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5/자식은 축복인데 왜 산모가 부정한가? 또 딸 출산으로 인한 부정의 기간이 왜 아들의 경우보다 두 배인가?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레 12:2~5)
지금은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성경 시대에는 무자식은 불행이나 심판의 증표였다(레 20:20; 신 28:18). 반대로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 (시 1273)이요, 많은 자녀를 둔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시 128:3)로 비유되었다. 그런데 왜 자녀를 낳은 산모가 부정한가? 그래서 바로 그 문제부터 분명하게 하면서 시작해 보자. 본문은 산모가 부정한 이유가 아이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출산할 때 흘리는 '산혈(4, 5절) 때문이다. 피가 생명을 상징하기에 피를 흘리는 것은 죽음을 상징한다. 산후에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산모는 아들의 경우는 40일, 딸의 경우는 80일이 지나야 정결하게 되었다. 그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4절)이었다. 문자적으로 보면 종교적인 활동 금지 기간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는 산후통을 앓고 있는 산모가 합법적으로 종교적 의무에서 면제되는 기간이었다. 부정하다고 하였지만 이외에는 어떤 부당한 대우도 없었다. 그러니 그 기간은 일종의 공식적인 '산후조리 기간이었다. 한국도 예전에 산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소위 '금줄'을 띄웠다. 그것이 있으면 일반인들이 출입을 하지 않아야 했다. 또 산모와아기가 외부인과 접촉을 하지 않고 몸조리를 하던 삼칠일(三七日)도 있었다. 레위기 12장의 규례도 그 근본 목적이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충분히 쉴 수 있는 기간을 보장해 주는 기능을 하였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아이를 낳은 이후 갖게 되는 정결케 되는 전체기간을 둘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아들의 경우는 7+33일(40일)이고, 딸의 경우는 14+66일(80일)이다. 전체 기간이 같은 의미라면 그냥40일과 80일로 표현하면 될 것이다. 칠십인역이 그렇게 번역하였다. 즉아들을 낳은 경우 40일 동안 딸의 경우 80일 동안 산모가 계속 부정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40일을 둘로 구분하여 7일과 33일로 표현한 것은 그 두 기간의 의미가 다름을 나타낸다. 본문은 아들의 경우 산모가'이레 동안 부정(2절)하고, 딸의 경우는 '두 이레 동안 부정(5절)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부정한 기간은 각각 '이레'와 '두 이레'일 뿐이다. 그러면 그 나머지 기간, 즉 아들의 경우 33일과 딸의 경우 66일은 어떤 기간인가? 그것은 부정하지는 않지만 성물과의 접촉이나 성소의 출입이 금지된 기간이었다. 즉 정결하지만 아직은 거룩한 사물에 접촉해서는 안 되는 준비 기간이었다.
그러면 왜 딸은 아들의 경우보다 부정한 기간과 산혈이 깨끗하게 되는 기간이 두 배인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만일, 산혈이 정결케 되는 기간을 다시 거룩한 사물로 나아갈 자격을 얻는 기간으로 본다면 아들의 경우를 우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을 산모의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이라고 본다면 오히려 딸을 우대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실제로 아들을 선호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딸을 출산한 산모가 합법적으로 더 긴 기간산휴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산모의 심리적 치유와 안정에 상당한 순기능을 하였을 것이다. 남녀차별을 조장하는 규정이 아니라 오히려 남녀차별의 현실에서 주어진 인도주의적 규정인 것이다.
정결하게 하는 기한이 차면 산모는 번제와 속죄제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6절)갔다. 번제는 감사의 뜻으로 드리고, 속죄제는 출산후 7일 혹은 14일 동안 산혈로 부정한 상태에서 회복되기 위함이다. 산모가 드리는 제물에서 주목할 사항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들과 딸의 경우에 따라 제물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는 아들과 딸이 같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번제의 제물과 속죄제의 제물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번제물은 일 년 된 어린양이고, 속죄제는 비둘기이다. 번제물이 속죄제물보다 훨씬 비싼 것이다. 그것은 산모에게 속죄의 의무보다 번제의 감사가 훨씬 크다는 의미이다. 물론, 가난한 경우에는 두 제물 모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로 드릴 수 있었다(8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모세의 법대로 정결 예식의 날이 차매..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눅 2:24)를 드리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 요셉이 목수 일로 그리 넉넉하게 살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 규정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2절)고 한 점이다. 이는 이 규정은 여인들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알고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산모를 보호하는 일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실천해야 하는 규례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12장의 규례에는 생명을 탄생시킨 산모와 이제 막 출생한 신생아에 대한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