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퍼는 성령의 신학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칼빈과 존 오웬에 이어 성령론에 관한 방대한 책을 저술했다. 『성령의 사역』(Het Werk van den Heiligen Geest)은 그의 명저로서 900여 페이지에 달하며, “신학적이면서도 대중적이고 개혁주의 신학수립의 결정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정성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 p. 238.) 카이퍼의 이 책은 영미 신학계의 성령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정성구 박사는 카이퍼의 이 책에서 성령론의 일부 내용들을 간추려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카이퍼는 성령의 사역이 설교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했다. 성령께서 설교자를 통해서 일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통해서 진행된다. 성령께서 사역하실 때 자격을 갖추고, 기름 부음 받은 설교자들에게 함께해서 그 설교가 능력있도록 하신다. 카이퍼는 주장하기를 택자들의 부름이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중생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스스로 돌아온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고와 확신에 의한 내적 소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증거된 말씀에 의해서 외부로부터 소명이 있고, 그 다음 성령의 사역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목사의 설교에 성령의 사역이 함께 할 때 그 설교는 진정으로 역사가 일어난다고 할 것이다. 설교자가 아무리 멋진 설교를 준비했다고 해도 성령의 사역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설교자에게 역사 할뿐 아니라 청중의 마음속에 꼭 같이 역사하신다. 카이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님이 성경 말씀과 함께 임하는 것이니, 그 말씀은 영감되고(Geinspieerd)준비된 말씀이며 성령자신 즉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성령은 자신이 자격을 주시고, 생기와 영적 식견을 가진 설교자들에 의하여 죄인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은 역사적 신앙고백의 발전과 목사들을 통해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며, 성령님은 형태로나 성격에서 설교자에게 찾아오시고 그에게 감동하시고 그를 사로잡는 것이다."(A. Kuyper, Het Werk Van den Heiligen Geest, Tweede deel (Amsterdam. J. A. Wormser, 1888) p. 193.)
설교자도 주님의 도구인 만큼, 설교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설교자가 청중들의 영적 상태를 잘 알지 못해도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말씀의 안내와 준비를 하게 하신다. 설교자는 성령님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말씀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카이퍼에 의하면, 청중 가운데 설교자의 설교를 들은 뒤 "그 설교는 직접 내게 하는 설교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설교자가 어느 특정인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해서 그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받게 하시는 것이다.(Ibid., p. 194) 설교자에게 일하신 성령께서는 청중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역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능한 설교자만이 구령운동에 큰 일을 한다는 선입관념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설교자가 유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위반된다. 두 사람의 목사가 있다고 하자. 예를 들면 한 사람은 교리연구를 잘한 목사요. 다른 한 사람은 가볍게 신학 공부를 마친 목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전자는 교회에서 개종자가 별로 없는데 반해서 후자는 회개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임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의 많은 군대의 장수가 가졌던 창과 칼은 없었지만 물맷돌로 대적하다 거인 골리앗을 죽였다. 설교자가 행하는 모든 것은 주님께 순종하는 것일뿐, 그가 말씀 사역을 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주님이 함께 하신 결과이다."(Ibid., p. 199.)
그러므로 설교자가 늘 조심해야 할 것은 '탁월한 설교자', '유능한 설교자', '은혜가 풍성한 설교자' 란 칭찬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신 일을 마치 설교자 한 것처럼 칭찬과 영광을 받는 것은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성령은 성도가 중생자가 되도록 하는 단순한 사역뿐 아니라, 전파된 말씀에 의하여 각자의 심령과 생활 깊숙이 들어가서 역사한다. 따라서 성령님은 설교자들의 능력과 상상을 강하게 하고 영적인 상황을 이해하도록 조명을 하신다. 카이퍼 박사는 시종일관 성령의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성령께서 설교자와 청중에게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수해 가신다고 했다. 카이퍼는 설교자가 독단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덤비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설교 시에 청중 자신의 결단에 의해서 구원이 좌우되는 듯한 발언도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카이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선언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요, 죽은 죄인이 아직도 무엇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설교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Ibid., p. 199.)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아니면 죄인이 회개할 수도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죄를 깨달을 수도 없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셔서 죄를 생각나게도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도 하신다. 카이퍼는 설교에 있어서도 인본주의 사상을 배격하고 하나님 중심신앙으로 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킹덤북스, 2010), pp. 253~255.
첫댓글 좋은 포스팅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아니면 죄인이 회개할 수도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죄를 깨달을 수도 없다." --> 이 주권의 행사에 설교자가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지요.
네, 공감합니다.
'카이퍼는 성령의 신학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칼빈과 존 오웬에 이어 성령론에 관한 방대한 책을 저술했다.'는 소개 글이 좋습니다. 존 오웬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관련을 맺었지만 이에 서명하지 않고, 성령론이 독립된 채프터로 있는. 사보이 선언(회중교회 신앙고백)에 참여,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가적인 지식을 알려 주셔서 잘 참고합니다.
좋은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카이퍼는 성령의 사역이 설교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했다." --> 이 문장은 맞지만, 참되고 성령충만한 살교자에게만 적용시켜야 합니다. 잘못하면 설교자(목사)의 권위를 합당하지 않게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 중 성령의 사역을 빙자하는 것을 억제해야 합니다. 설교로 교인을 디스하고 후려치는 악행도 방지해야 합니다.
네. 그렇지요. 여태껏 한국 교회 설교자들에게서 많았던 현상이기도 하지요.
@코람데오 네, 현실적으로 공감합니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가 유효하던 사도의 시대(현재는 종료)에도 설교에 해당할 수 있는 예언의 사역은 다른 예언 사역에 의하여 제재를 받았습니다, 하물며 사도의 시대가 아닌 현대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아는 다른 성도들에게 검증을 받고 틀리면 억제도 받아야 합니다.
"고전14:31-33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아멘22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호크마 주석>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베드로는 예언의 말씀이 사사로이 해석되지 않아야 되는 근거로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제시한다. '하나님께 받아 말한것'이라는 베드로의 진술은 성령의 이중적인 저작권을 암시한다. 즉 원저자이신 성령께서 영감을 통해서 성경 기록자에게 오류가 없는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고전 14:37;딤후 3:16;딤후 3:10-17 주제 강해 '성경 영감론' 참조). 구약의 제자들도 역시 자신들의 예언이나 말씀이 자신의 뜻이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삼하 23:2;렘 1:7,9). 그러나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재림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선지자 자신이 표적이나 꿈, 환상을 통하여 지어낸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16절).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하여
본절에서 구약성경의 예언에 대한 신적 기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좋은 성구와 훌륭한 주석의 설명입니다. 😁
설교가 성령의 사역이라면 설교의 귀중함과 아울러 설교가 성령을 거스리는 위험성도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설교자는 성령께 온전히 순종하는 겸손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네. 좋은 지적입니다. 공감합니다.
신실한 설교자의 설교에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믿는데요.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가 피차 간에 은혜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