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부터 시작된 봉산 무장애숲길 4단계 조성 공사가 마무리 되어갑니다. 은평민들레당은 공사가 시작되었던 2023년 8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총 5회의 현장 모니터링*을 진행했습니다.
2023년 8월 공사가 시작될 무렵, 은평민들레당은 기후행동은평전환연대와 함께 은평구청 공원녹지과와 간담회에 참석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기후행동은평전환연대는 그간 앵봉산, 봉산 일대에서 진행된 무장애숲길 조성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차후 은평구 근린공원에서 벌목과 식재 시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해서 추진”하고, 아울러 “무장애숲길 조성 시 벌목을 최소화할 방안과 노선에 대한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에 은평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자는 나무 등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고 한 달 정도 뒤인 9월 중순, 은평민들레당에서는 공원녹지과의 답변이 무색하게 마구 훼손되고 있는 무장애숲길 공사 과정을 확인하고, 공사로 인한 봉산 생태계 파괴 우려를 담은 글을 게시하기도 했습니다*.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2024년 2월, 그간의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무장애숲길 4단계 공사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점들을 정리해 봅니다.
문제점 1► 기존 능선 등산로를 유지한 채 무장애 데크길을 조성, 추가 조성된 면적만큼의 숲이 파괴됨
평탄한 기존 등산로 옆으로 나란히 무장애데크가 깔려있다. (2024.02.27 촬영)
평탄한 기존 등산로 옆으로 나란히 무장애데크가 깔려있다. (2024.02.27 촬영)
기존 등산로를 폐쇄하지 않고 조성한 은평구의 무장애숲길 사업은, 봉산의 숲 생태계 보전을 고려해 섬세하게 계획하고 시행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은평구는 그동안의 무장애숲길 조성 공사처럼 이번에도 기존 등산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무장애 데크길을 추가 조성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4단계 구간만 보아도 평균 폭 2m, 조성 길이 900m로 계산해 보면, 쉼터와 전망대 등을 제외하고도 최소 1.8㎢ 이상의 숲이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숲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단지 나무 몇 그루, 풀 몇 포기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숲의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번 봉산 무장애숲길 조성 공사 4단계 구간은 경사가 심하지 않은 능선 등산로 옆으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습니다. 구간 중 기존 등산로와 이어지는 부분이 총 네 곳입니다. 900m라는 길이를 감안하면 대체로 기존 등산로와 비슷한 높이로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성된 무장애숲길로 걷다 보면 기존 등산로로 다니는 등산객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정자가 있는 큰 쉼터를 조성한 약 60m 정도의 구간은 등산로와 데크가 나란하게 수평을 이룹니다. 기존 등산로를 활용해 무장애숲길을 조성했더라면 숲을 굳이 훼손하지 않아도 되고, 공사비도 절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구간만이라도 숲을 파괴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요?
문제점 2► 마치 미로처럼 한 곳을 맴도는 구간 설계
기존 봉산전망대에서 이어지는 구간, 미로처럼 복잡하게 조성되어 있다. (2024.02.27 촬영)
이번 무장애숲길 4단계 구간 중 봉산 전망대에서 봉산터널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비교적 완만한 구간인데도 불구하고, 약 7차례 이상 방향을 바꾸며 이동해야 하게끔 복잡하게 조성되었습니다. 마치 미로 찾기를 하듯 복잡하게 맴돌며 이동해야 합니다. 이 구간의 기존 등산로는 경사도가 완만한 능선이라 기존 등산로를 활용해 노선을 설계했더라면 이동약자도 편히 즐길 수 있게끔 복잡하지 않은 구간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점 3► 편백숲 봉산 전망대 인근 전망대 추가 조성, 불필요한 벌목으로 과도한 숲 파괴
전망데크 전방 3m의 숲까지 전부 베어졌다. (2023.12.27 촬영)
은평구는 이전에 ‘봉산포토아일랜드'라는 이름의 대규모 봉산 전망대를 편백정 근처에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대규모 전망대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정자와 벤치가 있는 대형 전망대를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대형 전망대를 조성하며 많은 나무가 벌목되었는데요, 은평구는 전망데크를 설치하지 않는 전방 3m 앞까지의 나무마저 벌목했습니다. 이곳에서 34그루 이상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은평구의 무장애숲길 사업은 이동약자를 위한 길 조성뿐만이 아니라 베지 않아도 될 자연림까지 훼손하고 있습니다. 공사 시 숲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던 은평구청의 답변이 무색합니다.
문제점 4► 생태적 고려 없는 노선 설계로 많은 나무가 베어짐
무장애숲길을 조성하며 벌목한 나무를 길 옆에 쌓아두었다. 아까시나무, 팥배나무, 참나무류 등 다양한 나무가 베어졌다. (2024.02.27 촬영)
편백숲 조성시 벌목한 나무를 쌓아두고 비오톱 홍보 팻말을 만들어 두었다 (2024.01.30 촬영)
이번 4단계 공사 구간은 아까시나무 숲에서 팥배나무 숲으로 천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숲입니다.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아까시나무 사이사이로 어린 팥배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참나무, 귀룽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구청은 공사 시 고사목, 위험수목을 위주로 정리할 것이라 밝혔는데요, 아까시나무는 건강하더라도 고사목, 위험수목 취급을 받으며 쉽게 베어집니다. 하지만 높이 자라있는 아까시나무는 말똥가리, 파랑새, 뻐꾸기, 까치, 동고비, 딱따구리 등 여러 새들이 앉아 영역을 살피고 먹이활동을 하는 등 숲 생명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숲의 한 부분입니다.
데크길 주변에는 무장애숲길을 조성하며 벌목한 나무토막을 쌓아 올려 더미를 만들어둔 것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이번 4단계 조성 현장에서 일곱 더미를 확인했고, 아직 정리하지 않은 나무토막도 많이 보입니다. 우려했던 대로 많은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계획한 길을 따라 공사에 방해가 되는 나무를 모두 베어내다 보니, 자라나고 있는 어린 팥배나무나 참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베어진 것입니다.
이 나무토막 더미는 비오톱으로 활용할 듯 예상되는데요, 편백숲 조성 시 베어진 나무를 쌓아두고 새와 곤충들을 위해 비오톱을 조성했다고 홍보하던 기만적인 팻말이 떠오릅니다.
문제점 5► 공사 진행 과정에서 숲 파괴, 생물서식 위협 초래
잣나무 숲에 주차된 포크레인과 뿌리가 드러나고 파헤쳐진 땅, 포크레인 뒤로는 공사 자재가 마구 쌓여있다. (2023.08.15 촬영)
임도를 오르내리는 중장비로 인해 훼손된 나무 뿌리 (2023.09.10 촬영)
산속에 시설물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하려면 산 정상부까지 자재를 옮기기 위한 임도가 필요합니다. 이번 무장애숲길 4단계 조성 공사는 포크레인 등의 중장비가 동원됐는데, 이 중장비가 지나기 위해 기존 등산로를 파헤치고 넓히며 주변 나무의 뿌리 등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식물의 뿌리가 훼손되는 것은 줄기, 가지가 부러지는 것보다 생명에 더 치명적입니다.
공사 시 발생하는 중장비, 망치, 기계톱 등의 굉음 등의 소음은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데 큰 스트레스와 위협이 됩니다. 특히 공사 과정에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산에 사는 동물들의 집을 파괴하는 일이며, 둥지에 있는 동물을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방부 처리된 데크 목재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 데크 목재에 도포하는 유성 페인트의 화학 물질 등은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이 됩니다.
문제점 6► 시공사의 폐기물 투기 등 법규 위반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
나무 높은 곳에 데크색 페인트가 묻은 대걸레가 걸려있다. 시공사에서 던지듯 투기한 것으로 보인다. (2024.02.17 촬영)
방부 데크목 조각과 실리콘 등이 골짜기에 버려져 있다. (2024.03.3 촬영)
실리콘, 방부 데크목 조각, 철골, 페인트 롤러 등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무장애 데크길 아래 골짜기에 다량 버려져 있습니다. 일부러 던져놓은 듯 보이는 대걸레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이의 나무에 걸려있기도 합니다. 공사 노선을 표시하느라 나무에 묶어 뒀던 노끈과 청테이프 등도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공사 중 발생한 쓰레기가 숲에 버려지는 것은 시공사의 명백한 법규 위반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은평구의 책임입니다. 아직 공사 현장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니 두고봐야겠지만, 꼼꼼한 관리·감독으로 공사 시 발생한 쓰레기를 남김없이 수거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며 ► 이름만 '무장애'인 산림 개발 사업이 되지 않으려면
지난 923기후정의행진에 은평민들레당은 봉산 숲 훼손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에 함께했다. (2023년 9월 23일 촬영)
이동약자의 이동권은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입니다.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은 누구나 숲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숲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곳에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은평구가 밀어붙이고 있는 봉산 무장애숲길은 '무장애'라는 이름만 붙여 넣은 산림 개발 사업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동약자가 애초에 무장애숲길 진입로에 접근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시작점에 경사로가 없는 곳도 있고, 진입로까지 가는 길 자체가 급경사여서 휠체어를 탄 채 차량에서 내리는 것부터가 위험한 곳도 있습니다. 접근조차 어려운 무장애숲길에 ’무장애’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 은평구는 동식물의 보금자리인 숲을 이용하면서도 숲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노력은커녕, 지나친 자연 파괴가 뻔히 예상되는 곳에 공사를 계획하고, 과도하게 자연림을 벌목하며 봉산의 생태계와 맞지 않는 수목을 식재하는 등 봉산 생태계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4단계 공사는 끝나가지만, 올해(2024년) 4단계에서 봉수대를 잇는 5단계 공사가 예정되어 있고, 불광근린공원 역시 무장애숲길 착공이 가까워져 오고 있습니다. 내년(2025년)에는 급경사지인 수색에서 시작해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지나는 봉산 무장애숲길 6단계 공사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숲 훼손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며,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대규모 무장애숲길 사업을 이대로 지속하면 안 됩니다. 이미 만들어 놓은 무장애숲길은 이동약자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꼼꼼히 보완하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무장애숲길 조성을 철회해 더 이상의 자연 파괴를 막아야 합니다. 기존 등산로를 폐쇄해 무장애길을 조성하며 파괴한 숲을 다시 숲 생명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은평구의 소중한 생태계를 더 이상 파괴하면 안 됩니다.
2024년 3월 4일
은평민들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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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 무장애숲길 조성공사 4단계 현장 모니터링은 1회차: 2023년 8월 15일, 2회차: 2023년 9월 10일, 3회차: 2023년 11월 6일, 4회차: 2023년 12월 27일, 5회차: 2024년 2월 17일, 총 5회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