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릴의 주요 부품인 회전기어가 오염된 상태. ▲모터커버까지 바닷물이 스며들어
옆에 박혀있는 고무패킹으로 방수기능을 유지한다. 구석구석 소금으로 변해있다.
▲전동릴 모터. 전선이 연결된 부위 앞에 고무패킹이 있고(좌) 커버와 연결되는 부위(우)에 또 하나의 고무패킹이 있다. 이 정도 장치로는 완전히 방수되지 않는다.
빨래나 설거지에 필요한 고무장갑, 다이버의 시계, 비 오는 날에 입는 비옷 등 물이 닿는 일에 쓰는 장비는 대부분 방수기능을 가지고 있다. 물에 닿아도 스며들지 않고 기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언제라도 물과 접촉할 수 있는 낚시장비는 기본적으로 방수기능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낚시장비는 방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이나 부식에 강한 소재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일부 제품은 방수가 된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고가이면서 가장 중요한 장비인 릴은 어떨까?
‘설마 언제라도 물과 닿을 수 있고 가격도 비싼데 방수도 안 되게 만들었으려고…’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아마추어’다. 낚시깨나 했다는 전문꾼이라면 아무리 비싼 릴이라도 제대로 맞은 파도 한 방에 얼마나 큰 데미지를 입는가를 알고 있다. 바다든 민물이든 어쨌든 물에서 사용하는 릴이 물에 약하다니! 이건 사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분노하기에는 이르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washable과 water proof의 차이
얼마 전 선상낚시만 다니는 A씨가 전동릴 수리를 의뢰해 왔다. 원인은 간단했다.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가 염분이 낀 까닭으로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손상된 부품을 교체하고 정상제품으로 수리를 완료하여 보낸 지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A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태로 필자에게 다짜고짜 소리를 쳤다. “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릴이 작동되지 않아 어제 배낚시 가서 하루 종일 바다만 보다 왔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수리 후에 멀쩡하게 정상으로 작동되던 릴이 왜 말썽을 일으켰을까? 자총지종을 물어 보았다.
“수리하고 한 번 낚시 갔다 온 다음 두 달이 지나서 다시 갔는데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릴을 풀어보니 이게 웬걸? 지난번에 깨끗하게 수리를 하고 세척까지 마친 릴의 내부라고 보기에는 참혹한 수준이었다. 군데군데 염분이 끼어 있고 원활한 작동을 위해 발라둔 그리스는 여기저기 번져 오히려 릴의 오작동을 돕고 있었다. 분명 물이 들어간 것이었다.
릴을 물에 빠뜨렸냐고 물어 보니 절대 그런 일은 없단다. “외줄낚시를 하다가 릴을 빠뜨릴 일이 뭐 있습니까? 하루 종일 받침대에 고정시켜 들었다 놓았다만 하는데….” 그는 못내 분했는지 한 마디 보탰다. “이 릴은 방수된다고 카탈로그에 표시까지 돼 있단 말입니다. 여기를 보세요.” 그가 가리킨 카탈로그의 해당 릴 소개란에는 ‘washable(워셔블-세척가능)’이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아차! 싶었다.
“고객님, 혹시 포인트 이동할 때 릴 세팅한 채로 그대로 배 난간 받침대 위에 올려 두신 거 아닙니까?”하고 물으니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대로 두지 다른 방법 있습니까?”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배가 포인트를 이동하는 동안 파도에 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릴이 방수가 되는데 파도에 맞는다고 물이 들어갑니까?”
카탈로그에는 제품 성능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도 기재를 하는데 고객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위와 같은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카탈로그에 표기된 ‘washable’의 의미는 ‘릴 외부의 오염을 물로 닦아낼 수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수의 의미를 단순히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방수에도 단계가 있다. ‘water proof’라고 표기된 제품은 완벽한 방수기능을 뜻한다. 고기능성 원단에서 볼 수 있다. 그 다음이 손목시계 뒷면에 새겨져 있는 ‘water resistant’. 이 뜻은 완전 방수는 아니지만 물이 스며드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것으로 흔히 ‘생활방수’라고 하는 기능이다. 또 수심 몇 미터 방수, 몇 기압 방수라는 문구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수심 100m 방수라고 하면 서서히 물 밑으로 가라앉았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 만약 시계를 빨리 가라앉히거나 수심 100m에서 세게 움직인다면 깨질 수도 있다.
릴도 마찬가지다. 세척기능이 있지만 순식간에 들이치는 파도를 맞는다면 물의 양에 상관없이 내부가 침수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더구나 릴의 방수성능이라고 알고 있는 ‘washable’은 이러한 ‘water resistant’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릴 제대로 알기(3)’에 릴의 방수성능을 잠시 언급하면서 ‘릴 방수성능은 비오는 날 습기 차는 저질 손목시계 수준’이라고 한 것을 정정해야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릴의 방수성능은 그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러한 릴을 파도에 그대로 노출시켰으니 상태가 어찌될지는 뻔한 것이다.
제조업체의 딜레마, 기능성 VS 내구성
그렇다면 제조사들은 왜 완벽한 방수성능을 지원하는 릴을 만들지 않는 것일까? 밀폐형의 릴을 제작할 수 있다면 적당한 시기에 그리스나 오일을 주입해주는 정도로 릴을 관리해주면 끝이지 않은가. 제조사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완벽한 방수릴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릴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드러운 회전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완벽한 밀폐형의 구조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완벽한 방수성능을 위해 릴 구조를 밀폐형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릴 내부 기압의 문제로 인해 회전력이 저하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내구성을 보장받기 위해 릴의 성능을 저하시키던지, 그 반대의 경우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방수성능은 높이면서 밀폐도를 높이고 회전력의 저하도 최소한으로 줄인 신제품이 속속 등장하고는 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릴은 ‘washable’ 정도의 방수성능으로 주요 부품을 보호하고, 물기에 노출되는 부품들의 내구성이 강한 소재를 쓰는 방향으로 기술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어링으로, 다이와의 CRBB와 시마노의 A-RB가 있다. 이런 베어링은 일반 베어링에 비해 수분에 강하고 바닷물에 어느 정도 노출되더라도 염분이 결정화되는 것을 막아 회전력을 저하시키거나 소음을 발생시킬 확률을 줄여 준다.
물기에 닿지 않는 것이 최선
결론적으로 릴은 되도록 물에 닿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세척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더러워서 못 쓸 정도가 아니라면 물청소는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 나온 시마노사의 카탈로그는 이러한 소비자의 혼돈을 줄이기 위해 washable 대신 ‘샤워 세척’이라고 따로 구분해 놓았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릴에 물이 들어갔다면 전문 수리점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특히 워셔블 기능이 있는 릴의 방수성능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문 수리점에 맡겨야 한다. 분해, 조립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릴 수리를 시도하다가는 방수용 고무패킹을 상하게 하거나 제대로 집어넣지 못해 그나마 있는 방수 기능마저도 못쓰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