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기능사시험문제/ 조리기능장 노수정/ 크라운출판사/ 2012년/ 표시정가 2만2천원
어느 날 아내가 <간이역>에 취직 면접을 보고 돌아와 말한다.
“빡빡이라 안 된데.”
“그래? 홀 서빙이면 모를까 주방에 있는데 뭐 그런 걸 신경 쓰지?”
“글쎄 말이야.”
이렇게 저렇게 궁리해 봐도 먹고살 일이 막막하기만 한 시절, 아내가 식당에 나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벌써부터 그런 말을 해 왔는데, 조만간 '인천에 배 들어올 거니까' 기다리라고 나는 늘 아내를 만류했다. 그런데 마침내 허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글로 생계를 해결하는 건 내 생각에도 이제 요원했다. 나는 무력한 목소리로, 알았어, 힘없이 말했다. 그렇게 해서 아내는 교차로와 벼룩시장을 꼼꼼히 줄 치면서 식당의 주방아줌마 자리를 찾아다녔다.
근무 시간, 시급, 집과의 거리 등 몇 가지를 살피며 아내는 괜찮겠다 싶은 곳이 있으면 찾아가 면접을 보곤 했는데, ‘간이역’은 아내가 모든 조건이 맞는다면서 여기 꼭 됐으면 좋겠다고 갔던 가게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없어 안 된다고 한단다.
치렁한 생머리가 매력이던 아내는 그 무렵엔 빡빡이 시절이었다. <간이역>에 취직하려면 머리 길 때까지 대략 일 년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아내는 조리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했다. 그냥 ‘식당 아줌마’로 취직해서는 어차피 임금도 박할 거라고, 4대 보험도 되는 좀 괜찮은 곳에 취직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취직하고 싶은 한 곳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영주에 있는 경북전문대였다.
내 생각에도 대학의 구내식당이면 여러 가지로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아는 경북전문대의 인맥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내는 구내식당에 취직하는 데에 무슨 인맥이냐고, 자기 실력으로 당당히 취업하겠다고 했다.
그 얼마 후, 아내가 이 책을 사 왔다. 우선 한식조리사 자격증부터 따고, 차츰 일식과 중식도 따겠다고 했다.
아내가 사 온 책을 후루루 훑어보다가 내가 말했다.
“사법고시가 쉽겠다. 이거 언제 다 공부해?”
조리사자격증. 운전면허 필기시험처럼 한동안 열중해서 외우면 되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필기도 그렇고 실기도 그렇고, 접수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일단 요리학원은 기본으로 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요리학원을 알아본 아내가 수강료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나는 문득, 전에는 한번도 관심없던 정부지원제도를 떠올렸다.
"여보, 정부에서 취업자들을 위해 지원하는 게 있는 것 같던데 그것을 받아보면 어떨까?"
"그런 거 있어요?!"
그렇게 해서 알아보았더니 ‘계좌제’라는 게 있었다. 취업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200만원의 계좌를 만들어 주고, 그 돈을 훈련수강비로 지원하는 제도였다.
아내와 나는 고용노동부를 찾아갔다.
담당자는 친절했다. 계좌제 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꼼꼼하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근데 그것이 은근히 복잡하고 번거로웠다. 그 중의 하나가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는 동영상을 보는 일이었다. 혹시 동영상을 틀어만 놓고 보지는 않을까 봐 여러 단계로 섹터를 나누어서, 한 섹터마다 보았다는 표식을 남기면서 45분 정도 시청하는 일이었다.
나는 효소 담그느라 바쁜 아내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내가 대신 동영상을 보았다. 동영상을 보면서 설문조사에 일일이 체크했고, 여러 가지 자잘한 필요 서류도 구비했다. 그런데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우리 입장에서 몇 가지 걸리는 일들이 있었다. 지원이라는 거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했다.
공짜로 주는 돈이니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지원받을 적격자인지에 대해 여러모로 검증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나 함부로 지원금 받지 못하게 신중한 절차를 만든 것이겠지만, 내 생각에 그건 마치 '가난증명서'처럼 낱낱이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문서로 고백하게 만드는 것이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냥 우리가 돈 구해서 공부하자.”
그 무렵, 아내가 식당에 취직하려고 샀던 것이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