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전립선 특이 항원 (PSA) 검사 키트를 사서 자가 검사를 해 본 사람이 양성 반응이 나오자 자기가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생각으로 우울해진 나머지 의료기관을 찾지도 않고 투신자살을 해 버렸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비전문가가 단편적인 검사결과를 접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이다. 자살한 사람은 초기 전립선암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경우 장기 생존률이 아주 높은 질환이란 걸 알았을까? 알고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의문에 대한 대답은 구할 수 없겠지만 그의 자살은 몇 가지 사유할 만한 점을 남긴다.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정보가 제공되는 시대가 도래한 듯 하다. 인터넷 검색사이트들은 이젠 질문검색까지도 제공해서 아예 만물박사를 만들어 주기로 작정한 듯 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대중의학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저마다 전문가를 내세워 정보의 홍수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자가진단용 검사용품은 상식적인 의료지식에서 더 나아가 자신만의 건강정보를 얻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치와 검사법 그리고 한계점이 널리 홍보되어 성공적으로 정착된 검사도 있다. 자가임신검사용품을 예로 들 수 있다. 가임기의 여성은 자가임신진단을 어떤 경우에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양성일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정확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적인 사례에도 불구하고 장단점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자가검사는 비용에 걸맞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때가 많다.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큰 경우가 더 잦다. 아직 국내에서는 자가 혈당검사 등 소수의 검사만을 자가검사로 허가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많은 ‘혈액 또는 소변 한 방울’ 검사용품이 출시되는 상황에서 제조사의 이윤동기와 대중의 간편한 검사에 대한 욕구는 자가검사의 대중화에 대한 압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정보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임상적 평가 없이 한두 가지 검사결과만으로 개개인의 질병이나 건강상태를 평가하기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만약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암검사라고 하는 종양표지자나 후천성 면역결핍증 바이러스 (HIV) 등의 검사를 자가검사로 허용할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진다. 자가혈당검사 경우만 하더라도 절대로 당뇨의 진단용으로는 쓸 수 없다고 하는 간단한 지침도 무시하고 수치가 높으니까 당뇨네 아니네 하는 말이 흔히 들리는 판에, 일반인이 암검사나 바이러스검사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까? 대다수의 종양표지자가 자체의 한계 때문에 선별검사용으로는 부적절한 것을 어떻게 다 알릴 것인가? HIV 선별검사 양성결과의 99%가 사실은 감염이 없는데 양성으로 나온 것임을 알린다고 해서 양성결과를 얻은 사람이 마음이 놓일까? 일반인이 검사과정에 익숙하지 못해서 생긴 잘못된 결과는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불안 또는 거짓 안심을 가져올까?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간편한 검사가 출현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검사들이 비전문가들에게 노출되기 전에 우리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외국의 선례를 단편적으로 따라서 누구나 쉽게 자가진단용품을 살 수 있게 하거나 편법으로 검사용품이 일반인들에게 판매되게 하는 것은 많은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내 병은 내가 진단한다는 개념은 매력적이지만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과 건강이 더없이 소중하기에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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