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1. 12
역사상 최고의 시대는 언제일까. 지중해를 내해(內海)로 만든 2세기 로마, 4대 발명품과 문화·상업이 번성한 11세기 송(宋), 해가 지지 않는 19세기 대영제국…. 뉴욕타임스가 꼽은 1위는 뜻밖에도 15세기 베네치아였다. 열악한 환경에 자원도, 인구도, 축적된 부(富)도 없던 작은 도시국가가 어떻게 가장 번영된 시대를 이뤘을까.
베네치아는 300년간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고, 십자군을 이용해 비잔틴제국을 쳤고, 성지순례까지 기업화했다. ‘중세의 경제동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진면목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엿볼 수 있다. 핍박 대상인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조차 계약서 한 장으로 ‘감히’ 귀족의 목숨을 담보로 계약이행을 요구한 곳이 베네치아였다.(김승욱, 제도의 힘)
재산권 보장, 계약 이행, 공정한 재판이 경제를 살찌우고, 차별 없는 시장이 개개인의 이기심을 제어한다는 사실을, 베네치아는 애덤 스미스보다 300년 앞서 간파했다. 순금 함유량이 일정한 금화 ‘두캇’은 500년간 국제통화가 됐다. 합자회사 ‘콜레간차’로 투자위험을 분산하고, 상선 정기항로인 ‘무다’로 계약의 불확실성도 최소화했다. 이슬람제국도 가장 신뢰한 파트너였다. ‘사농공상’의 조선 초기에 베네치아에선 정치인과 상인의 지위도 동등했다.
이런 역사를 투영해 보면 우리 경제의 문제가 한결 또렷해진다. 이익집단(길드)의 기득권을 깬 것은 시장의 활성화였다. 하지만 한국에는 시장다운 시장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노동시장은 임금 결정에 생산성이 배제돼 있다. 유통시장에선 소비자를 더 잘 대접하면 규제 대상이 된다. 그 결과가 상층 노동귀족 천국이요, 해외직구 급증과 골목상권의 아우성이다. 겔포스, 스멕타 같은 검증된 의약품조차 편의점에서 팔면 안 되는 나라다.
성장 부진은 시장만능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하지 못한 결과다. ‘포장’은 시장경제인데 ‘내용물’은 경제민주화, 사회적 경제, 언더도그마로 가득하다. 온갖 규제로 시장을 잘게 분절화(分節化)할수록 기득권과 비효율이 기생하기 쉽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신산업 혁신이 일어난다면 기적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들어 ‘적폐 청산’ 대신 국민의 ‘삶의 질’을 부쩍 자주 언급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은 부작용이 있더라도 관철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경제는 생물과도 같아서 정부 의도대로 반응하는 법이 없다. 누군가의 소득을 높여주는 정책이, 다른 누군가의 생업을 위협할 때는 더욱 그렇다. 정책을 만들면 대책을 세우고, 규제를 하면 회피수단부터 찾는 게 시장의 생리다.
경제가 ‘좌회전’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 공산주의가 몰락했고, 유럽 사회민주당 정권들도 집권해선 ‘제3의 길’(영국 블레어), ‘쇄신 좌파’(독일 슈뢰더)로 선회했다. 사람은 그냥 이기적인 존재다. 조너선 하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90% 침팬지와 10%의 꿀벌’ 속성을 지녔다. 협동하는 ‘꿀벌’, ‘착한 사람’만 강조하면 무임승차, 공유지의 비극으로 귀결된다.
이기심은 물과 같아서 아무리 틀어막아도 틈새만 있으면 빠져나온다. 이런 이기심을 억제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유로운 시장과 경쟁뿐이다. 그럼에도 21세기 한국 사회는 ‘굴뚝 시대’의 대립과 갈등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성과에 따른 보상, 경쟁, 민영화 등이 모두 ‘적폐’이고 규제 혁파는 재벌 특혜로 치부된다.
개헌이 임박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합의가 안 되면 권력구조 부분은 뺀 정부 개헌안을 내겠다고 했다. 개헌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국가의 번영이어야 한다. 그런데 개헌 자문위원회의 개헌안은 ‘좌회전’을 넘어 중앙선 침범도 괜찮다는 수준이다. 국가가 개입을 ‘할 수 있다’를 ‘해야 한다’로 바꾸는 식의 개헌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낫다. 역사 속에 무수한 반면교사와 모범사례가 있다. 국민 모두가 시장경제를 공부할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