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인간 아브람
연구 범위: 창 11:27~15:21
기억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지난주 교과는 과거의 교훈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바벨탑의 사건 등 유쾌하지 못한 내용으로 끝났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좀 더 희망적인 내용을 다룰 것이다. 바울이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 4:16)고 말한 부조 아브람(Abram)이 나온 가계(家系)인 셈의 후손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모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조상인데, 그에게 주어진 언약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갈 3:29)가 되어, 더 이상 악과 죄와 죽음이 없는 하늘 가나안에 대한 약속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타락과 홍수와 노아의 술 취함과 바벨탑의 실패 후에, 여호와께서는 아주 분명한 방식으로 인류를 위한 희망을 소개해 주셨다. 그 희망은 아브람과 함께 시작되는데, 그는 비록 우상숭배에 빠지기 쉬운 가족적 배경과 문화 가운데 살았으나 참되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름으로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약속을 받았다. 이번 주에 우리는 아브람의 생애와 그의 소명과 순종, 그의 인품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는 타락한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행위를 통해 믿음을 나타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모본이다.
아브람의 출신 배경
창세기 11:10~32을 읽으십시오(참고 수 24:2; 행 7:2). 이 구절 바로 앞에 나오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왜 그 이야기와 이 기사가 나란히 기록되었을까요? 여기에 아브람의 출신 배경과 가족관계에 대한 어떤 세부적인 사항이 나와 있습니까?
답:
비록 나이로 하면 아브람이 데라의 아들들 중 막내이지만 창세기 11:26~27에서 그가 제일 먼저 언급되는데, 이는 그가 선택된 가족의 조상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은 아브람이 살던 시대에 관해 많은 사실을 밝혀내고 있지만, 그 당시의 위대한 제국들은 아브람의 이야기에서 단지 배경에 불과하다. 집중 조명이 하나님에 관한 진리와 지식을 수호하려고 힘썼던 부조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비춰진다. 이것은 창세기의 거대한 초점이다. 우상숭배와 이교 사상과 온갖 종류의 미신으로 가득 찬 세상에 하나님께서 당신에 관한 진리를 보존하시기 위해 위탁하신 자들에게 이 이야기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7:2~4에 따르면, 아브람의 부르심은 몇 단계에 걸쳐 일어났습니까?(창 12:1과 행 7:4을 비교해 보라). 왜 아브람은 즉시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이러한 단계들을 거쳐야 했다고 생각합니까?
답: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먼저 갈대아 우르의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부르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가지 않았다. 그 대신 하란(Haran)이라는 곳에 이르러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가 마침내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였다.
교훈: 아브람은 우상숭배와 이교적 풍습의 영향을 받기 쉬운 환경에서 살았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그분이 지시할 곳을 향해 떠났다.
부르심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란을 떠나라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창 12:1~3; 히 11:8~10)
답: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하실 때,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창 12:2)고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씀을 바벨탑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창 11:4) 탑을 쌓은 사실과 비교해 보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왕에 이름이 창대케 되기를 바란다면, 가족과 동족과 문화와 비옥한 땅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히 11:8) 떠나는 것보다, 인간의 기념비적인 탑을 쌓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러나 오늘날 바벨탑을 쌓기 위해 일했던 사람 중 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세상에 아브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름대로 ‘이름을 내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위에서 본 대조를 통하여 어떤 강력한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
답:
가나안으로 가라는 부르심 외에(창 12:1과 행 7:2을 비교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으로 하여금 큰 민족으로 이루시리라는 놀라운 약속도 주셨다. 이것은 분명히 자녀를 낳을 것에 대한 약속이 포함된 것인데, 그때까지 그의 아내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창 11:30)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은 참으로 믿음이 요구되는 문제였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4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라고 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에게 약속도 함께 주셨으며, 아브람은 믿음으로 나아갔다(참고 롬 4:13).
교훈: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아갔으며, 그에게 자손을 허락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시리라는 약속도 의지하였다.
아브람의 믿음
창세기 12장 전체를 읽으십시오. 믿음에 대해서, 시련에 대해서, 품성에 대해서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지 느낀 대로 적어 보십시오. 이 이야기에서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떤 부분을 떼어 내버리기를 원합니까?
답: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랐기 때문에 그는 아마도 하나님의 섭리로 평탄한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그분을 신실하게 따르는 동안 시련이 닥치지 않는다는 아무런 증거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참으로 그가 가나안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극심한 기근이 닥치는 바람에 풍족한 나일 강물을 관개(灌漑)하여 농사를 짓는 애굽으로 떠나야만 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도 믿음의 시련을 견디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 기록에서 배울 수 있다. 그 기근으로 인해 그의 믿음이 얼마나 크게 위축되었을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왔는데, 기근이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사래와 바로에 관한 일에서 그의 믿음이 흔들린 까닭은, 그가 가나안 땅에서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 기근 때문이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굶주림과 두려움은 이 믿음의 영웅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유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하였다. 믿음은 두려움에 굴복되었고, 두려움은 교활함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아브람은 절반의 진실을 부각시킴으로 나머지 절반의 진실을 숨기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주께서 당신의 섭리로 아브라함에게 이 시련을 주신 것은 그에게 순종과 인내와 믿음의 교훈, 곧 나중에 고난을 참도록 부르심을 받을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에 남겨야 할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하시나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잊어버리거나 내버리시지 않으신다”(부조와 선지자, 129).
교훈: 아브람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랐으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기근을 피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는 동안 그의 믿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브람과 롯
창세기 13:1~13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은 아브람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왜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삶의 모본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성경에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라고 권면하는 구절은 무엇입니까?(예, 빌 2:4)
답: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은 가나안에서 쌓은 두 번째 제단에서 여호와의 부르심을 들었다(창 13:3~4). 그는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다른 시험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아브람은 땅에 대한 약속을 아깝게 놓치는 듯이 보였으나(5-6절), 그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했던 실패는 그가 롯을 대할 때에 나타낸 품성의 고귀함으로 벌충되는 듯이 보였다. 롯은 벧엘의 고지대로부터 요단 골짜기까지 물이 풍성하고 비옥한 땅 곧 에덴동산 같고 메소포타미아의 평원 같은 그 땅을 보았다. 롯은 자신의 감각이 호소하는 대로 선택하였다. 그것은 ‘믿음’과 ‘안목의 정욕’ 사이에서 내린 결정이었고, 그 결과들은 무엇이 옳고 지혜로운 선택이었는지를 나타내 줄 것이었다. 아브람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믿음으로 행하기로 결심함으로써 눈앞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을 넘어 영원한 이익을 내다볼 수 있었다.
창세기 13:14~18을 읽으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왜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그 약속을 주시기 위해 이때까지 기다리셨다고 생각합니까?(참고 14절). 이 약속들을 믿기 위해 아브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믿음이 요구되었을까요?
답:
교훈: 아브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보았으나, 롯은 보이는 것으로 인해 그 너머를 내다보지 못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다.
멜기세덱과 아브람
창세기 14:1~16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노략 사건과, 아브람이 롯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노략자들의 손에서 되찾아온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이요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아브람이 또한 전쟁의 사람이기도 하였다.
멜기세덱의 이야기는 아브람의 영적 고매함에 대해 어떤 빛을 던져줍니까? 그의 믿음은 어떻게 행위로 나타났습니까?(17~24절)
답:
멜기세덱(이름의 뜻: “나의 왕은 의로우시다”)은 살렘(예루살렘의 다른 이름, 참고 시 76:2)의 왕이었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도 아브람이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멜기세덱은 그를 환영하고 축복하였으며, 아브람은 자기가 취한 모든 것의 십분 일을 왕이요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주었다(20절). 이는 모세와 유대인들이 존재하기 오래 전에도 십일조 제도가 시행되었음을 말해 준다. 이 위대한 승리 후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신다.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고 하셨다. 최근에 그가 거둔 승리로 인해 이웃 족속들이 일으켰을 분노를 고려해 볼 때, 아브람에게는 그와 같은 격려가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라고 엘렌 화잇은 말한다.
아브람의 대답을 읽어보십시오(창 15:2~3). 그가 한 대답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타당하게 들립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자손들이 셀 수 없이 많아질 것이라(4~6절)는 당신의 처음 약속(창 12:2, 13:16)을 반복하셨다. 아브람과 사래는 점점 늙어감에 따라 자손에 대한 약속이 점점 더 희미해져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거룩한 능력을 신뢰하였다. 이것이 창세기 15:6에 기록된 내용이며, 후에 바울이 인용한(롬 4:3) 말이기도 하다.
교훈: 아브람은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약속을 들었을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다.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11장 ‘아브라함을 부르심’(125~131), 제12장 ‘가나안의 아브라함’(132~136), 재림교 성경주석 1권(271~307).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들었을 때, 그 약속을 확증하는 표증을 요구하였다(창 15:7~8). “주께서는 스스로 낮추시어 당신의 종과 언약을 맺기로 하시고 엄숙한 계약의 비준(批准)을 위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형식을 채택하셨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브라함은 각각 3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을 희생으로 드리고, 그것들을 쪼개어 그 조각들을 조금씩 떼어 놓았다. 이것에 더하여 산비둘기 하나와 집비둘기 새끼 하나를 드렸는데, 그것들은 쪼개지 아니하였다. 이 일을 한 후에 그는 영구적 순종을 하나님께 엄숙히 맹세하면서 그 제물 사이를 경건하게 지나갔다. 조심스럽고 끈기 있게 그는 해가 질 때까지 짐승들의 주검 곁에 머물러서 맹금(猛禽)들이 그것을 더럽히거나 뜯어먹지 못하게 하였다. 해질 무렵에 그는 깊은 잠에 떨어졌다. 그리고 ‘캄캄함이 임함으로 심히 두려워하’였다(창 15:7~18). 그 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약속의 땅을 즉시 점령하리라고는 기대하지 말라고 명하시며,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에 그의 후손들이 당할 고통을 지적해 보이셨다. 위대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께서 영광 가운데 오시는 모습을 통해 여기서 구속의 경륜이 그에게 제시되었다. 또한 아브라함은 이 땅이 그에게 영원한 유업으로 주어지기 위하여, 약속의 최종적인 완전한 성취로서 에덴의 아름다움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다”(부조와 선지자, 13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아브람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선교지로 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어떤 선교사를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선교의 여정에서 만날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요?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