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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6년 8월 20일 (토)
o 날씨: 맑음(폭염
o 산행경로: 이화령 - 조령산 - 신선암봉 - 깃대봉 - 조령3관문(조령관) - 마패봉 - 부봉(제1봉) - 탄항산 - 하늘재
o 산행거리: 17.9km
o 소요시간: 9시간 30분
o 지역: 충북 괴산, 경북 문경
o 산행정보: 조령산, 마패봉
o 일행: 좋은사람들 백두21기
▼ 등산지도
이번 산행은 이화령~하늘재 구간으로 대간구간 중에서도 난이도가 있다고 평가되는 구간이다. 조령산, 신선암봉, 마패봉, 탄항산 등 공룡의 등뼈처럼 튀어나온 큰 산을 몇개씩이나 올랐다 내려야 하고, 산과 산 사이에도 끝없이 밀려오는 크고 작은 파도를 넘어야 한다. 특히 조령에서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은 수없이 밧줄을 잡아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속되고 있는 폭염, 찌는 듯한 무더위도 극복해야 할 큰 난제다. 그렇다고 멈출수는 없다.....
새벽 3시 이화령, 옷 속으로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은 도시의 열대야를 잊게한다. 오히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한낮에도 이런 바람이 불어 주기를....
▼ 이화령(들머리)
이화령 터널→조령산 등산로 입구에 멋진 모습의 이화정이 산객들을 맞는다. 조령산까지의 거리는 약 2.8km, 해발고도차는 500m에 달한다. 약간 너덜길이면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금새 등에서 땀이 솟구치지만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초반이라 다리의 컨디션도 괜찮다. 이만하면 양호한 출발이다....
▼ 이화정
약 2km를 올라온 지점의 등산로에 조령샘이 자리잡고 있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산객들의 빈 물통을 채우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작년에는 큼직한 플라스틱 물통이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한바가지 시원하게 들이키니 조령산의 정기가 퍼지는 것 같다. 오늘도 안산, 즐산 하기를....
▼ 조령샘
조령샘에서 조령산 정상까지는 좀 더 깔딱 오르막이지만 나무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정상을 약 460m 앞두고 절골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합류한다. 조령산은 작년 여름에 산행 경험이 있어 비교적 눈에 친숙하다.
▼ 조령산 (이화령에서 2.8km)
[조령산] 높이는 1,017m이다. 전체적으로는 산림이 울창하며 대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괴봉이 노송과 어울려 마치 그림 같다. 능선 남쪽 백화산과의 경계에는 이화령이 있고 능선 북쪽 마역봉과의 경계가 되는 구새재에는 조령 제3관문(조령관)이 있으며, 관문 서편에는 조령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제3관문이 위치한 곳은 해발 642m로서 예로부터 문경새재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이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험난한 지세를 이용할 수 있어 군사상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대소 암봉과 암벽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능선 동쪽을 흐르는 조령천 곁을 따라 만들어진 길은 조선조 제3대 태종이 국도로 지정한 간선도로였으며, 주흘관(제1관문)·조곡관(제2관문)·윈터·교구정터 등의 사적지가 있고 완만하게 흐르는 계곡에는 와폭과 담이 산재하여 있다. 현재 이 일대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안보온천, 월악산국립공원과 가깝다. (두산백과)
조령산 정상 바로 뒤쪽의 전망포인트에서는 신선암봉~주흘산에 이르는 다이나믹한 암릉과 멀리 월악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신선암봉의 대슬랩이 시선을 압도하며, 오른쪽으로는 부봉의 묵직한 6개의 바위봉우리가 견고한 성벽을 만든후 다시 주흘산으로 뻗어간다. 멀리 월악산은 하늘과 땅을 가르고... 설악산의 암릉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새벽, 마음속으로 물감을 칠해본다....
▼ 조령산에서 바라본 신선암봉, 깃대봉, 신선봉, 월악산 및 부봉 전경 (2015년 7월 촬영)
조령산 정상에서 약 400m를 내려오면 마당바위 방향 갈림길이다. 우측은 마당바위 방향의 내리막길이며, 신선암봉은 직진해야 한다. 신선암봉 방향은 먼저 고도차 200m 이상의 급경사를 밧줄과 씨름하며 내려가야 한다. 작년 여름에 주흘산과 부봉을 거쳐 조령산으로 가는 길에 신선암봉을 도전했다가 체력적인 한계로 이곳 급경사에서 돌아선 적이 있다.
▼ 신선암봉 방향 등산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온 후 다시 그만큼의 거친 암릉을 올라가야 한다. 발아래는 살벌한 수직의 낭떠리지, 밧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두워 발아래 낭떠리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살떨림도 그만큼 줄어든다. 좌우가 절벽인 칼날능선을 오금저리며 지나니 이번에는 큰 슬랩이 갈길을 막고 있다. 네발로 엄금엄금 기는데 세찬 바람에 모자가 훌렁 날아가 버렸다. 손 쓸 틈도 없이 컴컴한 암흑의 절벽아래로.... 큰일이다. 오늘도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는데 모자가 없으면 한낮의 땡볕을 그대로 맨 머리로 받아내야 한다....헐~
신선암봉은 말 그대로 신선이 놀 만큼 조망과 풍광이 좋은 곳이다. 이곳의 거대하고 부드러운 통바위 슬랩을 누구는 흰수염고래의 등짝같다고 했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헤드라이에 비친 신선암봉은 그냥 평범하다. 무박산행은 이런 것이 항상 아쉬운 부분이다. 하늘에는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 신선암봉 (펌) (조령산에서 1.6km)
[신선암봉]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풍면 원풍리와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이다(고도:939m). 신선암봉 남쪽으로는 조령산이, 북쪽으로는 깃대봉이 연결되어 소백산맥의 줄기를 형성하는데,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속한다.『한국지명총람』에서는 이 산을 신선봉으로 소개하고 있고 고사리봉 · 할미봉 · 온산으로도 불렸다고 적고 있다. 신선봉이라는 지명은 옛날에 신선이 달밤에 놀았다고 해서, 할미봉이란 지명은 마고 할머니가 이곳에 와 놀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신선암봉을 지나면 다시 급격한 내리막이다. 계속하여 밧줄을 잡다 보니 손아귀가 아파온다. 너덜바위길을 지나는데 앞서가고 있던 산우 두명이 비명을 지른다. 뭔가에 물렸다고 한다. 그순간 내 머리에도 따끔한 충격이 온다. 경험상 땡비(땅벌)다. 손수건을 흔들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지만 쏘인 머리는 심하게 따끔거린다. 누가 벌집을 건드린 모양이다.... 만약 말벌이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일행들이 공짜로 벌침(봉침)을 맞은 거라고 농을 건넨다 ^^
▼ 928봉 방향 등산로
안부에서 다시 928봉을 향하여 내려온 만큼 올라간다. 쉴새없이 뒤틀리는 암릉구간,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존한 발걸음은 다리의 피로를 재촉한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어디가 어디인지, 어디쯤 가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동쪽하늘에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928봉(?)
▼ 뒤돌아본 신선암봉 방향
▼ 바위틈 노송
기암괴석 사이 또는 암릉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노송이 많이 보인다. 바위와 노송, 우리나라 산수화의 표준 소재다. 어둠속에서도 그 기상이 선명하다. 제대로 보면 한폭의 진경산수화가 따로 없을텐데.... 928봉을 앞두고 수직의 암벽을 올라가야 한다. 떨어지면 곧 죽음(?)이다. 스틱을 손에 쥐고 밧줄을 잡다보니 손아귀에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발버둥치다가 스틱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말았다. 옷은 구멍이 났고 허벅지에는 제법 큰 상처가 생겼다. 모자도 날려버리고, 벌한테 쏘이고, 옷도 찢기고 상처도 나고... 이거 오늘 일진이 좋지 않다.... 조심하자....
▼ 절벽구간
수직절벽을 올라오면 928봉으로 이어진다. 928봉이라고 적힌 나무판자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928봉 주변은 세개의 비슷한 봉우리가 있는데 왜 928봉에만 표지목을 만들어 둔 것일까.... 계속되는 암릉이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한다.
▼ 928봉
928봉과 비슷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를 또 지난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선두의 일행들이 적당한 일출장소를 찾았다고 한다. 무명의 작은 암봉이지만 조망이 좋은곳이다. 암봉위의 고사목은 이곳이 신선의 세상임을 알려준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일출을 기다린다. 얻어먹은 막걸리 한잔에 아침의 기운이 업되었다.
▼ 무명봉
무명봉에서는 사방의 조망이 열려있다. 멀리 남쪽으로는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손에 잡힐 듯하고,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제법 멀리 물러 앉아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조령산은 머리에 구름을 이고 그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일출의 붉은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 부봉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묵직하게 솟은 통바위산은 어둠속에서도 특별하다. 진행방향으로는 신선봉이 눈길을 끈다. 멀리서 보면 하늘위로 뽀족 솟은 신선봉은 인간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선계의 그곳처럼 보인다... 신선암봉과 신선봉은 무슨 관계가 일까?
▼ 무명봉에서 바라본 희양산 방향 백두대간
▼ 무명봉에서 바라본 조령산(중간 뒤) 방향
▼ 무명봉에서 바라본 부봉(중간 앞) 방향
▼ 무명봉에서 바라본 신선봉(중간) 방향
드디어 일출이 시작된다. 동쪽 하늘위로 솟아오르는 벅찬 감동....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리요.....
▼ 일출
무명봉에서 시작되는 내리막은 깃대봉 입구까지 이어진다. 내리막 길이지만 크고 작은 부침이 다리의 근육을 무장해제 시키고 있다. 허벅지에 경련 조짐이 있어 근육이완제를 하나 복용하여 쥐 출몰을 사전에 차단 해본다. 가까이 다가온 깃대봉 능선은 폭넓은 하얀 치마를 아래로 펼치고 있다. 그래서 깃대봉을 치마바위봉이라고도 한다.
▼ 깃대봉 방향 등산로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깃대봉(좌측 중간), 신선봉(깃대봉 뒤), 월악산 (우측 맨뒤)
신선암봉에서 3.2km 지점, 깃대봉 입구 갈림길이다. 백두대간은 우측 조령관으로 이어지며, 깃대봉은 백두대간길에서 좌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다. 거리는 300m정도. 선두그룹도 깃대봉으로 올라간 사람과 갈림길에서 쉬는 사람으로 나눠진 모양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베낭을 이정표에 걸어두니 깃대봉까지의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 깃대봉 입구 갈림길 (신선암봉에서 3.2km)
▼ 깃대봉 (치마바위봉) (신선암봉에서 3.5km)
깃대봉 명칭은 예전에 이곳에 깃대를 꽂았다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 깃대봉에서 바라본 928봉, 조령산, 신선암봉 (좌에서 순서대로)
깃대봉 입구 갈림길로 돌아와 조령관으로 하산한다. 조령관까지는 약 1km, 무너진 성벽도 지난다. 비교적 평범하다.
▼ 조령제3관문 (조령관) 방향 등산로
조령관 등산로 입구에 성황당과 조령약수가 있다. 조령약수는 한국의 명수 100선에도 선정된 적이 있으며, 가뭄 때문인지 오늘은 물이 솟아나는 샘의 모습이 아니다. 고여있는 물에는 약간의 부유물도 보인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니 물병에 물을 보충하고....
▼ 조령약수
[조령약수] 조선 숙종 34년(1708년) 조령성 구축시 새재정상(650m)에서 발견된 이 샘은 청원의 꿈을 안고 한양길을 넘나들때 갈증을 해소 시켜주는 역사속의 명약수로서 사철 솟아올라 옛날부터 이물을 즐겨 마시면 장수한다는 백수령천(百壽靈泉)이라고 한다. 한국의 명수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안내판)
▼ 조령 제3관문 (조령관) (깃대봉 입구에서 1km)
[조령관] 백두대간의 조령산 고개를 넘는 새재는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서울을 연결하는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이다. 새재라는 지명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새로 된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새재는 산새가 높고 험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문경새재에는 1관문인 주홀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 총 3개의 관문이 있다. 그중 3관문은 새재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선조 때 공사를 시작하여 숙종 때 중창한 3관문은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불리면서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을 하였다. 문루는 1907년 훼손되어 불에 탔고, 홍예문과 누각, 좌우의 석성 135m는 1976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대한민국구석구석)
조령관 문류에 올라보면 소백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충청북도와 도계(道界)를 이루며 조령관 용마루를 타고 서남쪽으로 달린다. 조령관 지붕위에 떨어진 빗물은 남쪽은 낙동강물이 되고 북쪽은 남한강으로 유입되어 용마루는 분수령이며 도계이기도 하다. (문경시청)
[문경새재] 백두대간(白頭大幹) 마루를 넘는 이 고개는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 지방을 잇는 영남대로(嶺南大路) 상의 중심으로 사회ㆍ경제ㆍ문화 등 문물의 교류지이자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라는 말에는 '새(鳥)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草)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 사이(間)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팔도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양 과거길을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청운의 꿈, 그리고 민초들의 삶과 땅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경시청)
조령에는 임진왜란때 신립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립장군 전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서울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조정에서는 왜군을 막으라고 신립 장군을 충주로 내려 보냈다. 신립은 김여물 등 부장들을 거느리고 조령의 지형을 살펴본 후 작전을 짰다. 김여물 등의 부장들은 아군 수가 열세임을 들어 지형이 험준한 조령에서 잠복해 전투를 벌이자고 주장했으나 신립은 충주 남한강변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왜군을 맞아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대패했다. 신립은 김여물 등과 함께 남한강에 투신, 순절했다. 이에 대해 신립을 짝사랑하다가 자살한 새재 골짜기에 살던 처녀 귀신이 원한을 품고 꿈에 나타나 남한강변에 배수진을 치고 싸우라고 일러준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가 잘못된 결과라는 전설이 전한다. (월간 산)
요기거리라도 사려고 했는데 조령관에 있는 가게는 영업 前이다. 이른시간이라 그런가.... 가게옆에 있는 음료수 좌판기도 정전상태라 달리 방법이 없다. 이제 절반을 넘긴 거리, 마실 물이 걱정된다.....
▼ 군막터
선두그룹이 벌써 떠날 채비를 한다. 어쩔수 없이 짧은 휴식을 뒤로한 채 선두그룹을 뒤쫒아 간다. 후반전의 시작이다. 조령관에서 마패봉까지는 0.9km의 짧은 거리지만 된비알 구간이다. 거친 암봉과 암릉을 헤쳐오느라 지친 다리는 마패봉이 또 하나의 고난이다.
▼ 마패봉 방향 등산로
마패봉은 박문수 어사가 이곳에 마패를 걸어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문수 어사가 왜 무엇 때문에 이곳에 마패를 걸었을까,이곳까지 뭣하러 올라왔을까... 오르막에 지쳐가는 다리를 끌며 속으로 궁시렁 궁시렁 거리다 보니 어느듯 마패봉이다.
▼ 마패봉 (조령관에서 0.9km)
[마패봉(마역봉)]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풍면, 충주시 수안보면,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940m). 마역봉 아래에 위치한 조령, 조령산 등과 함께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속한다. 북동쪽으로는 신선봉이 있다. 마역봉을 포함하여 조령산 · 백화산 · 희양산 · 대야산 · 청화산 등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 줄기는 낙동강 수계와 한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계가 된다. 조령삼관문을 안고 있는 이 산은 마패봉(馬牌峰)으로도 불리는데,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곳을 넘다가 잠시 쉴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조선지지자료』에서는 괴산군 상모면과 연풍면, 문경군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마문봉(馬問峰)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위치상 마역봉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지형도』에서는 마력봉(馬峰)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이 지명이 말을 놓아먹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마역봉의 지명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마패봉에서 에너지음료로 힘을 보충하고.... 다음 목적지는 부봉삼거리, 약 4km의 거리다. 마패봉에서는 일단 깊은 내리막으로 시작한다. 많이 설치되어 있는 나무데크 계단이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 부봉삼거리 방향 등산로
마패봉 북쪽으로 보이는 월악산, 한마리 말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한 모습이다.
▼ 마패봉을 지나면서 바라본 월악산
▼ 부봉삼거리 방향 등산로
부봉삼거리로 가는 등산로는 대부분 숲길이라 조망이 거의 없다. 언듯 나무 사이로 보이는 부봉의 6개 봉우리가 일렬로 키높이를 재고 있다.
▼ 우측으로 바라본 부봉 능선 (중간)
내리막길 끝에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데 표시가 분명하지 않다. 지도상으로는 북암문 갈림길로 보여진다. 이곳에서 부터 동암문까지는 등산로의 기복이 거의 없다. 숲속길이라 햇볕을 피할수 있어 좋다.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은 지친 산객에게 적지않은 위안을 준다.
▼ 북암문 갈림길(?) (마패봉에서 0.7km)
▼ 고릴라 소나무(?)
▼ 동암문
동암문에서 부봉삼거리까지는 다시 오르막이다. 거리가 길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부봉삼거리에 선두 일행들이 땀을 식히고 있다. 몇사람은 부봉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부봉도 백두대간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다리에 무리가 있어 이정표상으로 500m(왕복1km) 나 되는 부봉을 포기하려는데 부봉을 다녀오던 선두 일행의 '얼마되지 않는 거리다'는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부봉은 작년 여름에 다녀왔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쉽다....
▼ 부봉삼거리 (마패봉에서 4km)
▼ 부봉 방향 등산로
부봉은 그대로의 모습이다. 제1봉의 조망은 별로다. 조령산과 멀리 월악산을 제대로 보려면 제6봉까지 갔다와야 한다. 그럴 시간도 체력도 여의치 않아 제1봉만 찍고 돌아서는데 산우 한분이 벌써 제6봉까지 다녀오고 있다. 체력과 열정이 정말 남다르다. 부럽 부럽~~
▼ 부봉(제1봉) (부봉 삼거리에서 300m)
[부봉] 높이는 935m이다.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모두 6개봉으로 이루어졌고 제2봉이 제일 높다. 백두대간에 속한 산으로, 하늘재를 지나 조령(鳥嶺)까지 이어진 주능선에서 가지를 뻗은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主屹山:1,106m)과 이어져 있다. 조령산(1,017m)에서 동쪽으로 보이며, 주흘산의 북서쪽에 바위벽으로 솟아 있다. 이화령에서 하초리로 흐르는 조령천이 산 옆으로 지나간다. 6개 암봉이 한 줄로 이어져 있어 험준한 암릉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옛날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제3관문을 비롯하여 제1, 2관문이 자리잡고 있다. 일대는 물박달나무·자란초·미치광이풀·냉초 등 희귀 동식물이 많아 지방기념물(地方記念物)로 지정되었고, 문경시는 1987년부터 10만 그루 이상의 묘목을 심어 박달나무 군락지로서의 명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두산백과)
부봉 제1봉에서는 주흘산 주봉과 영봉의 조망은 좋다. 월악산도 적당하게 보이고.....
▼ 부봉에서 바라본 주흘산 영봉(중간 좌측), 주봉(중간 맨뒤)
▼ 부봉에서 바라본 월악산
▼ 부봉(제6봉)에서 바라본 조령산(좌측), 신선암봉(중간 좌측) (2015년 7월 촬영)
다시 부봉삼거리로 돌아와 하늘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 산행도 서서히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부봉삼거리에서 하늘재까지는 약 4.6km의 거리며, 탄항산이 마지막 고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부봉삼거리에서 하늘재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의 1km가 제법 오르막길이다. 탄항산 前에 크고 작은 고비가 숨어 있다. 끝날때까지 끝난것이 아니다.....
▼ 하늘재 갈림길 방향 등산로
▼ 문어바위(?)
▼ 뒤돌아본 부봉
허벅지의 근육경련이 재발하는 바람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걸음 속도를 늦춘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이 주흘산 삼거리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주흘산 방향이며, 하늘재는 좌측으로 나무데크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 주흘산 삼거리 (부봉 삼거리에서 1km)
▼ 탄항산 방향 등산로
주흘산 삼거리에서 약 0.6km를 내려오면 평천재다. 나무그늘이 있고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아 이곳에서 산우 두명과 산행중 잠깐의 망중한을 즐겼다. 나무그늘아래 자리를 펴고 눈을 붙일 수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산행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오래동안 머물수 없다. 다시 출발~
▼ 평천재 (주흘산 삼거리에서 0.6km)
평천재에서 마지막 오르막길이다. 크게 가파르지는 않지만 한걸음 한걸음마다 거친 숨소리가 커진다. 약 1.1km를 올라오니 탄항산이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를 찍은 것이다.
▼ 탄항산 (평천재에서 1.1km)
이제는 하산만 남았다. 그런데 하산길에도 군데군데 오르막이 있다. 대간길은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하산길의 우측 언덕에 멋진 모습의 고사목 하나가 보인다. 올라보니 고사목 뒤의 주흘산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이다. 고사목을 지나 얼마를 내려오면 등산로는 좌측으로 굽어지고, 정면 숲속에는 촛대바위(선바위)가 두드러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고사목
▼ 우측으로 바라본 주흘산 주봉(중간 뒤)과 영봉(중간)
▼ 촛대바위(?)
하늘재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작은 돌과 흙이 뒤섞인 마사토 길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니 허벅지와 종아리가 뒤틀리면서 경련이 일어난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등산로의 형세에 따라 천천히 부드럽게 춤을 추듯.....
▼ 통천문(?)
▼ 하늘재 방향 등산로
▼ 북바위산, 박쥐봉 조망
하늘재가 가까워지면서 맞은편 포암산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번 대간코스에서 넘어야 할 첫번째 산이다. 아래에 올려다보니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다음번은 다음번이고, 오늘은 더 이상 걱정도 미련도 없다... 하늘재 바로 위 언덕에 커다란 하늘재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포암산
▼ 하늘재 표지석
[하늘재] 한강유역 진출을 위해 신라가 서기 156년에 개척한 후 고려때까지 사용된 길로 한자음으로는 '계립령(鷄立嶺)' 이라 표기되며, 지금은 '하늘재'로 불린다 (표지석 안내판)
[하늘재] 천년사직 신라가 멸망후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그의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서라벌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하늘재를 넘고 미륵리에 당도한 마의태자는 그곳에 미륵입상을 세우고,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건립한 후 (중략)....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시대 초인 156년 아달라이사금왕의 북진을 위해 하늘재를 개척했으며, 죽령 옛길보다 2년 앞서 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충청도 충주와 경상도 문경 사이의 고갯길 중 가장 낮다. 하늘재라는 명칭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고개라 하여 붙여진 것이지만, 실제로는 고갯마루의 높이가 해발 525m로 그다지 높지 않다.
하늘재는 당시 한반도의 남북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교통로였다. 삼국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접경 지역에 위치하여 군사상으로 볼 때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지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중략)... 삼국 모두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북진 · 남진정책을 추진했는데 하늘재는 이러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길목이었으므로 전투가 매우 심했던 격전지였다. 이 고개는 문명의 길이기도 했다. 삼국시대 한반도에 도입된 종교이자 새로운 문명의 원동력이 된 불교가 신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하늘재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한마디로 불교문화의 전래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영남과 충청 이북 지방에서 생산된 많은 물산의 교역이 이루어진 남북무역의 중심지기도 했다. 고려 말 왜구가 창궐하면서 강물을 따라 통행이 이루어지는 조운(漕運)이 점점 약화되고, 도로를 중심으로 하는 육운(陸運)이 성행하면서 하늘재의 가치가 차츰 상실되기 시작했다. 조선 태종 때 지금의 새재(鳥嶺)인 초점이 크게 개척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재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개설된 새재가 새로운 고갯길로 각광을 받으면서 하늘재의 이용은 점점 줄어들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새재가 중요한 구실을 했으며 관방 시설을 설치하고 난 뒤에는 인근의 다른 통행로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하늘재 옛길도 폐쇄되어 행인의 왕래가 끊긴 지 오래되었다. 하늘재는 음을 그대로 바꿔 한자로 천치(天峙)라 표기하기도 하고 하니재, 하닛재 등으로 발음을 달리하여 부르기도 했다.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 한치라고도 했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계립령이나 마목현, 고려시대에는 계립령 북쪽에 대원사가 창건되면서 절의 이름에서 따 대원령이라 불렀다. 이후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고개 부근에 한훤령산성이 있어 한훤령이라고도 불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이 약화되어 한원령으로 변했다.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하늘재는 정말로 다양한 이름을 가진 고갯길이다. 백두대간의 중간쯤에는 북쪽으로 포암산(962m), 남쪽으로 부봉(935m)과 월항삼봉(851m)이 자리하고 있다. 남북의 산을 연결하는 산줄기 사이에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곳이 바로 하늘재의 정상이다. 하늘재는 동달천과 산북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면 어느 사면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도달하는 바다가 완전히 달라진다. 서쪽으로 가면 동달천의 지류로 흘러가게 되는데, 수안보면 미륵리를 거쳐 제천시 한수면 송계계곡으로 이어져 한강을 지나 서해로 향한다. 반대로 이 빗방울이 동쪽으로 흐르면 산북천의 지류로 흘러가게 된다. 산북천은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지나 남해에 이른다. 곧 하늘재는 국토의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것이다. 계립령 고갯길 중 경상도에 해당하는 문경시 구간은 19세기 초 신작로가 만들어지면서 노면이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옛길의 전통적인 모습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미륵리 절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하늘재는 지금도 충청북도 충주시 구간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중략).... 하늘재 부근에는 다양한 문화재가 많다. 포암산 방향에 있는 한훤령산성은 480m에 이르는 석성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중략)... 또한 중원미륵리사지(사적 제317호), 중원미륵리오층석탑(보물 제95호), 중원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 등 국가지정문화재와 다수의 지방문화재가 있어 풍부한 문화 경관 요소를 자랑한다... (중략) (우리 명승기행)
하늘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한껏 먹을것(?)을 준비해두고 있다. 부지런한 양반들~~^^ 갈증 때문에 시원한 맥주를 연거푸 세잔이나 들이켰더니 금방 취기가 돈다. 더하여 막걸리도 한잔 걸치니 알딸딸~ 그래도 기분은 좋다~~
▼ 하늘재 (부봉 삼거리에서 4.6km, 탄항산에서 1.9km)
하늘재는 문경과 충주를 연결하는데, 문경 방향의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고, 충주 방향은 아직 비포장 상태다. 하늘재에는 몸을 씻거나 적당한 식사장소가 없다. 문경시로 내려와 공중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올갱이국과 순대 그리고 한잔의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은 산행 후의 즐거움이다. 백두21기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