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德壽宮)
덕수궁을 좋아하는 이유는 입장료가 천 원이라 부담이 없다는 점이 첫 번째 이고 넓지 않아 한바퀴를 다 돌아도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음이 두 번째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어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세 번째 일 것입니다. 더불어 주변에 오래되고 믿을 만한 맛집이 있다는 점을 보너스로 꼽을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 나가면서 즐겨 찾는 식당은 정동극장 옆 추어탕 맛집 남도식당과 서울 3대 메밀 집으로 꼽히는 유림면 그리고 덕수궁과 이름이 같은 덕수정입니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덕수정에 들렀는데 이 집은 정성스럽게 내놓는 밑반찬과 이 집의 주던 메뉴인 부대찌개와 오징어볶음을 각각 1인분씩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제 마음에 쏙 듭니다. 대부분 식당들이 찌개나 탕인 경우 2인분부터 주문을 받기 때문에 다양하게 맛보고 싶은 소비자 입장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하는데 여기는 손님의 입장에서 주문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인분부터 주문을 받는 식당들은 마치 두 명이 중국집에 갔는데 자장면이나 짬뽕 하나로 통일하여 시키라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정말 무례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덕수궁은 원래 이름이 경운궁이었고 일제 말 고종이 강제로 폐위된 후 이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아들인 순종이 아버지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으로 德壽宮(덕수궁)으로 이름을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