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9
2009년 4월 4일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만 봐도 스포츠 영화였다. 그런데 소재가 축구나 야구같이 인기종목이 아니었다. 겨울올림픽을 치르고 난 지금도 생소한 스키점프였다.
당시 스키점프는 지난 2월 평창에서의 컬링처럼 메달권에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영화는 스키점프의 경기력이나 승부에서의 성공이 주제가 아니었다. 영화는 한번 좌절했던 인물들의 재도전, 어머니의 나라에 돌아와 모국의 따뜻함을 찾아가는 입양아의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다.
소재는 국가대표라는 상징적 자부심을 타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는 대박이 났다. 역대 국내 스포츠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관객은 800만이 넘었고, 매출은 600억원에 가까웠다.
국가대표, 글로벌 흥행 상품으로 떠올라
▲ 사무라이재팬 청소년대표팀이 지난 8월 28일 도쿄 진구구장에서 유소년 100여 명을 초청해 야구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 사무라이재팬 홈페이지
국가대표가 주는 영향력과 그 호응의 에너지는 전 세계적이다. 월드컵 축구는 2026년부터 참가국 수를 늘려(32개국에서 48개국) 글로벌 흥행을 부채질하고 있다. 야구도 유소년과 여자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이벤트를 키우고 있다. 메이저리그도 그동안 꺼렸던 엘리트 메이저리거의 올림픽 참가에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축구, 야구는 물론 골프, 당구 등에서도 국제 대회와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국가대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우리에게서 ‘국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WBC에서 우리가 경험한 열기, 여름·겨울올림픽과 국제대회에 출전한 국가대표 경기가 같은 종목의 국내리그에 비해 월등하게 관심이 뜨거운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스즈키컵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보여 준 관심과 응원은 국뽕의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선수가 속한 팀이나 그 리그를 응원하는 성향도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우리가 강하다. 박찬호의 LA 다저스와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랬고 류현진의 LA 다저스나 손흥민의 토트넘, 국내 선수들이 주도하고 있는 LPGA가 그렇다. 해외 스포츠 중계권을 확보하려는 국내 미디어의 경쟁은 치열하고, 판권을 가진 해외리그는 한국시장을 노른자로 여긴다.
▲ 2006년 WBC 한·일전에서 국가대표팀이 보여 준 열기는 뜨거웠다. 한국야구 대표팀은 그 이후 국가대표의 브랜드와 사업적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 중앙포토
프로야구 역시 국가대표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위대한 도전’으로 불린 2006년 WBC 한·일전에서의 연이은 승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과 쿠바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지금의 야구 열기를 만든 절대적 모티브였다.
두 대회가 만든 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야구팬이 늘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KBO리그는 8개 구단에서 10개 구단으로 규모가 커졌다. 야구를 좋아하는 유소년이 늘어나자 ‘베이징키드’로 불리는 야구 유망주들이 성장했다. 이처럼 국가대표는 야구팬은 물론 국민 전체의 관심을 받는 스테디셀러 상품이자 관련 비즈니스를 만드는 기반이다.
야구 대표팀 브랜드를 정착시키면 공식 스폰서를 비롯해 용품, 캐릭터, 중계를 비롯한 콘텐트 사업까지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 관점으로 관리 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구조를 만들고 선순환시키는 것은 리그 사업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일본은 2014년 사무라이재팬이라는 국가대표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는 일본 야구의 프로대표팀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사회인야구, 대학(U-21), 고교(U-18), 중학(U-15), 초등학교(U-12) 대표팀과 여자국가대표팀까지 아우르는 브랜드다.
또한 일본프로야구기구(NPB)와 12개 구단이 공동출자를 통해 NPB 엔터프라이즈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에서는 사무라이재팬과 관련된 용품을 판매하고 그들이 참가하는 대회의 TV 방영권을 관장한다. 또한 프로 올스타팀의 국제대회를 주관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브랜드로 묶어야 산업이 되고 지속 가능
▲ 미국야구 국가대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이미지. 대표팀의 정체성과 자부심, 전통을 만드는 노력이 엿보인다. /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미국 야구국가대표팀은 1978년부터 미국올림픽조직위원회(USOC) 산하 아마추어 협회에서 관장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참가하기 시작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둔 1999년부터 USA BASEBALL(미국야구국가대표)이라는 기구를 출범하고 팀USA라는 명칭과 함께 별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대표팀과 준결승에서 만났던, 토미 라소다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시작이다.
미국야구협회(아마추어)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함께 운영하는 이 조직에서는 대표팀의 대회 참가, 관련 사업과 함께 미국 전체의 풀뿌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각종 지원과 교육 사업을 관장한다. 홈페이지에는 투명한 사업운영을 위한 회계보고서가 매년 모두가 열람할 수 있는 형태로 게시된다.
▲ 지난 10월 한국에서 열린 여자골프국가대항전 인터내셔널 크라운. 골프도 국가대항전의 흥행을 키우고 있다. / 중앙포토
2018년 현재 세계야구소프트볼협회(WBSC) 야구 세계랭킹 1위(일본)와 2위(미국)가 이런 형태와 개념으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반해 3위 한국은 아직 그 시스템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팀의 정체성과 전통보다 감독이 누구냐가 더 큰 이슈처럼 보인다. 국가대표팀은 선발과 운영, 브랜딩과 저변 확대를 위한 육성 지원 사업 등을 관장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2018년 야구 국가대표가 구성된 대회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비롯해 유소년, 청소년, 여자대표팀 등에서 방대하게 이루어졌다. 이처럼 국가대표라는 큰 나무에 각각의 줄기가 건강하게 자랄 때 일관된 브랜드의 자부심과 전통의 가치가 만들어진다. 보이지 않는 그 가치를 재화로 만들고 비즈니스로 삼는 것. 그게 산업화 아닌가.
이태일 /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자료출처 : 중앙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