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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가는 하늘 길에서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 가 얽힌 곳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땅 위에 긁힌 자국들에 불과하다. 물 론 이 오래된 원근법의 교훈은 전부터 잘 알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가운 비행기 창에 얼 굴을 갖다 대고 있을 때만큼 이것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타고 있는 것은 심오한 철학의 스승이며 …….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여행의 기술』 ▶ 여행기간 : 2008.4.20.(일) ~ 2008.4.28.(월)(8박 9일) ▶ 여행지역 : 이스탄불→앙카라→카파도키아→안탈랴→카쉬→파묵칼레→에베소→트로이 ▶ 제1일(2008.4.20.일, 맑음) : 이스탄불 가는 길 비행기가 이륙하고 2시간쯤 지나자 기내식이 나온다. 젓가락 아닌 포크를 사용하여 밍밍하거 나 느끼한 맛을 보자 비로소 이국을 간다는 실감이 난다. 갑자기 우리말조차 얼른 알아듣기 어 렵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이국 공항의 표지판을 보고 그 익숙하지 않은 알파벳의 배열(모음이 연속한)에서 이국에 온 것을 깨닫는다고 하는데 나는 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 국을 느낀다. 운 좋게 창가 자리를 차지했다. 창밖 내다보며 기내 스크린에서 표시하는 항로와 위치를 대조 해보는 호기심도 잠시뿐이다. 이스탄불까지 11시간을 이렇듯 불편한 자세로 가야한다니 온몸 에 좀이 쑤시는 듯하여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다. 며칠 전부터 지하철역 입구에서 모아온 AM7 의 스도쿠(프로그램을 스크린 프린트하여 가져온 것도 있다)를 풀다가 아내로부터 여기까지 와 서 고작 한다는 것이 그딴 짓이냐는 핀잔을 듣고 멈춘다. 고비사막 위를 지나는가보다. 황량한 벌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8,000m이상 고봉 14좌를 최초 로 등정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유럽의회 의원직을 그만두고 저 사막을 걸어 서 횡단했다. 그것도 60세의 나이로. 그 정열과 의지가 부럽다. 구름 위로 불쑥 솟아오른 만년 설 덮인 산이 보여 졸음기가 싹 가신다. 능선은 부드럽다가도 정상 부근에서는 날카롭게 솟았 다. 산은 언제나 어느 산이나 아름답다. 흑해를 가로 지른다. 얄타 밑이다. 하늘에서의 낙조는 어떨까 잔뜩 기대했는데 구름 속에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하여 곧장 숙소로 이동한다. 저녁 식사 는 기내식으로 때웠다. 마르마라 해변을 간다. 도로 중앙분리대며 주변은 색색의 튤립 일색이 다. 튤립이 터키 국화려니 예단했는데 들어맞았다. 1. 아네모네, 인천공항 가는 길 압구정동 노변에서
5. 이스탄불 가는 하늘 길에서
우리 일행은 부부 8명, 동행은 20명이다. 70대 노부부가 8명이고 나머지는 내 또래다. 70대 노 부부들은 이런 여행에는 도가 트셨다. 먹고 자고 보고 이동하는데 노익장을 과시하여 내내 모 범을 보여주셨다. 가이드는 현지가이드 2명 포함 3명, 운전사 1명, 보조 1명. 45인승 대형버스 는 높아 계단 5개로 오른다. 대부분 두 좌석을 한사람이 차지한다. 가이드의 정작 중요한 일은 수시로 인원수 세는 것과 때맞춰 화장실 안내하는 것이다. 이동하 기 전에는 반드시 소변을 누게 한다. 화장실은 유료가 많다. 요금은 500원. 변기가 높아 소변보 는 데 애먹는다. 발꿈치를 들어야하니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06시 기상, 07시 식사, 08시 출발. 이스탄불 시내로 간다.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였 던 이스탄불은 옛 도시답게 고색이 창연하다. 도처의 무너진 성벽은 콘스탄티노플의 영화를 상 상하기 충분하다. 그러다보니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 담벼락도 눈 비비고 쳐다본다. 좁은 도로를 곡예 운전하여 히포드럼에 차를 세우고, 오벨리스크, 콘스탄틴 기둥, 뱀 기둥, 블 루 모스크(술탄 마흐멧 모스크), 톱카프(Topkapi) 궁전, 메두사 석상 기둥 받친 예레바한(지하 저수고), 발목이 시고 눈이 침침하고 귀가 아프도록 둘러본다. 성 소피아 사원은 휴관이라 겉모 습만 훑어본다. 4,000여개 가게가 벌집처럼 밀집하였다는 시장도 들린다. 미로와 인파에 길을 잃어버릴까봐 아내와 손잡고 직선으로 갔다 온다. 점원들이 반말투지만 우리말을 아주 잘한다.
배 타고 흑해 입구인 보스포러스 해협을 오간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이(唯二)한 다리 밑 을 지난다. 골든 혼 연결한 보스포러스(Bosporus) 대교는 높이 60m, 길이 1,083m라고 한다. 걸 어서는 다리 위를 지날 수 없다. 자살 방지를 위해서라고도 하고 쿠르드족이 폭파할까봐 우려 해서라고도 한다. 해협 양안은 돈 많은 사람들의 별장이 즐비하다. 부호들의 탈세로 인한 이 나 라의 지하경제가 전체 경제의 40% 수준을 육박한다고 하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앙카라로 간다. 프랑스 사람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60이 넘은 나이에 이곳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 2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갔다.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고 독, 나는 과연 그 심연과 맞서 싸워 그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것이 지닌 모든 이점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독이 도피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기에 더욱 절실한 질문이다. 고독이 칠판이라면 난 그 위에다 계속 써나가야 할 것이다.’ 하며 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걸어서 간 길을 우리는 버스 타고 간다. 고독의 심연을 전혀 느껴보지 못하며. 야트막한 구릉지를 달리다 키 큰 나무 무성한 산기슭을 지난다. 저 능선은 넘나들기 매 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와 나침반 갖췄다고 해도 수림이 워낙 짙어 막막할 것 같다. 현대자동차 공장을 지난다. 너른 공장 마당에 수많은 자동차가 질서정연하게 깔려있다. 터널 (길이 3,064m)을 지나자 주변풍광이 달라진다.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민둥산 일색이다. 날이 어두워져서 앙카라에 도착한다. 밥 먹고 잠자기 바쁘다. 6. 히포드럼의 오벨리스크
04시 30분 기상, 05시 식사, 06시 출발이다. 모닝콜에 의지하지 않고 저절로 눈을 뜬다. 새벽 02시 30분이면(우리나라 시각은 08시 30분이다) 잠을 깬다. 그리고는 이동 중 차안에서 닭 병 걸린 듯 존다. 한국공원으로 간다. 6.25. 동란 때 우리나라에서 숨진 터키병사들의 영령을 모신 곳이다. 다보탑 모양의 탑 둘레에 770명의 이름과 생몰년월일을 새겼다. 모두 20세 내지 23세 의 젊은이들이다. 가슴 뭉클하다. 모두 일렬로 서서 고개 숙여 잠시 묵념한다. 6.25. 동란 때 터키는 15,000명을 파병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파병이다. 3천여 명의 사상자 또는 실종자를 냈다. 한국의 발전상을 내 일처럼 기뻐한다는 터키 사람들이다. 1999년 8월 17일 터키 인구 밀집지역에 강진이 발생했다. 이스탄불 서쪽 교외에서 마르마라 해 북동부 아다파자리 시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사망자 1만 7천여 명, 부상 4만여 명, 이재민 60여만 명. 세계 각국이 구호의 손길을 뻗쳤다. 방글라데시는 10만불, 우리나라 정부는 7만불(우리나라 시 민단체가 정부 처사에 크게 분개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추가로 1백만불을 전달했다고 한 다).
버스에 탄 채 둘러보고 간다. 성역이다. 무스타파 케말은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로도 불린 다. 오스만 왕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을 섰다가 패배하여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 국의 손아귀에 떨어졌는데 케말 파샤의 치열한 분투로 독립을 쟁취하였다. 황량한 벌판을 달리고 달려 카파도키아(Cappadocia,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에 도착하고, 늦은 점심 억지로 우겨넣고 구경 간다. 비둘기 골짜기, 위치히사르, 괴 레메, 파샤바 버섯바위, 지구 아닌 다른 행성 같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몰려있다. 바위에 굴 을 파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바위굴에 들어가 본다. 밖은 땡볕이라 더운데 굴 안은 소름이 돋 도록 서늘하다. 괴레메 아랫마을 터키석 보석매장에 들린다. 아내 눈이 아연 반짝거린다. 여자들 속은 도대체 모를 일. 괴레메 구경은 15분인데 터키석 보석매장에서는 1시간을 넘게 보낸다. 남자들은 매장 을 빠져나와 먼 산이나 바라본다. 저녁에는 민속춤 공연 보러간다. 술은 맥주, 포도주, 터키 화 학주 등으로 모두 무한정 마실 수 있다. 전통 민속춤으로 시작하여 관능적인 무희의 밸리댄스 가 이어진다. 날씬한 무희가 둔부와 복부를 경쾌한 박자에 맞춰 흔든다. 저렇듯 요염한 몸놀림 을 보고나니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것만 같다. 11. 카파도키아 가는 길에서
투어 공식기상은 06시 30분이지만 일출을 보마고 1시간 전에 일어난다. 우리 부부가 가장 먼 저 일어났다(우리 일행 20명 말고도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이 함께 묵었다). 호텔 뒤 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래도 1,000m가 넘는다. 바위산이라 암릉 더듬어 오르고 바위에서 발돋 움하여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한다. 아침 첫 햇살 사정없이 퍼지는 카파도키아 골골이 비경이다. 포도밭 지나 골짜기에 가까이 다가간다. 모래성인 듯해도 만져보면 단단한 바위다. 안탈랴로 향한다. 11시간을 가야한다. 광활한 벌판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사방 지평선이다. 밀밭이 펼쳐진다. 1년 2모작, 부럽다. 군데군데 꿈틀거리는 것은 양떼다. 양떼들은 회색으로 보 호색이다. 아무데도 양치는 목동(牧童)은 없다. 목노(牧老)만 보인다. 내 어렸을 적 노래 불렀던 목동(牧童)들 또한 나와 같이 나이 먹었다(‘아 목동아’의 고향인 아일랜드도 그랬다). 이동 중에는 가이드의 강의를 듣는다. 가이드는 여자, 29살인데 실은 29살을 몇 번 넘겼다고 한다. 두루 해박하다. 고고학, 정치, 문화, 경제, 역사 등등 다 방면의 강의를 하루 3시간씩 듣는 다. 피교육자다고 착각하여 졸기도 한다. 바다 같이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소금호수라고 한다. 여름철에는 물이 바짝 말라 소금을 거 저 긁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는 소금이 터키 소비량의 40%를 충당한단다. 호숫가 휴게소에 들리고 호수 다가가 짠물 맛본다. 과연 짜디짜다. 지금도 차츰 물이 졸아들어 소금을 생성하고 있는 중이다. 멀리 설산으로 보이던 토로스 산맥에 들어간다. 산허리 돌고 돌아 오른다. 이제 산들은 민둥 하지 않고 곱슬머리다. 주로 소나무와 백향목. 수형이 우아하다. 펑퍼짐하고 둔중한 전후좌우 산괴를 바라보고 명색이 산꾼으로서 어디로 오르내릴까 골똘히 궁리하다 그만 주눅 든다. 3,000m가 넘는 고봉들이다. 산정 북사면 눈은 곧 녹을 것이라고 한다. 고갯마루에 휴게소가 있 다. 토로스 산맥을 횡단하는 데만도 장장 4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조금도 물리 지 않는 장엄한 파노라마다. 토로스 산맥의 지능선 마루금 타고 내려 지중해 연안. 기후가 사뭇 다르다. 오렌지나무가 흔 하다. 안탈랴는 대처다. 하드리안 게이트(Handrian's Gate)를 둘러본다. A.D.130년 로마 하드리 아누스 황제의 이곳 방문을 기념하여 세웠다. 대리석 재질인 교각 받침과 상판 전면의 문양이 섬세하다. 로마 황제의 위엄과 영광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16. 카파도키아 골짜기
20. 토로스 산맥
안탈랴(Antalya)는 밝고 환하다. 사람들도 활기가 넘친다. 건물 색조도 밝다. 뽕나무,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다. 뽕나무가 엄청 굵다(우리나라 창경궁에 있는 600여년 되었다는 뽕나무는 묘 목에 불과하다. 하기야 캄보디아에서 본 뽕나무에 비하면 이것도 묘목이다). 무릇 여행은 돈 쓰 는 맛이라 했다. 1인당 46,000원. 유람선 타고 지중해에서 노닌다. 물이 맑다. 물고기 떼로 몰려 다니는 모습이 다 보인다. 카쉬 가는 길에 올림포스 산을 들린다. 토로스 산맥의 지능선 끝자락이다. 산허리 굽이굽이 돌 때마다 내려다보는 지중해 해변은 절경이다. 곳곳 조그마한 해수욕장은 하얀 몽돌이 깔려있 다. 들판의 빨간 점점은 아네모네 꽃. 마을에서 800m 오르면 산중턱 너른 바위사면 여기저기 틈새에서 불이 너울너울 피어난다.
다. 고대에는 이곳 지중해 등대역할을 했다고 한다. 여신을 모신 신전 터도 있다. 다시 지중해 를 끼고 산기슭을 달려 땅끝 마을인 카쉬에 도착한다. 아담하다. 호텔 뒤 산에 오른다면 미친 놈 소리 듣겠고, 해변에 나가 짙푸른 바다 감상한다.
21. 지중해 연안 주변, 안탈랴에서
23. 산자고
24. 올림포스산 가는 길에서
호텔에서 걸어서 카쉬의 리키야 유적을 보러간다. 석관묘, 시체와 부장품은 없고 텅 비었다. 외관은 예술작품이다. 지중해를 벗어나 로마시대 휴양지라는 파묵칼레로 간다. 멀리 산중턱에 흰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이더니 목화성, 파묵칼레다. 묘하다. 석회성분이 온천물에 녹아 희게 변 한다고 한다. 우선 히에라폴리스부터 구경한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는 B.C. 2세기경에 세워진 도시라고 한다.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의 뜻은 성소가 있는 도시(City of the hieron)라고 한다. 열주, 고대 목욕탕, 원형 극장 등 둘러보며 옛 영광을 짐작한다. 폐허 위 엉겅퀴, 아네모네는 옛적 일을 모르는지 의초로이 무리지어 피었 다. 온천물 용출온도는 섭씨 35도. 원탕이리라. 발 담근다. 시원하다. 로마시대 황제들이 신경통, 피부병 등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자주 들려 목욕했다는 물이다. 그런데도 이 고장에 번듯한 온천탕 하나 없는 것이 아쉽다. 호텔 안 온천탕은 우리나라 태백의 허름한 목욕탕보다 나을 게 없다. 냉온탕, 찜질방, 사우나 실 만들어 놓고, 관절염, 만성피부염, 신경통, 요통, 치통, 복통 등 에 특효라고 크게 써 붙여 광고하면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지 않을까? 저녁식사 마치고 나서다. 박자 빠른 음악이 울려 퍼지고 배꼽 드러낸 무희가 식당 한가운데 플로어로 나온다. 플로어 가까이 앉았던 나는 왠지 불안하여 멀찍이 자리를 옮겼다. 여러 나라 사람들로 식당 안은 꽉 찼다. 무희는 잠깐 춤사위 보이다말고 사방 둘러보더니 코너에서 한사 람씩 끄집어낸다. 자리를 미리 옮겨 현명했노라는 자찬은 일렀다. 우리 일행이 모여 있는 코너 에도 온다. 이런, 대뜸 나를 지목하는 것이 아닌가! 플로어로 나갔다. 무희와 둘이 밸리댄스를 추는 것이다. 무아의 2분, 무척이나 길었다. 26. 파묵칼레 가는 길에서
새벽,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 아잔 소리도 이젠 귀에 익었다. 새벽이 되면 곡조 붙은 아잔 소리가 이제나 들릴까 저제나 들릴까 기다려진다. 동네 개들도 뒤따라 우우 소리 낸다. 5시 기 상, 6시 식사, 7시 출발. 에베소로 간다. 도중에 실크가죽 매장에 들린다. 패션쇼 구경하고 상품 을 구경한다. 터키 사람들은 젊어서는 참 잘 생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보행을 염려할 만큼 남녀 공히 배는 불뚝 나오고 엉덩이는 한껏 옆으로 퍼진다. 에베소, 에페소스(Ephesus)로도 부른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B.C. 7~6세기에 건립 된 식민도시라고 한다. 한창 번성할 때 인구는 25만 명으로 추정한다(반원 경기장 수용인원이 25,000명인데, 대개 인구의 10% 수준이라고 한다). 로마시대 세계 제5위의 도시다. 지진과 외 침으로 폐허가 되었다. 니케의 여신상도 부서져 누워있다. 이 길을 사도 바울과 요한이 걸었을 까. 대리석 바닥을 자세히 살펴 걷는다. 셀수스 도서관, 당시 세계 제3위의 도서관이다. 장중하 고 섬세한 외관을 보고 선인의 담대함, 미적 감각과 장인솜씨에 침이 밭도록 감탄한다. 아르테미스 신전,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다. 주춧돌만 남았다. 때 얼룩진 어린애들은 들꽃 꺾어 내밀며 1달러라고 외친다. 아내는 가이드가 말려도 산다. 모처럼 한식 식당에 들린다. 밥, 고등어구이, 미역냉국이 나온다. 밥아 너 본지 오래다 하고 2공기 반을 비웠다. 화장실 입구에 ‘화장지는 쓰레기통에 넣어주세요’ 하고 써 붙였다. 글 써 붙인 저의는 차치하고 우리글이 볼수 록 새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에게해 해변을 달린다. 아이발릭으로 간다. 그리스 신들의 활 동무대인 에게해다. 바닷물에 손을 적셔본다. 31. 파묵칼레
35. 아이발릭 가는 길에서
4시 기상, 5시 식사, 6시 출발이다. 강행군이다. 800km 토로스 산맥 끝단을 횡단한다. 토로스 산맥은 에게해에서 맥을 놓는다. 에게해 주변은 대규모 올리브 산지다. 유럽 소비량의 40%를 이곳에서 생산한다. 산에도 들에도 온통 올리브나무다. 열매 수확하기 좋도록 주간 꼭대기는 댕강 잘랐다. 가이드는 트로이야말로 볼만한 것이 없이 황량하다고 예방주사를 놓는다. 그랬다. 낮은 언덕에 옛날 도시 잔해가 띄엄띄엄 널려 있을 뿐이다. 무너진 트로이 성벽, 헥토 르의 표호와 헥토르와 함께 동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여긴다는 부하들의 함 성을 상상한다. 저기서 아킬레우스는 파리스가 쏜 화살을 발목에 맞고 죽었다. 이제 관광은 다 끝났다. 이스탄불로 가서 비행기 타고 서울로 가는 일만 남았다. 다르다네즈 해협을 건넌다. 배가 버스를 싣고 간다. 다르다네즈 해협 주변에서 터키 독립전쟁 때 치열한 전 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터키군 사망자만 40만여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마르마라 해가 핏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터키 국기의 바탕이 붉은 것도 여기서 유래한단다. 케말 파샤의 ‘나는 공격을 명령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을 명령한다!’ 라는 독전이 그 치열함을 웅변한다. 유럽지역의 마르마라해를 끼고 달린다. 너른 벌판을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이 보기 좋다. 이제 는 현지 가이드와 헤어져야 할 시간. 예의 활달하고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를 시종 즐겁게 안내 한 현지 가이드와 정이 깊이 들었다. 악수한다. 출국장 들어서서는 억지로 뒤돌아보지 않는다.
36. 트로이
기내에 들어서자 우리나라 신문(이틀 전 신문이다)이 있다. 눈이 다 시원하다. 광고를 포함하 여 모두 읽을거리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지나온 날들이 꿈만 같다. 어찌 생각하면 먼 날 같고, 또 어찌 생각하면 길었던 하루 같다. 터키 사람들은 친절했다. 한국에서 왔다면 더욱 친근감을 표시했다. 아아, 내일은 출근해야 한다. 회사일이 궁금하다. 부서통폐합의 구조조정과 인사이동이 이 여 행 중에 있었을 터인데 내 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골치 아프다. 39. 서울 오는 하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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