 문화와 관습이 공존하면서 서로 이해한다면 더욱 평안한 가정이 되지 않을까.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중국과 몽골 출신의 두 여성을 만나봤다. 이들은 고향에서 설날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 추억을 통해 두 나라의 설
풍속도를 그려보았다.
중국 산둥성 출신 주핑(周萍)씨
-중국
주핑(29)씨는 한국에 온 지 4년 4개월이 됐다. 2년 전 귀화해 한국이름도 있다. 주예진. 한국에서 벌써 설을 네 번이나 지냈다. 그이는 한국어가 능숙하다. 발음만 약간 이국적이랄 뿐이지 추상적인 표현도 이해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자신은 아직 한국어가 부족하다며 공부하려고 집 근처에 있는 창원 북면사무소나 창원여성의 전화 등에 자주 드나든다. "말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데 아직 글쓰기가 안돼요." 그동안 아이 키우느라 한글 공부를 제대로 못했단다.
한국에서 보낸 네 번의 설날에 혹시 중국에서의 풍습대로 지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없죠. 한국의 설날은 중국과 많이 다르잖아요."
중국의 땅이 워낙 넓어서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섣달 그믐날과 설날 교자(餃子·만두), 중국 발음으로 '자오쯔'를 해먹는 풍습은 대동소이하단다. 또한 불꽃놀이와 폭죽놀이하는 것도 중국 전역에 걸친 중요한 설날 풍습이란다.
주핑씨의 부친은 워낙 불꽃놀이를 좋아해서 '추시(除夕·그믐날)' 낮에 아주 많이 사놓는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뭘 그렇게 많이 사왔냐"고 면박을 주면 "1년에 한 번 하는 건데 재미있게 놀아야지" 하면서 웃어넘긴단다.
주핑씨 가족이 '추시' 낮에 하는 일이 또 있다. 바로 '자오쯔'를 만드는 일이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정성껏 만두를 만드는데 어떤 것엔 동전을 넣기도 한단다. 무심코 먹다가 이 동전을 씹으면 행운이 와서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추시'에는 가족들이 자정이 될 때까지 대부분 잠을 자지 않는다. 자정이 되면 잠을 자던 아이들도 깨워 온 가족이 함께 새해를 맞이한다. 마작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자정이 되면 가족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간다.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밤에 폭죽을 펑펑 터뜨리면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뭐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정에는 폭죽하고는 달리 소리가 별로 나지 않는 거라며 불꽃놀이용과 폭죽놀이용이 다른 거라고 했다. 한국에서 흔히 아이들이 터뜨리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물어봤다가 무안해졌다.
"중국에서 하는 불꽃놀이는 굉장히 커요. 둘레가 네 뼘이나 되는 것도 있는데 밤하늘로 쏘아 올리면 오색찬란한 불꽃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아주 예쁜 것도 있어요."
가족들이 30~40분 정도 불꽃놀이를 즐기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낮에 만들었던 '자오쯔'를 먹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자오쯔'가 아무리 먹기 싫어도 하나는 먹어야 한다.
"한국에서 동짓날 새알 먹는 것과 같아요. 이 자오쯔를 먹지 않으면 나이 한 살을 먹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또 중요한 정보 하나. 중국에선 '추시'에 만든 '자오쯔'를 다음날인 '춘제(설날)'에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해가 바뀌었는데 작년에 만든 음식을 먹으면 과거에 얽매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다 먹고 잔단다. 많이 만들었을 땐 억지로 다 먹고 자려면 부담스럽겠다 싶어 주핑씨는 몇 개 정도 먹느냐고 물었더니 보통 5~10개 정도 먹고 잔단다.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마저 드시느라 고생하시겠군.'
춘제, 설날 새벽 4시 30분에 어머니가 일어나서 '자오쯔'를 또 만든다. 아직 다른 가족들은 자고 있다. 그러나 늦어도 6시가 되면 모두 일어나야 한다. 폭죽을 터뜨리기 위해서다. 아침에 터뜨리는 이것은 자정에 쏘아 올렸던 불꽃놀이와 달리 소리가 아주 크다. '펑 펑 펑!'
"동네 사람들이 아침에 나와서 저마다 폭죽을 터뜨리는데 아주 시끄러워요. 어떤 집의 것은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쩡쩡 울리는데 이웃 사람들이 뭐라고 하냐면, 어느 집이야? 그 집 올해 잘 살겠네 하면서 부러워해요."
아침 폭죽놀이가 끝나면 집에 들어와서 어른들께 인사를 한다. "궈녠하오?" '과세 평안하셨습니까'라고 하는 설날 인사다. 요즘 '꿍시 파차이(돈 많이 버세요)'라는 덕담이 유행한다는데 주핑씨 집에선 별로 쓰지 않는 말이란다. 중국에선 세배를 하면 '홍바오'라는 붉은색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 준다.
주핑씨가 한국으로 시집오기 전 부모로부터 세뱃돈을 얼마 받았는지 물었다. "100원 정도 받았어요. 한국 돈으로 2만 원쯤 될 거예요. 평소에 사지 못했던 것들을 사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켜먹기도 해요."
몽골 찬드먼 출신 가람한드 씨
-몽골
가람한드(35) 씨에겐 이제 7개월 된 딸이 있다.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 몽골인과 한국인의 공통점. 몽고반점. 아기 때 엉덩이에 퍼런 멍 자국 같은 것이 있어 그런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민족이다. 얼굴 생김새도 한국사람 사이에 섞이면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닮기도 닮았다.
'가람한드'는 그이의 이름이다. 몽골인은 이름 앞에 성이 두 개 있다. 조상의 성과 아버지 이름이 성이다. '버르지겅 푸레워 가람한드', 이것이 그이의 전체 이름이다. 가람한드씨가 살았던 몽골의 고향 찬드먼도 원래 이름은 '투에머크 아잉 찬드먼'이다. 줄여 찬드먼이라고 부르는데 더 간편하게 '돌렁 호요르'라고 한다. '72'라는 말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72㎞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람한드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이 모두 11명이란다. 그것도 아버지·어머니 두 분 돌아가셨기 때문에 빼고, 또 첫째 오빠와 둘째 언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녀서 뺐는데도 11명이다. 그래서 설날이라도 되면 온 집안이 북적북적 한단다.
몽골에선 설날을 '차강사르'라고 부른다. 섣달 그믐날인 '비퉁'과 시닝 네겅(설날), 시닝 호요렁(2일), 시닝 고롭(3일), 이렇게 나흘 동안을 '차강사르'라고 부른다. 음식은 대개 '보즈(양고기를 넣어 만든 만두)'와 '오오츠(양고기)', 그리고 '헤윙 보우(딱딱한 빵의 일종)'다.
가람한드씨의 집에선 '비퉁'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온 집안을 청소한다. 그러다 형제들이 많이 모이면 이런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남자형제는 양을 잡아서 '오오츠'를 요리하고 여자형제들은 '보즈'와 '헤윙 보우'를 만든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일을 거들기도 한단다. 3년 전 가람한드씨 집에선 '보즈' 3000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족이나 친척이 많으면 그 정도에 따라 개수를 조절한다. '보즈'를 이렇게 많이 만드는 것은 '차강사르' 동안 두고두고 먹기 위해서다.
'보즈'는 찜통에 넣어 찌기 전에 얼리는 것이 중요하다. '비퉁'에 다 만든 '보즈'는 다음날까지 밖에 내놓는다. 왜 그러는지 물어봤다. "몽골은 겨울 날씨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많을 정도이기 때문에 설날 아침이면 '보즈'가 꽁꽁 얼어요. 냉동만두 상태로 보관해 두었다가 먹을 때마다 필요한 만큼 꺼내 쪄서 먹어요."
몽골에서 양고기 '오오츠'를 먹는 방법이 좀 독특하다. 따로 덜어 먹지 않고 고기를 통째로 식탁 위에 올려놓은 채 개개인이 수시로 칼로 베어내어 먹는다. '비퉁'엔 음식을 만드느라 바빴다면 설날인 '시닝 네겅'엔 새벽같이 일어나 절이나 돌탑에 가서 한 해의 소원을 비는 기도를 한다. 아무 곳에나 가는 것이 아니다. 그해 자신의 운세에 맞는 방향이 있다. 재작년 가람한드씨는 '바론쪽'으로 갔단다. 말하자면 동쪽이요, 오른쪽이다. '바론쪽' 한국말과 흡사하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어워'라고 불리는 돌탑에 향을 피우고 우유를 뿌리면서 시계방향으로 3바퀴 돈다. 이때 주문을 읊는데 "어워니 이흐 텐다, 어르츠니 이흐 멘다!" 라고 한다. 대략 '복 많이 받게 해주세요'라는 뜻이다. 이런 중에 해가 뜨면 집으로 와서 가족과 친척들을 찾아갈 준비를 한다.
몽골에서 설날이면 가족과 친지 중에서 가장 연장자를 찾아가는 것이 예의다. 몽골은 한국과 달리 세배를 하지 않는다. 또 세뱃돈을 자녀가 어른에게 주는 것도 독특하다. 어른이 손을 내밀면 자녀는 '하닥그(푸른 천)'와 세뱃돈을 양손에 걸치고 어른의 양팔 아래를 받치면서 덕담을 건넨다. 지지난해 가람한드씨는 큰언니에게 5000투그릭(4800원 정도)을 주었단다.
"아마르 베노? 언드 멘드 타르강 타우태 어르워오! 라고 해요. 어렵죠. 큰 언니한테 인사가 끝나면 다른 집에 또 인사하러 가요. 인사를 하면 어른들이 선물을 주는데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받아요." 이런 인사가 사흘 동안 계속 된다고 한다.
또 '차강사르'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즐기는 놀이가 있는데 양의 관절뼈로 만든 '샤가이'놀이다. 소·개·말·양·돼지 등의 이름을 정해 같은 것을 맞추어 따먹는 놀이를 하기도 하고 비석치기처럼 멀리 세워져 있는 동물 뼈를 맞혀 넘어지게 하는 놀이도 한다. 또 '샤가이'로 공기놀이를 하기도 한다. 놀이방법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