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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 나의 전부야
오늘의 제목은 “나의 생명, 나의 전부야”입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의 생명처럼 존귀한 존재, 나의 전부처럼 소중한 존재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손주들이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카톡 메인사진으로 손주들 사진을 올려놓습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귀하고 예쁜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 귀여운 놈들이 아주 말을 잘 들을까요 안 들을까요?
“네,” 라는 말을 잘할까요? “싫어요.” 이런 말을 더 잘할까요? 그래도 할애비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귀엽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런 자녀가, 손주가 죽을 일이 생겼다면, 그런데 내가 대신 죽으면 살아날 수 있다면 대신 죽지 않을 부모가 어디있겠습니까? 그것이 아버지 마음, 어머니 마음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그런 생각이 단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다 그런 어머님 계십니까?
나는 그런 생각이 단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다 그런 아버님 계십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비단 사람에게만 아니라 작은 물고기들에게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물고기가 가시고기라는 물고기입니다.
엄마 물고기는 알을 낳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아빠 물고기가 그 한 알 한 알 다 부화되고, 건강할 때까지 돌보다가 자식들을 위해서 자신의 살을 먹이로 주는 물고기입니다.
여기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는 한 아이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릅니다.
그래서 이 아이 보다 더 아파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이 아이의 아버지인데, 골수 이식 수술을 하기 위하여 아픔 속에 울부짖는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이 아버지는 생전처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이 아이를 제발 살려주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제 생명을 취하고서라도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울면서 울면서 간절히 간구합니다.
목숨을 바쳐서라고 살리고 싶은 마음,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던 덕분인지 이 아이는 다행히 살아납니다.
이 아이의 치료비를 얻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썼던 이 아버지는 이제 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생각다 못해 바람 나 자기를 떠나버린 아내를 불러서 마지막으로 아이를 맡기고 헤어지는 장면을 보시겠습니다.
이 아이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빠, 저를 좀 안아주세요.
아빠도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복수가 차서 죽어가는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습니다. 이 아이에게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단호히 거절하고 이 아이를 돌려보내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를 향하여 내뱉는 마지막 말이 이것입니다.
https://youtu.be/w1LpJdu2L5U?si=r8pm3l28fXMGN1q0&t=1345
“나의 생명, 나의 전부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다오. 너를 남기고 아빠는 죽지만, 너가 있으면 아빠는 아주 죽는 게 아니란다.”
이 “가시고기”라는 책을 쓴 조창인 씨는 아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는 이 간절한 사랑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 병들어가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이토록 생명까지 주는 사랑을 하는데,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식일 죽을 존재인지도 모른 채,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살아가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분명히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귀한 사랑을요!
한국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그러시고는 이분이 돌아가셨어요. 너무나 명확하고, 단순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중요한 말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지게를 지고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에게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저씨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세요 좀 쉬었다 하시지요?” “누가 쉬는 줄 몰라서 안 쉬는 줄 알아? 열심히 일을 해야 돈이라도 한 푼 벌지.”
그러자 아이가 다시 묻습니다. “아저씨 그 돈 벌어서 뭐 하게요?”
“어허 이놈이 갈수록 태산일세. 돈을 벌어야 밥이라도 먹고 살지.”
거기서 끝날 줄 알았는데 또 묻는 거예요.
“아저씨 그 밥 먹고 뭐 하게요? 야 이놈아 밥을 먹어야 기운을 내서 또 열심히 일하러 가지”
“아저씨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돈벌기 위해서 일하고, 돈벌어서 밥먹고, 그 밥먹고 또 일하려 가고...일돈밥 일돈밥 하다가 결국은 죽어 버리니 죽으려고 그렇게 쉬지도 않고 일하시는 거네요”
여자분들의 인생은 밥빨청잠입니다. 아무리 좋은데 시집을 가도, 밥빨청잠입니다. 밥빨청잠이 무엇입니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잠자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별수 있는줄 아십니까? 밥직티잠입니다. 밥먹고 직장갔다 티비보고 잠자고....그러다 죽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길을 찾아야 겠습니다.
우리가 한번 사는 길에 대하여, 인생에 대해서, 영생에 대하여 우리가 한번 연구해 봅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밥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그럴 정신이 어디 있어요? 이렇게 말해합니다.
여러분! 밥에 얽매여 사는 인생, 밥만 먹고 사는 인생의 결말이 뭔지 아십니까? 70년 80년 기다려보지 않아도 밥먹고 4-5시간 기다려보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밥에 목메단 인생의 결말입니다.
사실 똥 냄새보다 더 도망가고 싶은 것이 사람이 죽어 썩는 냄새 나는 송장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돌아가시면 3일장 5일장 핑계대고 산에다 묻기 바쁘지 않습니 까? 인생은 참 허무한 한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 누군가가 그렇게 간절히 하루를 더 살기 원했던 그날이 그날입니다.
여러분, 이 사진을 보세요.
할머니가 아니고 17살 된 소녀의 사진입니다.
이 병은 무슨 병인가 하면 조로증이라고 해서 하루에 1년처럼 늙어가는 병입니다.
이렇게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아이가 부모보다 자기보다 더 빨리 늙어가요.
17살에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겠어요.
그런데 사실은 말이죠.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를 영생하도록 창조하셨지만 죄가 우리를 늙어죽게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원래는 영생할 자인데 우리가 다 늙어 죽고, 병들어 죽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병에 걸렸다고요? 늙어 죽을병에 걸려서 다 늙어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곱게 늙어 죽으면 그래도 다행이지요. 다들 병들어서 고통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을 한마디로 “생로병사”라고 합니다. 왜 인생은 늙고 병들어 죽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유전자에 있습니다. 유전자속에 딱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의 세포 속에 있는 유전자가 우리를 관리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했어요. 세포가 죽기전에 세포분할을 하고, 또 죽기전에 세포분할을 하면 안 죽어도 될 터인데, 왜 죽을까? 그래 사람을 죽도록 하는 유전인자가 있을 지르겠다. 그 사망 유전인자를 찾아서 짤라 버리면 안죽어도 되겠네! 여러분 사망유전인자를 찾아서 잘라 버리면 죽지 않아도 될까요? 말이 되요? 안되요? 말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드디어 연구결과 사망유전인자를 찾아았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P53이란 유전자입니다. 그래서 딱 짤라 내려고 하다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유전자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사망 유전인자가 되기도 하고 항암 유전인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항암인자가 되어서 암이 안 걸리도록 해주는 유전인자입니다. 암세포는 P53이 없어요. 그래서 암으로 죽은 사람의 암세포를 시험관에 옮겨서 영양분을 공급해주면 시험관에서 영생한다는 거예요. 참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 고민이 생겼습니다. 사망유전자가 있으면 살다가 수명대로 죽고, 빼 버리면 암에 걸려서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낳겠습니까? 암이 걸리지 않을 에덴동산에서는 이 P53이 필요 없었지만, 죄로 세상이 망가지고 난후 창조주는 우리에게 P53을 준 것입니다. 이 죄악 많은 세상에 영원히 살려고 애쓰지 말고, 하늘을 가기 위하여 준비되는 삶을 살다가 하늘로 오느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늘의 뜻입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원래 영생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우리 실력으로는 안되겠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영생하는 인간에게 왜 죽음이 왔을까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우리는 다 죄인이기 그 값으로 죽어야 합니다. 누가 나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어줄 수 있습니까? 누군가 대신 죽어줄 때 우리가 살 길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이 사망에서 건져주랴 아우성칠 때 누가 대신 죽어줄 수 있을까요? 누가 이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줄 수가 있을까요?
신앙이 복잡한 것 같아도, 한국에 있는 모든 신앙의 최종적인 결론은 딱 세 분입니다.
공자님, 부처님, 예수님입니다. 이 세분에게 영생의 방법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공자님께 그의 제자가 묻습니다.
스승님! 죽음의 비밀을 알려주십시오. 그렇게 물으니까 공자님이 하시는 말씀이
“삶의 이치도 다 깨닫지 못했거늘 내게 어찌하여 죽음을 묻느냐?” 이것이 공자님의 답변입니다. 죽음의 이치를 모른 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 세대들만 해도 3년상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3년상이 없어졌죠? 언제부터 없어지는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 때 가정의례 준칙을 통하여 3년상을 3일 상으로 딱 줄여버렸어요.
그때 많은 유교를 믿는 분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조상 덕에 잘 사는데 3년상을 폐지하면, 나라가 쫄딱 망하면 어떡하나?”
여러분, 나라가 망했나요? 더 잘 살게 되었나요?
뭐니 뭐니해도 박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나라는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조상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애국가에도 나오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리에게 생명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부처님이면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을까요?
아마 절에 다니는 분들은 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대부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죽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이 아들은 죽으면 안 되는 아이야.
그래서 엄마는 이 죽은 아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부처님께 이야기할 때에 부처님이 말합니다.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 한 줌만 얻어오면 내가 당신의 아들을 살려주겠소.”
그러니 이 엄마가 희망을 가지고 이 집 저 집 다 다니면서
“이 집에 사람 안 죽었습니까? 이 집에 사람 안 죽었습니까? 안 죽었다면 겨자씨 좀 주세요”
다녀보니 안 죽은 집이 없어요. 실망 속에 해거름 때에 부처님께 찾아왔을 때 부처님이 이렇게 답변을 해줍니다.
“키사 고타이야 어찌 네 아들만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나도 죽고 너도 죽고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다 죽는 것이다. 그것이 법칙이니라.”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다 죽는 것이다.
그러니 너만 죽는다고 애달파하지 말고 인생의 운명에 순응하면서 받아들이면서 살아라.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불하십시오. 이렇게 하는데 그 성불, 부처가 되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부처라고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깨달은 자”라는 뜻으로 인생에 왜 고통이 왔는지 깨닫고 도를 통하면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원리 순복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한들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그의 유사한 얘기가 성경 누가복음 7장에도 나옵니다.
한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이제 이 아들을 무덤에 장사로 갈 때에
이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애처로웠을 것입니다.
이 울음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그 관을 멈추시고 여자야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울던 과부가 깜짝 놀라서 그랬겠죠.
“제가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아들 하나밖에 없어요. 저는 남편도 없어요. 이 아이는 나의 모든 소망이에요. 나의 전부에요. 나의 생명이에요. 그런데 이 아이가 죽었는데 내가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때 우리 주님께서 죽어 있는 청년을 향하여 청년아!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렇게 이야기하시자 죽었던 청년이 일어나 앉고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아이를 품에 안고 너무나 감격스러운 은혜를 누리면서 이렇게 고백했겠지요.
“예수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당신이 생명이요 당신이 저의 구세주이십니다. 참된 저의 위로자이십니다”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겠어요? 사실은 전에 달리던 한 평생을 절에 다니던 3대에 걸쳐 스님 이 어느 날 누가복음 7장을 읽게 되었어요.
그리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 부처님은 너도 죽고 나도 죽고 그러니 위로받고 가라 그랬지만 예수님은 죽은 아이를 살려 품에 안겨주시는 생명의 능력을 가진 분이구나.
이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친구 스님들 100여분을 예수께로 인도했습니다.
불교의 경전 중에 42장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는데 여기 보면 부처가 열반에 들 때 그의 수제자 아난다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40년을 지냈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걸어 다녔고 당신과 함께 잠들었으며 당신과 함께 음식을 먹고 당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떠나시면 내게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뭐라 하셨는가하면
“나는 그대 위에 빛이 아니었다. 그대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이것이 42장경의 마지막 부처님의 유언에 기록돼 있는 말씀입니다.
스승이 나는 빛이 아니다 그렇게 고백했는데, 스승도 빛이 아닌데 어떻게 제자가 빛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하여 나의 생명, 나의 전부야 내가 너를 위하여 나의 생명을 주노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기꺼이 내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왜 우리를 향하여 “나의 생명 나의 전부”라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까?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를 당신의 친자녀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보면서 느끼는 일체감 이상의 더 깊은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느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죽고 니가 살 수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너를 위하여 못해줄 게 무엇이 있겠느냐 말씀하시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예수안에 천국을 영생을 우리가 필요로한 모든 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 한없는 사랑을 거절하지 않으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입니다. 사형수입니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습니다. 우리의 삶에 기회가 있을 때에 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누기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날 왜 이토록 세상이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을 깨트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성지순례를 가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에 이렇게 적혀 있는 글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나라 6.25때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950년 흥남철수작전때 미군에서 특별명령이 내립니다. 군사물자 25만톤을 싣고 속히 철수하라. 그런데 배가 떠나려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살리느냐, 군사물자를 살리느냐의 귀로에 섰습니다. 그때 라루선장이 단호한 명령을 내립니다.
“배에 실려있던 모든 무기를 버리고 사람을 태워라. 한명도 빠짐없이 태워라” 정원 60명인 배에 230배가 넘는 14,000명이 타고 살아났습니다. 3일간의 항해 끝에 거제도 장승포에 도달했는데 한명도 죽기는커녕 5명이 더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그 후손은 10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https://youtu.be/H0prjCjrOlY?si=cpaYxrZpXg65PoVF
https://youtu.be/NvWwar8VMew?si=zKPhUkAoSFSDuZRh
여러분 생명보다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위대한 선택 덕분에 14천명이, 100만명이 산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멸망의 귀로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는 일에 방해되는 것들을 단호히 버리시고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결코 후회하지 않을 영원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시고, 영원을 거두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